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스크랩]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_ 노숙자 모드 & 노상에서 비 맞으며 울다 ㅠ_ㅠ

flower1004 2010. 2. 19. 16:25

 

[비참한ㅠ_ㅠ 마지막 날 @ 블라디보스토크]

 

 그렇다. 드디어 속초로 가는 국제선 페리를 탈 수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러시아 최동단에 위치해 극동전략기지이기도 한 이 곳은, 경도상으로는 이미 한국보다도 동쪽에 위치해 소위 '무늬만 서양' 인 도시인 것이다. ㅎㅎ 그런만큼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도, 내 가슴은 이미 집에 돌아간 마냥 쿵쾅쿵쾅쿵쾅... 이유모를 친근감과 기대로 뛰고 있었다. 물론 날씨와 이 망할놈의 도시가 나를 지대로 배신때릴 줄이야 그때는 상상도 못 했지 -_-

 

 

북한과도 불과 버스로 몇 시간 거리인 러시아 최동단 도시, 블라디보스토크.

우랄 산맥 저~편의 페테르스부르크와 모스크바는 이미 흐린 기억속의 그대가 돼 버렸음. -_-

 

 

블라디보스토크 역. 이 곳에서 머나먼 여정을 달려온 횡단열차들은 드디어 그 여정에 종지부를 찍는다.

즉, 상당히 메.모.러.블.한 도시라는 것. ㅋㅋ (기념비마냥 역 뜰에 전시된 열차도 있다)

 

그러나, 열차가 블라디보스토크에 가까워져 속도를 줄임에 따라 차창으로 바라보이는 블라디보스토크는,

스모그라도 낀 듯 스카이라인이 완전히 가려진 저주받은 날씨에 온통 회색빛으로 무뎌보여... 조짐이 안 좋다.

(저 하늘색하며... 고층건물들 안개에 잠긴 거 보면 지금도 가슴이... ㅠ_ㅠ)

 

 

블라디보스토크 역 정문.

이름도 포스있고 건물 디자인도 그렇고 날씨도 칙칙해서인가, 이 건물을 보고 나는 대뜸 드라큘라 城이 떠올랐다.  

지붕의 장식은 박쥐같고, 측면의 뾰족한 흑색지붕들은 드라큘라 성의 탑 같고, 블라디보스토크란 붉은 색 간판은 마치 피(血) 같아. ㅡ_ㅡ;;;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마지말 날이 초초초 암울했던 개인적 요인이 큰 듯,,,)

 

 

 

애초 계획한 블라디보스토크 일정은 단순하지만 명료하고 *쾌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미 열차 내에서 론리플래닛 지도와 도시 설명 읽으면서 계획을 내가 봐도 멋~지게 짜 놓았다.

 

1. 일단 저렴한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푼다.

2. 해변에 가 일광욕과 해수욕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해변 산책로를 걷는다.

3. 시내 전경이 바라다보이는 언덕 까페에 앉아 가격 좀 있는 커피를 마신다.

4. 러시아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이니만큼, 오늘만큼은 최대한 푸짐하고 영양가 있는 근사한 현지음식을 즐긴다.

   +) 야외 까페에서 샤슬릭(케밥)도 꼭!!! 먹어보자!!! 

  (원래 여행후반에 이르러 긴장감이 풀리면 씀씀이가 커지는 법이다)

5. 그냥 호스텔에 돌아가긴 억울하고 아쉬우니, 다시 한 번 여름밤의 도시를 걷고, 가능하다면 클럽이나 바(bar)를 가볍게

  땡겨준다. 아, 궁금하니까 레즈비언 클럽 이런 데면 더 좋고... :-D

6. 한국에 일단 돌아가면 이런 생활도 당분간 빠이빠이~일 테니, 호스텔에서 만나는 다른 외국인 여행자들과 신나게

  수다떨고  분위기 내 준다.

 

그래, 계획은 완벽했지. ㅡ_ㅡ;;;

 

 

비오고 칙칙한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일단 내게 허락된 시간은 오늘 단 하루. 

 블라디보스토크 역에 오전 11시쯤 도착했고, 내일 아침 7시 버스로 2시간여 떨어진 '자루비노(Zarubino)'항으로 가야 한다.

편의상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는 속초 행 페리를 타는 게 낫지만, 며칠 더 빨리 귀국해야 하는 개인적 사정이 있었고 운항요일과 출항지가 좀처럼 맞지 않아, 결국 출발일을 앞당겨 자루비노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페리를 타기로 한 것. 

 돌이켜 보면 러시아 곳곳을 여행사 한 번 의지하지 않고 동행도 없이 잘도 누비고 다녔는데, 사실 막막했던 순간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아니, 막막하기보다는 *스릴 넘치는* 순간들. 횡단열차 표 구하기와 이번 속초 행 국제선 페리 정보 알아보기, 러시아 비자 만료일과 촉박한 귀국일 맞추기, 가이드북으로 절대 커버 안 되는 리서치, etc.,

 각종 교통편과 정보 알아보려고 러시아어도 못하는 주제에 호스텔 스탭들 붙잡고 괴롭히고, 러시아어와 영어 모두 구사하는 친구에게 이메일로 귀찮게 하고, 러시아-속초 국제페리 운행회사의 블라디보스토크 지사에 전화해서 실시간 상담받고 메일 부지기수로 날리고 국제전화로 고국의 부모님께 여러번이나 SOS 요청~~~ ㅠ_ㅠ   

나름 뿌듯했지만, 이같은 장애물을 다~ 극복했는데, 정녕 막판에 와 최대위기에 맞부닥친 것.

결국 화룡점정은 물 건너 갔다.

 

 왜냐하면... 도저히 내 계획 실행의 전제조건 (1)순위인, *짐 풀 곳*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

숙박장소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론리플래닛에 의하면, 블라디보스토크는 관광도시라고 하긴 아직 뭐해서 배낭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저렴한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는 전무하다. 그나마 하룻밤에 2, 3만원 가량의 현지인 홈스테이(민박)가 가장 저렴한 옵션인데, 이 경우는 사전에 리서치를 통해 홈스테이를 희망하는 가정집에 연락을 취해놓아야 했다. 지금은 아~무런 민박 관련 연락처나 주소 하나 없는 상태에서, 길 가는 아무나 붙잡고 가타부타 '날 좀 재워주실래요?' 할 수도 없는 노릇. 

결국 남은 옵션은 호텔이나, 벌써부터 후덜덜해 온다. 가장 저렴한 호텔은 무려 한화 10만원이다. @0@;;;

물론 지금까지 숙박했던 장소와는 다르게 1인실에 개별화장실에 하우스키핑 서비스도 가능한 나름 안락한 잠자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10만원이라니... ㅎㄷㄷㄷㄷ 내일 아침 7시 버스를 타려면 고작해야 몇 시간 몸 좀 뉘이는 건데, 그 큰 돈을 낭비(!!!)할 순 절대 없다. >_<

 날씨는 최악을 달리지, 15kg는 족히 넘는 배낭은 사정없이 어깨와 허리를 죄어오지, 오늘밤 당장 잘 곳은 막막하지...

잘 곳을 정하지 못하니 나머지 계획들은 죄다 물거품이 돼 버리는 듯 했다. @_@;;;;;

 

 

 일단 배가 너무 고파서 요기거리를 샀다. 양파링을 보니 새삼 눈물날 것 같다. 나름 큰맘먹고 그동안 거들떠 보지도 않던 비싼(-_-) 샐러드도 산다. 

 허겁지겁 페리터미널의 텅빈 대합실에 앉아 허기를 채우며 *난국을 타개할 방안*을 떠올려 보지만, 이번엔 좀처럼 *수호천사(친절한 이방인)*이 나타나지도 않고, 전날 야간열차 좌석칸에 시달리느라 잠을 거의 못 자 머리는 점점 더 멍해오기만 한다. 에라, 모르겠당~ 대합실 의자를 붙여놓고 앞 의자 등받이에 몸이 가려지도록 누운 후, 핸드폰 알람을 맞춰놓고 한 시간 가량 눈을 붙였다. (전날 열차에서 거의 못 자서인지 세상 모르고 정말 잠이 들었다. 경계심 따윈 고이 접어 나빌레라~ ㅡㅂㅡ;;;) 

 

물론 그 오랜 여행을 해 온 내가, 이렇게 준비성 없이 난관에 봉착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나름대로 나는 사전 리서치를 해 오긴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렇다 할 저렴한 숙박 옵션이 없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고, 걱정돼 대충 (-요게 문제 -_-) 수소문해 봤지만 뾰족한 대안이 안 나왔다. 그게 문제였다. 일단 당장 눈앞에 닥치지 않아서였는지, 그냥 난 얼렁뚱땅 미뤄버렸다. 일약 그 밀어부치기 무대포 정신;;;

*닥치면 다 되겠지, 뭐*

*어떻게든 되겠지, 뭐. :)  * 

최소한 하바로브스크처럼 역 자체에 작은 숙박소가 있기를 바랬던 것. 아니, 있을 줄 알았다.

대단한 배짱에 안이함이었다. 그리고 지금 난, 그 벌을 받고 있다. ㅡ_ㅡ;; 

 

 

 

아... 그러고 보면 러시아에선 거의 항상 그 놈의 *날씨* 때문에 고생했던 것 같다.

비가 퍼붓던 페테르스부르크 도착 첫날부터, 모스크바에선 초대형 소나기 만나고, 바이칼 호수에선 비땜에 별도 못 봐,

이제 블라디보스토크에 오니... 완전 극악의 날씨구나...

하바로브스크에서 반나절 제외하곤 늘 칙칙하고 춥고 비 내리고 천둥치고... ㅠ_ㅠ 

 

사정이 이렇다 보니 러시아 사진은 대체로 어둡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ㅠ_ㅠ

(두산 중공업. 블라디보스토크에 진출해 있구나. 근데 이 기업이 한국 거라는 건 과연 얼마나 알랑가? -_-)

 

 

 눈은 좀 붙였지만 여전히 잠은 부족하고, 터미널 대합실은 오후 5시 가량엔 문을 닫을 것이다.

열차역은 말할 것도 없다. 자정이 안 돼 문을 닫을 테고, 그렇지 않더라도 당최 너무 춥고 벤치도 딱딱해서 밤을 새는 건 엄두도 낼 수 없다. 무거운 짐만이라도 어디에 맡겨놓으면 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대안을 찾아보던가 할 텐데.  그렇지만 열차역과 페리터미널 짐 보관소는 모두 저녁 8시까지만 문을 여는데다 내일 아침 9시에 다시 문을 열어, 여기에 짐을 맡겼다간 내일 자루비노 행 버스를 못 탈 형편이다. 젠장, 젠장~~~

마지막 방법으로, 동춘페리(러시아-속초 간 페리운행 회사) 블라디보스토크 지사의 한국인 매니져를 만나 도움을 얻으러 사무실로 향했다. 일단 한국어나 영어를 하는 사람이라도 너무나 너무나 간절했다. 그렇지만 하필 그 구세주같은 분은 부재중인 데다 전화연결도 안 되고, 능숙한 영어에 예쁘장한 러시아 여직원은 쌀쌀맞고 싸구려 숙소에 대한 도움은 전혀 주지 못한다. 관광안내소도 안 보이고, 페리터미널이고 열차역이고 영어도 거의 안 통하고 싼 숙소 아는 사람은 전무하고 날 입양-_-해주는 사람도 없고... 흐흐흑... ㅠㅠ  거의 울고 싶었다. 

 

사진과 가이드북의 설명에서 본 블라디보스토크는, 꽤 운치있고 즐길 것도 많은 아름다운 도시였는데-.

내겐 이렇게 가혹하게 돌변해 버리다니...            오, 신이시여...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스파게티 ㅠ_ㅠ 

 

 

결국, 타협 하기로 했다.

내겐 이와 비슷한 상황이 긴 여행동안 여러번 발생했었다.

일단 중국에서는 만 원이 조금 넘는 숙박비를 내기 싫다고 24시간 오픈 PC방에서 인터넷 서핑에 새우잠을 잔 경우가 다반사였다. (지금 생각하니 도대체가 어이상실이다. 중국 1박당 숙박비가 2~3,000원 가량으로 저렴했다곤 해도, 겨우 10,000원 내는 게 싫어서 위험할 수도 있는 촌구석 PC방에서 쾌활하게 밤을 새냐... -ㅂ-;;; 게다가 그 10,000원대 호텔들은 한국에서라면 족히 십만원 가까이는 줘야 될 정도로 양호한 곳들이었다.  사람의 적응력은 대단하다. 중국촌구석을 오랫동안 싸돌아다니다 보니 당시 만원이 내겐 십만원처럼 느껴졌나 보다.)  이란과 인도에서도 택시비 & 숙박비 절약한다고 터미널 벤치에서 동틀 때 기다리며 눈붙인 경우가 여러번이었다. 지금과 가장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아르메니아에선, 경찰들이 현지인 홈스테이 알선해 줄때까지는 지하철역 바닥에 신문깔고 잘 작정이었다.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새벽/한밤중 출발 비행기를 기다릴 땐, 공항 벤치와 바닥에서 침낭깔고 잔 경우도 많다. 그래... 난 할 수 있어!!! 이까짓 거 한 두번 겪어봤냐구!!!   ㅡ, .ㅡ (지금 써놓고 보니 나도 쬐끔은 하드코어구나... 아핳핳... ㅡㅂㅡ;;)

 

 그러나 문제는, 이번엔 제일 만만한 24시간 오픈 PC방이 없고, 터미널이나 공항은 아예 노숙 아닌 노숙 장소로 제외된다는 것. 게다가 치안 문제도 걸린다. 해결책은, 론리플래닛에서 '24 HOURS OPEN' 목차를 찾았다. PC방이나 패스트드푸점은 없었지만, 24 시간 오픈 까페나 레스토랑은 다행히 몇 개 있다. (살았다~ @0@)

 

 레스토랑 하나를 찍어 나름 큼지막하고 고급스런 외관을 확인하고, (경비원까지 있다) 매니져를 부탁해 간곡하게 사정을 얘기했다. 구불거리는 금발에 훤칠한 젊은 매니져는, 고급 레스토랑의 매니져답게 영어도 꽤 잘 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  (How can I help you?? 악, 그 마법의 말...@_@;; 물론 이건 상(商)도덕에 불과하나;;)

 

 배낭을 메고 비에 젖은데다 괴상한 옷차림새에, 때국물과 피로로 구질구질한 얼굴로 일사천리로 사정을 설명해버렸다.

 

"(쏼라쏼라....) 그러니...여기서 내일 아침 버스를 잡을 때까지 테이블 하나만 신세지고 오늘 밤 보냄 안 될까요...?? ㅠ_ㅠ

(핫!!! @_@)  물론 여기서 식사는 주문할 거에요. 밤새 있어도 되는지만 허락해 주심... (굽신굽신 비굴+동정유발 모드)"

 

"물론이죠!! 들어와요. 그 거의 부러져가는 우산은 저기 세워두고~ :) "

 

너무 선뜻 허락해 줘서 눈물날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식사주문을 하긴 했다. 어차피 오늘은 식사에 투자 좀 할 계획이었으니, 천사 매니져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ㅡ_ㅡ 근데 대령된 메뉴판을 보니 후덜덜덜덜;;;; 밖에 디스플레이된 음식이나 인테리어나 손님들을 봐도 럭셔리~하다 싶었더니, 이건 한국 웬만한 중고급 레스토랑 뺨치는 것 같다. @_@;;;;  결국, 가장 싼 스파게티 1/2인분(? g수로 표시돼서 가장 작은 걸로)과 과일쥬스를 시키는데 이건 스파게티 양이... 아무리 g수가 작다지만 진짜 한 줌도 안 됨 ㅠ_ㅠ 

 너무너무 배고파서 결국 또 메뉴판을 부탁.  으아,,, 숙박비 10만원도 아꼈으니 그냥 5만원 좀 투자해서 간에 기별이 갈 만한 걸 시켜볼까.............고민했으나----- 역시 그동안 체화된 거지근성과 헝그리 마인드는 본능적으로 절대(!) 허락지 않는다. 결국 메뉴판을 10분을 훑은 끝에 또다시 가장 싸구려인 수프 달랑 하나 주문하는 찌질한 짓을 해 버린다. ㅠ_ㅠ 그래도 세련된 유니폼을 입은 예쁘장한 웨이트리스들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훈련받은 매너답게, 최소한 비웃음을 내보이거나 하진 않았다. ㅠ_ㅠ

 

 

 

 우울한 마음을 달래려 엽서를 꺼내썼다. 우체국에서 구한 예쁜 우표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건진 가장 큰 수확이다. 

참나... 먹을 건 못 먹어도 우표에 엽서값은 아끼지 않는다. 현지 풍경이 든 엽서, 현지 우표, 현지 소인이 찍힌 그 때의 나의 감정을 담은 엽서들- 에 무지 욕심을 냈던 것 같다. 기념품 쇼핑은 거의 하지 않지만 우표구입과 엽서부치기는 꼬박꼬박 했다. 덕분에 세계 곳곳으로 날린 엽서들과 집으로 날라온 엽서/편지들만 해도 큰 서랍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이고 지금 와 뿌듯한 보물이지만... 그때는 엽서조차 크게 위안이 돼주지 못했다. ㅠ_ㅠ 

 

 밤이 늦어도 손님들은 여전히 많고 간혹 나를 흘끔거리기도 한다. 뭐랄까, 적대적인 호기심?? 경멸?? 그 때 내 기분이 다운돼 있어 그랬는지는 몰라도, 산더미같은 짐에다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로 졸려 몸을 못 가누고 있는 나를 보는 시선이 결코 따뜻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읽을 책도 없고 일기장에 공란도 없어, 종이 쪼가리에 나의 비참한 신세한탄, 앞으로의 나의 희망, 계획 등을 끄적거리고, 재미대가리도 없는 론리플래닛(가이드북)을 구석구석 읽는다. 옷은 비에 젖어 몸이 오슬오슬 떨리는데, 에어컨 바람을 낮춰달라고 두 번이나 부탁해도 다른 손님들 때문에 곤란하다며 정중히, 단 한 단계만 낮춰준다. (여전히 너무 춥다 ㅠ_ㅠ)  너무 졸려서 귀중품이 든 크로스백만 가슴에 꼭 껴안고 테이블에 엎드려 선잠을 자려는데, 누군가가 와서 어깨를 살짝 두드린다. -왜요?- 게슴츠레한 눈으로 물으니(제발 나 좀 내버려둬요...!!! ㅠㅠ), 상냥한 인상의 웨이트리스가 레스토랑 안쪽 구석을 가리키며 말한다. -매니져님이 그러시는데, 앉아서 무얼 하든 상관없는데 잠은 자지 말래요. 지금처럼 테이블에 엎드려서는...- 

 

-이젠 잠도 못 자게 하는 거야?? 당최 왜?? 레스토랑 분위기 흐린다구??? @0@;;;

 

 매니져에게 화를 억누르며 진지하게 이유가 뭐냐고 질문하지만, 논쟁을 피하고 싶은 건지 아님 초급 영어구사 외에는 힘든 건지 적당히 웃으며, 안 된다, 미안하지만 'NO' 되뇌이고는 사라진다. 

자고 싶은 사람 안 재우는 게 고문방법 중의 하나라고 했지. 그렇다면 난 제대로 고문당하고 있는 거다.

중국에서 비슷한 극도의 긴장 상황에서 꼬박 48시간 가량 뜬 눈으로 지새운 적이 있는데, 지금은 체력이 후달리는 건지 정신력이 급하강한 건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미칠 지경이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다.  

.

.

.

 결국 수면부족과 허기에 시달리던 나는, 새벽 2시에 잠깨 본다고 홀로 비내리는 거리로 나왔다. 위험같은 건 생각도 안 하고, ATM과 게임기 등 기계들만 덩그마니 지키고 있는 지하도와 거리를 배회하고, 24시간 문을 여는 컨테이너 매점에서 빵과 뜨거운 커피를 사 먹었다. (효율도 좋고 어찌나 싼지... 들어가 앉을 장소만 있다면 ㅠㅠ)  인적드문 거리 돌담에 걸터앉아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뜨거운 종이컵에 손을 녹이며 빵을 우물우물 씹는 나를 보자니... 초라하고 너무나 어이없는 모습에 웃음과 더불어 눈물이 나왔다. 물웅덩이를 헤치며 앞 차도에서 간간이 질주하는 차들을 보며, 비에 젖은 어두운 이국의 도시를 보며, 아련한 바다내음을 맡으며, 사무치는 외로움과 비참함, 자괴감에 소리내어 흑, 흑, 정말로 울었다.

어이없고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긴 했지만, 가장 솔직한 표현이었다. 

그러고 보면 여행을 늘 즐거운 소풍마냥 단정짓는 사람들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매순간이 빛나고 찬란하고 새롭다고?? 정말로??  절대 약하지는 않다고 자신하는 나도, 여행중에 은근 많이도 울었다. 아니, 많이는 아니고 여러번... ㅡ_ㅡ;; 정든 사람과 헤어지거나 끝이 좋지 않게 이별할 때, 몸이 아픈데 돌봐줄 사람 하나 없을 때, 느닷없이 나를 죄어오는 압박감과 불안감에, 가족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하거나 그리워서......

 그러고 보면 화룡점정은 아니어도, 자괴감과 심신의 고난으로 점철된 마무리일지라도, 최소한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으니 그렇게 나쁜 건 아니지 않을까...??  

마음을 다독이며 마(魔)와 같은 잠과 싸우며, 오직 아침버스에 오를 수 있는 동틀 때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다.

그러나 이런 긍정론마저 다음 날 아침 두 배로 박살날 줄은... (고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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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고난은- 

자루비노행 버스를 타러, 마을버스로 외곽의 버스터미널로 가려했으나... 신기하고 골 때리게도 삥삥 돌아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 졸았나? 기사 아저씨가 안 갈쳐줬나? 난 분명 탑승할 때 기사아저씨에게 목적지 주소를 보여주고, 바디랭귀지로 확답까지 받았는데 말이다. ㅡ_ㅡ+ 

  암튼 한 시간여 후에 나 혼자만 유일하게 버스에서 졸고 있고, 기사 아저씨가 종점이라고 내리라길래 도착한 줄 알고 쾌활하게 내렸더니... 데자뷰마냥 뭔가 익숙하다.

보니까 삥삥~  돌아가 마을버스 탄 정류장으로 다시 돌아온 셈 ㅡㅂㅡ;;; 

 

 결국 자루비노 행 공공버스는 놓치고... 속초 행 페리출발시각에 맞출 수 있는 유일한 마지막 방법으로, 예전의 리서치 정보를 조합,

(1) 인근의 슬라비안카란 도시까지 쾌속선을 타고 가  (2) 슬라비안카에서 자루비노까지 버스를 타기로 했다.

(이럴 때는 생명 & 직접적 안위와 직결돼서 그런지 머리 한 번 빨랑빨랑 잘 돌아가... ㅡ_ㅡ;;;)

  그러나 이 역시 (2)번 방법에 실패, 자루비노 행 버스가 그 날 마침 없었던고로... 한참을 슬라비안카 선착장 그 황량한 시골에서 비 맞으며 발만 동동 구르다, 마침 자루비노로 향하는 한국말 못하는 고려인 아가씨와 team up, 택시를 섭외해 좀 비싸나마 자루비노까지 가 속초 행 페리를 타는 데 성공했다.

 

완전 막판에 와서 돌아가고, 돌고돌고, 시간에 쫓기고, 돈 버리고 드라마틱... ㅡ_ㅡ

도대체 몇십번이나 심각하게 어떡해, 어떡해, 아, 진짜 어떡하면 좋냐구~~~~~~~~~?!!!

동행 하나 없이 오로지 믿을 사람은 나밖에 없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강요했던지...

 

그래도... 나름 몇 만원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절약하지 않았나, 억지로 위안을 삼아보련다.

지금 그 밤과 다음날 아침의 해프닝을 떠올려 보면, '아이구, 저런 병~신... 국가망신 다 시키네... @0@;;;'

이런 반응 곧바로 나갈 것 같지만서두- ㅋㅋㅋㅋㅋ

 

 

슬라비안카로 가는 쾌속선 페리 매표소(까사). 

 

 

블라디보스토크 -> 슬라비안카 쾌속선.

날씨 진짜 죽여준다. 태풍올 것 같아... 사람들 표정도 덩달아 음침하니... ㅜㅜ

 

 

 

완전 허허벌판의 대명사인 슬라비안카 쾌속선 선착장.

유일하게 의의가 있다면, 바로 북한땅에 무지무지 가깝다는 것... ㅡ_ㅡ;;

 

 

출처 : 여자 혼자가는 여행
글쓴이 : halfmoonwis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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