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밖의 풍경 #/** 마음 한소쿠리**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中 장영희 편'에서**

flower1004 2009. 6. 12. 11:56

우리 집은 골목 안에서 중앙이 아니라 구석 쪽이었지만 내가 앉아 있는 계단 앞이 친구들의 놀이 무대였다. 놀이에 참여하지 못해도 나는 전혀 소외감이나 박탈감을 느끼지 않았다. 아니, 지금 생각하면 내가 소외감을 느낄까봐 친구들이 배려를 해준 것이었다.

 

그 골목길에서의 일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다. 하루는 우리 반이 좀 일찍 끝나서 나는 혼자 집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깨엿장수가 골목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 아저씨는 가위만 쩔렁이며 내 앞을 지나더니 다시 돌아와 낵 깨엿 두 개를 내밀었다. 순간 그 아저씨와 내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주 잠깐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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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괜찮다는 것인지는 몰랐다. 돈 없이 깨엿을 공짜로 받아도 괜찮다는 것인지, 아니면 목발을 짚고 살아도 괜찮다는 것인지.....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내가 그날 마음을 정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그런대로 살 만한 곳이라고. 좋은 사람들이 있고, 선의와 사랑이 있고, '괜찮아'라는 말처럼 용서와 너그러움이 있는 곳이라고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샘터刊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中 장영희 편'에서

 

삶은 소설과 다르고 드라마와도 다르다. 소설에서는 이벤트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드라마에서는 재미있는 사연들이 이어지지만 현실은 지루하고 고달프기 그지없다. 그래서 좀처럼 믿기 힘든일을 떠벌릴 경우 '소설쓰고 있네'라는 비아냥이 돌아오기 마련이고 다소 현실감이 느껴질 경우에는 '드라마틱'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살다보면 소설과 같은 황당한 일이 생기기도 하고 드라마와 같이 극적인 일도 생기지만 흔히 있는 경우는 아니다. 그런 일은 일생에 몇번 일어날까 말까 하다.

 

그렇기에 일상을 주제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척 고단한 작업이다. 재미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소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어제와 같은 아침을 맞이하고 그제와 다르지 않은 출근길에 평소와 똑같은 업무를 처리하다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간다. 가끔 저녁일정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고 일주일을 기다려 보게된 무르팍도사는 그저 남들과 똑같은 내용의 글들만 남을 뿐이다. 언제나 나만의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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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평범한 일상도 가슴벅찬 문학으로 승화시킨 여인이 있었다. 서강대 영문학과 장영희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녀의 글들은 특별하지 않다. 그저 삶의 일부분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이야기할 뿐이다. 강의실에서 만난 제자이야기도 있고 길거리를 스쳐지나간 이름모를 청년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힘들었던 유학시절 이야기도 있고 TV에서 보았던 방송이야기도 있다. 그녀의 일상도 그다지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그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포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전달할때 오히려 특별하게 다가왔다. 어차피 일상이란 그런게 아니겠는가. 포장하면 하려할 수록 더욱 초라해지고 어색해지는 것이 아니던가.

 

그녀가 들려주면 어려운 영시문학도 달콤한 속삭임이 되었다.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생일'과 '축복'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또한 그녀가 들려주면 문학도 가슴벅찬 일상이 되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조선일보'의 북칼럼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에 실렸던 글들을 모아 '문학의 숲을 거닐다'라는 책으로 엮기도 했다. 그 책들을 통해 띄엄띄엄 읽어왔던 그녀의 글을 온전히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녀의 처녀작 '내 생애 단 한번'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가슴벅찬 문학으로 승화시켰던 여인 장영희 교수가 9일 낮 12시50분 눈을 감았다. 두 다리와 오른팔이 마비된채 50여년을 살아왔지만 한번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여인이었지만 2001년 유방암 진단을 받은 이후 암이 척추로 전이됐고 다시 간까지 번졌던 탓이다. 그녀는 2006년 7월 조선일보 박해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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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교수가 지난 2005년 3월 척추암으로 강의를 중단한 지 6개월 만에

강단에 복귀하며 제자들의 환영을 받던 모습.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던 장 교수는 9일 눈을 감았다. 

 

장 교수는 “신은 재기(再起)를 위해 쓰러뜨린다…”며 2004년 암 재발병 사실을 밝힌 뒤 공개적으로 치료를 받아 왔다. 엊그제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장 교수는 “하하, 내가 이렇게 씩씩한데 왜 암에 걸렸지?”라며 먼저 조크를 던진다. ‘소나기가 내려서 장미를 피운다면/ 아, 소나기 내리는 걸 왜 슬퍼하죠?’(샬럿 브론테 ‘인생’)라는 시처럼 꿋꿋하다. 장 교수는 이번 주 영미시(英美詩)에 관한 칼럼을 모은 책 ‘축복’(도서출판 비채)을 냈다. 병상에 누워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글들 중에서 일부를 솎아내고 전체를 다듬었다. ‘희망은 한 마리 새/ 영혼 위에 걸터앉아/ 가사 없는 곡조를 노래하며/ 그칠 줄을 모른다.’ 미국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작품을 비롯한 영미문학의 명시(名詩) 50편과 명시의 정원에서 달콤한 비행을 즐기는 꿀벌처럼 엮인 장 교수의 경쾌한 칼럼이 눈부시다. 장 교수와 절친한 화가 김점선씨가 봄날 꽃비라도 닮은 듯 화려한 색채를 발산한 그림을 곁들였다. [조선인터뷰] "아기웃음 들을 수 있어 좋아요" 中에서.

 

또한 2006년 두 번째 암 투병을 이겨낸 뒤에는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도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했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 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 [사람과 이야기] "그녀의 삶, 그 자체가 기적이었다" 中에서

 

평범한 일상도 가슴벅찬 문학이 될 수 있음을 가르쳐준 장영희 교수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