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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터키 동부] 도우베야짓_ 못말리는 청년들, 찌푸린 날씨, 그리고 하맘(Turkish Bath)

flower1004 2010. 2. 1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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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기는 현장성과 생동감이 생명인데, 기억이 상당부분 흐려진 지금 그를 살리기가 쉽지 않다.

당시의 감정, 날것의 설렘등을 고스란히 살려내기가 쉽지 않다. '순간을 포착'하는 게 중요하단 걸 실감한다.

때늦은 회고는 자칫 질리기 쉽고, 컨디션과 주위상황에도 곧잘 좌지우지된다.

시간은 추억을 제멋대로 구부리며 왜곡시키고, 타이밍을 잃은 감상은 호소력을 잃는다.

어서 인도와 이집트 등, 실시간 기록이 충실한 지역들을 포스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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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했었지. 그런데 역시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지도 모르겠다.

 동부터키 지역은 일기를 꼬박꼬박 써와서 그대로 옮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순간'을 잡아낸 당시 기록조차 지금 읽어보니 허접하긴 매한가지.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시시콜콜한 넋두리를 늘어놔서 스스로도 하품이 나온다. -_-  요새는 여행기에 무얼 써야할지 멍~. 뻔한 서사적 나열에 포인트나 임팩트도 없는 주저리만 늘어놓는 것 같아 지루해진다. 특별한 에피소드는 드물고, 정말 두드러진 에피소드들은 공유가 꺼려지는 아이러니.

대체 내 스타일은 뭘까. 폴 써루(유라시아 횡단기 저자)식의 장광설은 피곤하고, 말랑말랑한 감성or명랑기는 손발이 오그라든다. 좀더 내공을 쌓으면 이런 고민없이 자연스레 손이 움직이려나? 그 날을 바라며...

 

 

- 도우베야짓 일기에서-

 

사루한(Saruhan) 호텔 @도우베야짓.

- 메인로드가 내다보이는 꼭대기층 내 방.

 

 

어젯밤, 거의 1년 전의 일기들을 읽으면서, 설령 깊이나 통찰력은 결여된 기록이라도 그 자체로 '추억' 이기에 꼬박꼬박 일기를 쓰겠다고 다짐한 게 기억난다. 그 다짐에 충실하고자 이렇게 피로를 눌러가며 메모를 하고 있으나- 으아... 이란과의 국경도시 '도우베야짓'은 너무나 춥고 스산한 공기로 차 있고, 덕분에 거~대한 창문 옆에서 이불속에 웅크리고 떨며 궁시렁거리고 있다.

 터키 동부는 이른 봄에도 눈이 남아있다고 하고, 반(Van)에서의 심상지 않은 날씨에서부터 예감은 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오늘 같아서는 도우베야짓의 유명한 명소, 이삭 파샤 궁전(Isak Pasha) 도보방문은 꿈도 못 꾸겠다. 날씨 때문에 애초 계획이 자꾸 미뤄지다 보니 부담스럽다. 밀린 일기나 정리해야 되려나.

 

 

이삭 파샤 궁전에서 바라본 도우베야짓 동네

 

 

도우베야짓 주 도로(메인로드).

날씨가 흐릿하니 동네까지 덩달아 황량해 보인다.

녹색, 파란색, 노란색의 알록달록한 건물이 막강 게스트북을 자랑하는 사루한 호텔.

 

 

 거의 항상 최저가 싸구려 호텔에 묵으며 나름 절약한다고 스스로 위안을 하는데, 오늘은 괜히 싱숭생숭하다.

창문 틈으로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지금 방도 좀 그렇고, 무엇보다 '낡은 호텔' 의 '순간 온수기'가 마음에 걸린다. 다음 오불생활자 까페에서 하필 엄한 글을 읽고 나서는 -태국에서 순간 온수기로 샤워하다 감전사한 한국 여행객-, 샤워는 해야 하는데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결국, 수십번을 망설이다 안절부절, 광속으로 공포의 샤워를 끝마친다. 전기를 이용한 순간온수기를 갖춘 호텔이 대세일 텐데 심난해 죽겠다. 아...

 

막강 게스트북을 기대하고 사루한 호텔에 체크인했는데, 정작 게스트북은 실종 상태.

그새 주인이 바뀌었단다. 한국인 여행자들 사이에 꽤 유명하다는, 사루한 호텔의 '에르칸(Erkan)'이란 청년도 아울러 보이지 않는다.

동양인 여행자는 커녕 영어가 통하는 사람조차 거의 만나지 못했기에, 동네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며 사루한 호텔에 곧잘 드나드는 아흐멧(Ahmet)의 유창한 영어에 감사하며 저녁나절을 함께 보냈다. 터키에서 이란으로 국경넘기, 호텔과 하맘(Hamam- 터키식 사우나) 정보도 알려주고 저녁식사 때 말동무도 해 주는 유쾌한 쿠르드 청년이다.

(근데 진짜 20대 중반 맞아? +10은 해야 하는 거 아냐? -_-)

 

 

아흐멧. 친절하긴 했지만 누가 당신을 그 나이로 보겠냐공 -_-

40대까지 커버 가능할 미들이스턴 페이스 ㅠ_ㅠ

 

 

미리 이삭 파샤 궁전은 투어 대신 개별적으로 간다고 말은 해 놓았는데, 아흐멧은 자기 여행사 상품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하는 기색은 없고, 오히려 덜컥, 동행해도 좋냐고 묻는다.

 

- 서로를 더 잘 알 수 있게요(so we can get to know each other better)  :-)

 

엥? 그다지... -_-

신사적인 사람같고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 별 경계할 것도 없었던 boyfriend- girlfriend- availability 발언 이후로 이상하게 과잉반응하게 된달까. 무슨 특별한 발언을 한 것도 아닌데...

 그러고 보니 여기는 터키지. 그래, 중동이야. 게다가 여행사 직원. 이 사람도 뻔한 건가.

현지 여행/숙박업 종사자들과 다소 fun에 초점을 둔 relationship을 갖는 일부 한국인/일본인 여성 여행객들이 떠오른다.

무슨 get to know better? -_- 며칠간 머무는 동안 get to know한 (여자) 여행자들이 많았나?

 

내일 이삭 파샤 궁전에 가기 전에 자기 사무실로 오라는데 대답은 얼버무렸다. 망설여진다. 

조용한 언덕길을 타박타박, 상념에 잠겨 홀로 걸어올라가는 특권을 포기하긴 싫지만, 솔직히 지치기도 하고 내 사진을 찍어줄 사람도 궁하다. 사진 공포증이니, 외모와 옷차림새가 어쩌니, 포즈가 어설프니 해도, 내가 부재된 풍경사진들만 디립다 찍는 것도 지겹다. 게다가... 이삭 파샤 가는 길의 캉갈(양치기 개)이 무지하게 공격적이라잖아...? ㄷㄷㄷ

 

 

맞은편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같이 한 로저. 사루한 호텔의 새 주인.

영어교사가 꿈이라고 했나.

얘네들은 첫인상은 괜찮다가도, 왜 '한국인 걸프렌드' 를 갖고 싶다고 해 산통 다 깨는지...

도대체가 진정성이 안 느껴진다. 집적대는 게 트레이드마크.

 

결국, 지금은 여행객이 전멸 상태지만, 조만간 한국의 아리따운 여성들이 도우베야짓에 들이닥칠 거라고 말을 돌렸다.

 

- 시리아에서 만난 한국인들이 터키 동부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거든요.

 

당시만 해도 호텔에 나 혼자 묵고 있는데 혹시나 불편하게 될까 은근히 말 돌림.

어차피 이삭 파샤만 찍고 나선 이란으로 갈 거지만 날씨가 통 개일 기미가 안 보이니 ㅠ_ㅠ

 

 

아흐멧, 로저, 또다른 아흐멧 @사루한 호텔 로비.

나 혼자 관광객에다 날씨가 추워 안에 쳐박혀 로비에서 인터넷만 하다 보니, 시커먼 남정네들과 히덕거리는 게 일과 ㅠ_ㅠ

 

 

식당 주방장 :^p

 

 

언제야 날씨가 개려나... 뒷켠의 아라랏트 산은 형체조차 보이지 않는다.

호텔방 침대에 쳐박혀서 맞은편 식당을 곁눈질하는데 창문 틈으로 바람이 솔솔~ 결국 담요를 두 개 더 부탁한다. 덜덜덜~

 

 

사루한 호텔의 옆방 2인실.

이 방은 창문도 2중... ㅠ_ㅠ  어차피 빈방 많은데 차라리 나를 이 방 주지 >_<

 

 

에휴, 짐정리를 해 보니, 이러다간 정말 살림 차리겠다.

누구 말마따나 달팽이마냥 배낭을 집 삼아 이동하는 신세로구나.

인터넷 까페에서 죽치다(무려 네 시간, 4YTL!!) 밤 열 시가 다 돼 나온 것도 모자라, 근처 수퍼마켓에서 소세지와 인스턴트 수프를 사 허기를 달래며 돼지꼬리로 수프 끓여먹는 중. -__

 수저 세트, 스테인레스 컵(양치질 컵 겸용인데 너무 작은데다 커버도 없다. 꼭 이란에 가면 큰 걸로 사자!), 돼지꼴리, 소형 양념통... 모두 여행을 거듭할 수록 이곳저곳에서 충당하며 야곰야곰 늘어난 DIY 서바이벌 아이템들... 이러니 짐이 무거울 수밖에. 앞으로는 또 무엇이 추가될런지. 이러다간 자전거나 스쿠터로 캠핑여행하는 햏들처럼 버너에 식기세트까지 장만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몇 달 트레킹가는 것도 아니고 미련하게 뭔 궁상인지. 정작 침낭조차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돼지꼬리나 즉석 요리도구 등은 '모험' 이나 '여행' 에 생명력을 심어준다. 체력과 배짱, 취향(-_-) 때문에 초초초 어드벤쳐, 하드코어 컨셉으로 달려주진 못한다 해도, 최소한 흉내라도 내보잖아 -_-

 

 

도우베야짓 오토갈.  이스탄불 직행버스도 보인다.

이쯤되면 터키동단의 도우베야짓 역시 터키를 가로지르는 광대한 가상의 연결선 안에 편입되면서, 안도와 함께 실망스런 함숨이 나온다. 

 

 

돌무쉬 정보를 알려준 메인로드의 한 여행사 주인 아저씨.

그 외에도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주셨다. 여행객 대상 비즈니스맨이라 하면 경계심이 앞섰는데...

전형적인 쿠르드족 어르신들을 떠올리는 인상. :-)

 

 

제일 만만한 에크멕과 싸구려 소세지.

 

 

도우베야짓엔 당최 외국인이 안 보인다.

3층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다 발견한, 좀 정신나가 뵈는 튼실한 체구의 안경쓴 금발여성이 전부.

외롭다. 아아... ㅠ_ㅠ  여행사와 호텔 직원외에 다른 여행자 친구를 만나고 싶단 말이다...!!  심지어는 여행객들이 득시글한 중부 카파도키아나 이스탄불, 서부 지중해 행 버스를 잡아타고픈 충동까지 불쑥불쑥 인다.

 

하맘(Hamam)

 

 

도우베야짓의 예니 하맘.

날씨는 맨날 구리고 너무 무료해져서, 저렴한 가격에 터키식 사우나를 체험해보기로 했다.

이스탄불에서 하맘을 이용하려면 가격도 만만하지 않을 테니. 

 

 

여성에게 개방된 시간.

 

 

한국의 찜질방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차이점이라면 이 곳 여성들은 목욕을 하러 들어갈 때도 비키니로 치부는 가리거나 샤워타월등을 이용한다. 종교적인 예의인가. 탈의실에서 좀 쭈뼛거리고 있자니, 옆에 있던 깡마른 네덜란드 아주머니가 '수줍어할 필요 없다'며, 자기도 처음엔 그랬는데 누구나 다 대중탕에 목욕하러 들어간다며 격려의 말씀을... -_-  그다지 수줍지는 않은데... 대중탕 문화에 낯선 것도 아니고... -_-  외국인을 만나서 놀라고 있는데 아주머니는 오해하셨나 보다.

 

간만에 샤워가 아닌(순간온수기 ㄷㄷㄷ) 제대로 된 '목욕'을 해 본다. 온/냉탕에 번갈아가며 몸도 담그고, 사우나도 들어가고... 장기여행에 나서 도미토리 신세를 지고, 공용 샤워실을 이용하다 보면, '나만의' 방, 나만의 욕조, 길고 긴 목욕등이 간절한 사치로 다가온다. 아무래도 동양인이라 외모가 튀다 보니 호기심 많은 소녀들과 어린아이들이 사우나에서 말을 건다. 평소 같으면 사우나에서 입도 뻥긋 못 할 테지만 컨디션 탓인지 실제 온도가 낮기 때문인지 곧잘 대답도 하고 수다에 응해준다. :)  쿠르드족 or 터키 여성들의 볼륨있는 몸매와 발육상태란... ㅠ_ㅠ 십대소녀들은 완숙에 가까운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뽐낸다. 아, 부러... ㅠ_ㅠ

 

지친 내 자신에게 선물을 할 겸, 큰맘먹고 마사지도 받는다. 때밀이('케쎄') & 마사지 -> 도합 15YTL.

하지만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다는 거. 레몬향에 잠기어 마사지를 받고 나니 피부는 부들부들(-_-), 기분도 상쾌하다.

여행왔으면 이런 현지문화체험도 해 줘야지~

 

 

아라랏트 산의 정상은 언제나 온전히 보게 될까.

아타튀르크 간판. 학교겠지?

 

 

쿠르드 아이들.

악의는 없겠지만 황량한 날씨와 건물하며 우거지상에 괜히 겁난다는... ㄷㄷㄷ

 

 

신축건물은 꾸준히 들어서는 듯.

 

 

saw montain(톱 山)이란다.

절묘한 명명솜씨. 정말 비현실적으로 평면적인 병풍처럼 솟아있다.

 

 

터키 학교들은 파란색 교복이 많은 듯.

여자아이들이 멘 핑크색 가방덕에 황량한 거리가 조금은 밝아보인다.

핑크공주... 소녀들의 핑크 아이콘이란 -_-

 

 

도우베야짓에도 어둠이 내린다. 불을 밝히고 손님맞이에 분주해지는 맞은편 식당.

 

 

케밥에 질려 호텔 로비에서 일행들과 샌드위치(이것도 질린다...)를 만들어 먹는다.

한국음식에 비하면 참으로 심플한 음식들...

 

 

내일은 이런 파아란 하늘을 볼 수 있기를.

빨리 이삭 파샤 궁전에 가야 할 거 아니야.

 

 

어둠이 내린 아라랏트 산은 무척 괴기할 것 같다.

참고로 아라랏트 산은 아르메니아 인들의 국가적 상징이지만, 이제는 터키 영토에 속해있다.

국교도 수립돼 있지 않고 터키를 방문할 수 없는 아르메니아인들은 그저 발치에 놓인 산을 바라보며 발을 구를 뿐.

터키와 아르메니아 두 곳 다 방문한 나는 특권을 누린 셈이라고 할 수 있을 듯.

 

 

도우베야짓엔 본의 아니게 시간차를 두고 두 번이나 방문했는데, 역시 날씨의 중요성 -_-

이날은 썬글라스 안 끼곤 돌아다니지 못 할 정도로 하늘이 찬란하고 (덕분에 선글라스도 덤으로 잃어버림 -_-)

아라라트 산은 활짝~  :^)

 

 

새벽의 청명한 공기 속에 위풍당당히 선 아득한 아라라트 산.

노아의 홍수가 진실이었다면 아주 비극적이었을 듯 (2012... ㄷㄷㄷ)

 

 

 

 

출처 : 여자 혼자가는 여행
글쓴이 : halfmoonwis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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