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속으로.. #/** 스토리&여운*

**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

flower1004 2006. 10. 16. 20:38


당신이 안 보이는 날.
울지 않으려고 올려다 본 하늘 위에
착한 새 한 마리가 날으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향한 내 무언(無言)의
높고 재빠른 그 나래짓처럼.



당신은 내 안에
깊은 우물 하나 파 놓으시고
물은 거저 주시지 않습니다.
찾아야 주십니다.
당신이 아니고는 채울 수 없는 갈증.
당신은 마셔도 마셔도 끝이 없는 샘,
돌아 서면 즉시 목이 마른 샘....
당신 앞엔 목마르지 않은 날 하루도 없습니다.



이 가을엔
안팎으로 많은 것을 떠나보냈습니다.
원해서 가진 가난한 마음 후회롭지 않도록
나는 산새처럼 기도합니다.
시(詩)도 못쓰고 나뭇잎만 주워도 풍요로운 가을 날,
초승달에서 차 오르던 내 사랑의 보름달도
어느새 다시 그믐달이 되었습니다.



바다 위에 우뚝 솟은 섬은 변함이 없고
내 마음 위에 우뚝 솟은 사랑도 변함이 없습니다.
사랑은 밝은 귀,
귀가 밝아서
내가 하는 모든 말 죄다 엿듣고 있습니다.
사랑은 밝은 눈,
눈이 밝아서 내 속마음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조리 읽어 내립니다.
사람은 늙어 가도 늙지 않는 사랑.
세월은 떠나가도 갈 줄 모르는 사랑.
나는 그를 절대로 숨길 수가 없습니다.



잊혀진 언어들이
어둠 속에 깨어나 손 흔들며 옵니다.
국화빛 새 옷 입고,
석류알 웃음 물고 가까이 옵니다.
그들과 함께 나는 밤새 화려한 시를 쓰고 싶습니다.
찔레 열매를 닮은 기쁨들이 가슴 속에 매달립니다.
풀벌레가 쏟아 버린
가을 울음도 오늘은 쓸쓸할 틈이 없습니다.



당신이
축복해 주신 목숨이
왜 이다지 배고픕니까.
내게 모든 걸 주셨지만 받을수록 목마릅니다
당신에게 모든걸 드렸지만 드릴수록 허전합니다.
언제 어디에서 끝이 나겠습니까?



가을이 저물까 두렵습니다.
가을에 온 당신이 나를 떠날까 두렵습니다.
가을엔 아픔도 아름다운 것.
근심으로
얼굴이 핼쓱해져도 당신 앞엔 늘 행복합니다.
걸을 수 있는데도 업혀가길 원했던 나
아이처럼 철없는
나의 행동을 오히려 어여삐 여기시던 당신...
한 켤레의 고독을 신고
정갈한 마음으로 들길을 걷게 하여 주십시오.



여기 제가 왔습니다.
언제나 사랑의 원정(園丁)인 당신.
당신이 익히신 저 눈부신 열매들을
어서 먹게 해 주십시오.
가을 하늘처럼
높고 깊은 당신 사랑의 비법을 들려 주십시오.
당신을 부르는 내 마음이
이 가을엔 좀더 겸허하게 하십시오.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