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서스- 혹독한 신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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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 3국: 아르메니아, 그루지아(영어 이름: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역사: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아랍, 몽골, 오토만 제국 등에게 끊임없이 시달리다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됐다 독립
언어: 러시아어도 통하지만 아르메니아어와 그루지아어 등 자기네 고유의 언어를 활성화시키려 노력 중.
인종구성: 내가 간 아르메니아와 그루지아는 말 그대로 코카서스 백인들, 코카서스 & 중앙아시아/중동 계열 혼혈이 두드러졌음.
종교: 에티오피아 등에 이어 크리스쳔 발생 기원이 무척 오래된 나라들이라고 함. 그래서 고대 수도원들이 지천에 널려있음.
크리스쳔, 정교회(?), 이슬람의 혼재.
그 외 경제, 정치, 민족분쟁, 인종분쟁등은 워낙 문제점이 산처럼 쌓인 국가들이라, 웹서핑을 참조.
http://en.wikipedia.org/wiki/Caucasus
예레반 행 버스를 기다리며.
(참고로 이 곳은 아르메니아가 아닌, 이웃 국가 그루지아(Georgia).
아르메니아와 그루지아 모두 한국처럼 독자적인 문자를 쓴다.
한글과의 차이점이라면 이 곳 문자들은 유래가 훨씬 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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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란 매혹적인 이름은 자석과도 같이 나를 끌어당겼는데, 거기엔,
1) Off-the-beaten-track: 관광객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데서 기인한 호기심과 허영
(누구나 뻔히 가는 곳에 들러서 관광객들하고 어울리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2) 레바논에서 만난 미구엘이 극찬했던 그루지아 (술도 싸고 물가도 싸고 자연도 아름답고)
이 두 요인이 주요했다.
예의 코카서스 3국에 속하는 아제르바이잔의 경우, 비자 fee가 무려 US$50인 걸 확인하고 일찌감치 제쳐놓았지만, 아르메니아와 그루지아엔 왠지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애초에 방문 계획도 없었던 터라 이렇다 할 정보도 전무해, 혼자 이란에서 코카서스 국경을 넘는 게 내키지 않았다. 수소문하며 동행을 구해보았지마나 실패. 인터넷과 이란의 호스텔에서 정보를 취합하기도 했으나, 대부분 옛날 정보라 신뢰할 수 없거나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체코어 등으로 돼 있었고, 대개는 원론적인 설명이 대부분이었다.
마침 코카서스에서 들어와 중앙아시아로 향하는 일본여성 둘에게 빌린 일본어 가이드북 복사본은, 어중간한 실력으로나마 얼추 이해할 순 있었으나 역시 구체적인 도움은 못 됐다.
"그루지아에 가면, 밤에 혼자 다니지 말고 조심해요. 범죄율도 높고 칼 들고 다니는 건달이나 강도들도 많으니까."
막 코카서스에서 돌아온 일본여성은, 칼로 찌르는 제스쳐를 취하며 내게 겁을 줬다 (사실 별로 겁은 안 났다).
자세한 경위를 설명하려면 한이 없어 간략하게 줄이자면,
나는 이란에서 터키, 그루지아, 아르메니아 順으로 코카서스 국가에 입국했다. 이란에서 아르메니아, 그루지아, 터키 순으로 여행하는 게 가장 자연스럽고 국경을 넘는데도 수월한데 삽질하며 반대로 돌아간 이유는 굳이 쓸 여유가 없을 듯. 유쾌한 기억도 아니다.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Yerevan)으로 가는 길.
소비에트 시절의 음침한 잿빛 일색의 건축물들이 눈에 띈다.
예레반으로 가는 버스에서 내려 잠시 쉬며.
우여곡절로, 이란이 아닌 '터키' 에서 그루지아로 들어가는데 온갖 고생을 다 했다.
돌이켜보면 sleepless night @ 블라디보스토크// 보다도 처절했던 나날인 듯.
터키 야간버스에서의 마일드한 성추행(마일드-_- 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음 난리쳤을 듯),
넉넉잡아 성인 남자 10명 사이에 꾸겨 탄 4-5인승 정원 택시 (그 수많은 짐들에 더해 10명의 성인들이 좁아터진 차에도 탈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실감했다), 터키 -> 조지아 국경에서 출국 심사관과 두 시간여에 걸친 아웅다웅... >_<
터키 <-> 그루지아 국경은 외국인(특히 동양인)들의 출입이 흔치 않은 'Hopa <-> Batumi' 국경이었는데,
터키의 Hopa(이름이... ㅋㅋㅋ) 쪽 출국 사무관이 온갖 트집을 다 잡아 절대 나를 내보내주지 않았다.
'여기는 외국인에겐 유효한 국경이 아닙니다.'
'이스탄불로 돌아가서 비행기 타고 그루지아로 가세용'
첨엔 이 짓거리를 하더니, 열받아서 담당 책임자 불러오라니까 자다 깨서 나온 듯한 아저씨도 어리버리하긴 마찬가지. -_-
(당시 새벽 6시나 됐을까) 온갖 티격태격 끝에 하도 난리부르스를 치니까, 하물며 내세우는 핑계는,
'컴퓨터가 고장나서 당신의 여권을 스캔할 수 없어요. 출국처리 해 주고 싶어도 못 내보내줘요(물론 이건 뻥)'
'소지품 검사 좀 합시다'
그 외 수많은 통성명 외 신상조사... ㅡㅡ;;
아르메니아에서 맛본 Borsch(러시안 수프).
생애 이렇게 훌륭한 보쉬는 맛본 적이 없는 것 같다. ㅠㅠ
내 모든 것에 악의없는 트집을 잡는 게 눈에 보인다. 변두리 국경에서 놀아줄 상대없이 너무나 지루하고 무료한가 보다.
참다 못해,
"장난해요?? 당신이랑 당신 상관 이름 둘 다 기억해서, 이스탄불에 가면 한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분명 고발할 테니까 각오하시짓!! (대사관에서 꽤나 신경이나 쓰겠다 좋다- 허울은 좋지- ㅋㅋ)"
방방 뛰니까 잠시 놀라면서 자기도 눈을 부라리더니, 이내 실실 웃음을 흘리며 태도를 바꾼다.
(충격: 명색이 국경 담당관이 consulate란 용어도 몰라, '컨... 뭐뭐?' 어버버해서 놀랐다)
결국, 일장의 코메디와 비극 끝에 두 시간여만에 내 여권에 출국도장을 찍어주며, 담당 심사관들은 이제 웃음까지 흘린다.
헉, 온몸에 기름테러를 당한 기분이다. @0@
"굿바이~ 몸 조심해 ^^ 다음에 그루지아에서 터키 돌아오면 또 만나겠네, 그치? ^-^"
"흥, 당신 때문에라도 여기 국경으론 절~대 안 오고 비행기로 곧장 이스탄불로 갈 거라구!!"
호언장담하곤 겨우 그루지아 땅으로, 그리고 그루지아에서 아르메니아 행 버스를 잡아탔다.
(그 과정에서의 수많은 우여곡절은 일일이 쓰려면 책 한 챕터는 써야할 것 같고 지루하니 그냥 생략)
아르메니아- 수도원, 아라라트 山
예레반(Yerevan). 아르메니아의 수도.
멀게만 느껴지는 이름이지만, 한눈에 봐도 잿빛 콘크리트 일색의 건조하고 상상력 결핍된 도시와는 거리가 멀다.
낡은 소비에트 건축물 사이로, 바랜 장밋빛 벽돌감이 따스한 건물들과 조촐한 예술가 거리, 산뜻한 원색 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예레반의 다양한 얼굴들
가격 대비 양질의 발레, 음악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오페라 하우스. 시민들의 만남의 광장이다.
그러나 시스템은 체계가 부족해 사전공지 없이 프로그램이 취소되기도 하고, 초라한 예약부스에서는 기본적인 공연 정보 외엔 기대하기 힘들다.
아르메니아 인들에게 잃어버린 영화와 정체성의 상징인, [아라라트 산].
날씨 때문에 사진에선 구름에 가린 아라랏트 산의 희미한 능선. 예레반을 굽어보는 듯한 위치에 당당하게 솟아있다.
노아의 방주가 마지막에 당도했다고도 전해지는 아라랏트 산은, 현재는 아르메니아가 아닌 터키 영토에 속해 있다.
아르메니아와 터키 간의 역사적 굴곡은 적어도 아르메니아인들에겐 통한의 세월로 남을 듯.
이렇게 어머니같은 산을 지척에 두고도, 국경넘어 적국(敵國)에 위치한 탓에 이제는 하염없이 바라볼 뿐인 아르메니아의 비극.
(한국과 북한도 엄밀히 말하면 비슷한 맥락일 수도-
오히려 중국인들은 베이징에서 평양 행 열차를 타고 쉽사리 북한에 갈 수 있다고 하던데??)
거리낄 게 없는 틴에이져들.
시나고그 앞 아파트와 노천까페들
건물을 타고 올라가는 덩쿨과 녹색 잔디밭, 꽤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아르메니아는 여러모로 정체불명의 이미지이다.
'정체불명'이라 함은 고유의 정체성이나 특징이 없다는 게 아니다. 관련지식이 일천한 내 부덕의 소치에 더해 이 조그마한 나라에 다양한 문화적 혼재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일단 예레반의 모습은 내겐 충분히 '유럽풍'이었다. 거리에 즐비한 아리까리한 건축양식이 좀 헷갈렸으나, 쭉쭉빵빵 글래머러스한 흰 피부의 여성들이나, 개중에 종종 마주치는 금발벽안의 전형적 서구형 미인들은 그 인상을 공고화시켰다. 하지만 나보다 앞서 아르메니아를 다녀온 일본 여성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유럽은... 좀 아니지 않나...?? 그 참으로 모호한 것이..."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서로를 마주보았다.
(터키에 의한) 아르메니안 학살박물관과 갤러리 등을 돌아볼까 하다, 예루살렘에서 '야-드-바셈(유태인 학살 박물관)'의 어두운 기억도 있는데다 간밤의 피로가 가시지 않아서 곧장 호스텔로 돌아가기로 한다. 일상에서는, 그리고 여행 초기에는 박물관이나 공연장, 미술관 등을 즐겨 찾았는데 여행이 장기화되니 급속히 흥미를 잃고 있다. 피로 때문일까? 오늘은 실외만 돌아다니는 것으로도 족하다.
어쨌거나 예레반은 고도로 현대화돼 생활하기에 별 불편은 없다. 월마트나 까르푸같은 글로벌 대형마트 체인은 못 보았지만, 편의점보다 큰 규모의 깔끔한 정찰제 상점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게다가 생소한 이름의 신설 대형마트도 있어, 러시아어 한 마디 못해도 쇼핑이 부담스럽지 않다. 그러나 물가는- 예상외로 상당하다. @0@;;;;
그럴 땐 재래시장이나 좀 꺼주해 보이는 쇼핑 콤플렉스에 가 본다. 야채와 과일, 치즈 등 식료품이 놀라울 정도로 저렴해, 도시를 서성이다 재래시장 한 켠에 닿은 나는 순간 이성을 잃고 이것저것 사 들이기에 바빴다.
후덕해 보이는 인상좋은 아주머니들. 인자한 미소 뒤엔 피로가 묻어나는 듯 하다.
버거운 생계를 꾸려나가는, 그리고 무거운 역사란 짐을 진 아르메니아인의 슬픔같은-
눈에 불을 켜고 장봐온 물품들.
결국 저 쌀(giza)과 야채, 칠리소스는 깔짝대기만 한 채 호스텔 냉장고에 고이 기증해 주고 와야 했다. ㅠ_
막장 요리 Life @ 예레반 호스텔.
냄비에 밥해먹기 신공, 오믈렛 만들기도 등장~
헉, 오랜만에 냄비로 밥하다 보니 감각이 사라졌나, 실패다- @0@
바닥은 타고 위는 설익고 ㅠ_ㅠ 그래도 맛없는 오믈렛과 비릿한 생선을 반찬삼아 간만에 한식식단~
수도원 관광에 나서다- 가니(Garni), 게가드(Geghard) 수도원
아르메니아 관광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수도원(monastery) 관광'.
에티오피아와 함께 초기 크리스챠니즘의 근거지가 됐던 국가니만큼, 아르메니아 특유의 오래된 교회들이 국토 여기저기를 수놓고 있다. 여행하며 예상외의 사실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에티오피아(아프리카!!)에서의 초기 기독교, 이집트와 시나이 반도의 캅틱(coptic)교도들, 그리고 이름조차 생경했던 나라에서 흩뿌린 별들마냥 눈에 밟히는 초기 교회들... 크리스챤에게는 경우에 따라서 예루살렘 못지 않은 성지순례가 될 테고, 크리스챤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흥미를 가질 수 있는 학문적/역사적 의미로 어필하는 곳이 아르메니아이다.
오늘은 버스로 쉽게 반나절만에 다녀올 수 있는 '가니(Garni)', 그리고 '게가드(Geghard)' 수도원이 나의 목적지다.
가니 템플.
얽힌 역사와 기원은 구글링이나 위키피디아 클릭 몇 번으로 금세 알 수 있으니 생략한다.
기독교가 전래되기 이전에 태양신을 숭배했던 사원이라 했던가?
아르메니아나 조지아 수도원 근처에는, 소름끼칠만큼 디테일하게 그물눈(혹은 물고기비늘)같은 일정패턴이 조각돼 있는 이런 돌들이 흔히 눈에 띄인다. 역시 초기 기독교와 연루된 듯 한데, 그 도를 넘는 치밀한 세밀함을 바라보노라면 소름끼치다 못해... 손발이 오그라든다. @_@;;;;
가니 수도원 주변의 정경.
당장이라도 내려가 저 물줄기를 따라 트레킹을 하고 싶다.
가니 신전 부근의 아담하고 평화로운 마을
휴식을 취하는 이들 뒤로, 따스한 노란색을 이고 올라오는 야생화가 정겹다.
게가드(Geghard) 수도원.
아르메니아, 조지아는 한국처럼 독자적인 문자체계를 지니고 있는 대단한 국가들이다.
게다가 한글에 비해 그 역사도 유구하다.
나에겐 아르메니아나 조지아 문자 모두 비슷비슷해 보였고(사실은 큰 차이 ㅠ_ㅠ), 더더군다나 호스텔 스탭들이 아르메니아 어로 나의 희망의사표현을 흘림체로 종이에 적어주는 것을 보며, 도대체 죄다 똑같아 보이는 이 문자를 도대체 어떻게!! 의미를 지니고, 해독될 수 있는지 미스테리였다. 민족의 고유한 문자를 가진다는 게, 얼마나 대단하면서도 축복받은 일이고, 아울러 피곤할 수 있는지(공부할 게 많아진다 -_-) 실감할 수 있었던 사례.
길 위에서 많은 시간동안, [한글]은 내 방패이자 갑옷이자, 동시에 감옥이 돼 주었다.
절벽을 배경으로 한 게가드 수도원의 지붕과 탄탄한 돌담성벽, 수다와 문자보내기에 한창인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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