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생가 뒤로 사저, 그 뒤로 부엉이 바위, 오른 편 끝자락에 사자바위가 굽어보고 있다)
아직 슬픔이 마르지 않는 시간 속으로 걸어갑니다. 봉하 노무현 생가를 찾아가는 길. 그곳에 가면 당신의 온기가 남아 있을까? 그곳에 가면 혹시 당신이 말을 건네지나 않을까? 노무현 대통령 생신날에 맞춰 9월 24일(음력 8월6일) 공식적으로 생가 복원을 기념하기에 앞서, 두근두근 당신을 맞으러 갑니다.
기억납니다. 바로 엊그제 같습니다. 싸리문짝을 밀고 들어서면 들릴 것 같습니다.
"...여러분 저는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똑같은 시민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고향에서 좀 여유를 즐겨보고 싶습니다. 옛날을 회상하면서 ...여유를 누리면서 옛날에 함께 했던 친구들과 이렇게 다정한 생활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냥 사람과 사람으로 편안하게 만나고 싶습니다..."
단지 사람과 사람으로서 인정을 나누고 싶었던, 내 맘의 고향 같은 대통령.. 비록 그 소박한 바람은 바람처럼 날아가 꺾였지만, 태어나 7살까지 살았다는 당신의 생가로 그 맘을 조촐하게 담았습니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36번지. 봉화산 봉수대 아래 마을이라 하여 봉하(烽下).
이제 그 아래, 삶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가신 자리, 당신을 닮아 지극히 겸손하게 아주 작은 비석으로 남아 부엉이 바위로 울기도 하지만, 다시 당신 태어난 자리로 돌아와 함박 웃기 바랍니다.
사저와 함께 생가 복원 설계를 맡은 정기용 교수는 삶을 조직하는 건축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때로 자연, 때로 공공성을 배경으로 감응하며, 서로 배려하고 나눌 줄 아는 집을 지었지요. 그래서인가? 대통령의 맘을 담아 원형에 가깝게 재현했다는 말이 빈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꾸미지 않아 아름다운 당신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본채( 37.26㎡) 아래채 헛간(14.58㎡) 관광객 쉼터(185.86㎡) 생가를 둘러보며 영락없는 촌놈의 그림자 속에 뒤늦게 당신의 꿈을 그려 봅니다.
그랬다지요. “아름다운 자연으로 귀의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에서 농사도 짓고 마을에 자원봉사도 하고, 자연도 돌보는 일을 하고 싶다."
풀뿌리 민주주의로 화답하고 싶습니다. 당신을 바보 노무현이라 불러 우리 모두 힘이 나고 행복했던 시절로 귀향하고 싶습니다.
내게 남은 길이 있다면 그건 당신을 향한 길. 세상의 그대들이 도란거리는 어느 늦은 오후, 하얀 등꽃처럼 피어올라 그대의 그늘이 되어줄 수 있다면, 땅 속 깊이 천 년을 걷겠네. 아래로 아래로 숨 죽여, 당신 아래로. 내 가슴 묻겠네.. 뒤늦게, 열망이 컸던 만큼 배반감도 클 수밖에 없었다는 말로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상실감으로 짧은 헌시를 남깁니다.
“옛날부터 무게라꼬는 잡을 줄 모르는 분이었지예.” 또 어떤 마을주민은 말합니다. "어릴 때부터 대장질 했다 아이가" 똑같은 눈높이로 사람을 보았기에 국민 가운데 설 수 있었던 대통령, 누군가는 노짱이라 살갑게 부를 수밖에 없는 영원한 대통령..
사셨어도 마을사람 위하시고 죽어서도 마을사람 위한다며, 생가 안내를 맡았던 비서관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가 뜻밖의 말을 전합니다.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는데 당시에도 화장실이 안방과 붙어 있었어요? 촌집은 보통 바깥에 있는데..
아, 과연 노무현입니다. 당신께선 그랬답니다. 보존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바랐답니다. 대통령의 집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집, 신혼부부라든지 누구라도 이곳에 묵고 가고 싶다면 실제 주거공간으로서 불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화장실을 안에 두었답니다.
이런 분을, 누가 왜 데려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슴이 꽉 막히도록 만든 이 세월, 땅을 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보..바보..
이어 전하는 말. 그 속에 범부가 헤아릴 수 없는 대통령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원형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박제된 공간이 되어선 안 된다."
진정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었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 담을 허물고 싶다고 했답니다. 만남의 공간으로서 남고 싶었답니다.
노무현 대통령 생가를 단순히 전직 대통령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내버려둘 수 없는 까닭입니다. 그곳은 민주주의가 태어난 곳입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이기도 합니다. 대통령 서거 당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펼쳐 들고 가던 현수막 구절이 문득 떠오릅니다. <아들아! 기억해라 대한민국 유일한 대통령을... 아들아! 자랑해라 그분의 백성이었다는 걸...>
내 맘의 담을 허물고 싶습니다.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너무나 짧은 귀향, 그리고 귀천, 이제 영원히 당신 집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가슴 가슴마다 당신의 뜻을 품고 끝없이 찾아드는 역사의 행렬이 보이지 않습니까? 툇마루에 걸터앉아 다시 한 번 맘껏 소리치십시오. 야~기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