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요르단)#

[스크랩] [시리아] 기억의 rewind, 내게 침을 뱉어라-_- , 돼지 고환 시식

flower1004 2010. 2. 19. 16:51

 

마룰라, 그리고 다마스커스

 

 

Ghazal 호텔의 5인실 도미토리에서, 간밤에 미국인 룸메이트와 늘 그렇듯 얘기를 나눴다.

 

- 오늘 어디 다녀왔어요?

- '마룰라'라고, 다마스커스 근교의 아담한 성지야.

- 좋아요?  (내심 심드렁~)

- 책자를 보여줄께.  (햐, 그 비싼 책자까지 사고... 나와는 대비되는 열정맨이구나 >_<)

 

마침 다마스커스 시내 외에 근교의 유적지를 한 두 곳 가볼까 생각중이었다.

원형극장터가 있는 보스라(Bosra)를 흔히들 추천하지만, 뭔가 색다른 곳에 가보고도 싶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당시에 구사하던 언어가 아직도 쓰이는 마을이라고 읽은 걸로 기억한다.

별 망설임 없이 그 '마룰라' 란 곳에 내일 아침 가 보기로 했다.

 

- 젊었을 때 그렇게 여행하는 게 좋은 것 같아, 나이들고 보니. :-)

 

내 여행계획을 들은 지적이고 선한 인상의 아저씨가 회상하듯 말한다.

어렵사리 한 달 일정으로 시리아와 요르단, 터키 등을 돌아본다는데, 너무 빠듯하다나.

 

- 가능할런지 모르겠지만 아저씨 나이때도 또 이렇게 장기여행을 하고 싶은데요...

  나이들면 역시 훨씬 힘드려나요... 아무래도 체력도 딸리고 뭘 봐도 감흥이 덜할 테고...? ㅠ_ㅠ

 

- 그보다는... 아무래도 책임도 많아지고 저지를 수 있는 용기도 줄어드니까... -

 

사실 그 대답이 두려워서 괜시리 체력이니, 감흥이니를 들먹인 건데, 딩ㅡ 먹었다.

 

  역시 맞도다. 

사람은 모름지기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현실은 진흙탕이라도 미래에는 진구렁을 벗어나길 염원하지만...

내 경험으로도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기회와 용기와 가능성은 멀~리, 저 멀~리 사라지는 것 같다.

대신에 그 공허한 자리를 자기합리화와 어설픈 위안이 성큼성큼 채우게 되겠지...

 

  영원한 딜레마에 난제-.

1) Now or Never이냐,

2) Always next time, second chance이냐...

거기에 더해 우선순위, 소탐대실, 기회비용, 매몰비용까지, 모든 개념을 배합해 잘 판단해야 한다.  But-

이런 경제학적 효용도 개념은 머리로는 빠득, 이해할 것 같아도, 실천에 옮기기는 너무 잔인하고 무정하다고... ㅠ_ㅠ 

 


 

마룰라로 가는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가며, 다마스커스 시내를 또다시 활보한다.

스쳐가는 다마스커스의 아침풍경들.

 

 

가끔, 아니, 종종 내가 어항속에 갇힌 이 금붕어들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단지 어항 밖에서 쳐다보는 눈초리만 의식하지 못할 뿐.

 

 

통신에 쓰려는 비둘기는 아니겠지?

시리아도 이집트처럼 비둘기 고기를 먹나? -_- 은근 비둘기가 많았다.

어렸을 땐 비둘기를 워낙 좋아해 이야기도 지어다 붙이고 했는데, 닭둘기에다 오염의 근원으로 척결 1순위 혐오종이 될 줄은 몰랐지.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 아닐까, 결국은-

 

 

 구두닦이 청년들.

 

 

 

중동의 유명한 sweets.

나는 그 지나치게 단 맛이 별로라 즐기진 않았다. 

나니아 연대기의 turkish delight가 떠오르는구나 ㅎㅎ

 


 마룰라

 

한 시간여의 가뿐한 드라이브. 드디어 마룰라에 닿았다.

이렇게 side trip, 여행 안의 작은 여행이 좋다. 부담없이 마냥 소풍떠나는 기분이다.

 

 

사탄을 퇴치하는 St. George(?)

성화는 물론 각국의 동전 뒷면에도 곧잘 등장하는 테마다.

크리스챠니즘과 아랍어의 조합이 재미있다.

결국 이슬람이나 크리스챤이나 원류는 같으니...

 

 

동판화 부조와 벨.

아직도 온기가 감도는 듯한 자연의 돌을 주조로 한 건축과 조화를 이룬다.

 

 

타클라 성녀(?)를 모신 수녀원.

수녀원을 끼고 굽이굽이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탁 트인 동굴사원과 고목나무, 넓은 평지가 나온다.

족히 몇 천년은 됐다고 한 듯 한데...

 

저 시퍼런 푸른색은 심히 생뚱맞다. -_-

 

 

파란색 교복.

블루가 테마인가.

 

 

터키 카파도키아의 우치히사르나 동부의 마르딘, 이란의 마술레, 중국의 룽셩 등을 떠올리게 하는 진기한 마을이다.

층층이 쌓아올린 모양이 꿀과 모래를 버무려 빚어만든 케이크 같다.

주변의 흙을 이용해 지어서 그럴까, 풍화된 탓일까,

주위풍경에 그대로 녹아들 듯한 모래빛이 평화로우면서도 단조롭다.

솔직히... 보기엔 운치있어도 여기서 살라면 한 달을 못 버틸 것 같아... ㅠ_ㅠ

 

 

정말 예수님께서 살아생전 구사하셨던 언어를 말할까, 이 곳 사람들이...??

어째 의구심이 든다. ㅡ_ㅡ  언어학자도, 인류학자도 아니니 알 턱이 있나.

 

 

이슬람이 인구 다수를 차지하는 시리아지만, 마룰라 마을의 절벽에 세워진 성모상은 의미심장하다.

근데 떨어지는 거 아닌가 괜히 불안불안... @_@

 

 

알아싸드 대통령 부친(전 대통령)의 초상이 여기엔 그래피티처럼 그려져 있다.

이 분이 그렇게도 존경을 받는 분인가.

주마간산 식으로 넘겨짚으며 넘어가려니 답답하다...

 


 

다마스커스로 돌아오다-

 

 가뿐하게 마룰라를 둘러보고 다마스커스로 돌아왔다.

할 것도 딱히 없어 다시금 우마야드 모스크 주변을 거닐고, 사는 것도 없이 시장(중동에서 제일 오래 된 시장이라는)을 배회한다.

멀~리 모스크 저편 너머 다마스커스 올드쿼터(구시자지)를 따라 거닐려니, 잔디밭에서 소풍을 즐기던 현지인들과 어린아이들이 일제히 인사를 건넨다. 몇몇은 자기네들의 휴식에 참여키시려고 내게 손짓하며 적극적이다.

 이럴 때 나의 반응은 대체로 거기서 거기다.

반갑게 화답하며 어정쩡하게 헤헤거리다, 그냥 내 갈 길 가는...

초대를 거절하긴 뭐하고 그렇다고 딱히 끌리지는 않아서, 수줍은 척 어물쩡거리며 뒤로 내빼는 스타일-.

마음만 먹으면 여느 여행자들처럼 비위좋고 넉살좋게 현지인들 모임에 참여해 하하호호- 할 수 있겠지만, 이게 지금으로선 나의 스타일 같다. (체념-)

적극적으로 상대 쪽에서 접근을 해 오면 어쩔 수 없지만, 웬만해선 말도 안 통하는데 얼렁뚱땅 붙어앉아 관심의 중심에 놓이고 싶진 않다.

 수줍고 어색하고 불편하고... 그래, 피곤하다.

외국인에 대한 호의와 친절, 호기심은 고맙지만 딱 거기까지-.

그 이상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것도 회의적이고 가끔은 소심한 내 성격 탓이겠지.

 

 

멀리서보고 언뜻 모스크 미나렛인 줄 알았으나, 꼭대기의 십자가  :)

 

 

이슬람의 영웅적 존재, 살라딘.

이집트와 시리아, 요르단, 사우디 일부, 이집트, 리비아 일부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의 술탄이었으며, 십자군이 세워 놓은 예루살렘 왕국을 함락시킨 후에 이에 놀란 서방측에서 파견한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와 맞서 자웅을 겨루고 평화협정을 맺은 장본인이다. 한국에서는 게임 이름이기도 하다나...

(-1년 반 동안의 항해. http://www.cyworld.com/ysh1118/3101133에서 허락없이-_- 발췌)

 

 

 

차이하네.

중동의 거리를 거닐다 무심코 야외 테라스를 올려보노라면,

찻집에 앉아 무슨 얘기를 그렇게도 진지하게 하고 있을까, 새삼 궁금증이 피어오른다.

발 아래 펼쳐지는 도시의 소란과 소요를 잠시 접어두고,

차이 한 잔과 설탕 몇 조각으로 맛볼 수 있는 소박한 럭셔리... :) 

 

 

오래되고 상당한 부피의 앤티크 카메라를 바닥에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사내.

오후의 무료함.

앤틱 카메라는 그래도 가져보고 싶다. 디지털과는 다른 아날로그의 매력...

 

 

우마야드 모스크 주변 커다란 수크에 갔다 불쾌한 일을 겪었다.

그냥 하염없이 걷고 있는데, 지나가던 누군가가 볼에 침을 뱉었다.

기분 더럽다. 워낙 붐비는 곳이라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아직 어린 소년이었던 것 같다.

휴지로 닦으며 속으로 ㅆㅂ거리면서도, 절묘한 타이밍과 순발력에 감탄한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다.

티벳 라싸에서 뒷골목을 거닐 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티벳계 소년에게 똑같은 일을 당한 적이 있다.

물론 서양에서 먹다 던진 아이스크림이나 날계란 세례를 받은 경우는 논외로 치고 말이다.

라싸에서 그런 일을 당했을 때는 너무 충격받고 분해서 그 자리에 못 박힌 마냥 서서 멍~하니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미지의 적에게 눈 한 번 흘겨주고 쓱~ 타액을 닦고는 그냥 내 갈 길을 간다.

 

티벳에서는 워낙 심난해서 이런저런 이유를 파악하고, 규명하는 데 바빴다.

 

- 왜 내게 침을 뱉었지?

- 그냥 원래 질이 안 좋은 애였나? 내가 운 나쁘게 걸린 건가?

- 내가 인상이 안 좋나??? ㅠ_ㅠ

- 중국계로 보여서 티벳 소년이 제 딴엔 복수를 한 건가? (그때는 유명한 티벳 봉기 전이었으나)

 

그러나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외국인, 이방인이란 입장은 섣불리 확대해석을 일삼긴 애매하고 위험한 위치에 있다. 

어디엘 가나 쓰레기는 꼭 있고, 질 나쁜 아이들은 반드시 있는 법.

확대해석하지 말자. 섣불리 모든 사람들을 같은 급으로 매도하지 말자. 

 

 

꿈을 파는 사내- 그의 이름은 복권 판매상.

거리에 간이 가판대를 펼여놓고 복권을 판매하는 상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물론 로또같은 개념은 아니겠으나-

로또의 꿈은 잊은지 오래... ㅋㅋ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쉬쉬 케밥을 만드는 상인.

다마스커스의 케밥과 치킨 슈와르마, 샐러드는 꽤 먹을 만 했다. 가격도 저렴하고 :)

(그래도 지존은 역시 우루무치... @_@;;)

 

 

오홋, 저 탐스러운 그릴드 토마토와 치킨 케밥...  빙긋 ;)

화려한 접시에 담긴 시큼달콤한 샐러드 소스맛이 독특하다.

 

 

다마스커스에서 묵은 가잘 호텔, 그리고 알라비, 알하라민 등이 위치한 골목길은 참 따스한 느낌이다.

기념품 상점과 여행자 편의시설로 잔뜩 메워진 상업적인 지구가 아니라, 여느 현지인들의 호흡이 함께 하는 삶의 터전이다.

카오산이나 네팔의 타멜, 델리의 빠하르간지와는 자연히 분위기가 다르다.

알라비와 알하라민 호텔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으면, 매일마다 신선하고 알록달록한 야채를 파는 가게가 나온다.

밤색말 한 필이 야채가 가득 담긴 수레를 끌고, 무료한 듯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낮 시간을 지키고 서 있다.

조촐한 인터넷 까페 앞으로는 코피아와 시샤 등을 파는 아담한 가게가 있고, 그 앞에서 여행자와 현지인이고 아랑곳없이 시샤를 피우며 담소를 나눈다. 메인로드가 아닌 골목길-. 일상의 서사가 어린 좁은 골목들과 오래된 상점들- 그래서 더욱 다마스커스가 특별했는지도-.

 

 

칼(Karl)과 함께. 격식있는(ㅎ) 레스토랑을 찾아서 :)

 

 

도미토리에서 만난 칼은 전형적인 의미에서는 좀 거리가 있지만 런더너(Londoner ㅋ)다.

박물관에서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약간은 늦깎이 학부생인데,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어울리는 동안 무척 유쾌했다.

약간 돈을 투자해 시내에 격식있어 보이는 레스토랑을 함께 찾았다.

 

- 한 나라와 수도를 조금이라도 잘 이해하려면, 시장통이나 말도 안 통하는 노천식당만 훑어서야 한계가 있지 않겠어?

 업클래스는 아니어도 미들클래스 분위기라도 눈팅해 보자고~ ^-^

 

...올리브를 한 가득 내온 건 좋은데, 메인요리 외에 테이블을 가득 채운 건 먹을 것도 없는 피클들 천지다. ㅡ_ㅡ;;

보시라. 은근히 시고 짜서 저 피클들 많이는 못 먹는다.

근데 격식있는-_- 식당이었지만 또다시 종업원과 작은 오해와 충돌이 생겼다.

메뉴판과 약간 가격이 다른 것이다.

사이드로 나오는 음식과 디저트 등을 가지고 가격이 포함됐네, 안 됐네, 메뉴판 설명과 다르네, 마네 사소한 설전이 오갔다.

느긋하고 예의바른 매니져가 와서 내가 딴에는 태평하게 항의했다.

 

- 이건 부당해요. 그런 예외적인 조항이 있었으면 메뉴판에 공지를 해 놨든가 해야죠.

  그런 줄 알았으면 이렇게 이것저것 시키지 않았을 걸요. ㅡ_ㅡ

 

그런데 칼은 오히려 매니져에게 설설 기는 듯,

내가 보기엔 당연히 부당한 처사를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설득시키려' 진을 뺀다.

아니, 설득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인 이해를 얻어내려' 예의바르게 나긋나긋하게 우리 입장을 설명한다.

그렇게 나가면 매니져에게 씨알이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_-??

 

결국 우리 입장을 최대한 관철시키는 방향으로 적당히 합의를 봤다.

매니져가 물러가고 나서 내가 칼에게 말했다.

 

- 그런 식으로까지 이성적으로 설득하고 합의를 거쳐야 된다고 생각해?

  그렇게 부드럽게 나오면 오히려 우습게 보고 바가지 씌우려 들 걸.

 

- 네 요지는 알지만 난 좀더 외교적인 접근(diplomatic approach)을 시도하려 한 거야.

  누구에게나 상황은 명백하지만 이렇게 나가는 게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적고 간편한 거 같거든.

 

- 나도 처음엔 그런 생각이었는데, 오래 여행하면서 바가지 쓰고 온갖 황당한 경우를 다 겪어보니 어느새 변했어.

  특히 처음부터 우습게 보이면 봉으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 이해는 되지만... 너가 매니져한테 딱 잘라 그렇게 항의하니까 그 사람 표정 안 좋은 거 봤지?

  그 사람 너를 탐탁지 않아했어 (He DIDN'T like you-  이 말이 근데 왜 슬프게 들렸을까 ㅠ_ㅠ).

 

- 바가지 자체가 이성적인 상황이 아닌데 뭣하러 이성적인 접근을 자처하며 에너지를 낭비해? ㅎㅎ

  너가 상황 설명하고 설득하느라고 몇 분은 걸렸는지 알지? ㅎㅎ

 

식사는 즐거웠지만, 칼과의 대화는 오래 전 중국에서 니슨과의 대화를 떠올리게 했다.

3주 일정으로 중동을 여행하는 칼. 이제 영국을 떠난지 일주일도 안 된 쾌활하고 에너지 넘치는 칼.

오래 전, 나와 니슨 사이의 대비를 보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어째 짠하다.

입버릇같은 피곤하다는 말, 친절히 다가오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과 회의, 의구심...

그때는 이렇게 절절하게 그 애의 푸념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말이지...

 

칼과 나는 후식을 위해 아이스크림과 스무디 가게를 쏘다니고,

난 그걸로도 부족해 서민식당에 가 야참으로 황소 고환요리(Bull's testicle -_-)를 시켜 먹었다.

아니아니, 소 고환이 아니고 돼지 고환이었던 것 같다... ㅡ_ㅡ??

잘게 채 썰어 양념한 소 고환요리는 중국에서 먹어봤는데, 여기선 삶아서 큼지막하게 썰어 한 접시 가득 나온다.

나름 맛있게 집어먹는 나를 주시하고 있던 칼이 특유의 의미심장한 눈빛을 던지며 한 마디 한다.

 

- 맛있니?? -_-?

- 좀 느끼하긴 하지만... 그냥 충만한 기분이야. ㅎㅎㅎ

 

지금도 헷갈린다.

분명 돼지 고환이었던 것 같다. 소 고환이 아니고-.

 

 

 

출처 : 여자 혼자가는 여행
글쓴이 : halfmoonwis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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