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판]
9:30 AM, 투르판 빈관의 지하 도미토리.
4인실의 나머지 침대는 텅텅 비어있고, 밖의 마당에선 아침을 여는 종업원들의 몸놀림과 마당을 쓰는 소리로 부산하다.
피로가 가시지 않았지만, 아침도 먹어야 하고 불과 이틀이라는 투르판 일정을 알차게 쓰기 위해 짐을 정리하자마자 밖으로 나왔다. 둔황에서 투르판까지는 침대버스 -인도 침대버스와는 또다른 중국의 명물-로 밤새 사막을 달려왔는데, 나름 안락했고 실크로드를 달린다는 자체만으로도 감회가 새로웠다. 창밖의 풍경은 그동안 여행했던 중국 동남부와 쓰촨, 윈난의 푸르른 녹지와는 확연히 달라져, 거뭇거뭇한 어둠 아래로 황량하고 투박한 메마른 땅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침 8시가 채 못 되어 예상보다 일찍 투르판에 도착해, 투르판의 양대 호텔인 교통빈관과 투르판 빈관 중 후자에 체크인했다.
기차 차창으로 동녘 하늘을 물들이며 떠오르는 해.
(사실 이 구간은 '우루무치-둔황' 직행노선으로 기억된다.
좌석배치와 서쪽을 향하는 둔황 -> 투르판 기차 진행방향을 생각하면 이 일출은 어색하다.
열 몇 시간의 기차여행을 딱딱한 좌석(잉쭤-최하등급)으로 버텨내자니 온몸은 뻐끈하고,
불편한 좌석칸에서 밤을 보낸 승객들은 피로에 정신을 못 차리지만, 뭐 이 정도는 이미 익숙해져 거뜬!
(일부 하드코어 여행자들 중엔 70시간 이상까지 좌석칸으로 버텨본 괴물들도 있다 @0@ 인간승리~)
촌철살인적 입담에도 강하지 못하고 운문과도 친하지 않아, 시(詩)적인 사막을 보면서도 폼잡고 자작시 하나 못 읊는 데 자괴감이 들었다. 고대하던 사막 기차여행인데 머리속은 뭉게뭉게 폭탄맞은 듯 어수선할 뿐. ㅡ3ㅡ;; 윤대녕의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이란 단편 배경이 바로 이 실크로드였던 걸로 기억한다. 주인공은 덜컹거리는 침대열차에서 어둠내린 사막을 지나며, 피아노의 선율과 백합이 피어나는 사막을 보는데... 내겐 좀처럼 그런 이미지는 씨알도 안 먹힌다는... -_- 누구 [피아노와 백합]의 의미를 설명해 주실 뿐? 역시 나의 메마른 감성은 문학적 메타포랑은 안 친한가 보다. -ㅅ-
포도가 탐스럽게 익어가는 계절. 투르판 (google image)
풍부한 일조량 덕분인지 투르판의 청포도는 그 맛과 풍부한 즙으로 유명하다.
중국서부 신장, 간쑤 일대 시장들에선, 청포도 외 총천연색 말린 과일들을 수북히 쌓아놓고 파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투르판 행 침대버스. 막간의 휴식을 틈타.
중국 침대버스는 버스 연식, 시설에 따라 승차감이 천차만별이다.
특히 시골오지 부근을 운행하는 허름한 침대버스에 걸리면, 그 날 잠은 다 잤다.
걸레같은 침구하며, 실내에서 죽어라 담배피워대는 촌부들하며, 오묘퀴퀴한 냄새는 또 어떻고... 아주 얄짤없음 @0@
실크로드 루트 침대버스는 상당히 안락해서 다행이었다.
버스 외관의 실크로드 테마- 비천상- 장식을 보면 충분히 가늠할 수 있듯이- (이것은 럭셔리)
(인도 침대버스는 극도의 프라이버시를, 중국 침대버스는 동지애를 느끼게 해 준다- 타 보면 알게 될 듯;;;)
캐러반들이 목숨을 걸고 넘어야 했던 그 옛날의 사막, 수많은 고고학 탐사원정대가 죽음을 맞닥뜨렸던 장소.
이젠 사막 한 가운데로 기차가 달리고, 시원하게 쭉 뻗은 콘크리트 도로가 나 있다.
그 옛날의 영화와 머리속의 실크로드 이미지를 떠올리려면 좀 상상력이 필요하지만,
지금 이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오른쪽의 시노펙(중국 국영 석유기업) 주유소- 서부 신장지역과 에너지 자원에 대한 중국의 야심은 무서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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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판은 분지 지형으로,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화염더위로 유명하다.
실크로드가 걸쳐있는 신장, 간쑤의 사막지역 중에서도 특히 악명이 높다. 오죽하면 [서유기]에서 삼장법사 일행의 서역행을 가로막은 화염산의 모체가 바로 투르판에 위치할까. 따라서 투르판 관광은, 해가 중천에 뜨기 전의 비교적 오전 시간, 그리고 강렬한 햇빛이 한풀 꺾인 느지막한 오후쯤이 이상적이다. 이 때쯤엔 스적스적 청포도 넝쿨이 우거진 산책로를 거닐거나, 전통시장까지 걸어가 식도락을 즐기거나, 부근의 구시가지를 둘러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기후가 기후인 탓에, 정오에서 서너시경까지는 비공식적인 시에스타 분위기인데, 이건 중동도 마찬가지였다. 중동에서도 많은 상점들이 오후 일정시간 문을 닫고 휴식했다 느지막히 다시 문을 열어 밤 늦게까지 영업을 지속하는데, 이 지역들의 중심 코드는 결국 '더위'와 '자연과의 조화'.
덕분에 간쑤, 신장지역엔 특유의 번화한 야시장이 불야성을 이룬다. 더위가 한층 가라앉은 해질녘부터 밤 늦게까지 북적이는 인파와 매캐한 케밥 연기속에 농익어가는 이국의 시장들은, 비로소 유목민과 캐러밴들이 흥청망청하며 왁자지껄 지껄였을 과거의 실크로드를 끄트머리나마 재현해 보인다. 다음날 아침, 문닫은 상점들과 덩그마니 놓여 밤의 향연을 다시금 기다리고 있는 양꼬치 구이판을 볼라치면, 어젯밤에 목격했던 흥겹고 북적이던 풍경이 꿈에서였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스름이 깔리면, 또다시 감쪽같이 마법은 재현된다.
투르판의 시장.
투르판 쯤 오면 소수민족들이 흔히 눈에 띄고, 아라베스크를 연상시키는 이슬람 스타일 건축물들도 낯설지 않다.
물론 게획적인 한족(漢族) 이주로 인구비율로 따지면 한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겉으로는 어쨌든 위구르어와 한문이 병기되고, 위구르족들은 모스크에서 기도를 드리고, 여성들은 히잡을, 남성들은 둥그런 흰 모자를 쓰는 등, 소수민족의 전통 역시 인정받는 듯 보인다. 실로 그들이 얼마나 존중과 평등을 누리는지 회의적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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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이니만큼 어쨌든 유적지 순례에는 나서줘야지.
투르판 역시 화염산과 고창고성, 교하고성(고대 왕국들), 전통수로인 카라즈 등의 관광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대중교통은 마땅치 않아,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택시를 대절하거나 단체 버스투어에 참여한다. 혼자라 택시비를 쉐어할 동행자를 물색하지 못해 고민했지만, 유동성이 보장되고 흥정이 용이한 택시투어를 하기로 했다. 투르판 빈관 마당에서 서성이며 고객을 찾는 택시기사들은 수시로 성가시게 굴며 디스카운트와 파격대우를 외친다. 밀고 당기는 실랑이 끝에 적정한 가격에 합의를 보고, 택시기사는 친절하게도 동행까지 구해줬다. 근처 호텔에 묵는 스위스 가족 여행객인데, 택시기사는 의미심장하게 눈을 찡긋찡긋하며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당신한텐 특별대우해주는 거에요. 저 부부가 당신한테 투어비에 대해 물으면, 지금 가격의 두 배 줬다고 말 맞춰줘요.'
속고 있는 스위스 가족이 안타깝지만 발설해 버리기도 난감하다. 공범이 된 기분... ㅠ_ㅠ
첫번째 목적지는, 리얼리티보다는 신화이자 서사로 남아있는 화염산.
그런데 처음부터 고역이다. 낙후된 택시는 에어컨을 틀어도 영~ 신통치 않고, 화염산에 도착해 밖으로 나오니 햇볕은 무자비하게 내리꽂히고 숨은 턱턱 막힌다. 사우나 하러 온 기분? 해를 흘낏 바라보니 잠시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까뮈의 [이방인]의 가엾은 뫼르소가 순간 이해되는 것도 같다.
화염산은 실망스러웠다. 그 더위에 화염산에 올라갈 일도 없고, 돈독 오른 중국정부는 이제 화염산 관망대라고 해서 입장료까지 받는다. 우리는 어이가 없어 먼발치에서 화염산만 슬쩍 바라보고(어차피 뚫린 공간이라 산은 어디서나 보이는데, 거기에 입장료를 받는다니 중국인의 재물욕은 알만하다) 근처만 빙빙 돌다 곧장 택시로 돌아왔다. 화염산 입구에는 어설픈 손오공 모양이 홍두깨마냥 썰렁하니 서 있고, 서유기를 참조한 안내판이 서 있다. 삼장법사 일행의 서역길은 험난했음이 분명하다. 문명의 이기로 무장한 우리들도 더위 테러를 폭삭 맞고 맥없이 화염산 앞에서 후퇴하는 걸 보면.
화염산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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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찾은 베제클릭 천불동. 둔황의 막고굴과 비슷한 성격의 유물 보관소라 해야 되려나.
건조한 사막기후 덕에 천불동 내부에 그려진 고대의 아름다운 벽화들은, 양호한 보존상태로 수 세기를 내려왔다. 그러나 청나라 시대 열강의 침입과 주민들의 무지, 혼란, 도굴꾼들의 악행들 덕에 현재 천불동 안의 벽화들은 훼손상태가 심각하다. 유창한 영어의 중국 가이드는 애석함과 의도적인 분노가 묻어나는 어투로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서양 고객들에게 사정을 설명한다.
"게다가 (약탈됐다) 중국으로 돌아오지 않은 값어치를 따지지 못할 정도의 유물들이 아직도 무수히 많죠."
천불동은 동굴이라 습기차고 침침한 데다, 화염산처럼 허허벌판이 아니라 나름 그늘이 있어 버틸 만 했다. 게다가 한쪽에는 울창한 신록이 자라고 있어 천불동에 생기를 더했다.
고대의 수많은 신앙인, 예술가, 학자들은 어째서 이렇게 척박한 사막의 동굴과 사원등에 들이앉아 지치지도 않고 벽화를 그리고 기도를 했을까. 사실 이 질문은 우문이다. 그리고 우문엔 현답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카파도키아의 지하도시나 인도의 아잔타/엘로라 석굴, 유럽의 카타콤 등을 보면 누구나 떠올릴 만한 흔한 의문이다. 올곧은 신앙과 열정, 압제에 대항한 투지에 더해, 아마도 그 당시엔 그런 방식들이 좀더 대중화돼 있지 않았을까, 한 번 생각해 봤다. 자기를 기꺼이 던질 정도의 절대적인 믿음과 자기희생을 통한 승화. 현대에도 그같은 골수 수도자 또는 구도자들이 있긴 하겠지만, 그 수는 절대적으로 적을 거라고 본다.
왜냐면 우리는, 회의주의의 시대- 냉소와 거만, 강한 자아-때로는 이기적인-가 하나의 시크한 멋인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물질적 목마름이 넘실거리고 '나 자신'은 너무도 소중한 현재를 살고 있으니까. 음모론이 꿈틀거리는 아노미와 매트릭스의 시대에, 절대적인 믿음은 오히려 광신과 오버랩된다. 난 어쩔 수 없이 회의적이고 세속적인 인간인가 보군 -_- 난 통속이 좋아.
베제클리크 천불동. 동굴 안에는 훼손이 심한 벽화들이 한 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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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해 보니, 각각 서너살 가량의 인형같은 아들딸을 데리고 다니는 스위스 부부도 고역이겠다 싶다. 날씨는 덥지, 다리는 아프지, 너무 어린 애들은 솔직히 끌려다니는 것 뿐 이해도 못 하지, 특히 막내딸은 툭하면 떼를 쓰며 울음을 그치지 않지... 도중에 오빠가 손가락에 작은 상처를 입어 엄마가 가방에서 칼라풀한 밴드에이드를 감아주니, 그걸로 또 난리법석이다. 결국 자기도 똑같은 손가락에 어린이용 칼라 밴드에이드를 감고 나서야 의기양양, 고집스런 울음을 그친다. 아이들이란... 인간이란... 항상 '난 원해, 난 그걸 갖고 싶어'... 원해, 원해, 원해...... 끝없는 욕망의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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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하고성과 고창고성 모두 사막화한 고대 실크로드의 왕국들이란 건 마찬가지지만, 난 비쥬얼적인 면에선 덜 화려하지만 마침 지리적으로 좀더 가깝다는 이유로(-_-)고창고성에 들르기로 했다. 피터 홉커크의 [실크로드의 악마들]을 여행전에 읽었더라면 한층 더 의미있게 다가왔을 텐데 아쉽다. 그 옛날의 거주민들이 떠나고 쓸쓸한 모래먼지만이 이는 고대 왕국터를 걷자니, 두리뭉실한 애틋함과 안타까움, 의아함이 빠꼼히 고개를 들면서도 일단은 '덥다', '빨리 더위를 탈출하고 싶다', '다리 아프고 피곤하다' 이같은 생존 지향적 욕구가 간절했다. 아, 난 단세포인가 봐 ㅠ_ㅠ 자책하면서도 에어컨 바람과 차갑게 얼린 잔에 알싸한 맥주 한 모금이 그립기만 하다.
고창고성에는 자그마한 당나귀가 끄는 수레로 호객행위를 하는 몰이꾼들이 많다.
귀찮을 정도로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힘들어 보이니 당나귀 수레의 그늘에 앉아 편하게 가라고 꼬드긴다.
"너무 비싸서 안 돼요. 돈 없거든요. ㅠ_ㅠ"
"싸게 해 줄께요. 근데 어디에서 왔어요? 어디에 묵어요? 이름은...??? ,,,"
껌딱지 타입들의 공세가 또 시작이다. 무시 반, 성의없는 대답 반 걷는데, 당나귀를 찰싹찰싹 채찍질하면서 나와 수레 보조를 맞추어 끝까지 옆에서 따라온다. 조그마한 당나귀가 더위에 손님도 싣지 않으면서 채찍질 당하고 수레를 끌어야 하는 것이 가엾고 화가 나, 기사한테 따라오지 말라고 신경질을 부렸다.
"돈은 필요없어요. 그냥 태워줄께요. 내가 특별히. 타요, 어서 :)"
몇 번이나 권유해서 잠시 솔깃했다가도, 아냐, 저래놓고 내릴라치면 말 바꾸는 사람들을 한 두 번 겪었어? 무시하고 계속 걷다 옛터의 윤곽이 비교적 뚜렷한 건축물들 주위에 들어섰다.
혹사당하는 동물들을 보면 마냥 애처로울 뿐이다. 보이콧 하는 게 도와주는 건지, 오히려 해가 되는 건지 ㅠ_ㅠ
고창고성. 영화는 사라졌지만 흔적은 사막에 아로새겨져 있다.
쓸쓸한 고창고성에 서 있자니, 실크로드를 따라 이같은 수많은 도시들이 세워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데 새삼스레 전율이 인다. 세월의 흐름과 시간의 파괴력은 마냥 두려울 뿐이다. 삶의 터전은 모래속에 묻혀 풍화되고, 일상은 풍문으로 전락하고, 풍문은 전설이 된다. 그래서 몇 세기 후에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쯤이면, 애환서리고 생동감 넘치는 과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기괴한 타임머신마냥 멋모르는 관광객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을 감내해야하겠지. 지금 숨쉬고 살아가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들이 결국 이 곳에 살며 사랑하고, 생계를 꾸렸다는 명징한 진실마저, 하나의 허구처럼 느껴진다.
고창고성을 떠나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고성 앞의 장터 겸 주차장에서 음료수를 구입하는데, 주변에서 배회하던 한족과 구별되는 외모의 아이들이 다가와 말을 건다. 박시시를 요구하거나 뭔가 팔아치우려는 아이들인가 경계했는데(파블로프의 조건반사 ㅠ_ㅠ), 행동거지를 봐선 예사 소녀들이 아닌 듯 해도 대놓고 강매를 하거나 구걸을 하진 않는다. 한 소녀는 택시를 타고 떠나려는 내 싸구려 손목시계를 연신 가리키며, 놀랍게도 필요 이상의 위엔화를 내밀며 바꾸자고 바디랭귀지에 열심이다. 속마음은 얼마든지 그냥 줘버리고 싶었지만 왠지 꺼림칙하고 마침 핸드폰도 없을 때여서 미안하다며 거절했다. 그래도 포즈까지 취해준 귀여운 소녀들.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투르판 택시 투어였다. 택시기사와 스위스 가족의 가장의 실랑이를 제외하고는.
바가지 쓴 걸 알아차린 건 아닌 듯 한데, 값비싼 고성능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호리호리한 스위스 가장은, 애초에 합의한 금액을 줄 수 없다고 버텼다.
"난 당신이 제공한 투어의 질에 실망했으니, 반값만 주겠어요."
단호한 어투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위구르족 택시기사는 금세 울그락불그락해 진다.
"돈을 안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너무 과하게 책정된 금액이어서 그러는 거니깐."
스위스 가족에게 1인당 나의 두 배에 가까운 금액을 제시했던 택시기사는, 그런 법이 어딨냐고 항의한다.
"택시대절 비용은 내가 자의로 책정하는 게 아니고, 여행사 매니져가 알아서 하는 거요. 나한테 따지지 말라구!!"
"당신이 여행사에 소속되 커미션을 떼는 기사일 뿐이란 건 알아요. 그러니 나머지는 내가 직접 매니저한테 가서 얘기할께요."
금시초문이다. 그럼 택시 대절하기 전에 기사 아저씨랑 흥정하고 고생한 건 뭐였지? 어쨌건 스위스 가족도 기사도 뒤끝이 안 좋은 걸 보니 씁쓸...
청포도로 유명한 투르판답게, 포도넝쿨이 드리워진 넓은 산책로가 길게 가로놓여 있다.
대낮엔 고마운 그늘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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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에서 돌아아 도미토리에서 낮잠을 자고 띵가띵가하다 -지하라 침침하긴 하지만 냉방시설 없이도 시원하다-, 배도 출출해져 터덜터덜 시장구경에 나섰다. 투르판의 시장에는 한족과 위구르족이 뒤섞여 분주하게 먹거리와 옷가지, 구식 전자제품(분명 made in china, 짜가가 태반일 듯) 등을 내어파는데, 중앙아시아풍의 확연한 이질성이 느껴져 흥을 더한다. 유적지에 대한 아카데믹적 접근과 역사적 의의도 의의지만, 역시 신나게 먹고 마시고 노는 게 제일~~~ 여행에서라도 쾌락주의를 맘껏 실현하리라, 음하하;;;
노릇노릇 고기 구워지는 냄새와 둥글넙적한 고소한 난, 양고기 케밥과 각종 후식의 향연으로 넋을 잃고 빠져든다.
즉석에서 만들어 주는 요거트 겸 쉐이크
향이 첨가된 광천수 쯤 될까...
중앙아시아 지역을 가면, 이와 비슷한 약(弱)탄산수를 판매하는 수동(-_-) 자판기가 도처에 널려있다.
우육면과 위의 음료수. 우육면에 시앙차이(강한 향채)가 들어갔지만, 이젠 그마저도 익숙해진 것 같다.
그리고, 그리운 [론리플래닛-차이나] ㅠ_ㅠ (비록 그 무게는 어마어마했으나;;;)
신장 지역의 기다란 타원형의 수박. 그리고 노천 국수가게.
중국에서 맛본 국수 중 베스트 5에 들었던 그 맛 ㅠ_ㅠ 진한 육수와 쫄깃쫄깃한 면빨 @0@
게다가 가격은 고작 3~400원.
무료하게 시간을 때우고 있던 아저씨에게 할 일을 만들어 드렸다.
무슬림이 많은 데다 유목민 전통이 강한 신장 지역에서는, 양고기 꼬치(케밥)이 대중적인 먹거리.
길고 큼지막한 꼬챙이에 꿴 토막난 양고기를 즉석에서 구워주는데, 누린내도 안 나고 정녕 천상에 온 듯한 맛 ㅠ_ㅠ
케밥의 본고장(-_-??)이라는 터키나 중동,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도 치킨, 양고기 케밥을 흔히 먹었으나,
신장에 비하면 가격대비 효율에서나 맛에서나 비교가 안 되는 듯.
해질 무력부터 늦은 밤까지, 케밥 몇 개 시켜놓고 맥주 몇 병 곁들이면 그것이 바로 파라다이스~ @0@
(덕분에 신장에선 맨날 파라다이스였다 -_- 내 위장은 아니었겠지만- ㅋ)
참깨빵, 난 등을 파는 아저씨
교통빈관과 광장 부근에도 산책을 나가보니, 커다란 노천식당이 마련돼 있다.
좀처럼 열기가 가라앉지 않는 신장의 밤은 그래서 늘 북적이고 풍성하다. 이 곳의 겨울은 어떨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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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우루무치로 향할 것이다. 비단 생산지로 유명했다는 전설속의 마을, 남부의 '호탄'은 시간과 비용을 따져본 후 아쉽지만 포기하기로 했다. 실크로드 북쪽 루트, 덥지도 않고 만년설을 인 천산산맥과 가까워 한결 서정적인 풍경이라는 '이닝' 등도 마찬가지로 제외했다.
결국 현실은 언제나 현실이다. 내가 살고 있는 그 순간이 곧 현실인 것. 큰맘먹고 장기여행을 떠났어도 시간과 비용 제약은 늘 내 발목을 붙잡고 취사선택을 요구한다. 누가 여행을 일상의 반대이자 꿈과 몽상으로만 가득 찬 시공간이라 했던가. 꿈꿔왔던 실크로드지만 말마따나 낙타를 타고 고대 캐러밴들마냥 그 길을 되밟는다는 상상은 말 그대로 상상일 뿐이다. (터키의 사진작가가 몇 년 전 야심찬 프로젝트로 낙타와 도보만으로 실크로드를 횡단해 사진집을 냈는데, 감격도 감격이지만 역시 내 그릇은 이 정도로 행복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란저우-둔황-투르판-우루무치-카슈카르의 지극히 대중화되고 뻔한 루트에 기차와 버스를 배합한 시시한 이동이지만, 어쨌든 난 실크로드에 와 있으니까. 그리고 우루무치는, 동행과 갖은 해프닝들로 유쾌하고 의미심장한 도시가 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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