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유럽 성지순례#/(이스라엘여행기)

[스크랩] [이스라엘] 쥬이쉬 홈스테이@하이파, 말많고 탈많은 드라이브 @골란고원, 요단강, 삶의 기로

flower1004 2010. 2. 19. 15:33

 


 하이파(Haifa)

 

 

예루살렘과는 이만 작별을 고하고, 지중해에 면한 이스라엘 서부 도시, '하이파'로 향한다.

운좋게 '쥬이쉬 패밀리'에게 초대됐기 때문- :)

전에 인도에서 만난 리나가 자기 친구, 요한을 소개시켜 줬다.

참고로 요한은 굳이 리나의 부탁이 아니어도, 유명한 카우치서핑(CouchSurfing-외국인 방문객에게 공짜 숙박 등을 제공하며 문화교류를 하는 클럽)의 열성멤버이기도 하다. 나처럼 hospitalityclub이고 CS고 등록만 해 놓고 잠수탄 유령회원과는 근본부터 다른  셈. -_-

 

 

(사진: wikipedia.org)  

아름다운 하이파.

지중해를 낀 여유로운 전형적 중산층 도시이다.

 

강신주 씨였나, 이스라엘과 프랑스, 미국 등에서의 유학 & 동거 & 결혼생활을 '간절히, 그리움 없이' 란 책에 담아낸 분.

바로 여기 '하이파' 에서 공부하신 걸로 알고 있다. (맛깔스런 독서였다. 추천!!)

 

 

Jewish Dinner (라곤 하는데 뭐 아는 게 있어야... -_-  그냥, 아~ 그런가 보구나~ 했음)

손님 온다고 많이도 차려놨다. @_@

맛도 좋고 영양도 좋고 이스라엘에서 물가 때문에 고생하다 간만에 포식한다 ㅡ_ㅡ 

 

 

마침 예루살렘에서 열린 학회에 참여한 요한과 그 여자친구를 만나 같이 하이파의 요한 집으로 향했다.

요한의 가족은 전형적인 교육받은 중산층.

아버지는 물리학 박사인가, 해서 카이스트였나 아무튼 한국 대학에 초청돼 강연도 하고 했단다.

가족들 전체가 미국에 살다 와 영어도 다른 이스라엘 인들에 비해 한결 자연스러운 편.

식사시간 내내, 모두들 나를 배려해 히브리어가 아닌 영어만 고수해 대화를 나눴다.

지중해가 한 눈에 바라다보이는 테라스가 딸린, 높은 지대에 위치한 아름다운 주택에 살고 있다.  

 

요한의 가족은 호들갑스럽게 반갑게 맞아주었고, 유대교 전통을 보여준다며 나름 격식차려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식사전에 성경같은 유대교 기도서(이게 뭐란 소리-_-?)를 번갈아 읽어가며 노래도 읊조린다. 나름 진지한 것 같다. ㄷㄷㄷ

암튼 나는 벙-해 있지만, 요한이 카우치서핑 열성멤버인 만큼 익히 외국손님을 초대한 경험이 다분한 솜씨다.

 그러나 정작 나는 유대교에 특별한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_-, 기도가 끝나 식사시간이 오자 오히려 생기가 돌았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단 말이지 -_- 식탁위에 차려진 알흠다운 음식들... 오~ ㅠ_ㅠ

 예루살렘에서의 궁색모드 3종 세트에 사무쳤던 한을, 여기서 날려주리라~ @_@

 

 

과일젤리와, 발효된 호밀음료인 크바스를 연상시키는 저 이스라엘 음료.

이것이 파라다이스 ㅠ_ㅠ

 

 

내 옆에 앉은 지적인 요한의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 왜 이스라엘을 방문했니?

 

- (벙...)

 

잠시 막혔다. 왠지 마음에도 없던 번지르르한 뻔한 거짓말을 늘어놓기가 싫었다.

물론 이스라엘에 꼭 오고 싶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이스라엘 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모두 마찬가지니까.

또 딴에는 좀 다른 대답을 한다고 입을 연다.

 

- 사실 전 지구상 모~든 국가에 관심이 있어요. 모든 국가들이 특별하고 독창적인 매력과 그리고, ...

 

-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너에게 지구상의 수많은 국가들 중 그냥 한 국가란 소리구나. :)

 

헉, 아직 내 말 안 끝났는데 그렇게 자르고 결론내리면 어떡해요?  @ㅂ@;;

요한의 아버지는 농담으로 건넨 말이지만, 쓸데없이 말을 길게 늘어놓은 건 아닌가 잠시 자책했다. -_-

그냥 '이스라엘이 너무 특별한 국가라 꼭~ 전부터 찾고 싶었어요!' 할 것을-.

때로는 빤히 보이는 거짓말이 선의로 통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은 시오니즘의 기치하에 지리적인 위치만 아랍권에 낑겨있는 셈이지,

생활방식이나 문화는 역시 완연한 서구의 그것이다.

물론 종교적 독실함과 개인적 특성, 집안 분위기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최소한 요한의 가족은 그랬다.

 

은근 바람둥이(>_<)인 요한은, 새로 사귄 여자친구를 오늘 처음 집에 데려왔다.

별다른 정식 소개도 없고, 요한의 여자친구와 요한의 가족들은 마치 구면인 양 친숙하게 식사와 담화를 즐긴다.

식사 후 휴식을 마치고 요한은 내가 묵을 방을 보여주러 2층으로 올라간다.

창문 너머로 지중해의 파도소리가 들리는, 나름 안락하고 애수서린 방이다.

 

- 불편한 거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말해. :)  초콜릿이랑 각종 스낵도 준비해 놨으니까 마음껏 먹고~ ^-^

 

친절한 요한은 맞은편 구석의 방으로 여자친구와 같이 들어간다.

오호~ 역시 개방적이다. 요한의 어머니는 안색 하나 안 변하고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 

 

 

 

당연한 말이지만, 같은 가족 내에서도 개인적 성향 차이는 천지차이.

그다지 유대교 전통(이게 솔직히 뭔지는 나도 지극히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다 -_-)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요한과는 달리, 요한의 형은 독실한 유대교 신자로, 코셔(kosher)라고 불리는 각종 유대교 규칙(금기?)을 지키는 데 지극히 철저하다. 머리에는 키파(뒷통수에 걸쳐쓰는 자그마한 유대교 모자)를 쓰고, 내가 보기엔 별 희한한 온갖 코셔를 철두철미하게 지킨다. (예를 들면, 오늘은 무슨 요일이니까 화장실을 사용하고 불을 켜 두고 화장실문을 닫지 말아줘- 등등)

 그래도 그나마 요한의 형은 하드코어 유대교 신자는 아니라고 한다. ㅡ_ㅡ  정말 하드코어 유대교 신자는 특별한 조리방법으로 조리된 코셔요리만 먹고, 또 어떤 코셔를 따르고 지키는 등, 엄청난 금욕생활을 고수한다고 한다. 하지만 종교분리된 사회에서 온 나같은 범인이 보기엔, 참으로 무지막지하고 피곤한 삶을 고수하는 것 같아 존경심과 동시에 두려움이 일기까지... ㅡ_ㅡ 

 우와, 가능성도 없지만 철저한 유대교 성향의 이스라엘 남자랑 결혼하면 삶 한 번 지대로 피곤하겠다 ㅠ_ㅠ

(근데 유대교는 유대교끼리만 결혼할 수 있지 않나?) 

 


요르단 강(River Jordan)

 

 

요한의 호의로 우리는 이튿날 아침 일찍, 멀리 시리아 경계의 골란고원으로 드라이브를 떠났다. 

(원래는 이스라엘 이후에 시리아를 갔다) 골란고원과 갈릴리 호수등을 거쳐 하이파로 돌아오는 일정.

사실 이스라엘이 국가 자체는 결코 큰 편이 아니나, 대중교통편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성지들을 찾아본다는 건 만만치 않다. 

물론 시간과 자금이 넉넉한 사람은 최북단의 골란고원부터 갈릴리, 나자렛,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사해와 마사다, 남쪽의 비루셰바까지 둘러볼 수 있겠지만, 경비가 빠듯했던 나로서는 요한이 아니면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골란고원은 일찌감치 포기했을 것이다.

수려한 경치 외에도 중동 전쟁 때 시리아로부터 빼았았다는 상징적 의미가 큰 골란고원.

지금도 시리아는 빼앗긴 골란고원을 보며 이를 갈고 있겠지만, 이제 골란고원은 이스라엘 시민들의 하이킹, 나들이 장소로 각광받고 있는 아이러니.  

 

 

꿀과 젖이 흐르는 약속된 가나안 땅, 천국갈 때 건너가리, 요(르)단 강~

 이게 바로 요단 강- ㅡ_ㅡ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 이후로, 이같은 뒷통수는 또 오랜만에 맞아본다. ㅠ_ㅠ

마침 바라나시를 떠올리는 소들마저 강 건너편에 대기 중 -_-

집앞 꽃밭을 연상시켰던 겟세마네 동산만큼이나 실망스러운 요단강이다. 

 

 

나들이 장소. 별로 물이 깨끗해 뵈지는 않는데 그냥 색깔만 그런가?

 

 

휴일이다 보니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많다.

 


골란 고원 (Golan Heights)

 

골란 고원의 협곡

 

 

벽의 총탄 자욱.

시리아와의 격렬한 전쟁 당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껌 기념바위-라고 하던데 나를 놀리느라 한 소리 같기도- -_-

하지만 실제로 (드럽게 -_-) 수많은 풍선껌을 붙여놓은 것처럼 보였다.

 

 

소수병력으로 몇 배에 달하는 아랍 연합군을 깡그리 깨부시고, 시리아부터 골란고원까지 뺏어낸 이스라엘이 어마어마하단 생각이 새삼 강해진다. 하긴, 이스라엘은 핍박받는 소수민족이란 굴레는 벌써 예~전에 벗어버리지 않았나.

 이미 미국사회까지 장악하고 있는 유태인 파워.

어찌어찌 응징을 피한 나치 전범을 귀신같이 색출해 재판에 회부하는 용의주도함이나, 팔레스타인과 아랍권에 대응하는 태도(주로 강경책으로 일관하는)를 봐도, 유대인의 저력이란 게 뭔가 있긴 있는 건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아마도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라없는 설움을 겪어본 나라니까. 온 민족이 흩어져 수천년을 살아야 했으니.

 

예루살렘의 '야드바셈'(유태인 학살 박물관. 이 얘기를 안 썼네 -_-) 박물관에는 유태인들이 역사시대를 거쳐 얼마나 갖은 핍박과 모욕을 당해왔는지 그래픽하게 전시해 놓았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발발을 전후해, 유럽의 유대인계 난민들을 가득 싣고 피난떠난 선박이 모든 국가에서 입항을 거절당해 여기저기 떠돌다 결국 사자의 아가리나 다름없는 유럽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여정엔 가슴이 아파왔다. 탑승자들 절대다수는 결국 나치의 손아귀 아래 힘없이 스러져갔다. 2차 대전의 발발을 예감하지 못한 채 유럽의 친지를 방문하러 갔던 텔아비브(현재 이스라엘의 수도)의 여성 얘기도 마찬가지. 그녀 역시 때마침 전쟁이 터져 아우슈비츠로 끌려간다.

 휴, 이런 예를 찾으려면야 한국전쟁만 해도 입 안 다물어지는 드라마들이 쌓이고 쌓였겠지만...

  

 그같은 수모와 굴욕의 역사를 겪었기에 더 단련되고 강해진 이스라엘 민족.

그리고 다이아스포라. 뿌리깊은 유대감. 유대교 전통은 그래서 더더욱 사그러들지 않는 것일 게다.

물론 오늘날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테러에 대한 (일부 과도한) 보복행위 등은 마치 과거를 망각한 가진 자의 횡포같이 보여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에도 복잡한 배후사정이 깔려있으리라 본다.  나의 이스라엘 친구는 이스라엘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옹호하면서 이스라엘 정부와 국민들은 싸그리 매도해 비난하는 것에 조심스레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후에 非 이스라엘 저널리스트의 조금은 색다른 시각을 취한 기사도 이메일로 보내주곤 했는데, 사실 그는 지극히 평범한 이스라엘 국민이었다. 어쩌면 그게 '보통의' 이스라엘 국민들의 공통된 반응에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세계가 모두 이스라엘의 행태를 비난할수록, 이스라엘 국민들만이라도 똘똘 뭉쳐야 한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배웠을 테니까. 

당면 이슈의 당위성 여부를 떠나서라도 말이다.

 이들에게도 '세뇌'란 표현을 써야 할까. 난 진정 모르겠다.

 

 

협곡 아래에서 수영과 일광욜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젊은이들.

보초서다 여자친구와 한 때를 즐기는 군기빠진 홍안의 군인도 있다. -_-

총은 옆에 잠시 세워두고 여자친구와 히히덕거리는 데 정신팔린 청춘.

 

요한에게, 만약 저 총 누가 훔쳐가면 어떻게 되냐고 물으니-

요한 왈, 저 군인아이는 남은 평생을 저렇게 히히덕거리며 살아가긴 그른 것이다- 는 대답. 

 

 

무슨 꽃이지?

 

 

별꽃(Star Flower)? ㅎㅎ

마음대로 이름지어 붙이기

 

 

요한과 요한의 여자친구, 나, 그리고 요한의 오랜 친구, 토니까지 이렇게 넷이 참여한 오붓한 나들이.

처음엔 토니가 같이 간다길래 속으로 반겼다.

커플 사이에 끼면 나만 불편하고 알게 모르게 어정쩡해 질 테니 -_-

요한보다 두 살 위인 토니는, 학업면에선 모범생인 요한과는 다르게 아주 살짜기 비전형적인 코스를 밟은 케이스.

고교졸업 후 열~라게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으로 미국과 유럽, 남아메리카 등을 몇 년간 떠돌아다니다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 또 열~라게 아르바이트를 해 곧 대학 학부과정에 신입생으로 진학할 예정이라 한다.

 

- 요한은 곧 졸업하는데 넌 이제 학부에 신입생으로 들어가?

 

- 상관없어. 이스라엘은 서구처럼 교육에 있어 나이제한 같은 건 없는 분위기거든.

  그리고 그 방랑과 방황끝에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걸 드디어 깨달았어. 자연과학을 공부할 거야. :)

 

 

골란고원의 수려한 폭포.

골란고원의 협곡 곳곳엔 연인들의 은밀한 장소로 제격인 곳들이 (천장은 뚫렸건만 -_-) 제법 쏠쏠하다.

 

 

나로선 토니같은 케이스를 환영, 아니, 존중하는 편이다.

오히려 멋모르고 아무 전공이나 택해 열의없이 학창시절을 보내고, 졸업하고 나서야 이 길은 내 길이 아니야, 깨닫고 느지막히 제 2의 학부를 시작하는 것보단 최소한 돈도 시간도 절약한 셈이잖아? (토니 말로는 세계를 떠돈 게 돈과 시간을 낭비한 '소모적' 개념이 아니었다고 하니 더더욱) 

 

누누히 생각하지만 사회에서 좀더 다양한 인생의 행로가 권장되고 또 용인돼야 한다고 본다.

토니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양산되고, 또 그를 받아들이고 편견없이 흡수할 수 있는 사회적 풍토와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한다. 

마찬가지로, 서구에선 흔한 패스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고교-대학 사이 또는 대학-사회진출 사이의 gap year 활용도 적극 찬성이다.

물론 한국적 풍토에서는 한계가 자명하지만-.

 

인생의 고정된 통과의례나 전형적인 코스 등에 대해 어려서부터 회의적이었다.

진정 원하는 것을 찬찬히 탐구해 볼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시간의 흐름에, 주위의 압력에 쫓겨 학교로, 취업으로, 직장으로, 결혼으로 내몰리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게 심히 안타까웠다. (마치 제 3자나 된 것처럼 말한다 ㅎㅎ)  6.3.3.4.2~ 식의 정규교육에 일찌감치 의구심을 품고 대안을 생각해보곤 했다.  개인에 따라선 얼마든지 중간 과정을 다른 방법으로 대신할 수 있고, 단축하거나 심지어는 거부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내게 인생은 오직 한 번인 걸. 일단 틀을 벗어나 보면, 목표까지 가는 길은 여럿이 있다는 게 보일 테니.

 학교같지 않은 이따위 학교는 다닐 필요가 없어-! 대학이 목적이라면 방법은 많은 걸?  무던히도 부모님 속을 썩였지만 진실은 진실이다. 그야말로 몇 가지 안 되는 진실 중 하나. 그리고, 이 여행도 광의적 의미에선 그와 맥을 같이 한다.

 

암튼, 토니, 화이팅!! 

 

 

오, 마침 무지개가 어린다 :)

.

.  

토니, 그래, 화이팅이었다 ㅡ_ㅡ

이젠 일행까지 뒷통수를 치는구나 ㅡ_ㅡ

 

우리는 폭포에 어린 무지개를 보며 그늘진 바위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나른한 바람과 새소리에 취해,  요한과 그의 여자친구는 점점 살가운 러브러브 모드가 된다.

물론 우리의 눈이 있기 때문에 눈에 띄게 진도를-_- 빼진 않지만, 민망할 정도로 꼭~~~~~~~~ 붙들고 떨어질 기미를 안 보인다.

좀 시시덕거리다가, 애정모드에 정신팔려있는 둘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켜주기로 했다.

 

- 먼저 절벽위 차를 세워둔 자리로 돌아가 이 helpless 연인들을 기다립세 -_-

 

사려깊은 토니와 나는 눈짓을 교환한다.

 

근데, 절벽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오르는 와중에, 토니가 슬그머니 작업을 건다. ㅡ_ㅡ

아니, 얘가 만난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이래?  >_<

내가 보기엔 아까 한 말도 그렇고, 아시아 여성에게 매력이라 하기도 뭐한 '대책없는 동경심'을 품은것 같다.

 

- 남미에서 사귄 내 여자친구한테는, 일본 교복 코스프레를 부탁하기도 했어 :)

 

헉, 아까 차에서 장난스레 나눈 농담이 뇌리에 스친다.

정말 진심이었단 말인가? @0@;;  아니, 이건 그럼 서양 오타쿠??!!!

영 불편한 데다 허허벌판에 둘만 있는 형국이다 보니 괜히 불안해진다. -_-

의도적으로 화제를 '서양 루져 오타쿠들' 쪽으로 돌려가며, 과격하게-_- 못을 박는다.

 

- 아~~~ 난 정말 동양여자들한테 어이없는 환상을 품은 늙수그레한 서양 오타쿠들 역겨워 죽겠어~~

  너무 뻔한 부류잖아, 안 그래??

  젊은 사람중엔 그런 케이스가 드문 것 같긴 하지만 여전히 짜증나, 어떻게 생각해? 너무 한.심.하잖아!!

 

오, 그랬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작업이 뚝! 그친다.

역시 오타쿠에 루져는 아니고 그냥 어정쩡한... (역시) 오타쿠인 듯? -_-

 

탁 트인 공터로 나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무렵, 토니가 덧붙인다.

 

- 보통 아시아 여자들은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피력하지 않던데, 넌  yes, no를 확실하게 얘기해서 오히려 편한 거 같아.

 

ㅡ_ㅡ 일리있는 얘기이긴 하지만,

야, 그럼 허허벌판에 둘만 있는 상황에서, 괜히 흐지부지하게 여지까지 주었다간 그 뒷감당을 어찌하라고-  >_<

특히 너같이 한 번 넘어가나 찔러나 보는 자식에겐 말이지!!

 

한참~후에 요한 커플이 차에 당도하자 온힘을 모아 마구마구 원망의 눈길을 쏘아준다.

도대체 왜이리 오래 걸려서 나를 불편하게 했냐구!  (그런데 진짜 뭐한 거지? -_-)

 


텔아비브로 향하는 야간열차 

 

 

요한의 할머니가 내 주신 입에서 사르르~ 녹는 아이스크림-쿠키. (겁나게 맛있다 @ㅅ@;;)

 

 

날이 어두워진다.

하이파로 돌아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배를 채우고, 우리는 잠시 혼자 사시는 요한의 할머니댁에 들렀다.

외롭지 않으시려나? 혼자 사는 데엔 뭔가 이유가 있겠지? 스스로 원하신다던가 하는? -_-

 

요한의 할머니는 귀여운 손자 친구들의 방문을 기뻐하며, 냉장고를 뒤져 케잌을 가져다 준다, 차를 끓인다, 부산스러우시다.

간단한 영어밖엔 하지 못하시지만, 그녀의 눈길과 미소, 제스쳐를 보며 나의 할머니와 다를 게 없다는 걸 느낀다.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 통하지 않는 언어로 미소를 띠곤 열심히 의사소통을 하시려 노력하는데 왠지 마음이 아팠다.

 

- 이리 오렴, 내가 사진들을 보여줄께.

 

할머니는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누다 자리에서 일어서신다.

우리가 할머니를 따라 안쪽 방으로 들어가자, 벽에 붙은 풍경이며 실사화, 초상화가 눈에 들어온다.

그 중엔 할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도 있다.

 

- 내가 스무살 때야. :)

 

수줍은 소녀같은 표정.

여성, 아니, 인간의 허영심은 이따금 온건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요한에게 들은 바로 따져보면 할머니는 2차 세계대전도 겪으셨을 텐데, 무사하셨구나. 별 고생은 안 하셨는지?

우리들을 배웅나오는, 혼자 사시는 요한의 할머니가 더욱 안쓰러워진다.

시간은 흐르고 세대는 바뀌어 가고... 너무나 무심해.

 

 

하이파에서 텔아비브로 향하는 열차 안.

 

 

갈릴리 호수를 지나 -시간이 부족해 언뜻 차창으로 바라봤는데, 이건... 먼발치에서 봐서 그런가, 아우라는 하나 없고 또다시 요단강과 겟세마네 동산의 뒷통수가 띵~ ㅡ_ㅡ- , 우리는 하이파를 향해 구불구불 오르막길을 향해 달렸다. 헤드라이트로 어둠을 비추고, 요한이 주파수를 맞춘 라디오로 빠른 템포의 록음악을 듣고, 노래를 따라부르며 이따금 핸들도 두드리고, 신났다. ^-^ 

 이 얼마만에 '함께' 맛보는 자유로움인가-

 

요한과 그 여자친구가 남쪽 비르셰바의 대학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우리는 토니에게 작별을 고하고 최신식 열차에 탑승한다.

나는 다른 이스라엘 친구집에 머물 요량으로 이스라엘의 첨단화된 수도, 텔아비브로,

요한 커플은 더 남쪽으로-.

 

진정한(?) 쥬이쉬 전통과 이스라엘 가정을 가까이서 느끼게 해 준 요한과 그 가족, 여자친구과 토니(-_-+)에게도 감사를...:-) 

 

출처 : 여자 혼자가는 여행
글쓴이 : halfmoonwish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