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Lebanon)
고민고민하다 시리아에서 곁가지로 다녀온 레바논.
중동답지 않은 중동국가, '동방의 파리'라고 불리는 수도 베이루트,
개방되고 세련된 여자들과 지중해 해안도시들, 발벡 유적과 바블로스, 만연한 프랑스풍과 널리 쓰이는 불어...
은근히 레바논에 동경을 품는 사람들(특히 여자)이 많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내 레바논 여행에 불을 지핀 가장 큰 요인은 다름아닌 '예언자(The Prophet)'의 저자이자 레바논 출신 작가, '칼릴 지브란' 이었다.
그래서 베이루트의 명품관을 아이쇼핑한다거나, 지중해를 바라보며 우아하게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거나,
이런 사치성 계획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방문한 곳도 '베이루트', '트리폴리', 그리고 지브란의 고향인 '브샤레' 가 전부.
(레바논 자체가 한국 경기도 면적 정도로 무척 작다)
보통 단체교통편을 섭외해 관광이 이루어지는 사이다, 시돈, 티레 등의 (이스라엘 폭격의 참상을 엿볼 수 있는) 남부지역과,
이란의 페르세폴리스와 비슷하단(-_-) 이유로 띵겨넘은 발벡 유적등이 아쉽긴 하나,
스케쥴이 빠듯했다는 구차한 핑계로 후다닥 땡겨버린 레바논 일정.
시리아-레바논 국경을 넘으며.
내가 탄 택시.
참고로 레바논은 무비자지만, 시리아에서 일단 레바논으로 출국한 후 다시 시리아로 들어오려면,
시리아 비자(US$30)를 다시 구입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낭비가 있다.
레바논 국경에 가까워지면서, 완만한 경사로 높이 솟은 산과 등성이에 드문드문 남아있는 흰 눈(雪)이 눈에 들어온다.
레바논의 산간지역은 스위스의 알프스를 연상시킬 정도로, 겨울철이 되면 각광받는 스키장이기도 하다.
별다른 대기시간 없이 한 달간 머물 수 있는 입국허가를 받고 드디어 레바논 땅으로 들어선다.
푸르른 지중해를 따라 달리는 차창 밖으로, 낮잠을 청하는 검은 얼룩소와 풀섶에 돋아난 노오란 데이지꽃이 무리지어 나를 반겨준다.
헤즈볼라의 對 이스라엘 테러와 보복폭격으로 희생된 민간인들의 참상을 신문지상에서 접한지가 오래 전인 양,
레바논의 풍경은 마냥 여유롭고 따스하게 햇살속에 녹아있다.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를 똑 닮은 (그러나 근처에도 미치지 못하는) 베이루트의 짝퉁 아야 소피아.
모스크와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등 다양한 종교들이 공존하는 베이루트 시.
참고로,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긁어온 [레바논의 최근 정세]
(레바논은 여행 제한 국가로 규정되어 있다. 다행히 내가 레바논을 방문했을 당시는 그나마 긴장이 완화돼 있었다-)
- 레바논은 각 정.종파간 권력 분점 형태인 트로이카 정치체제(대통령은 기독교 마로나이트,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회교 시아파만 할 수 있도록 규정. 기타 정부조직 등에도 정.종파간 분배를 통한 균형유지)를 수립, 불안한 정치적 동거를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 레바논은 내부적으로는 정․종파간의 갈등이 상존하고 외부적으로는 이스라엘, 시리아, 이란 등 중동국가와 미국, 유럽 등 여러 서방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역으로서 국내외적인 분쟁, 테러, 납치 등 위험이 상존하며, 헤즈볼라가 대이스라엘 항전 명목으로 공공연히 무기를 보유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레바논 내에는 베이루트를 포함한 전국에 12개의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가 산재하여 40여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거주하고 있고 이슬람 과격 테러단체의 은거지가 되고 있는 등 구조적으로 항상 위험과 불안이 잠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2008.5월 헤즈볼라 사설통신망 조사 및 공항 경비대장 경질 결정에 대한 야측의 반발로 촉발된 레바논 여.야 지지세력간 유혈충돌로 65명의 사망자와 수백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아랍 국가들의 긴급 중재로 2008.5.21 카타르 도하에서 레바논 여.야 정파간 주요 쟁점에 대하여 합의함. 이에 따라 Sleiman 제 12대 대통령도 취임(5.25)하였고, 정파간 안배에 따른 새로운 내각도 구성(7.16)되었으며, 이스라엘과 포로교환(7월), 시리아와 외교관계 수립(10월) 등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 2009년 6.7 국제적인 관심사속에 총선이 개최되었고, 현 집권 연합인 “March 14"이 야권인 ”March 8"을 누르고 총선에서 승리하였으며, Hariri “미래 운동당”대표가 차기 총리로 지명됨에 따라, 여야간 거국 내각 구성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 레바논 총선후, 일단 평화롭고 조용한 정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레바논 및 중동 정세의 특성상 이스라엘-헤즈불라간 사소한 사건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항상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한 최근 레바논내에서 Al-Qaeda 연계 테러 조직이 체포되었고, 레바논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 등지에서도 정쟁이 불안한 바, 여행자들은 안전에 각별한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론은 '타이밍'.
운 좋게 레바논을 갈 수 있었던 것도, 번번히 파키스탄에 소요가 일어나 파키스탄 입국이 끝내 좌절된 것도, 결국엔 타이밍 ㅠ_ㅠ
(파키스탄 덕분에 인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집트로 향해야 했다. 애초 계획했던 완전한 유라시아 (only) 육로횡단이 좌절된 셈)
민들레나 해바라기는 아닌 것 같고... 데이지?
레바논에서 자주 본 꽃들 :)
대통령 선거인가?
방방곡곡에 대통령과 전 대통령의 사진이 휘날리는 시리아 식 공산주의의 유산은 아닌 듯 한데.
너무 어려워... ㅠ_ㅠ
'세계의 화약고'라는 치욕스런 별명을 지닌 중동 지역을 여행하며,
갈등의 근원과 배후의 음모, 각국의 입장과 역사적 맥락에 주의를 기울여보려 하지만 도리어 머리만 복잡해진다.
아프리카, 아시아 제 3국들이 흔히 그렇듯 자주권 상실과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권다툼과 농간, 지정학적 위치가 주원인인 듯 한데,
분석논문은 숱하게 쌓여있고 국가간 중재도 숱하게 이루어지지만, 어마어마한 갈등을 봉합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시리아 역시, 이스라엘에게서 골란 고원을 되돌려받지 않는 이상 극도의 적대감은 변치 않을 테고,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골란 고원을 돌려줄 리는 절대 없고,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무장투쟁을 완전히 접지는 않을 테고,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도발을 묵인하지는 않을 테고...
서로 묵은 상처를 후벼파는 악순환인 건 당사국들이 나같은 이방인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테지만,
말 그대로 '피치 못할' 악순환이라는 게 문제의 핵심이겠지.
중동은 그래서 차이와 슈와르마, (이따금) 끈적한 남정네들의 성추행과 활기찬 수크, 인심좋은 현지인들 외에도,
마음 한 켠에 내리누르는 중압감 때문에 여러모로 달콤씁쓸함을 맛보게 되는 곳이다.
추천받은 인기 게스트하우스가 마침 풀이라, 이웃 호텔에 짐을 풀었다.
주인은 로비 소파에서 싸게 묵게 해 주겠다고 극구 잡아댔으나 로비라니, 나도 잠 좀 제대로 자 보자...
차선책이었던 호텔도 깔끔하고 안락했다. 밤에는 방에 설치된 TV로 주구장창 BBC만 봤다. -_-
메인로드를 따라 시계탑을 거쳐 산책에 나서본다.
운치있고 세련된 건물들과 고급 상점들이 눈에 띄지만, 불안한 정치상황 때문인지 관광객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방문한 날짜와 시간 때문인지 문을 열지 않은 상점들도 상당수.
계엄령이라도 내린 마냥, 도시 구석구석이 폐쇄되어 접근불가로 통제돼 있다.
도시 여기저기엔 전쟁과 카오스의 잔해가 여기저기 널려있다.
(그러나 그 옆에 삐까번쩍한 고급호텔들과 빌딩들은 어찌 설명할 셈? -_-)
소총을 든 무장한 군인들도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무심코 구도가 마음에 들어 군인들 주변의 건물과 하늘을 사진에 담았다가, 군인 한 명이 다가와 카메라를 보여달라고 한다.
사진들을 보더니 아무 문제 없다고, 실례를 용서해 달라며 보내준다. (에효 ㅡ3ㅡ;;)
지중해를 끼고 바(bar)와 까페등이 늘어선 베이루트 도시 자체는 아름답고 풍요로움이 넘쳐나지만,
특유의 긴장된 분위기와 폐쇄된 구역들로 마음이 편치는 않다.
길가의 낙서와 벽의 그래피티들.
그래도 혼자서 베이루트 곳곳을 헤집고 잘 다닌다. -_-
벽의 그래피티는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 역시 정치적인 메시지로만 보이는 것은, 내 식견이 좁은 탓인가, 보고 들은 것이 뻔한만큼 세뇌를 당해서일까.
락(rock)그룹을 연상시키는 그로테스크한 옷차림에 메탈계열 악세사리, 짙은 눈화장을 한 호리호리한 젊은이들 몇과 마주쳤다.
이른바 중동풍 외모가 아닌, 핏기없는 안색과 조각같이 날카로운 얼굴이 깊은 인상을 지운다.
지중해 건너편으로 보이는 집들...
종이로 접은 작은 학들을 흩뿌려 놓은 것 같다.
베이루트 시민들의 한적한 저녁시간과 휴식.
한쪽에선 아이스크림 장수의 트럭에서 끊임없이 경쾌한 멜로디가 울려퍼지고...
어째... 레바논에 혼자 온 나는 또 외로워진다. ㅠ_ㅠ
끝내주게 아름다운 미녀들이 많았던 베이루트 (사진과는 싱크로율이 떨어지지만 -_-).
헤잡이 무엇이냐, 끈나시에 미니스커트로 한 글래머한 몸매를 자랑하는 쭉쭉빵빵 미녀들이 상당수다.
잘 빠진 오픈스포츠카에 남자친구와 앉아, 썬글라스 폼나게 끼고 담배를 피우며 시내를 질주하던 아가씨는 죽여줬음 @0@
고양이는 어디에나 -_- 난 강아지가 좋은데;;
짝퉁 아야 소피아 근처에서 스케이트보드 연습에 여념이 없던 젊은이들,
길을 묻는 내게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런 영어발음으로 친절히 알려주었다.
세련된 옷차림과 동서양의 장점만 뽑아만든 듯한 미모를 자랑하던 때깔고운 선남선녀들...
쇼핑 거리와 유럽풍 노천까페, 무장한 군인들과 초토화된 구역들...
베이루트는 모순과 공존의 도시였다.
그래도 여행자 물가 자체는 저렴한 편에 다른 중동국가에 비해 의사소통도 수월해 여행하기는 쉬운 편이다.
지하철이나 공공버스 등 대중교통 시스템은 약한 것 같지만-.
도미토리에선 말한대로 주구장창 룸에 설치된 TV에서 BBC만 시청했다. -_-
마침 개념있고 사교적인 미국남자애가 있어 얘랑 놀면 되겠다, 생각했었는데,
약속이 돼 있다던 방글라데시계 미국인 친구가 뒤늦게 호텔에 체크인하자 나는 그냥 버려버리더라는 -_- (의리없는 자식)
잠시 미국애랑 야참을 먹으러 갔을 때도 마찬가지 수모를 당했다.
마침 스리랑카에서 이주해 와 10년 넘게 베이루트에서 노동자로 생활하고 있다는 부부를 만났는데,
사교적이고 친절한 이 부부, 길을 알려주러 동행하면서 나는 완전 아웃 오브 안중이고 미국애한테만 말을 건다.
왜 난 이리도 아웃 오브 안중이지? ㅠ_ㅠ
베이루트의 나이트라이프와 즐거움을 만끽할 의욕을 잃고, 세계동향을 다루는 BBC 월드뉴스만 줄창 보다 잠이 든다.
'#(레바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레바논] 브샤레_ 칼릴 지브란의 고향과 삼나무숲 (0) | 2010.02.19 |
---|---|
[스크랩] [레바논] 트리폴리_ 서구우월주의자와 한판 뜨다 & 달갑잖은 딜레마 (0) | 2010.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