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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코카서스] 코카서스(Caucasus)_ 그 낯설음, 그리고 한 발 다가가기

flower1004 2010. 2. 19. 16:47

 

코카서스(Caucasus)

 

 수백번도 더 세계지도를 펼쳐보고 꼼꼼이 되짚어봐도, 한국인인 내게 도통 모호하게 인식되는 곳들이 있다.

바로 아프리카와 남미대륙의 나라들, 그리고 남태평양의 섬들.  아직도 아프리카나 남미 전도를 그리고 그 위에 국명을 표시하라면, 나는 반도 못 가 두 손 들어버린다. 지리적/심리적 거리감에다 배경지식의 부족으로, 개별 국가의 정체성을 규명하기보다는 한 데 모아 애매한 이미지로 뭉뚱그리기 십상인 탓일 게다. 아무래도 직접 가 보기 전까지는 아프리카와 남미 지리점수에서 낙제점수를 못 면할 것 같다.

 

 ‘대한민국’ 역시 따지고 보면 중국과 일본, 북한이라는 호소력 강한 이웃들 사이에 샌드위치되어 고유의 정체성이 곧잘 매도당하는 곳이다. 따지고 보면, 지구상의 200여개에 달하는 나라들 중엔 미국이나 일본, 영국, 인도처럼 국가색(色)이 뚜렷한 국가보다도, 투발루나 타지키스탄, 말라위나 도미니카 공화국처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곳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wikipedia.org

 

 

‘코카서스’ ('카프카즈')도 개중의 하나.

구소련에 속해 있거나 코카서스 산맥과 카스피해 연안의 나라들 -터키,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을 제외하고는,  ‘아르메니아’, ‘그루지아(조지아)’, 그리고 ‘아제르바이잔’ 의 코카서스 3국에 대해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google images.

코카서스 산맥과 츠민다 사메바 교회 @ 카즈베기, 그루지아.

푸쉬킨에게 영감을 준 곳이라고 한다.

 

 

*

 코카서스로 향하기 전 이란에서, 나는 동행자 물색에 혈안이 돼 있었다.

‘여행자들에게 덜 알려진’ 곳으로 향한다는 설렘과 호기심 이면엔 ‘내내 혼자일지도 모른다’ 는 일말의 불안감과 외로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란의 여행자 집결지(에스파한, 테헤란, 야즈드, 쉬라즈 등)의 호스텔에서 코카서스로 향하는 사람을 수소문해보았지만, 모두가 클래식 루트를 따를 뿐이었다. (클래식 루트;  이란에서 파키스탄 또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향하는 西 -> 東루트 또는 그 반대를 되짚어 이란에서 터키, 유럽과 아프리카로 향하는 東 -> 西 루트)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에스파한의 호스텔에서 만난 독일남자애는 나를 더욱 좌절시켰다.

 

 

“그래서 이란 다음에 넌 어디 간다구?”

“코카서스. 아르메니아나 조지아 쯤 되겠지.”

“...?? 아, 조지아(Georgia)?  그럼 비행기 타고 가겠네?”

“글쎄... 잘 모르겠어. 어떤 게 좋을까?”

조지아 州면 당연히 비행기 타고 갈 수밖에.  여기서 미국까지 다른 길이 있어?”

“...미국?? ㅡㅂㅡ;;;   그게 아니고... 여기서 육로로 연결된 조지아.  국가 이름 말하는 거거든- -ㅅ-”

 

 사전지식이 부족했던 나 역시, 예전엔 ‘코카서스’ 하면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火)을 전해준 죄명으로 영겁의 세월동안 묶여있어야 했던 코카서스 산맥, 그리고 황금양털을 찾아 세상의 끝 -지금의 조지아- 을 향해갔던 아르고 호의 항해 일화로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코카서스‘라... 모르긴 몰라도 굉장히 시적(詩的)으로 들리는 걸? :)’

 

 이렇게 코카서스는 신화와 동심의 기억속에 어른거렸을 뿐, 실재하는 ‘실존’ 의 이미지는 미약했다.

 

google images.

스바네티 @ 그루지아.

 

 

 어쩌면 그랬기에 더욱 내가 아르메니아와 그루지아, 두 나라에서 보낸 2주일 반 남짓이 새롭고 흥미로웠을지도 모른다.

터키 동부에선 가뭄에 콩나게나 볼 수 있었던 독특한 양식의 초기 아르메니아식 교회도 진저리나게 눈에 담을 수 있었고, 나찌의 유대인 학살 뺨치는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의 참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루지아에선 ‘스탈린=당근 러시아인’ 이라는 편견을 깨고 이 탈많은 유명인의 정체성을 좀더 가까이서 조망했고, 그 값비싼 탐스러운 루비 빛깔의 체리도 배터져라 먹을 수 있었다. 중앙아시아에서 몇 개 건진 조촐한 러시아어도 써먹고, 여행 후 러시아의 그루지아 침공 보도를 접했을 때는 진심으로 그루지아인을 염려하며 하루빨리 평화가 깃들기를 기도하기도 했다.

 2주 남짓은 생면부지의 코카서스를 파악하는 데는 얼토당토 않은 시간이지만, 더 이상 코카서스는 꿈속에서, 동화책속에서, 역사책의 한 구석에서 정체돼 있는 ‘somewhere out there’ 은 아니었다.

 이제는, 아르메니아의 아리따운 아가씨들과 아라랏트 山이 바라보이는 공원 정상에서 서슴없이 포옹하고 키스하던 젊은 연인들, 열 시간이 넘는 코카서스 산맥 드라이브에서 종일 보드카를 마시고 전통 노래를 불러대던 끈적한 아저씨들, 국경에서 그루지아의 수도 트빌리시까지 나를 무사히 인도해 준 명랑한 그루지아 소녀- 이렇게 구체적인 실체들이 내게 코카서스를 떠올려 줄 고마운 매개체가 되어줄 것 같다.

 

시종일관 나를 경탄케 했던 코카서스 산맥의 장관, 그리고 신비와 아울러-.

 

전설적인 시인 푸쉬킨의 애정이 깃든, 코카서스 산맥 일대에 자리한 ‘츠민다 사메바’ 교회를 눈 앞에 두고 풀밭에 누워있던 그 마법같던 순간... 바람과, 찌푸린 하늘과, 숨쉬는 설산과 혼연일체가 됐던 그 짧디 짧은 순간은, 망설임없이 내 인생의 Best 10에 꼽아도 될 선물이다. 

 

            wikipedia.org

         호비랍 수도원 @ 아르메니아

 

 

 

 

출처 : 여자 혼자가는 여행
글쓴이 : halfmoonwis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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