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의 대성전 뒤편으로 성모님의 무덤동굴과 사도들의 동굴 경당 (The grotto of the Apostles)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성모님 무덤동굴 정문 옆으로 담을 따라가면 사도들의 동굴 경당이 나온다.
사도들의 동굴경당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밤을 새우시며 기도하실 때 제자들에게,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 여기에 앉아 있어라(마태 26, 30)하신 장소로 ‘돌을 던지면 닿을만한 곳’이기도 했다. (루카 22,41)
전승에 의하면 이곳은 예수님께서 쉬시고, 기도하시고 제자들과 대화하기 위해 자주 들르시던 장소라고 한다. 동굴은 야산의 추운 밤공기를 피할 수 있을만큼 아늑했다.
동굴안 제대아래 양옆에는 슬픔과 두려움에 싸여 잠에 빠진(루카 22,45) 제자들을 묘사한 청동상이 놓여있었다.
예수님께 죽음의 위기가 다가오는 분위기를 제자들도 짐작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 ‘묻기조차 두려워하면서’ 애써 위험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예수님과 함께 겪어야할 고통을 직면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리라.
그래서 졸음으로 현실을 피하려던 게 아니었을까. 그런 제자들을 탓하지 않으시고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까.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하는" 스승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 제자들의 모습은 예수님을 선택해야 할 때에도 핑계와 합리화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내모습이 거기 있었다.
성모님 무덤성전
사도들의 동굴에서 나와 몇 걸음 떨어진 성모님 무덤동굴로 갔다.
일반적으로 성모님께서는 터키의 에페소에서 사도요한과 함께 살다가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예루살렘근처 올리브 산에 성모님의 무덤이 있다는 것은 의외였다.
이 장소는 성모님께서 게세마니동산 근처에서 돌아가셨다는 전승에 따라 2세기경에 처음으로 비잔틴시대때 지은 기념성당이라고 한다.
지금은 그리스 정교회와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공동 관리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유명한 예언자의 한 분으로 여기고 있어 예언자의 어머니인 성모마리아를 공경하는 신심이 있기 때문이다.
뾰족한 탑 꼭대기에 깃발이 펄럭이는 석조건물 정면에 있는 널찍한 계단은 성모님 무덤동굴성당으로 이어진다.
무덤동굴은 정교회 특유의 수많은 등과 성모님의 영광과 업적을 기리는 이콘들로 꾸며져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콘은 단연 "티히빈의 성모(The Tichvine Mother of God)”였다.
러시아 티히빈 지방의 전통적인 성모성화라고 하는데 머리를 약간 왼쪽으로 숙인 성모님은 왼손으로 아기 예수를 안고 오른손으로는 아기 예수를 가리키고 있다.
아기 예수의 오른손은 축복을 내리고 있고 왼손엔 지구본을 들고 있다.
성모 마리아는 영혼과 육신이 함께 승천하셨다는 교리에 따라 지하 오른쪽에 있는 성모님의 무덤자리는 빈 석관이 놓여있었다.
1187년에 이곳을 점령했던 이슬람교도들은 마리아를 “예언자(예수)의 지극히 복된 어머니”로 공경했기 때문에 지하 성당만은 파괴하지 않고 경배했기에 옛 모습이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성모님 무덤동굴과 제자들의 동굴경당, 이 두 장소는 그리스도교가 전파되기 시작하던 초세기에 예루살렘에 살던 유다 그리스도교인들의 마지막 신앙의 보루였다고 전해진다.
성모님 무덤동굴 정문 옆으로 담을 따라가면 사도들의 동굴 경당이 나온다.
사도들의 동굴경당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밤을 새우시며 기도하실 때 제자들에게,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 여기에 앉아 있어라(마태 26, 30)하신 장소로 ‘돌을 던지면 닿을만한 곳’이기도 했다. (루카 22,41)
전승에 의하면 이곳은 예수님께서 쉬시고, 기도하시고 제자들과 대화하기 위해 자주 들르시던 장소라고 한다. 동굴은 야산의 추운 밤공기를 피할 수 있을만큼 아늑했다.
동굴안 제대아래 양옆에는 슬픔과 두려움에 싸여 잠에 빠진(루카 22,45) 제자들을 묘사한 청동상이 놓여있었다.
예수님께 죽음의 위기가 다가오는 분위기를 제자들도 짐작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 ‘묻기조차 두려워하면서’ 애써 위험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예수님과 함께 겪어야할 고통을 직면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리라.
그래서 졸음으로 현실을 피하려던 게 아니었을까. 그런 제자들을 탓하지 않으시고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까.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하는" 스승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 제자들의 모습은 예수님을 선택해야 할 때에도 핑계와 합리화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내모습이 거기 있었다.
성모님 무덤성전
사도들의 동굴에서 나와 몇 걸음 떨어진 성모님 무덤동굴로 갔다.
일반적으로 성모님께서는 터키의 에페소에서 사도요한과 함께 살다가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예루살렘근처 올리브 산에 성모님의 무덤이 있다는 것은 의외였다.
이 장소는 성모님께서 게세마니동산 근처에서 돌아가셨다는 전승에 따라 2세기경에 처음으로 비잔틴시대때 지은 기념성당이라고 한다.
지금은 그리스 정교회와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공동 관리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유명한 예언자의 한 분으로 여기고 있어 예언자의 어머니인 성모마리아를 공경하는 신심이 있기 때문이다.
뾰족한 탑 꼭대기에 깃발이 펄럭이는 석조건물 정면에 있는 널찍한 계단은 성모님 무덤동굴성당으로 이어진다.
무덤동굴은 정교회 특유의 수많은 등과 성모님의 영광과 업적을 기리는 이콘들로 꾸며져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콘은 단연 "티히빈의 성모(The Tichvine Mother of God)”였다.
러시아 티히빈 지방의 전통적인 성모성화라고 하는데 머리를 약간 왼쪽으로 숙인 성모님은 왼손으로 아기 예수를 안고 오른손으로는 아기 예수를 가리키고 있다.
아기 예수의 오른손은 축복을 내리고 있고 왼손엔 지구본을 들고 있다.
성모 마리아는 영혼과 육신이 함께 승천하셨다는 교리에 따라 지하 오른쪽에 있는 성모님의 무덤자리는 빈 석관이 놓여있었다.
1187년에 이곳을 점령했던 이슬람교도들은 마리아를 “예언자(예수)의 지극히 복된 어머니”로 공경했기 때문에 지하 성당만은 파괴하지 않고 경배했기에 옛 모습이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성모님 무덤동굴과 제자들의 동굴경당, 이 두 장소는 그리스도교가 전파되기 시작하던 초세기에 예루살렘에 살던 유다 그리스도교인들의 마지막 신앙의 보루였다고 전해진다.
출처 : 베텔 하늘방
글쓴이 : 마르가릿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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