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대륙의 반(半)을 가르며...
모스크바를 떠나 이르쿠츠크로 via TSR
(seat61.com
전세계 거의 모든 열차 서비스에 관한 상세한 정보 총망라! 아마추어 개인이 운영하는 듯 한데 겁나게 전문적인 사이트다.)
모스크바에서 이르쿠츠크로 가는 열차 안. 무려 꼬박 3일이 넘는 탑승 일정이다.
이르쿠츠크에서 하차하면 근처의 바이칼 호를 보고, 다시 횡단열차에 올라 속초로 가는 국제 페리를 탈 수 있는 러시아 최동단 도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갈 예정이다. 즉, 나는 모스크바 ~~~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러시아 대륙을 횡으로 잇는 Classic 정통 시베리아 횡단루트(TSR: Trans Siberian Railway)를 따라가게 되는 셈.
그 외에도 시베리아 횡단루트는, 지도에서 보듯 이르쿠츠크(정확히 말하면 '울란우데')에서 몽골 '울란바토르' 행 열차로 갈아탈 수 있는 몽골 횡단루트(TMGR: Trans MonGolian Railway), 그리고 '치타'에서 중국 '하얼빈' 행 열차로 갈아탈 수 있는 만주 횡단루트(TMR: Trans Manchurian Railway)로 나눠진다. 원래 나의 계획은 1순위가 몽골 횡단루트, 2순위가 만주 횡단루트를 이용하는 것이었으나- 몽골, 중국 비자 발급받기 모두에 실패한 관계로ㅠ_ㅠ 결국 가장 원치 않던 정통 루트를 타고 러시아 대륙을 지대로 동서로 횡단하게 됐다. -_-
소요시간: 72시간 +
열차명: [바이칼(Baikal)] (3등칸이라 해도 최신식에 고급열차라 가격이 세다 ㅠ_ㅠ 이 표밖에 없었음)
클래스: 플라츠카르트(3등칸)
좌석: 복도쪽(ㅠ_ㅠ) 1층(^-^)
열차 내부 & 동고동락 라이프
플라츠카르트(3등칸) 내부 구조.
인도의 SL 열차와 비슷한데, 복도를 사이에 두고 침대가 종/횡렬로 늘어서 있다.
당근 좋은 자리는 왼쪽 마주본 침대칸 1층이지. -_-
(지나가는 사람들 걸리적거리지도 않고 안락하지, 2층으로 오르내릴 필요도 없지- 대신에 예약이 빨리 찬다.
반면 최악의 자리는 역시 (오른편에 보듯) 복도쪽 2층 침대. 그나마 이건 면했다 v-_-v)
막판에 드라마틱하게 열차표를 구해, 프라이버시가 한결 떨어지는 복도쪽 침대도 감지덕지.
그나마 매번 힘겹게 써커스를 벌여야 하는 2층 복도칸을 배정받지 않은 게 다행이다.
최소한 이보다는 낫지 않겠어. -_-;;;
매번 빈약한 발걸이 딛고 오르락내리락 하려면 체력소진도 상당할 터.
관절염 심한 나이 지긋한 분들은 고생 좀 하겠다.
(최신열차 [바이칼]은, 열차 내부 전자전광판에 실내온도, 이동속도, 화장실 사용가능 여부 등이 수시로 표시된다)
잠을 자지 않는 낮 시간에는 보통 복도 쪽 침대를 접어 이렇게 의자 & 테이블로 만든다.
식사도 하고 책도 읽고 뭔가도 끄적거리고-
세계의 1/3 가량의 화장실을 누벼 왔지만 여행 후반부 들어 유럽/러시아 등의 상대적으로 '문명화된' 화장실에 익숙해지다 보니,
긴 열차여행에 있어 가장 걱정되는 건 '비위 상하는 공중화장실' 사용문제였다.
분명 하루 쯤 지나면 무지무지 지저분해질 거야. -_- (중국 열차 상기해 봐...)
급한 용무가 있어도 맨날 줄서서 기다리고 해야겠지. 그리고 일 보면서도 기다리는 사람 걱정땜시... ㅠ_ㅠ
세수하는 것도 겁나 신경쓰이겠네, 흐미... 3일간 클렌징티슈로 버텨?? @_@
승객수에 비해 화장실은 턱없이 모자르니 승무원의 주기적인 청소도 당해낼 재간이 없을 성 싶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에서의 추억이 걱정에 기름을 붓는다.
그러나 웬걸? 막상 일주일간의 TSR 여행에 오르자, 화장실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적은 거의 없다.
승무원들의 세심한 손길 덕분일까. -ㅅ-
(바이칼처럼 고급열차가 아니어도 마찬가지. 정기적으로 차장들이 복도와 화장실 청소를 한다)
사모바르?
끓는 물로 언제든 인스턴트 라면이나 차를 즐길 수 있다.
겨울철 클래식한 시베리아 횡단여행에 필수품일 듯.
장장 3일간의 '이동 사육장' 생활을 버텨내려면 '음악'이 필수적이다.
아이팟 충전을 걱정했는데, 고맙게도 전원코드가 있다.
저가 핸드폰의 경우엔 보통 충전될 때까지 자리를 비우는 듯 하지만,
아이팟이나 기타 중고가 제품의 경우엔 옆에 붙어있는 게 안전할 듯하다.
역시 소문대로 위용을 자랑하는 [도시락]
개인적으로 치킨맛을 선호한다. 더 얼큰한 맛이랄까? (비프맛은 녹색 포장지)
바깥 경치는 그다지 특별할 게 없다. ㅠ_ㅠ
말 그대로 이건 scenic trail을 운행하는 단중거리 열차가 아닌, 철저한 [운송용] 열차인 것이다. ㅠ_ㅠ
눈쌓인 겨울에 왔으면 자작나무 숲이 범상치 않게 보이긴 했겠지. 정말 정통적인 시베리아 횡단...
그러나 시베리아의 겨울... ㅎㄷㄷㄷㄷ
그래도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특히 외국인들에겐 네버엔딩 판타지의 대상이다.
지금은 비행기에 비해 크게 가격경쟁력도 없는 듯 하고, 장거리 열차이동에 지레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극소수이고 대륙횡단열차 탑승은 꼭 한 번 해볼만한 일생의 경험~ :)
수많은 위시리스트에서 드디어 하나에 쌱! 빗금을 긋는 쾌감~ ㅎㅎㅎ
경유역마다 내려서 스트레칭도 해 주고 바깥바람도 쐰다.
아이구, 마냥 낭만적인 횡단열차라고 상상했는데, 3일간 좁은 열차안에 갇혀있다보면 삭신이 쑤신다 ㅠ_ㅠ
기차가 멈추는 경유역마다 인근 주민들이 각종 먹을거리, 간식 등을 판다.
바가지를 씌우지도 않고 저렴하고 맛도 좋아 이동중에 뭐 먹는 걸 좋아하는 분들은 행복할 듯.
(단지 붐비는 화장실 찬스를 잡는 게 난항이겠지만 -_-)
옴스크(Omsk-도스토예프스키의 유형지로도 유명)에 정차한 바이칼 호.
3일동안 열차를 타다 보니, 차 안에서 새벽과 밤, 낮과 저녁, 맑은 날씨, 궂은 날씨, 모두 접하게 된다.
어느새 열차 안에서 황혼을 맞는다.
이젠 어느 역에 정차했는지도 귀찮아서 확인 안 하는 무심함. 한 두 군데 정차해야 말이지 -_-
수천번을 스쳐가는 수많은 열차들, 수없이 교차했다 다시 평행선을 가는 철길들... 우리네 인연들처럼...
아이구야... 대화할 상대도 없으니 좀 많이 지루하구나... ㅠ_ㅠ
게임기나 랩탑이라도 있음 좋겄다... ㅠ_ㅠ
(나의 主 끼니: 도시락 + 빵 + 소세지 + 쥬스)
어둠이 내려도 쿵,쿵,쿵, 열차의 규칙적인 심장소리는 잦아들지 않는다. 그 무한한 신뢰감을 주는 소리...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아늑함과 위안을 느끼며 잠에 빠져든다.
그래, 걱정마. 그냥 편안히 잠들렴.
한결같이 목적지로 널 실어갈 테고, 눈을 떠도 나는 계속 네 옆에 그렇게 있을 테니.
이제는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완전히 아~무 생각이 없다.
지금이야말로 진정 내가 찾던 *오지*에 있는 거 아닐까.
그렇게 갈구했지만 늘상 관광객들로 넘쳐났던 짜가 시골마을들이 아닌,
예상치도 못 했고 어디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그런 진정한 낯설고 먼 어딘가에.
바로 somewhere out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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