종교가 있음에도 아르메니아에서의 수도원 관광은 별 재미가 없었다.
대부분의 수도원들이 수려한 경관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그것도 처음 한 두 곳만 탄성을 자아내지, 그 이상은 다 똑같아 보였다.
게다가 대개의 수도원들은 아르메니아와 그루지아에서 지긋지긋하게-_- 접하게 되는 전형적인 외양을 갖추고 있다.
꼬깔모자 같은 지붕과 그 위에 뽀족히 솟은 십자가, 벽에 난 기다란 창, 칙칙하고 어두운 내부-.
터키 동부 '반(Van)' 호수 위의 '악다마르 섬', 그리고 '카르스' 와 '아니' 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고대 아르메니아 왕국의 꿈의 흔적들은, 그 곳이 '터키' 였기에 더욱 신비롭고 애틋하게 다가올 수 있지 않나 싶다. 실제로, 아르메니아의 주요 볼거리인 수도원 관광에 싫증이 난 여행자 필립은 이내 불평을 터뜨렸다.
'이 나라는 통 볼 거라곤 수도원밖에 없군, 맙소사...'
이 말은, 가니와 게가드 수도원을 시작으로 마치 미션수행하듯 유명한 수도원들을 둘러보며 종내는 내가 내뱉게 될 말이었다.
학문적 깊이나 역사적 호기심, 종교적 신실함 어느 것 하나 갖추지 못한 내겐, 인상적인 몇 곳 외의 수도원들은 동의반복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이드의 설명과 동행과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단 데 생각이 미쳤다. 웬만해선 내키지 않아하는 투어에 참여 신청을 한다.
우리의 투어버스. 인원이 적어 안락하고 편안했다.
지붕에 잡초와 세월의 이까, 꽃을 이고 있는 수도원. 함께 했을 아득한 세월이 느껴진다.
단체투어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개별여행의 오붓함과 융통성을 포기하는 데 대한 반대급부를 투어상품은 분명 제공한다. 바로 시간절약, 효율적 이동, 안전보장과 가이드의 설명.
나에 앞서 개별여행과 투어참여를 모두 해 본 필립의 말을 듣고, 맘에 맞는 투어를 골라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방문해야 할 메이져 수도원들이 국지적으로 흩어져 있었고, 호젓하게 혼자 고독을 씹으며 돌아보는 것도 좋지만 그러기엔 교통비와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 특히 지금 같아선 허구한날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꼴'인데다, 투어상품엔 쇼핑이나 옵션강요는 일체 없단다.
우리 투어 일행은,
지적인 인상을 지닌 은발의 스웨덴 할머니, 레바논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미국으로 이주한 중년여성, 아르메니아 인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모자,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아랍계 모녀, 그리고 나까지, 아르메니아계 미국인 꼬마를 제외하곤 죄다 여자 고객들. 핏기없이 우윳빛처럼 뽀얀 피부에 까만 눈망울을 지닌 가이드는, 옥구슬 흘러가는 듯한 웃음소리를 지닌 아르메니아 여학생. 저마다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하는데, 가이드는 내 차례가 되자 지레짐작하고 묻는다.
"당신은, 제가 맞춰 볼께요, 일본에서 왔겠지요? (Let me guess, you are from Japan?)"
"아니요. 전 한국에서 왔는데요. South Korea요."
근데 웬걸, 이 예쁘고 천진한 가이드의 뇌에는 언뜻 '코리아' 란 단어가 접수가 안 되나 보다.
잠시 의아한 듯 두 눈을 깜빡거리길래, 내 옆에 있던 스웨덴 할머니와 레바논 아줌마가 여러 번 다시 말해줘야했다. 한국-아르메니아 간 국가교류가 일천하다는 건 이해하지만, 예레반에 대한민국대사관이 떡하니 자리한 건 어떻게 설명할련지 모르겠다. 아르메니아와 그루지아에서 한국인은 커녕 동양인 관광객 코빼기조차 못 본 걸 감안하면 가능한 일이려나?
(그래도 '일본인' 관광객은 꼭 있다. 게가드 수도원에서도 아르메니아인 가이드의 일본어 설명을 듣는 중년의 단체 일본관광객과 마주쳤다. 그루지아에서도 두 명의 일본인 중년여성들과 여러 곳에서 조우했다.)
가을에 왔다면 한결 운치있었을 수도원 탐방.
BUT---
가이드의 성의있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역시 수도원 방문은 내게 흥미가 안 생겼다. ㅠㅠ
수도원은 그 자체로도, 역사적/문화적/종교적/상징적 의미로도, 자리한 자연적 경관과도 어우러져 묘한 매력을 풍겼지만,
빛이 아스라히 통하는 침침한 내부로 들어서 음습한 세월의 냄새를 맡고, 초에 향을 붙이고, 창문과 천장, 희미해진 벽화가 일일이 상징하는 바를 듣는 것은 확실히 가슴뛰는 일은 아니었다. 신앙은 숭고하고, 과거엔 얼마나 진지하게 이 곳에서 신을 섬겼는지 모르지만, 나는 어둡고 습기찬 수도원에서 한시 바삐 햇빛이 일렁이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하긴 터키 데린쿠유의 지하도시나 유럽의 카타콤, 동굴에서 신의 뜻을 벽에 새기며 살았던 신앙인들의 삶도 나에게 어마어마한 감동을 선사하진 못했다. 역시 나는 표피적인 인간인 것인가 ㅠㅠ 아, 폐쇄공포증 걸리겠어, 빨리 나가자~~~ @_@;;;
점심시간. 아르메니아식 현지식.
특기할 만한 요리가 있는 건 아니었으나 샐러드와 고기요리, 신선한 치즈, 플레인 브레드에 아스파라거스,
탄산이 들어간 과일음료까지- 하나같이 맛이 기막혔다.
유쾌한 일행, 맛있는 음식, 눈부신 경관- 이 세 가지면 더 이상 필요한 게 무엇이랴.
우리 투어팀의 분위기 메이커는, 레바논계 미국인 아줌마, 레이첼.
시종일관 그녀의 주책스런 수다와 그러나 뼈있는 유머들은, 투어팀에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시켰다.
내가 레바논에 며칠간이나마 다녀왔다고 하니, 레이첼의 장난스런 눈은 놀라움과 감동으로 커진다.
"어머, 정말?! 어디를 다녀왔니? 어땠어?"
미국으로 이주한지 20년이 훌쩍 넘었고 그 이유 역시 불안정한 정치상황 때문이었겠지만,
안전하고 먼 곳으로 거처를 옮긴 후에도 바람잘 날 없는 고국 소식에 아파하고, 가슴졸였겠지.
레이첼의 천진무구한 눈망울에 레바논이 재미없었다고 대답하기가 민망해졌다.
"...어... 급하게 돌아봐서 별로 간 곳은 없어요. 하나같이 멋지던 걸요. 좀더 오래 못 있어서 안타까울 뿐이죠. ㅡㅂㅡ;;;"
레바논 얘기가 나오자 레이첼은 그저 감격스러운가 보다.
내 한국이름이 아르메니아의 어떤 여왕 이름과 비슷하다고 줄곧 그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했다. -ㅅ-
아르메니아계 미국인 모자는 약간 깍쟁이 같았다.
아르메니아인들 역시 바람잘 날 없던 약소국인 모국을 떠나 세계 각지로 향했고, 특히 미국에 정착한 아르메니아인들은 유태인 못지 않은 특유의 비즈니스 감각을 발휘해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인가. 미국인 모자가 왠지 더 부유하고 고상해 보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들은 레이첼의 "가장 좋아하는 과목" 에 대한 질문에 눈을 반짝이며 망설임없이 '화학'과 '천체학'이라고 대답했고, 레이첼은 예의 호들갑을 떨며 "어머, 그 나이에 벌써!" 라며 추임새를 넣어 주었다.
그래도 이 꼬마, 허풍만은 아닌 듯 싶다. 식사 내내 레이첼과 우주의 신비와 각종 가설에 대해 수다를 떠는데, 레이첼의 의견을 족족 반박하며 진지하게 자기 의견을 내놓고 장황한 썰을 푼다. 호오, 꽤 똑똑한 녀석일세?
좀처럼 말이 없는 소년의 어머니는, 시종일관 그런 아들을 기특한 눈길로 바라보며 알 듯 말 듯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는다.
문득 미국 외 다른 3국으로 이주한 한국의 이민 1, 2세대가 생각난다. 그들도 유태인이나 아르메니아인 못지 않게 자식의 교육에 모든 것을 바쳤지. 그래서 상당부분 성공을 거두었고. 자신들의 삶을 희생한 대가로 일구어낸 가슴아픈 성과. 한국 역시 아르메니아처럼 외세에 억압받은, 아픈 상처를 공유하고 있으니까.
예레반 호스텔에서의 나의 일상.
살라미, 치즈, 그리고 절대 빠지지 않는 맥주!!!(킬리키아- 아르메니아 맥주)
설산을 배경으로 한 동화같은 수도원
호비랍 수도원.
낮게 깔린 구름과 계절적 한계 때문인지, 화보에서 봤던 만큼의 포스는 절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설산을 가로막은 구름은 걷히지 않는다. 아, 저 변덕과 심술이여- ㅠ_ㅠ
그리고- 대세는 디에쎄랄 ㅠ_ㅠ DSLR.
날라리 신자에다 금욕생활과는 백만광년 먼 내가, 아르메니아의 수도원을 전전하며 신에 대한 경외감을 되새김과 동시에 그 옛날 수도사들의 생활을 반추해 봤다면 거짓말이고- -_- 수도원 탐방은 하나의 교외 나들이처럼 진행되었다. 많은 수도원들이 수려한 경치를 끼고 자리잡고 예레반 시내에서 한두 시간 거리에 위치했기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버스요금으로 (비록 에어컨은 꿈도 못 꿀 망정) 로컬들에 끼어 창밖 경치를 구경하는 맛이 매력이었다.
어쩔 때는 간편한 소지품만 가방에 넣고는 낡은 버스에 몸을 싣고 시골길을 탈탈탈 달리는 내가, 마치 소풍가는 어린애마냥 느껴져, 핏, 웃음이 나왔다.
-비로소 아무도 아는 사람 없이, 한국인은 커녕 동양인 하나 구경할 수 없이 '혼자' 가 됐구나.-
그럴때면 내가 '아르메니아' 란 멀고 낯선 곳, 한때는 존재조차 짐작 못 했던 곳에 와 있다는 사실이 오롯이 실감나면서 고맙고도, 동시에 기묘한 기분도 들었다.
'호비랍 수도원(Khor Virap)'은 그 곳까지 가는 과정 자체, 버스를 가득 메운 현지 젊은이들, 한가로운 길목의 풍경, 그리고 수도원 자체의 보잘것없음(-_-)을 상쇄해 주는 주변의 정경이 인상적이었던 곳이다
눈부신 설산은 호비랍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 어느새 그 얼굴을 드러냈다.
아, 뭐야, 진작에 구름이 걷혀줬으면 얼마나 좋냐구. ㅠㅠ
혼자 방문했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가 끊겨 발을 동동 굴러야 했던 호비랍 수도원.
그러나 결국 현지인들의 친절로 안전하고 느긋하게 예레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역시 수호천사는 존재하는가 보다.
예레반에 작별을 고하며. 아르메니아 북부로...
예정보다 예레반에서의 체류가 길어져서, 비용 부담이 만만찮다. 떠나야 할 때가 온 것.
하루빨리 다시 그루지아로 넘어가서 관광을 마치고 터키로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구체적으로 어디로? 어차피 그루지아로 갈 계획이니, 아르메니아 북부 로리(Lori) 지역의 알라베디(Alaverdi) 시에 위치한 해그팟(Haghpat), 사나힌(Sanahin) 수도원에 들른 후 거기에서 국경을 넘기로 했다.
소비에트.
잠시 일제히 빨래가 걸려있는 홍콩의 허름한 아파트촌이 떠올랐으나, 그보다 더 단조롭고 지리멸렬해 보이는 풍경.
하지만 경험상, 막상 안에 들어가 보면 꽤 안락하고 편안할 수도 있다.
으, 이 무지막지함이여... >_< 버스 정류장에서 알라베디 行 마슈르트카를 탄다.
(마슈르트카는 대중버스 대용(代用)인 봉고차 정도?)
사나힌 마을의 쓰러져가는 듯한 아파트촌.
이 곳은 광산촌인데, 아래 알라베디 마을과는 케이블카로 이어져 있다.
예레반을 제외하면, 아르메니아는 아직 관광객 대상 인프라가 미약한 곳이다. 특히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들은 더더욱 그렇다.
아르메니아에서의 마지막 나날은 또다른 도전 ㅡ_ㅡ;;
내가 찾은 이 외딴 북부마을엔 묵을 곳이 마땅찮다.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유일한 게스트하우스는, 막상 도착하고 보니 이미 예전에 헐려있었다. 날은 어두워지는데 갈 곳은 없고... 행인들은 하나 둘 사라져 가고, 나는 너무나도 낯설고 집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름없는 이방인으로 멍청하니 길가 벤치에 배낭을 껴안고 앉아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을음에 때가 탄 듯한 아파트들 속에, 사전에 연락을 취하지 않고도 안전하게 내 한 몸을 재워줄 곳이 있을까. 벤치 저 편 아파트 입구 앞에는 어린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노닐고 있다. 아파트 창문에서 아래를 내다보며 들어오라고 소리치는 여자도 보인다.
너무나 일상적이고 익숙한 풍경인데, 나는 홀로 거기서 튕겨져 나가, 갈 곳이 없구나.
무작정 다가가서 영어로, 또는 바디랭귀지와 러시아어 단어를 조합해 재워달라고 간청하면 통할까?
수호천사는 있다고 했지. 결국은 어떻게든 해결은 된다고. 설령 최선책은 아니더라도-.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있는데, 호리호리한 여자아이가 미소를 띠우며 다가왔다. 앞머리를 내리고 포니테일로 묶은 열 한 두 살쯤 된 소녀.
"묵을 곳이 필요하세요? :-)"
유창한 영어로 질문해 와 이것저것 따질 것도 없이 흔쾌히 대답하며 일어섰다.
"절 따라오세요. :)"
아무래도 나같은 lost traveller가 예전에도 종종 있었나 보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비공식적인 홈스테이가 횡행하고, 학교에서 기초영어를 배웠을 법한 어린 소년소녀들이 나서서 호객꾼 노릇을 하진 않겠지.
나의 간소한 저녁과 내일 아침식사. 짭짤한 햄과 플레인 브레드.
홈스테이 주인의 호의로 비스켓과 차, 캔디를 무제한으로 얻어먹을 수 있었다.
예레반에서는 눈에 띄는 몽골리안 페이스로 활보해도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드물었는데,
아르메니아 북부 산골엔 순수하고 호기심 강한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얼떨결에 유명인이 돼 버려 당황했다.
숱한 사람들과 카메라를 번갈아가며 의도치 않게 단체사진을 찍었다.
꽃밭에서 솟은 듯한 해그팟 수도원 전경
마치 종이조각을 층층이 뿌려놓은 듯 멀리 보이는 마을
사나힌 마을에서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가 닿을 수 있는 사나힌 수도원과 픽업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 해그팟 수도원은, 꽃밭이 펼쳐지고 녹음이 짙게 우거진 '쉬기 좋은 곳' 이었다. 고풍스런 대학 캠퍼스 같아 보이기도 하고, 나처럼 멀리에서 온 관광객의 목적지는 물론, 현지 주민들의 기분좋은 놀이터도 되는 듯 싶었다.
그 옛날 세워진 수도원의 본 의의에선 벗어나지만, 크게 훼손되지 않고 평화적인 목적으로 사람들이 찾아오니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
바라건대 이 평화가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황량함과 음울한 기운이 지배적인 사나힌 마을. 아마도 가난이 주원인이겠지.
하지만 벌판에 방목중인 말과, 길거리에서 부딪히는 소떼, 그리고 언덕위의 수도원 때문에,
햇빛 아래에선 기묘한 따스함마저 풍기는 게 이 마을의 매력 아닐까 싶다.
홈스테이 패밀리.
나를 안내해 준 소녀와 그녀의 남동생, 그리고 영어가 유창한 이모.
중앙아시아마냥 벽면을 오리엔탈 카펫으로 장식하는 게 관습인가 보다.
근데 위생상으론 먼지에다 진드기 장난 아닐텐데... -ㅅ-
하강. 국경으로
수도원을 둘러보고 그 날 중으로 국경을 넘어 그루지아로 향하기 위해 짐을 챙겨들고 작별인사를 했다. 주인 曰,
"버스를 타지 말고 케이블카를 타세요. 곧 알라베디(아랫마을)에 가는 사람들을 위해 케이블카가 운행되는 시간이거든요."
오호, 잘 됐다. 가격도 싸고 전망도 구경하고 시간도 절약하고~
케이블카 탑승소를 알려준다고 따라나선 12살 소녀가 나를 골탕먹이는 바람에 고생했지만 (-_- 가는 방향을 반대로 가르쳐줘서 무거운 짐 메고 하이킹을 할 뻔했다. 고약한 계집애 >_< 설마 일부러??), 결국 끝이 좋으면 화도 다 풀린다. 도중에 선한 인상의 절름발이 아저씨의 지침을 얻고 제대로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다.
뭐 하나 제대로 풀리는 일 없으나, 결국 안전하게 그루지아로 가기만 하면 오늘 미션은 끝.
알라베디와 사나힌 두 마을을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교통수단.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알라베디 시내.
공장굴뚝과 성냥갑 같은 콘크리트 건물이 주조를 이루는 전형적인 광공업 도시이다.
태백 등 독특한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폐광촌을 방문해 본 내게 어두운 이미지.
소비에트 연방 국가들 중에서 가장 경사가 급한 케이블카라고 했던가.
뭐 하나 한 번에 풀리는 일이 없다고 했었지. 말이 씨가 되는 걸까.
케이블카로 알라베디 마을로 내려오니, 이번엔 또 국경 행 마슈르트카가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타난다.
홈스테이 주인에게 출발시각을 그렇게 다짐 받아뒀는데도- ㅠ_ㅠ 이제는 아르메니아 돈도 거의 떨어지고, 이 폐광촌같은 마을에서 하루 더 묵는 것도 달갑지 않고, 택시를 대절해 몇 배의 요금으로 국경까지 가고 싶지도, 갈 수도 없는데...
지나가는 행인과 근처 상점 주인들에게 국경마을 이름과 마슈르트카가 있냐를 물어봐도, 모두 고개를 젓거나, 모른다거나, 이미 지나갔다거나, 죄다 대답이 제각각이다. 매번 이렇게 가슴졸이다간 남아날 가슴이 없겠다. ㅠㅠ
저만치 쫙 빼입은 관광객처럼 보이는 젊은이들이 지나가길래, 후다닥 달려가 물어보았다.
"혹시 그루지아로 가세요?"
역시 대답은 No.
그래도 젊은이들은 교통정보를 모르긴 매한가지지만, 지나가던 길도 멈추고 내 옆에 머물며 대신 주위에 문의를 해 보는 등, 꽤나 적극적으로 도와주려 한다. 특히 까칠해 보여 부담스럽던 쭉쭉빵빵 섹시공주가 제일 적극적이다. 어느새 지적이고 인정많은 인상의 약국 주인까지 아예 가게를 나와 내 옆에 머물며, 같이 걱정해 주며 어찌 해야할까, 고심하고 있다.
본의 아니게 십여명의 각계각층의 로컬들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유명인이 된 거 같다. -ㅅ-
구세주는, 수호천사는 결국 나타난다고 했지. 이번에도, 예외없이 그랬다.
로컬들에 둘러싸여 '국경가는 법'을 두고 발만 구르고 있을 때, 저만치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젊은 금발 커플이 보였다. 앗!! 척 보면 외국인. 이미 한달음에 달려가 있는 나.
"영어 할 수 있어요? 오늘 중으로 꼭 그루지아로 가야 하는데 버스가 없어요 ㅠ_ㅠ"
"Of course, we will help you. (마법의 말~ @_@;;)
캠핑장비를 갖고 트레킹 중인 이스라엘 커플은, 자기네 정보와 훌륭한 러시아어를 조합해 주민들과 잠시 떠들더니 내게 히치를 알선해 주겠다고 했다.
안전하니까 걱정 마. 겨우 안심이다.
"너희들 러시아계-유태인들이니? 러시아어 잘하니 코카서스 여행하긴 수월하겠다."
"아니, 전혀. :) 여행하다 보니 필요해서 조금 독학하게 된 것 뿐이지."
오~ 대단혀~ @_@;;;
이윽고 마을 사람들 & 이스라엘 커플의 도움으로, 국경방향으로 향하던 중년부부의 밴에 편안히 동승할 수 있었다.
섹시한 젊은이들과 약국 여주인, 이스라엘 커플은 차가 사라질 때까지 연신 손을 흔들어 준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결과론적 방식이지만 맞는 말 같다. 물론 앞으로 또 어떤 시련이 닥칠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음이 안정을 찾으니, 다시 아르메니아의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과 푸른 관목숲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당근 시련은 끝이 아니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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