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날의 단상... #/** 내 마음의 풍경소리**

**영화 시 리뷰**

flower1004 2010. 6. 1. 11:52
세상을 향한 그녀의 작은 외침
‘시’

한강을 끼고 있는 경기도의 어느 작은 도시, 중학교에 다니는 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미자(윤정희). 그녀는 꽃 장식 모자부터 화사한 의상까지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은 엉뚱한 캐릭터다. 미자는 어느 날 동네 문화원에서 우연히 '시' 강좌를 수강하게 되며 난생 처음으로 시를 쓰게 된다.

시상을 찾기 위해 그 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을 주시하며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는 미자. 지금까지 봐왔던 모든 것들이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아 소녀처럼 설렌다. 그러나, 그녀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이 찾아오면서 세상이 자신의 생각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내 인생 가장 뜨거운 순간
[ INTRO ]

아시다시피 이제 시(詩)가 죽어가는 시대이다.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고, “시 같은 건 죽어도 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지금도 시를 쓰는 사람이 있고 읽는 사람도 있다.
시가 죽어가는 시대에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관객들에게 그런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그것은, 영화가 죽어가는 시대에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나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 감독 이창동


[ DIRECTOR ]

<초록물고기>,<박하사탕>,<오아시스>,<밀양>
그의 울림은 센세이션이 된다
감독 이창동

일상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서민들의 아픔을 탁월하게 묘사하는 이창동 감독.
그가 그려내는 인물의 고통은 관객에게 고스란히 아니 더 아프고 힘들게 전해진다
하지만 그 아픔들을 다시 들여다 보면 놀랍게도 일상적이다
누구나 자신이 겪는 일이 가장 힘든 시련이라 생각한다. 그 지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의 영화는 고통스럽지만 잔인하리만큼 현실적이다.

그의 다섯 번째 작품 <시>가 완성 되었다
왜 <시>인가? 에 대한 질문에 그는 답한다.
경제적 가치만을 중시하는 일상 속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더 나아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우리 삶에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극적으로 본인에게 ‘시는 무엇인가’는 곧 ‘영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과도 같다고.

그의 속 깊은 곳에서 숙성시켜온 오랜 질문.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대신해서 표현해 주고 싶다는 이창동 감독. 그러기에 영화 <시>는 그 어떤 작품보다 그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비웠기에 채울 수 있었던,
이창동 감독과 윤정희가 말하는 ‘미자’
처음에 그들이 생각한 미자는 서로 조금 달랐다고 한다. 이창동 감독이 만들어낸 미자와 윤정희가 그리려고 한 미자. 그러나 촬영이 시작된 순간, 미자는 하나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윤정희는 자신의 역할이 본명과 동일한 ‘미자’라는 것에 놀랐고, 이창동 감독은 <시>를 위해 미자가 아닌 다른 이름은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윤정희의 남편인 백건우는 말한다. 미자가 어쩜 이리도 윤정희와 닮았느냐고…

‘미자’는 쉽게 규정지을 수 없는 캐릭터이다. 60대의 나이지만 소녀 같은 순수함을 가진 미자. 그러나 그 내면에는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이가 숨어 있다.

이창동 감독은 그 동안 너무도 많은 작품 활동으로 본인만의 연기 스타일을 형성해온 윤정희이기에 그런 미자 연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지만 윤정희란 배우는 마음이 열려 있어, 자기 본연의 것을 버린다는 것에 대한 저항이 없었다고 말한다.

속으로는 강하고 어떤 절절함을 품고 있지만, 내색하지 않는 모습. 이것이 이창동 감독이 말하는 윤정희와 미자의 닮은 점이다.

윤정희 또한 미자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백지 상태가 되어 이창동 감독의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여야 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윤정희는 타고난 순수함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가슴속으로 삼키는 ‘미자’로 다시 태어났다.
(펀글)
 
   *      *       *       *      *
2010.5.25.화
 
시를 쓴다는 것
시를 쓴다는 것은
동지섣달 이른 새벽
관절이 부어 오른 손으로
하얀 쌀 씻어 내리시던
엄마 기억하는 일이다
소한의 얼음 두께 녹이며
군불 지피시던
아버지 손등의 굵은 힘줄 기억해내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깊은 밤 잠 깨어 홀로임에 울어보는
무너져 가는 마음의 기둥
꼿꼿이 세우려
참하고 단단한 주춧돌 하나 만드는 일이다
허허한 창 모서리
혼신의 힘으로 버틴
밤새워 흔들리는 그 것, 잠재우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퍼내고 퍼내어도
자꾸만 차 오르는 이끼 낀 물
아낌없이 비워내는 일이다
무성한 나뭇가지를 지나
그 것, 그 쬐끄만한
물푸레 나뭇잎 만지는
여백의 숲 하나 만드는 일이다

-조영혜
(영화속에 삽입되어 낭송된 시)
 
오랜 침묵끝에 스크린에 돌아온 윤정희가가 말하고 싶어하는
미자는 어떤 캐릭터일까?....
언젠가  TV에서 강가를 달리는 창가의 그녀 모습을 화면에서 보았을때부터
아, 저 영화 꼭 보아야지.....하고 기다렸던 영화였다.
(예상한 대로 이번 칸영화제에서 이창동감독이 각본상을 받았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중 내가 본 영화는 <오아시스> <밀양>이었는데
모두 나에게 불확실하지만 무언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들이었다.
제목에서 부터 감독은 우리에게 이중적인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어한다.
오아시스와 밀양 모두 자연 그대로의 듯으로 받아 들여도 좋고
무언가 암시하는 은유로 받아 들일 수도 있다.
(이럴때 논리 정연하게 꼬집어 표현하지 못한하는 나 자신이 참 한심하다)
 
아무튼 내 언어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무언가를 쓰지 않고는 베길 수 없어 이렇게 감상문을 적고 있다.
며칠전 보았던 <구르믈.....>이란 영화에 비하면
너무나 적나라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라 하면 막연히 아름다운 화면을 상상하고 기대하고 온 나에게
이번 <시>속의 장면들은 너무나 남루하고 구차스러운 우리의 일상이었다.
아니 일상보다 더 누추하고 남루하여 그냥 눈을 돌리고 싶었다.
 
66세의 과부 미자는 생활 보호 대상자로 이혼한 딸의 외손주를 돌보면서
반신불수 노인의 목욕을 시켜주는 일을 하며 사는 형편이니 오죽하랴.
그런 구차스러운 상황에서도 미자는 꽃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자연에 감탄한다.
또한 힘에 부치면서도 외손주를 부양한다.
 
항상 시를 쓰고 싶어하지만 여지껏 시를 배울 기회가 없어 연연해하다
문화센터의 시창작반에 등록하여 시를 배우게 된다.
하지만 시는 배워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속에 들어가 자연과 하나가 되어야만 시가 되어 나오는데
미자는 항상 주변에서 맴돌 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시강좌 수업이 끝나고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녀가 시인 선생님께 보낸 꽃다발과 습작시만 나타난다.
그녀는 어디로 사라졌을까?.....관람자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
바로 영화의 즐거움이자 재미가 아닐까?
 
이창동감독은 이 영화에서 자연의 소리외에는 음악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음악만 사용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도대체 출연료외에 어떤 제작비가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그냥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삶이
그대로 화면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미자가 되어 화면속으로 걸어 들어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미자의 캐릭터는 나와 흡사하여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모자를 쓰는 것을 즐기는 것 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발상을 하는 것 하며.....
마치 10년후의 내 모습이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까?
 
미자의 남루한 살림살이 가운데 어울리지 않는 것이 하나 눈에 뜨였는데
식탁위의 튤립꽃모양의 전등이었다.
비록 현실이 어렵고 힘들지만 항상 꿈의 세계를 염원하는 미자의
바램을 바로 그 전등갓이 나타내 주는 듯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중에 보니 미자의 방에는 어울리지 않는
우아한 모양의 둥근 전등갓을 씌운 전등이
두개나 더 보였는데 그것도 감독의 의도였을까?
 
잛은 시간에 바르게 스쳐가는 장면들이라 내가 놓친것도 많고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감독의 메세지를 제대로 알 수는 없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하고 여운을 남기는 좋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