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스크랩] [러시아] 페테르스부르크(2)_도스토예프스키 뮤지엄

flower1004 2010. 2. 19. 16:21

 

@ Petersburg

 

 파아란 하늘이 돋보이는 여름날의 페테르스부르크는, 내가 '눈의 나라' 러시아에 있는 게 맞나 헷갈리게 할 정도로 뜨겁고 밝다. 이런 날은 도시를 둘러보는 발걸음도 덩달아 가볍다. :)  

 

 

 

네프스키 대로의 카잔성당, 지하철역, 피의 사원이 교차하는 번화가 (아울러 쿠바 호스텔 바로 앞 ^^)

왼쪽은 비상하는 천사 동상이 아름다운 아르누보 스타일의 대형서점, 돔 크니기(Dom Knigi).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저렴하면서도 품질좋은 엽서, 악세사리 등이 다양하게 구비돼 있다.

 

 

느지막히 일어나 브런치를 먹으며 햇살 가득한 창가에서 오늘 일정을 짜고 마음에 드는 곳들을 체크한다.

@ 네프스키 대로의 SUBWAY.

가난한 여행자에게 나름 럭셔리 브랜드인 서브웨이라니, -_-

하지만 고맙게도 국제학생증(ISIC) 할인(!)이 있다. :) 물론 할인적용 아이템이 한정돼 있는 등 부수조건이 따르긴 한다.

비탓에 하루 두끼는 라면에 빵으로 때우는 만큼, 가끔은 제대로 영양보충 좀 해줘야하지 않겠어.

 

 

오늘도 언제나처럼 네프스키 대로를 따라 걷는다.

러시아의 국민영웅 푸쉬킨을 테마로 한 까페.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투르게네프, 파스테르나크, 아시모프, 나보코프, 체홉 등... 숱한 문호들이 있는데,

왜 유독 푸쉬킨에 러시아인들이 집착하는지 가끔은 궁금하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이 희망적인 메시지의 시 때문?? -_-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궁전 광장(Palace Square)을 쏘다녀보기도 하고~

이 바로 부근이 에미르타쥐 뮤지엄과 네바 강.

 

 

금빛 돔이 찬란한, 이작(St.Issa) 성당 뒷편의 대학 캠퍼스를 연상시키는 널찍한 잔디에서 뒹굴어도 본다.  

 

솔직히 성당과 사원 순례는 지루하다. 종교와 신앙, 배경지식을 막론하고 지긋지긋하도록 봤다. ㅠㅠ

 

 

배가 고프면 단골 레스토랑  -이라기보다는 캐쥬얼한 카페테리아 정도-  에서 허기를 채운다.

만만치 않은 물가의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제대로 챙겨먹는 게 쉽지 않다.

이 식당의 좋은 점은 영어가 서툰 직원들에게 러시아어로 힘들게 주문할 필요가 없다는 점.

직접 원하는 음식을 선택해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셀프서비스 방식이라 메뉴도 필요없고 가격도 저렴하다.

무엇보다 (러시아에서 흔히 그러듯) 오전 or 런치아워엔 파격적인 할인이 이루어진다.

하루 한 끼는 제대로 먹어주려 했는데, 세팅은 늘,

러시안 수프(이건 솔랸카(solyanka)- 최고!!)와 mashed potato, 러시안 흑빵 (가끔 향이 강렬한 절인 생선, 올리브 등 추가).

그래도 양이 많지 않아 여전히 배고프다 ㅡ_ㅡ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

 

나름 팬이라고 자처하는 만큼,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을 절대 빠뜨릴 수 없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거주하며 집필활동을 했던 건물을 박물관으로 개조했는데, 그의 독자들에겐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장소.

그의 소지품부터 가구, 사진첩, 각종 시청각 자료까지 아담하지만 운치있게 잘 꾸며놓았다. 

게다가 와글와글한 박물관 분위기가 아니어서 더욱 여유롭게 찬찬히 둘러볼 수 있었다.

입구에 '죄와 벌' 삽화를 이용한 귀여운 카렌다와 엽서등 기념품 코너가 있는데, 예뻐서 대량으로 구입해 놓고 나중에 모스크바 호스텔에 죄다 놓고 왔다는 ㅠ_ㅠ 

도스토예프스키의 손때붇은 서재와 책장등을 둘러보며 물음표를 떠올렸다.

이러한 착상과 창조력, 의지를 지닌 사람들은 타고 나는 걸까??

분명 존경할 수 없는 결점들도 있을 테지만, 

사회참여 없는 막연한 '룸펜'으로 남지 않은 이력 때문에 또한 그의 작품들이 더욱 주목받는 거 아닐지. 

 

 

어렸을 때 도스토예프스키의 자화상을 볼 때면 되묻곤 했다.

"벗어진 머리에 무성한 수염이 아니었다면 좀더 여성팬이 많지 않았을까?"

칙칙한 산문들 대신 강렬하고 감성적인 시(時)를 즐겨썼다면,

그리고 랭보(...)같은 미남은 안 될지라도, 오스카 와일드 같은 댄디함이 돋보였다면,

소시적 나의 허영심-_-을 좀더 효과적으로 채워주지 않았을까, 이런 미련 말이다.

 

(google images)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은 대체로 *칙칙*하다.

그의 데뷔작이 [학대받는 사람들]이었고 일관되게 작품에서 당시의 비참한 사회상을 다루었으니 무리는 아니다.

물론 작품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어두운 분위기가, 그 안의 블랙유머와 감동을 돋보이게 하는 것도 사실.

(마치 빛을 강조해 주는 어둠처럼)

 

어둠은 어둠과 친하다는데, 그래서인지 침울했던 시절 그의 작품들을 즐겨 읽곤 했다.

그러나 장대한 파노라마가 결국 신(神)에 의한 구원과 귀의로 마무리되는 '안이한' 결론들은,

반항심에 잔뜩 꼬여있던 내 마음에 한 가닥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솔직히 제대로 이해하고 읽었던 것 같지도 않다. 지금도 긴가민가한데;;;)

 

그렇지만 팬을 자처해도 영 즐겁지 않았던 독서가 있었으니, 바로, [지하 생활자의 수기(Notes from Undergroud)]

말 그대로 히키코모리 하나가 지하방에 틀어박혀 온갖 상념들을 주절거리는 작품인데,

당시 내 상황이 그와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근거없는 자괴감과 무엇보다 지루함에 독서가 은근 힘겨웠다.

그런데 몇 년 후 [지하 생활자의 수기]가 자신의 애장 #1이라고 쌩글거리는 친구를 보고 놀랐다.

사람의 취향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는 거구나. 

아마, 지금 다시 지하 생활자의 패배적인 속닥거림에 귀를 기울여보면 조금은 그를 이해할 수 있을까.

다시금 지상으로, 세상 밖으로 나오라고 그의 귀에 속삭여주게 되려나.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 맞은편 건물.

역시 한눈에도 좀 사는 동네는 아니란 게 확실하다.

"가난함은 문제가 아니지만, 극빈(劇貧)은 죄악입니다."

죄와 벌에 이런 비슷한 구절이 나왔었지. 주정뱅이 퇴역관리 마르멜라도프의 대사.

멋모르고 읽을 때는 냉소적인 유머마저 군데군데 묻어나오는 묘사들이 그저 재미있었나 보다.

 

고전(Classic)을 참 좋아했는데, 돌이켜보면 자라나는 시절에 고전을 많이 읽으라는 게 신빙성이 있나 싶을 때가 있다.

특히 그 케케묵은 권장도서 리스트 중 몇몇은 필히 수정을 거쳐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도스토예프스키와는 무관하게) 

 

어쨌거나,

[죄와 벌]에서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은 천사같은 창녀 소냐를 통해 구원을 얻는다- (그렇게들 평한다).

참, 지금 생각하면 옛날 사람들은 한층 조숙했던 것 같다.

교육기회 부재, 짧은 의무교육연한(이런 게 있었나?), 조혼 풍습 등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지금 책을 다시 읽으면 소냐는 당시 겨우 18세나 됐을까.

(로미오와 줄리엣은 어떻고... 아무리 한국나이가 아니라고 해도 -_-)

 

창녀에 의한 구원이란 소재가 고전에 자주 등장하는 것 역시 조금은 거슬린다. 

18세기인가, 19세기 유럽에 '창녀 or 성녀', '창녀 구원 테마' 가 문단에 유행했다고 읽었는데,

여성을 '한없이 용서하고 받아들여 주는' 존재로 그리는 김기덕 표 영화들이 생각나서 왕짜증이다.

(솔직히 비단 그 때뿐만 아니라, 이 테마는 인류사 공통의 영원한 환타지인 것 같다)

어쩌면 하나같이 작가들이 그렇게 젖비린내 나는 아가들 같을까.  후후, 결국 귀결은 창녀와 성녀?? 구원??

'희생의 신성화', '언제나 귀의할 수 있는 고향'이란 주제에 식상해진지 오래다.

아무리 옛날엔 매춘부와 고급 매춘부가 많았고 다소 위선적인 상류사회 규수들에게 질린 작가들이 많았다고 해도,

상상력의 부재가 치명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인지 요새는 소설 말고 삐딱선을 타는 논픽션류를 가까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얘기가 샜는데-_-, 도스토예프스키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중 하나이고, 그 작품을 평가절하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쿵저러쿵 일부 클래식 작품들의 뻔한 레퍼토리에 대해 비판을 늘어놓아도,

어쩌면 내가 그 진가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세월이 더 지나면 또 몰랐던 점을 알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박물관 주변 성당. 그 앞에서 행인들에게 꽃을 파는 상인들.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시장에 들렀다.

김치, 김, 간장 등을 보니 고향에 온 기분이다. :)   (키릴문자로 씌인 '김', 은근 멋있는데 ^-^)

러시아의 한국교포(?)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다.

시장에서 김치 등을 팔기도 하고, 일부는 한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과연 그들 중 얼마나 자기가 '한국인'이란 걸 의식하고 살아가는지는 알 수 힘들다.

늘상 뿌리, 시원 등을 강조하지만, 유독 한국의 강한 혈연주의를 그들에게 투사하는 걸지도 모르겠단 생각. 

 

 

네프스키 대로의 예술가 거리 구역(?).

화가들은 페테르스부르크의 관광명소와 바보 이반, 호두까기 인형등의 동화,

그리고 벙어리 장갑을 낀 발그레한 볼의 금발 소녀 등,

부쩍 러시아풍이 느껴지는 그림을 판다.

 

 

피의 사원 지붕엔 구름이 걸려있고,

 

 

다시금 찾은 네바 강변,

 

 

대기오염도에 비례해 석양의 수려함이 결정된다던데,

페테르스부르크의 하늘은 오늘도 예술가의 붓이 오간 마냥 알록달록하다.

대기오염이고 뭐고를 떠나, 일상으로 귀환해서도 이렇게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고 석양을 감상할 여유가 있었으면- 한다.

 

 

불 밝힌 어드마이럴티.

페테르스부르크의 밤은 늦게 찾아온다. (백야 얘기가 아니라 -_-)

12시가 넘어서 혼자 시내를 돌아다녀도 여름밤은 시민들로 붐비고, 호스텔 로비는 늘 시끌벅적하다.

그래도 밤늦게 돌아다니는 우는 범하지 않아야 할 듯.

급한 일로 잠시 나갔다 온다는 나를, 귀여운 호스텔 스탭이 위험하다고 극구 잡아줘서 얼마나 땡큐했는지 ㅋㅋ 

 

출처 : 여자 혼자가는 여행
글쓴이 : halfmoonwish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