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넘치는 꽉 찬 하루 @ Amman
이집트에서 너무 쳐져 있어서 시간압박에 시달리게 생겼다.
덕분에 사람들이 극찬을 마지 않는 요르단 남부의 '와디럼' 사막도 빼놓고(ㅠ_ㅠ) 곧장 페트라에서 수도 암만(Amman)으로 향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이집트에서 시와, 바하리야 사막도 빼먹었는데 요르단의 와디럼까지...
어쩌면 난 귀차니즘에다 많이 지쳐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요르단은 사실 페트라를 제외하면, 시리아와 터키, 이란 등 본격적인 아랍 월드로 가는 교두보 정도였다.
수도 암만은 더했다. 볼 것 없고, 이스라엘 & 시리아로 빠지기 위한 지나가는 포인트에 불과.
그렇지만 암만에서 하루 남짓 머무는 동안 제대로 재충전을 할 수 있어 두고두고 유쾌하게 기억에 남는다.
덕분에 차후 이스라엘, 시리아 여행에도 더 충실할 수 있었고, 그 반증으로, 암만에서 찍은 내 사진들은 그나마-_- 사람꼴 같다ㅎㅎ
확실히 여유가 있었나 보다;;;
전면이 투명유리인 샌드위치 가게에서.
저기 뒷편의 파란 테라스 근처가 내가 묵었던 호텔이다.
(3,000원/박_ 양호했음)
하염없이 테라스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차를 마시고 수다떠는 요르단 시민들.
차이하네(찻집)를 통째로 집에 구현한 셈이다.
현대적인 암만의 모습.
암만은 저렇게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가며 고르지 않은 지대위에 건물들이 세워져 있다.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자연발생적인 도시의 모습 ㅎㅎ
여긴 겨울에 눈 오고 얼 걱정도 없으니, 뭐 ^-^
독 안에 든 쥐, 아니, 고양이 코앞의 새
(깃털에 저건 끙아인가, 설마?? ㅡ_ㅡ;;)
암만에서 후세인 다리를 건너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갈 예정이라,
리서치도 하고 pc방에도 들렀다, 근처 은행에 가서 이스라엘 쉬켈을 환전해 놓았다.
내가 묵은 호텔의 젊은 주인은 한국, 일본인 여행자에게 익숙해 있다.
마침 1인실을 쓰는 레바논 아저씨와 혼자 여행하는 일본 여성, 나 말고 호텔이 비어있다.
호텔 주인에게 Middle East 론리 플래닛도 빌려 메모를 하고, 질문도 퍼부어대며(내가 늘 그렇지 ㅠ_ㅠ),
호텔 주인에게 여지를 줄-_-? 소지를 본의 아니게 남긴다.
내 방 세면대가 어떻다, 테라스 문은 어떻게 해 놓는 게 좋다, 이런저런 핑계로 체크인한 내 방에 들어와 참견하더니,
종국엔 어디선가 새 한 마리를 잡아와 건네준다. @0@;;
- 어디서 새를 잡았어요?! @0@;;-
세상에, 자그마하고 가냘픈 새가 살짜기 손아귀에 잡으니 얼마나 떠는지,
그 연약한 심장이 고동치는 게 손에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게 너무나도 애처롭다.
- 날려줘야죠. 고양이 액자 앞에서 사진만 찍고 나서 ㅎㅎ-
얄궂은 주인과 나는 동의하고 새를 날려준다.
혼자 다니는 여자 숙박객에게 은근히 여지를 주고 수작을 거는 호텔 직원들, 중동이나 인도 쪽에선 식상한 타입이지만,
내 쪽에서 반응을 안 보이면 웬만해선 귀찮게 하지 않는다.
내가 매력이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ㅎㅎ 물론 예외도 있긴 한가 보다.
성추행을 연상케할 정도로 지긋지긋하게 따라붙는 스탭도 있다고 하고,
예전에 언급했다시피 스탭과 숙박객간에 러브모드가 탄생하기도 한다.
어쨌든 암만에서의 호텔 매니져는 좀 수다스럽고 오버하긴 했으나 불쾌하진 않았다.
동행이 없어 외로울 땐 차라리 무뚝뚝한 호텔 스탭보단 수다스런 타입이 낫다.
Amman City
암만 시내구경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합리적인 가격에 맛좋은 바게뜨 샌드위치와 아이스크림, 과일쥬스 등으로 페트라에서 삶은 감자에 질려있던 혀와 위를 달랜다. 날씨도 화창해 마치 낯선 도시를 탐험하는 어린 아이가 된 기분이다.
알라딘의 요술 램프?? :)
무슬림 여성들의 머리수건
기념품 가게. 엽서를 대량 구입했다.
씨네마. 아마 6, 70년대 동네 극장이 이렇지 않았을까나.
무슬림 국가라 검열이 심한 건가, 중동 계열 영화들을 집중 상영하는 극장인가,
낯익은 최신 할리우드 영화 포스터들은 별로 안 보인다.
분위기 볼 겸 자막이 지원되면 들어가 보기라도 할 텐데 말이지.
이건 미국이나 유럽 영화 같은데?
성룡. 씨티헌터 이건 언제 적 영화지? 80년대 홍콩영화의 전성기 때 포스터 삘 ㅡ_ㅡ
그래도 재키 찬 얼굴 보니 반갑다.
훌쩍하니 야자수가 늘어진 메인 도로를 따라 걷는다.
앞에 걸어가시는 체크무늬 코피아를 쓴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왠지 안쓰러워 보인다.
(그렇다. 많이 감성적이 돼 가고 있다-)
로마시대 원형 극장 터.
저 위에 올라가서 암만 시내 전경을 볼 수 있을 테지만 가뿐히 포기. 힘 빠지게시리...
로마 극장 터에 앉아있다, 가까이에 앉아있던 여학생 둘이 말을 걸어왔다.
영어는 심하게 안 되는 고로-_- 제스쳐와 필담을 이용해 아항, 오호, 잉?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다,
(거의 절대 연락 안 할) 이메일 주소와 핸드폰 번호 등을 노트에 교환하고, 사진도 찍고,
마침 지나가던 걸어다니는 차(茶) 판매 아저씨 -민트잎사귀를 윗주머니에 넣고 찻주전자를 대롱대롱 손에 들고 ^-^-
에게서 공짜로 차도 얻어먹고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이런... 그러나 이름조차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영롱하니까 -_-
꽃집.
아랍어가 이렇게 유려하고 아름답고 어필할 것 같았으면 배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그러나 해야 할 게 너무나 많다...
(게다가 아랍어는 중국어, 스페인어 등과는 비교할 수 없이 '어려운' 언어에 속한다고 한다)
후세인 모스크(?)
어렸을 때 걸프전 이후로, 사담 후세인 이름이 '악의 축' 개념으로 오르락내리락 했을 땐,
'후세인'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절로 연상됐는데...
중동에 와서 보니 후세인이 얼마나 유래깊고 흔하고 존경받을 만한(?) 명칭인지 알게 된다.
마침 호텔 주변에 시설 좋고 연결도 빠른 pc방이 있어 두, 세 시간은 붙어앉아 밀린 메일도 보내고, 리서치도 좀 하고 부산을 떨고 왔다.
인도에서 만난 B.S.에게 메일이 와 있다. 말레이시아계 화교인 B는, 이스라엘로 넘어간다는 내 말에 질투충만, 분기탱천한 상태.
- 난 중국계라 무슬림도 아닌데 말레이시아 국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스라엘에 입국조차 할 수 없어 ㅠ_ㅠ
이런 법이 어디 있지?? -
대한민국 국민이 은근 혜택도 많다. 여행중에 그 반대의 상황도 많이 접하긴 하지만- ㅎㅎ
아이팟엔 없는 음악도 듣는다. 장소함의 '몽리화(夢里花(?))'.
아랍에서 중국음악 듣는 건 무슨 취향인지 모르겠다. 중국을 헤맬 동안 그 노력을 기울였어 봐 ㅡ_ㅡ
이 때만큼 중국문화와 중국에 버닝모드가 유지됐으면 지금 중국어는 따놓은 당상일 텐데 안타깝다, 으... ㅠ_ㅠ
돌아가는 길에 다시 찾은, 어둠이 내린 로마 원형극장 터.
핸드폰 가게 앞에서 여름밤의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
내게 차도 건네주고 멀리서 찾아온 이국의 처자에게 인정도 많다.
Back to the Hotel... :)
날이 저물어 호텔로 돌아온다.
마침 맞은편 1인실에 레바논 아저씨가 있어 얘기를 나누다가 테라스 건너편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로 한다.
레바논 아저씨 @ 옆방 테라스.
어두워가는 암만의 야경이 운치있다. 지금 나는 마냥 스쳐가는 관광객은 아닌 것 같다.
이 곳 작은 골목들과 서민적인 아파트 테라스들에 귀를 기울이면, 숨은 얘기들을 조곤조곤 캐치해 낼 수 있을 것 같아...
일찌감치 음주를 시작해 진작에 뻗어버린 레바논 아저씨는 방에다 고이 재워놓고,
마침 돌아온 1인실의 일본 여성 여행객과 수다스런 호텔 주인과 함께 조촐한 보드카 파티를 벌였다.
어둠이 내린 창밖으론, 암만 시내의 소음과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경음악을 연주한다.
여름밤의 열기는 시원한 한 줄기 바람에 고이고이 날라간다.
오렌지 쥬스에 얼음조각을 넣어 보드카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도 했다.
근데 몇 가지를 빼곤 다 그렇듯 길 위의 담화일 뿐이다.
평가절하하는 게 아닌, 뻔하디 뻔하고, 새로워도 오래 기억되지 않고, 즐거워도 즐거워서 꿈처럼만 느껴지는...
모두 지나고 난 후에는 말이다.
단지, 뭔가 예민한 소재가 대화의 수면으로 떠올랐는데,
내가 눈치채지 못한 듯 내 옆모습을 뚫어지게 살피는 일본여자애의 눈길에 오기가 생겼다.
근데 그 주제가 뭐였지... ㅡ_ㅡ
가끔은 이상하다. 정말 중요한 포인트는 오히려 기억에서 사라지고,
당시의 정황, 즉각적인 느낌, 분위기, 이런 모호하고 주관적인 것들만 뇌리에 남아있으니까.
암만의 밤... 그 마지막 밤은 이렇게 깊어간다.
그 곳은 겨울에도 여전하려나...??
그 호텔은, 여행객은, 두 소녀와 인정많은 현지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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