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실시간 여행기는 야트막한 격앙과 동시에 생동감으로 숨을 쉰다.
여행중에 종종 눈팅을 하면서 즐겨읽던 블로그가 있는데, 부부동반 여행을 떠났던 커플의 실시간 블로그.
<비행소녀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midoriblue
간간이 묻어나는 종교적인 색채를 제외하면 깊은 사고폭과 총기 & 치기어린 글솜씨, 사진들이 맘에 들어 자주 찾았는데,
오랫동안 잊고 있다 거의 1년만에 방문하니 헉, 그새 파워블로거-(@_@)로 등극하심;;
간접광고는 아니니-_- 관심있는 분들은 심심풀이로 읽어보셔도 좋을 듯. :)
플러스로 진정한 실시간 여행기의 매력을 맛보시려면, 이 곳도 오케이;
<연실낭자의 블로그>
(역시 노트북을 가져갔어야 했나 보다 ㅠ_ㅠ)
이 분 참 징하게도 여행하신다. 1년 여정이 2년이 되고 대체 언제 마칠런지... -ㅂ-;;
시리아에서 터키로-
자, 이제 터키(Turkey).
여타 중동국가들-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이라크 등-에 비해 그나마 친숙하고 아는 것도 많다고 자신했던 국가인데, 막상 터키땅에 발을 디디니 근거없는 자신감이란 생각이 강해진다.
실제 내가 터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뭐가 있지? 언어의 유사성과 고대사의 얽힘, 한국전쟁 파병에 근거한 '형제 국가' 란 오그라드는 인식 외에 말이야. 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와 케밥, 하렘처럼, 죄다 희미한 키워드들 뿐이다.
내 터키여행의 포커스는 동부다. 트로이를 비롯, 그리스, 로마 유적과 레져가 두드러지는 지중해 인근 서부는 경비상 과감히 생략. 꼭 경비때문이 아니라, 분위기 상으로도 이번 여행 컨셉엔 동부가 제격이다. 쿠르드족 근거지로 불안요소가 상존하긴 하지만 당시에 들려오는 이렇다 할 소요사태는 없었고 관광객의 발길도 뜸해서 덜 때묻은 풍광을 접할 수 있다니 더욱 굿! :)
악차칼레에서 국경을 넘은 나는 아브라함의 도시, 첫 기착지 산리 우르파(Sanri Urfa)로 향한다.
※ 터키 동부 루트: 산리우르파 - 디야르바크르 -하산케이프- 마르딘- 반- 도우베야짓
(하란, 넴룻 등은 생략)
산리 우르파(Sanri Urfa)
아브라함의 도시, 우르파.
인류의 아버지이자 예언자로 전해지는 아브라함은 크리스챤, 이슬람, 유대교 모두의 성인이기도 하다. 산리 우르파는 아브라함이 탄생했다고 전해지는 동굴과 그가 화형될 뻔했던 장소가 남아있어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데, 시리아에서 촌구석에서 넘어온 탓인지 기대감 때문인지 첫눈에도 도시의 스케일이 달라보인다. 시리아와 닮은 듯 다른 듯, 활기찬 시장과 거리의 무선통신 광고들은 터키만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우르파엔 고작 반나절 머물렀다. 현재는 자미(모스크)로 꾸며진, 아브라함의 화형지로 향한다.
발락클루 호수. (신성한 물고기의 연못)
아시리아의 왕, 넴룻은 우상숭배에 맞서는 아브라함에게 화형을 언도하지만, 별안간 하느님의 도움으로 불은 물로, 장작더미는 물고기로 변해 아브라함은 생명을 구한다. 그 장소가 바로 이 곳이다. 공원까지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사원순례와 나들이를 겸한 인파들로 늘 북적거린다. 호수의 물고기들은 신성하다 하여 잡거나 먹는 게 금지돼 있는데, 덕분에 걱정거리 없는 이 물고기들은 나날이 살이 오르고 있다. 나른한 한 때를 보내다 '디야르바크르' 행 버스에 오른다.
사람도 잡아먹을 기세인 물고기들.
성 위에 나부끼는 터키 국기.
진정 터키에 왔구나. 달과 별.
디야르바크르 (Diyarbakir)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불편한 진실.
쿠르드 族의 근거지인 동(남)부 터키는, 터키의 골칫거리이자 논란지역이다.
쿠르드 족과 쿠르디스탄, 민족주의에 대해선 네이버 사전 발췌.
쿠르디스탄('쿠르드족의 땅'이라는 뜻)이라는 지명은 대체로 자그로스 산맥 및 타우루스 산맥 동쪽 줄기를 포함하는 지역을 일컫는 이름이다. 오랜 옛날부터 이 지역을 본거지로 삼아온 쿠르드족의 민족적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아랍인에게 정복당해 이슬람교로 개종한 뒤 600년 동안 서아시아의 혼란스러운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 기간 동안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부족이나 개인 또는 난폭한 집단으로 활동했다. (중략)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쿠르드족의 민족주의는 다양한 요인들이 혼합되어 일어났는데, 그 예로 영국인들에 의한 사유권 개념의 도입, 인접 국가들에 의한 쿠르드족의 분할정책, 걸프 지역의 이해관계를 둘러싼 영국·미국 등의 영향력 행사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요인들과 그밖의 다른 예로 인해 도시에 사는 소수의 지적인 쿠르드족간에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해졌다. (중략)
터키의 쿠르드족은 특히 터키 정부로부터 냉대를 받았는데, 터키 정부는 쿠르드족을 '산악 터키인'으로 부르거나 쿠르드족의 언어 사용을 불법화(또는 쿠르드어를 터키어의 방언으로 규정)하고, 주요행정도시 내 또는 그 주변에서 쿠르드족의 고유의상을 입는 것을 금하여 쿠르드족의 민족의식을 말살하려 했다. 터키 정부는 동부지역에서 일어난 쿠르드족의 정치운동을 탄압하고 서부 도시지역으로의 이주를 조장하여 고지대에 사는 쿠르드족을 분산시켰다.
음, 글쿤 -_- 유대인 못지 않게 어중간하게 끼어 핍박받아온 쿠르디쉬(쿠르드족).
특유의 계산성과 이재에 밝은 성향으로 어떻게든 자기의 세를 확장해 온 유대인과는 달리, 산간 출신의 유목민 전통이 강한 쿠르디쉬들은 약삭빠르게 대응하지 못했고 오늘날까지 그 입지가 불안정하다. 2차대전 특수 역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케말 파샤에 의한 공화국 건립에 쿠르디쉬는 어찌어찌 묻혀가고 만다. 터키 정부의 탄압에 대항해 PKK(쿠르드 노동당)란 사회주의계 테러단체까지 조직해 범쿠르드계의 독립을 위해 투쟁중인데, 최근까지도 디야르바르크와 반 등지에선 이들의 테러가 빈발했단다.
그래도 현재는 괜찮잖아 -_-?
듣고 나니 더 끌린다. 자~ 쿠르드 족의 근거지, 동부로 가자~
색감의 조화가 참 산뜻했었는데 지금 보니 -_-
디야르바크르 시의 메인 모스크. 이름은 -_-
날이 벌써 어두워진다.
고양이 덕에 벽면의 세밀한 부조에 눈길이 닿는다.
서녘하늘은 또 물드는구나.
고달픈 여행자의 하루도 간다. (터키 땅덩어리가 땅덩어리다 보니 버스에서 보낸 시간만 해도 -ㅅ-)
우르파에서 밤늦게 디야르바크르 인근(시내까지는 또 시내버스를 타야 한다)에 도착한 나는, 당연히 시내 중심의 오토갈(버스 터미널)까지 버스가 대령해 줄 줄 알았기에 마음놓고 있다 당황했다. 이런 허허벌판에 세워주면 어떡하라고 ㅡ_ㅡ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또 겉만 뻔지르르한 오토갈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마침 음울한 인상의 젊은 여성-_-이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영어는 못 했지만 그녀는 오직 손가락 하나만으로, 카리스마 넘치게 모든 의사소통을 해낸다.
검지를 도도하게 위로 살짝, 올리면 나는 무거운 짐을 들고 따라나선다. (물론 도와주기도 했다)
검지를 살짝 아래로 향하면 나는 짐을 내려놓는다.
허허벌판에서 멍때리고 서 있다, 저기서 어둠을 밝히며 버스가 오면 역시 손가락 하나로 세운다.
내가 차비로 얼마를 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하자 손가락을 들어올리며 '1'을 뜻한다. (1 YTL)
차내 방송도 없고 혹시나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칠까 봐, 미리 호텔 이름이 적힌 주소를 여자에게 건넸다.
아무리 시내를 활주해도 내리란 언질이 없기에 몇번이나 눈으로 무언의 질문을 건네니,
역시 검지 하나를 두어번 흔들며 단호하게 부정과 금지를 표한다.
결국 그녀 덕분에 무사히 마음에 뒀던 호텔을 찾아갈 수 있었다.
예쁘장한 얼굴인데 왜그리 창백한지-. 오토갈에서부터 그녀는 안 보이는 틈을 타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내가 흠칫 놀라 틈을 봐서 몰래 엿보니, 젖은 눈으로 차창에 머리를 기대곤 어둠이 깔리는 저 멀리를 공허히 응시하고 있다.
스쳐지나가는 사이임에도, 고맙고 안쓰러워 당황스럽다.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더욱 안타깝다. 너무 좌절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이 아치형 기둥을 세 번 통과하면서 소원을 빌라고 했던가.
풉- 이럴 때만이라도 어린 아이인 척 하고 믿어주자.
운치있는 야외 레스토랑?
고대 실크로드의 캐러밴사리(사막을 횡단하는 상인들을 위한 오아시스 숙소)를 개조한 듯한 쇼핑구역.
2층 발코니에 널린 화려한 카펫은 인도에서 역수입한 건가? -_-
좁은 골목길 안쪽에 자리한, 인상좋은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호텔은 썰렁하기 짝이 없다.
관광객의 발길이 뜸한데다 비수기인 걸 감안하면 이해도 가지만 내가 유일한 외국인 숙박객일 줄은 몰랐다.
흐릿한 백열등이 천장에 매달려있는 창고같은 도미토리를 보여주신다. 늦은 밤이라 그런지, 혼자 있으려니 분위기가 으슥하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라 골목에서 케밥과 에크멕으로 주린 배를 채운다.
케밥굽는 매캐한 연기와 스산한 간이 노천 테이블들은 중국 신장의 여름밤을 떠올린다.
호텔 별동(이라곤 하지만 말 그대로 창고)에 딸린 샤워실에서 샤워를 한다.
와... 온갖 황당한 샤워실에서 샤워를 해 봤지만, 중국 시닝의 엽기 샤워실 이후로 참 인상적인 경험를 해 본다.
흐릿한 불에다, 보일러실에서 샤워를 하는 건지 광에서 샤워를 하는 건지, 낡아빠진 철문은 구멍이 숭숭 뚫린듯해 신경쓰이고...
그래도 뜨거운 물은 콸콸 잘도 나오고,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 보겠어 ㅎㅎ
이틀만에 샤워를 하니 살 것 같다.
아직 잠은 안 오고, 리셉션의 할아버지에게 가 게스트북을 부탁해 빌려 읽는다.
홀로 어두운 침대에 걸터앉아, 낡아빠진 게스트북과 다양한 언어와 필체로 씌인 기록들을 읽다보니 코끝이 시큰하다.
한국손님들도 종종 다녀가는지 몇 달 전 날짜로, 한국어 기록들도 눈에 띈다.
배가 고파 비상식량으로 쟁여놓은-_- 통조림과 에크멕을 꺼내 허겁지겁 먹으며,
게스트북 앞에 놓고 웃다가, 슬퍼하다가, 진지해지다 잠이 든다.
디야르바크르 성벽.
가이드북과 호텔 방명록에서 별로 유쾌하지 않은 얘기를 들은 탓에, 돌아오는 중에 날이 어두워지자 걸음을 서두른다.
시원하게 뻗은 직진도로. 광활한 대지.
야외 차이하네(찻집)의 디야르바크르 주민들의 수다를 들으면서, 울타리에 쳐진 철조망에 매달려 아래를 바라본다.
저 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싶다, 여행 중에도 여행이 그립다는 건 웬 말일까...
디야르바크르는 도시를 넓게 두른 거무튀튀한 디야르바크르 성벽으로 유명하다.
게스트북에 의하면 성벽을 따라걷는 느긋한 산책을 추천하는데, 할 일이 있어 그만 아웃.
가이드북이나 게스트북이나, 디야르바크르의 일부 '심술궂은 아이들' 을 주의하라고 권고한다.
얼렁뚱땅 달라붙어 성추행을 시도하거나 거친 욕설을 내뱉는데, 그 말을 들어서인지 천진한 눈망울을 굴리며 '하이~' 를 날리는 어린아이들을 보고도 제풀에 찔끔-_-해 별로 상대하고 싶지가 않았다. 심술궂은 아이들이 설마 디야르바크르에만 두드러지는 건가? 그렇다면 왜일까. 쿠르드족의 정체성이나 빈곤지수와 연관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정녕 심술궂은 아이들의 지존은 시나이 반도와 티벳 라싸에서였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지만, 시나이 산 아랫마을에서 성추행을 감행하고 돌을 던진 망할 자식들과 라싸에서 내게 침을 뱉은 짜증대박 자식은 지금도 치가 떨린다 -_-
사춘기 초입의 아이들은 역시 가장 예쁨직하면서도 날카로운 존재 같아...
디야르바크르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서 그런가, 얄미운 아이들은 만나지 못했다.
원래 디야르바크르에 온 이유는, 이를 베이스캠프삼아 주변의 '하산케이프', 그리고 '마르딘'을 다녀오기 위한 것.
하지만 부정적인 선입관이 무색하게 이틀간 여유있게 둘러보고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도시였다.
특히 저렴하고 인심좋은 식당들-!!
불과 3YTL에 꼬챙이 케밥 두 개만 시키면, 에크멕과 샐러드, 피클과 차가 무한 리필...
덕분에 터키 초입부터 그간 중동에서의 케밥쇼크를 벗어나, 여유있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인심좋은 주방장과 웨이터들, 그립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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