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R (2). 이르쿠츠크~ 하바로브스크]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 제 2라운드의 날이 밝았다. ^-^
이번엔 이르쿠츠크에서 중국 흑룡강과 맞닿은, 동단의 하바로브스크(Khabarovsk)를 향해.
하바로브스크 쯤 가면 이미 귀국을 자축하는 분위기로 흘러가겠군. ㅡ_ㅡ
시간이 촉박해서 하바로브스크는 건너뛰고 곧장 최동단의 도시,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까지 논스탑으로 질러주려 했으나-
또다시 열차표가 동나, 막판에 아슬아슬하게 하바로브스크 행 표를 구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ㅠ_ㅠ
역시 꼬박 70시간에 육박하는 꼬박 3일간의 대장정이다.
모스크바~이르쿠츠크까지의 1라운드-_-와의 차이라면, 이번엔 3등칸이 아닌 2등칸, '쿠페(Cupe)'라는 점.
다시금 당연히 제일 싼 3등칸을 구하려 했지만 도무지 표가 없다, 표가...
흔히들 '플라츠카르트'라고 부르는 3등칸은 객실/복도 구분이 따로 없이 차량 전체가 개방된 구조로 가격도 저렴하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2등칸, 쿠페는 4인실로 객실이 복도와 분리된 폐쇄된 구조이다.(유럽열차들 생각하면 편할 듯)
프라이버시나 안락함 측면에서 2등칸이 3등칸보다 나은 건 당연하지만, 가격차도 그만큼 크다.
아울러 낯선 사람들과 폐쇄된 쿠페칸에 갇혀-_- 3일여를 동고동락해야 한다는 걸 달갑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혼자 여행하는 여성들의 경우, 자칫 [보드카에 떡실신되기 십상인 우람한 러시아 아저씨들]과 같은 쿠페칸에 걸릴까 봐,
오히려 개방구조인 플라츠카르트를 선호하는 편이라고도 한다.
[혹시나]를 우려하면, 사방에 사람들의 눈이 있는 3등칸이 오히려 안전할 수 있다는 맥락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나도
1. 오직 보드카 하나에 살고 죽는 청년 2. 우람하고 거칠어 보이는 대머리 아저씨 3. 단정한 차림새의 젊은 청년
이 세 명의 남자들과 같은 쿠페칸을 썼고 그 유명한 '쿠페 보드카 파티'에 초대받기도 했지만,
너무나 아~~~~~~~~~~무 일도 없었고 오히려 지나치게 챙겨줌을 당해ㅡ_ㅡ 미안할 정도였다.
(자기네가 싸온 닭다리부터 볶음밥, 과일, 과자, 음료수, 사탕, 초콜릿...(피난가는 줄 알았다 ㅡ_ㅡ)
어찌나 나한테 다 나눠주고 잘 먹이고 쓰레기통 대령해 주고 세세한 걸 챙겨주는지... @_@
먼 이국을 혼자 여행한다고 그러는 건지, 말은 안 통해도 그 미소와 친절한 마음 씀씀이에 완전 감동해 버렸다. ㅠ_ㅠ
론리플래닛 러시안 프레이즈북(회화책)을 참조해 유아적인 대화로나마 단순한 감사 이상의 감정을 최대한 전달하려 했지만,
그다지 진심을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신세도 전혀 못 갚고...
이르쿠츠크 역에서 열차에 오르며.
플랫폼은 상당히 낡은 느낌이다.
6:50 AM.
열차가 출발한다. 열차에 탄 승객들과 역에서 배웅하는 지인들의 시선의 엇갈린다.
나와 기쁨과 슬픔에 찬 시선을 맞출 사람은 없다는 게, 고독할지언정 오히려 홀가분하달까.
소박하지만 우아한 기품이 느껴지는 노부부가 내 쪽을 보며 손을 흔들고 있다.
열차가 서서히 출발하며 멀어지자 부인은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치고, 남편은 그 옆에서 다정히 위로한다.
진부하다. 하지만 뭉클하면서도 가슴 따뜻해지는 광경이다.
고개를 돌리니 옆에 서 있던 젊은 러시아 청년이 손을 들어 화답하고는, 멀어지는 노부부를 상념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후에 보니 나랑 같은 쿠페칸이다.)
2등칸 쿠페 복도.
왼쪽엔 침대칸들이 늘어서 있고 문을 사이에 두고 복도가 이어진 폐쇄구조다.
이르쿠츠크 - 하바로브스크 구간 열차는,
모스크바 - 이르쿠츠크를 운행하는 최신식 [바이칼] 호와는 다르게 상당히 앤틱-_-한 소련 기차였다.
단단하고 번들번들한 목재 인테리어와 칙칙한 청록색 차량.
쿠페 입구와 간이 사다리.
2층 침대 구석의 짐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
열차는 달리고 달려~
마침내 유명한 주 정차역인 '울란우데(Ulan-Ude)' 역에 도달한다.
몽골 횡단노선과의 환승점인 이 곳에서는 30분 이상을 넉넉히 정차한다.
아, 원래 계획대로 몽골비자 받는 데만 성공했으면 여기서 몽골 울란바토르로 들어가는 건데... ㅠ_ㅠ
여전히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해 커다란 플랫폼을 이리저리 서성이며,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흘깃거린다.
국경도시, 서로 다른 두 곳이 교차하는 곳은 위화감과 동시에 설레임이 공기속에 떠나딘다.
(아, 저 무지막지한 배낭을 멘 백팩커들... 진짜 서양애들은 어쩜 저 정도 짐을 감당하는지 기운도 좋아 @_@;;)
지금은 없어진 '부라티야(부리야트?) 공화국'의 수도이기도 한 울란우데는,
예전에 읽은 바로는, 19C말~20C 초에 걸쳐 근대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현지인들과 러시아인, 고려인, 일본인, 중국인들의 애증과 피와 한(恨)이 서린 곳이라고 한다 (관련역사는 이후에 좀더 찾아봐야 할 듯). 아울러 러시아 내 유일한 티벳 사원도 위치한 정체불명-_-의 도시이다. 아픈 역사가 서린 도시라곤 생각되지 않게 마알간 하늘, 그와 조화를 이루는 밝은 노란색의 울란우데 역사를 떠나, 이제 열차는 덜컹덜컹거리며 작은 러시아의 외곽마을들로 접어든다.
빈곤과 황량함이 묻어나오지만... -_-
음, 물어볼 사람은 없지만 이런 지역들은 이른바 '다차(Dacha)'일 수도 있지 않을까.
소비에트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이러한 집단농장(주말이나 휴가 때 내려가서 농장일도 하고, 수확도 할 수 있는 생산 & 휴양지 개념)들이 소비에트 붕괴 이후에도 쏠쏠한 역할을 했다고 들은 것 같다.
지루하면 복도를 오가며 다리운동도 해 주고~
광활한 시베리아에서 실려오는 통나무들.
어마어마한 자원매장량이 부럽다. ㅠ_ㅠ
2층 내 침대에서 차창을 바라보며, 론리 플래닛 (시베리안 횡단열차) 가이드북을 읽으며 지루함을 달래다가~
('론리 플래닛-시베리안 횡단열차' 편 업데이트판 커버 모델- 콧수염 아저씨- 이 너무 느끼해서,
표지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눈- @_@)
(같은 쿠페칸의 남자들은 모두 친절하긴 한데, 영어가 안 통해서 놀아주고 싶어도 못 놀아준다 ㅠ_ㅠ)
러시아 동부의 작은 마을.
이렇게 좁고 황량하고 지루한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어떨까, 약간 애틋하기도 했는데,
열차가 수시로 지나가는 횡단철도 노선과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숲에 둘러싸여 사는 것도 나름 운치있을 듯하다.
보면 그렇게 작은 마을도 아니고, 목가적인 전원삘도 조금 풍긴다. ㅎ
(그래도 톨스토이의 단편집이나 러시아 민담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러시아 마을들을 둘러보려면,
유러피안 러시아의 교외 마을들-
이를테면, 모스크바 근교의 그 유명한 '수즈달(Suzdal)' 이나 '블라디미르(Vladimir)'-을 방문하는 게 나을 듯)
'모고차' 역? (키릴문자 읽는 법 거의 다 까먹었구나 ㅠㅠ)
이런 자그마한 시골역들을 수도 없이 지난다.
정차. 휴식시간. 역시 최고의 낙(樂)과 위안은 열차 안에서 먹는 간식 ㅡ_ㅡ
강아지도 스쳐가는 승객들을 마중나왔다.
동네 강아지도 열차에 타 다른 먼~ 어딘가로 모험을 떠나고 싶은가 보다... :)
손을 흔들어주는 모자.
모스크바, 이르쿠츠크, 블라디보스토크, 노보시비르스크......
이국적인 지명의 키릴문자로 가득 찬 이 열차 전광판.
출발과 도착시각, 플랫폼을 알리는 저 신속함과 급박함, 가지런함이 엇갈리는 빛의 안내판-
분명 오래도록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여행을 끝마친 지금... 너무나도 그렇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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