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이 되자 날씨가 더워졌다. 우리가 탄 차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평야지대로 들어서서
산간지방으로 이동했다. 약 30여분을 달렸을까 주변풍경이 눈 아래로 펼쳐지는 제법 높은
지대로 올라와서 멈췄다.
그곳은 다볼 산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차를 바꿔타는 정거장쯤 되는 곳으로 기념품상점이 있었다. 우리가 탈 적당한 차를 찾는 동안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눈 아래로 잡목이 우거진 숲들이 내려다 보였다.
멀리 다볼산 정상에 있는 예수님 변모기념성당의 탑머리가 보였다.
해발 588m의 다볼산,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의 산’이라고도 하는 다볼 산은 걸어올라갈수도 있지만 시간이 넉넉지 못한 우리는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몇몇 자매와 나는 일차로 봉고택시에 올라탔다. 허름한 봉고에는 이미 다른 나라의 순례자들이 몇 명 타고 있었다. 차를 타고 약 십여 분쯤 올라간 것 같다.
차에서 내리니까 주변공기가 시원했다. 널찍하게 닦은 터에 큰 건물들과 잘 가꾼 정원들이 있어서 산꼭대기에 올라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성당으로 걸어가는 길 양편으로 사이프러스나무 가로수가 시원하게 뻗어있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기념성당을 가운데로 오른편에는 이곳 성지를 관리하는 프란체스코
수도원 수도원이 있었다.
왼편으로는 비잔틴 시대의 수도원 폐허가 남아있는데 무너진 석조건물과 정원모습이 운치 있었다.
자매들이 모두 올라오자 가이드는 먼저 대성당옆 오른쪽에 있는 전망대로 우리를 데려갔다.
산 아래로 벚꽃 같은 화사한 꽃을 가득피운 나무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무성한 숲뒤로 이어지는 산자락이 보였다.
그곳에서 마르코복음 9장의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부분을 읽고 잠시 동안 복음이 말해주는 상황을 묵상했다.
그런 다음 가이드의 설명을 따라 산 아래로 펼쳐지는 북부 팔레스티나의 모습, 동쪽으로 요르단 계곡과 골란 지방, 남쪽으로 널따란 이즈르엘 평야와 산악지대, 서쪽의 나자렛과 가르멜산,
북쪽으로 갈릴래아 산악지대를 둘러보았다.
지명이나 지역을 모두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구약시대 때부터 중요한 의미가 있는 다볼 산의 위상을 대충 이해했다.
다볼 산은 이싸갈, 납달리, 즈블룬의 경계가 되는 지역으로 구약시대때 가나안족들이 섬기던 바알신전이 있던 곳이었다(호세 5,1 참조).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열두 지파가 땅을 나눌 당시 다볼 산은 즈불룬, 이싸갈파, 납달리 지파 사이의 중요한 경계가 되었다고 한다. (여호 19,10~19).
또 여 예언자 드보라는 다볼 산에서 사람들을 모아 이즈르엘 평야에서 가나안 족과의 대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판관 4~5장).
신약시대에 다볼 산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가 이루어진 전승 이외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복음전파 사명을 주시면서 제자들을 파견하신 곳(마태 28,16~20)이라고도 전해진다.
이렇듯 신구약에 걸쳐 중요한 의미를 지닌 다볼 산은 4세기경부터 그리스도교 순례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하여 ‘초막 셋’을 상징하는 커다란 성전이 세워졌다.
그 성전을 614년 페르시아군 이 무너뜨렸다. 1100년경에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소유가 되었다가
십자군의 패망과 더불어 살라딘 군에 의해 다시 폐허가 되었다.
1229년 독일 황제가 다마스쿠스와 평화우호조약을 맺었지만 1263년에 다마스쿠스 황제는
다시 다볼산에 있던 그리스도교의 모든 건물을 부수고 그리스도인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그로부터 4백년 후인 1931년경에야 프란체스코회가 회교 군주의 허락을 얻어 상주하게 되고
그리스도인들의 순례가 자유롭게 되었다.
우리는 전망대에서 내려와 예수의 거룩한 변모 기념 성전으로 들어갔다. 현재의 이 성당은
1924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성당안은 외부의 밝음을 가라앉혀주는 차분한 는낌이었다. 이층의 중앙제대벽에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장면을 표현한 모자이크화가 있었다. 중앙제대 양편으로 모세기념경당,
엘리야 기념경당이 있다.
아래층의 중앙제대는 윗층의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기념경당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둥근 아치형의 창은 불멸을 상징하는 공작을 그린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있다.
공작의 활짝핀 날개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투사하며 아름답고 고고한 기품을 풍겼다.
순례자들은 아치 양편에 놓인 의자에 앉아 둥근 천장화를 볼수있다. 그곳엔 예수님의 탄생,
어린양이신 예수, 부활하신 예수, 성체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찬미하며 경탄하는 천사들의 모습을 그린 멋진 그림들을 통해 구원자 예수님의 여러 면을 묵상할 수 있었다.
어린시절 예수님이 나자렛에서 사실 때 다볼 산에 여러차례 올라가셨다는 글을 본적이 있다.
다볼산위에서 예수님은 산 아래로 펼쳐지는 평야를 바라보면서 요셉과 마리아가 들려준
구약의 이야기를 기억하시면서 점차로 이스라엘 민족 안에 이루신 하느님 역사의 완성을
위해 파견된 자신의 신분을 의식해 나가시지 않았을까.
또 예수님께서 수난을 앞두고 제자들이 믿음을 잃지 않도록 하시기 위한 발현장소를 다볼 산으로 정하신것은 신구약을 합하여 이스라엘민족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곳임을 전제로 하신
것이었을 것이다.
성당에서 나와 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오는데 현지 어린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약간의 긴장이 드러나는 표정을 하고
서성이는 한국청년이 있었다. 경북 포항에서 혼자 성지순례를 온 청년이라는데 우리 신부님과 가이드와 인사를 하고 산을 내려갔다.
차가 없는데 어떻게 여행을 다니는지 궁금했다.
산간지방으로 이동했다. 약 30여분을 달렸을까 주변풍경이 눈 아래로 펼쳐지는 제법 높은
지대로 올라와서 멈췄다.
그곳은 다볼 산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차를 바꿔타는 정거장쯤 되는 곳으로 기념품상점이 있었다. 우리가 탈 적당한 차를 찾는 동안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눈 아래로 잡목이 우거진 숲들이 내려다 보였다.
멀리 다볼산 정상에 있는 예수님 변모기념성당의 탑머리가 보였다.
해발 588m의 다볼산,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의 산’이라고도 하는 다볼 산은 걸어올라갈수도 있지만 시간이 넉넉지 못한 우리는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몇몇 자매와 나는 일차로 봉고택시에 올라탔다. 허름한 봉고에는 이미 다른 나라의 순례자들이 몇 명 타고 있었다. 차를 타고 약 십여 분쯤 올라간 것 같다.
차에서 내리니까 주변공기가 시원했다. 널찍하게 닦은 터에 큰 건물들과 잘 가꾼 정원들이 있어서 산꼭대기에 올라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성당으로 걸어가는 길 양편으로 사이프러스나무 가로수가 시원하게 뻗어있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기념성당을 가운데로 오른편에는 이곳 성지를 관리하는 프란체스코
수도원 수도원이 있었다.
왼편으로는 비잔틴 시대의 수도원 폐허가 남아있는데 무너진 석조건물과 정원모습이 운치 있었다.
자매들이 모두 올라오자 가이드는 먼저 대성당옆 오른쪽에 있는 전망대로 우리를 데려갔다.
산 아래로 벚꽃 같은 화사한 꽃을 가득피운 나무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무성한 숲뒤로 이어지는 산자락이 보였다.
그곳에서 마르코복음 9장의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부분을 읽고 잠시 동안 복음이 말해주는 상황을 묵상했다.
그런 다음 가이드의 설명을 따라 산 아래로 펼쳐지는 북부 팔레스티나의 모습, 동쪽으로 요르단 계곡과 골란 지방, 남쪽으로 널따란 이즈르엘 평야와 산악지대, 서쪽의 나자렛과 가르멜산,
북쪽으로 갈릴래아 산악지대를 둘러보았다.
지명이나 지역을 모두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구약시대 때부터 중요한 의미가 있는 다볼 산의 위상을 대충 이해했다.
다볼 산은 이싸갈, 납달리, 즈블룬의 경계가 되는 지역으로 구약시대때 가나안족들이 섬기던 바알신전이 있던 곳이었다(호세 5,1 참조).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열두 지파가 땅을 나눌 당시 다볼 산은 즈불룬, 이싸갈파, 납달리 지파 사이의 중요한 경계가 되었다고 한다. (여호 19,10~19).
또 여 예언자 드보라는 다볼 산에서 사람들을 모아 이즈르엘 평야에서 가나안 족과의 대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판관 4~5장).
신약시대에 다볼 산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가 이루어진 전승 이외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복음전파 사명을 주시면서 제자들을 파견하신 곳(마태 28,16~20)이라고도 전해진다.
이렇듯 신구약에 걸쳐 중요한 의미를 지닌 다볼 산은 4세기경부터 그리스도교 순례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하여 ‘초막 셋’을 상징하는 커다란 성전이 세워졌다.
그 성전을 614년 페르시아군 이 무너뜨렸다. 1100년경에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소유가 되었다가
십자군의 패망과 더불어 살라딘 군에 의해 다시 폐허가 되었다.
1229년 독일 황제가 다마스쿠스와 평화우호조약을 맺었지만 1263년에 다마스쿠스 황제는
다시 다볼산에 있던 그리스도교의 모든 건물을 부수고 그리스도인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그로부터 4백년 후인 1931년경에야 프란체스코회가 회교 군주의 허락을 얻어 상주하게 되고
그리스도인들의 순례가 자유롭게 되었다.
우리는 전망대에서 내려와 예수의 거룩한 변모 기념 성전으로 들어갔다. 현재의 이 성당은
1924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성당안은 외부의 밝음을 가라앉혀주는 차분한 는낌이었다. 이층의 중앙제대벽에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장면을 표현한 모자이크화가 있었다. 중앙제대 양편으로 모세기념경당,
엘리야 기념경당이 있다.
아래층의 중앙제대는 윗층의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기념경당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둥근 아치형의 창은 불멸을 상징하는 공작을 그린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있다.
공작의 활짝핀 날개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투사하며 아름답고 고고한 기품을 풍겼다.
순례자들은 아치 양편에 놓인 의자에 앉아 둥근 천장화를 볼수있다. 그곳엔 예수님의 탄생,
어린양이신 예수, 부활하신 예수, 성체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찬미하며 경탄하는 천사들의 모습을 그린 멋진 그림들을 통해 구원자 예수님의 여러 면을 묵상할 수 있었다.
어린시절 예수님이 나자렛에서 사실 때 다볼 산에 여러차례 올라가셨다는 글을 본적이 있다.
다볼산위에서 예수님은 산 아래로 펼쳐지는 평야를 바라보면서 요셉과 마리아가 들려준
구약의 이야기를 기억하시면서 점차로 이스라엘 민족 안에 이루신 하느님 역사의 완성을
위해 파견된 자신의 신분을 의식해 나가시지 않았을까.
또 예수님께서 수난을 앞두고 제자들이 믿음을 잃지 않도록 하시기 위한 발현장소를 다볼 산으로 정하신것은 신구약을 합하여 이스라엘민족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곳임을 전제로 하신
것이었을 것이다.
성당에서 나와 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오는데 현지 어린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약간의 긴장이 드러나는 표정을 하고
서성이는 한국청년이 있었다. 경북 포항에서 혼자 성지순례를 온 청년이라는데 우리 신부님과 가이드와 인사를 하고 산을 내려갔다.
차가 없는데 어떻게 여행을 다니는지 궁금했다.
[작성자 / 성바로딸 수도회 / 노래나무]
출처 : 베텔 하늘방
글쓴이 : 마르가릿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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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밖의 풍경 # > ** 내 영혼의 쉼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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