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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키는 대로 주절주절 [이란_#2]

flower1004 2010. 2. 19. 16:19

 

#  역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먹거리' 에 대한 얘기를 빠뜨릴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 것*

사실 단정적인 결론내기를 저어하는 터라, 이렇게 쓰면서도 내가 너무 독선적이 아닌가 자문했는데, 실제가 그런 걸 어쩌라구-.

-_- 특히 태국이나 중국, 한국 음식의 다양하고 현란한 풍미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라면, 이란(그 외 시리아, 요르단 등 중동국가

들)의 음식들은 질적/양적 측면에서 너무나 심심하고 창조성이 부족하다.

 

 론리 플래닛엔 친절하게도 *케밥 쇼크*를 주의하라고 나와있다. 직접 제대로 된 현지가정 초대를 경험해 보면 또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예의 내가 그랬듯 널리고 널린 허름한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은, 그 범주가 수프, 꼬챙이에 끼운 케밥, 얇고 너덜너덜한 걸레빵(?), 샐러드, 아라빅 쌀, 그리고 이따금 이 모든 걸 빵에 두드려 끼워넣어 만든 샌드위치(햄버거)를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메뉴판도 크게 도움 안 됨.

거기에 알코올이 함유된 음료는 일체 판매가 금지돼 있어, 웬만한 주당들의 경우는 이란여행을 못 배겨내는 건 물론이고, 아니면 울며 겨자먹기로 아기들 취향의 달달한 과일 음료로 버텨내야 한다. 게다가 주구장창 마셔대는 예의 차(tea)는 어찌나 단지... 그나마 설탕을 따로 서빙하면 다행이랄까. (물론 일명 '무알콜 (non-alcohol) 음료' 라고, 어설프게 맥주를 흉내낸 탄산음료가 있긴 하다(i.e. 바바리아). 그러나 마셔본 사람들에 의하면 이는 눈 가리고 아웅, 언 발에 오줌누기, 감질맛만 키우기, 내지는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ㅠ_ㅠ)

 

 그래서, 이란을 여행하며 즐거움만큼 괴로웠던 것들을 리스트로 뽑아보자면,

 

1) 먹을 음식이 없다

2) 헤잡과 긴소매옷 (이건 익숙해지면 나름 괜찮은 듯도)

3) 이따금 변태 남자들

4) 양금이 타령 (대장금이 이란에서 인기 있다는 풍문(ㅎ)이 과장인 줄 알았는데 진심이란다. 이란인들은 장금이를 '양금이' 라고 부른다. 그래서 마치 한국인이면 누구라도 이영애라도 되는 마냥(땡큐~) 양금이, 양금이~ @0@

고맙긴 한데 계속 들으면 지겹다. (그래도 대장금 외 한국산 정통사극들이 이란 TV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문화적/역사적/지리적 괴리감을 보유한 이란인들이 그러한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공감하고, 감동받는다는 사실에 우쭐하고 뭉클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랍식 밥과 수프와, 빵과 뭐 기타 등등. -ㅅ-

 

 

그래도 수프는 제일 먹을 만하고 쉽게 질리지 않는다. (내 기준)

 

 

 아울러 어떤 사람들은 이란인들 특유의 환대와 외국인에 대한 관심과 호의에 (+)가 아닌 (-) 점수를 주기도 한다. 처음에는 고맙게 여기다가도, 본의 아니게 관심의 표적으로 떠오른 데 대해 당혹함을 느끼고, 종종 사생활이 침해되는 것에 대해 '제발 날 좀 내버려 둬~ @0@', 이같은 형편이 되는 것이다.

 

 

이란 야간 침대 열차. 6인실.

이란은 기름값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싸다.

그래서 10시간을 호가하는 장거리 버스 요금이 배낭여행자 기준에도 큰 부담이 안 된다.

버스시스템이 워낙 잘 돼 있어 웬만해선 기차를 이용하지 않는데, 쉬라즈-테헤란 구간은 기차를 탔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같은 칸의 이란 할머니, 아주머니, 젊은 아가씨들의 세심한 배려와 챙겨주기 덕에 기쁨 두 배 ㅎ

 

 

테헤란의 배낭여행자들의 집결지로 유명한 모샤드 호텔.

오후의 망중한을 즐기며.

(앞의 건물은 자동차 용품 판매센서? 기아와 현대, 오...)

 

 

야즈드.

시장이 파한 후. 

 

 

이란 제 1로 손꼽히는 고대 페르시아의 영광을 엿볼 수 있는 도시, 에스파한.

분수와 행락객, 눈 휘둥그레지게 화려하고 디테일한 모스크들이 어우러진 이맘광장.

 

 

중간중간 조금은 언밸런스해 보이는 서양식 마차도 다니고,

가족 단위의 이란 시민들은 잔디에 앉아 단란한 한 때를 보낸다.

저 곳은 지금도 저 모습이겠지... ㅠㅠ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와중에도 드문드문 절제미가 엿보이는(?) 모스크  

 

 

 

에스파한의 시오세 다리.

다른 많은 곳들처럼, 이 곳도 석양 무렵이나 해 진 후가 더욱 아름답다.

 

 

 

#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여행이 주는 진정한 선물은, 두드러지는 이국적 풍광이나 유명 관광지 순례가 아니라, 다양한 국적/문화/배경을 지닌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그 경험, 인간 대 인간으로서 나누는 소통과 이해의 과정, 그리고 그를 통해 얻는 자신의 발견과 톨레랑스의 정신이라고-.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란은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이란의 국민과 정치, 즉 사람을 이해하는 데 대한 소망과 부담이 그만큼 컸던 곳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이슈와 내 입장을 정리해야 하는 무언의 부담감에 마음이 무거웠던 것처럼)

 

 더욱 두렵고 염려해 마지 않았던 것은, 여행이 자칫 피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데 대한 우려였다.

솔까말 아무리 리서치와 학술적 목적의식으로 팽배한 *여행*이라 해도, 학회나 유학, 직장생활을 위해 타국에 간 것이 아닌 이상, 여행은 여행으로서의 한계를 지니기 십상이다. 뿌리없이 부유하는 여행자로선, 십중팔구 그 사회를 심도있게 이해하거나 꿰뚫어보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소리. 특히 교류하는 현지인들의 폭이 저가 숙소 운영인, 재래시장 상인들이 대부분인 가난한 배낭여행자의 입장에선, 그 제약이 더욱 분명해진다. 막말로, 현지언어는 커녕 영어도, 현지에 대한 사전지식도, 문제의식도 부족한 상태에서, 몇몇 현지인들과 뻔한 농담따먹기 하고 미소 좀 주고받았다고 해서 감정적 만족감 이외의 것을 얻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어불성설이란 얘기.

 

물론 모든 *여행*이 그렇게 어렵고, 부담스럽고, 세속적인(?) 부류로 재단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지 스쳐가는 아웃사이더로서의 정체성에 회의가 든다면, 여행 내내 새로운 먹거리들을 맛보며 기념품 가게나 돌며 카메라 셔터나 눌러대며 소일하는 데 조금 싫증이 난다면-  최소한 내가 방문하고 있는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로서 약간의 사전 리서치나 그 외 적극적인 노력을 하면 더 알찬 여행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그런 노력이 부족했기에, 허구한 날 먹거리 불평이나 해대고 덥다고 헤잡에다 화풀이하고 느끼한 변태들 욕이나 하면서 단세포 인간으로 지냈던 것 같아서 아쉽기만 하다. 

 

 

장거리 버스 차창 너머로 광대한 사막에 해가 진다.

 

 

한국이나 일본, 중국등의 차 문화와는 달리, 이란 사람들은 차에 달디 단 설탕을 듬뿍 타 마신다.

러시아나 중동에서처럼. 그래도 다른 중동권에 비해 이란 여자들 중엔 비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테헤란의 버스 터미널.

공항, 기차역, 버스 터미널, 페리 터미널.. 모든 종류의 교통 근거지는 항상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마력이 있다.

 

 

# 이란은 여러모로 모순이 공존하는 곳이다. 사실 인간이 사는 모든 곳이 아이러니 자체이겠지만.

철의 장막에 가려진 듯한 폐쇄성 덕에, 외국인에 대한 이란 국민들의 호기심은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헤잡과 온갖 드레스 코드에 속박당하는 이란 여성들의 실제 대학진학률과 사회 진출 정도는, 주위 중동국가들보다 월등히 높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리고 개중 상당수가 의학과 재계 등 전문직/고소득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도시를 걷다보면 책가방을 메거나 책을 한아름 품에 안고 활보하는 여학생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내가 만난 이란 여대생들은 하나같이 진취적인 꿈과 희망을 설파했다. 테헤란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는 생기넘치는 파티마는, 열시간에 육박하는 장거리 버스 옆좌석에 앉아 시종일관 재잘거리며 나를 웃겨주고, 또 고문했다. 장래 진로부터 여행하고 싶은 곳들, 취미와 역사, 몇 시간에 걸쳐 지치지 않고 우리는 오랜 친구들 마냥 히덕거리며 떠들고 농담을 하고 수다를 떨었다. 피곤해서 쉬고 싶어도 내색하기 힘든 나로선 조금 괴롭기도 했지만 -_-

 

"하지만 이란뿐만 아니라 여성 차별은 어디에나 있어. 심지어 선진적이라는 북미나 북서유럽에서조차도."

내가 건조하고 무심하게 말하자 파티마는 외쳤다.

"아... 나도 많이 생각해 봤지만, 난 정말이지 그런 모든 종류의 차별이... 싫어...!!! ㅠ_ㅠ"

 

헤비메탈 음악과 독일 밴드들을 좋아하고, 인터넷 채팅등을 통해 숱한 외국인 친구들을 사귄다는 파티마.

아울러 그녀는 페르시아어 사전 외에도(자기 언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따로 두 권의 영어사전을 가져다니며 공부하며, 다른 세계와의 교류에 열정적이었다.

"조만간 학위를 받으면 독일로 유학가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야. 부모님도 허락하셨고, 이미 리서치는 거의 해 놓았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라고 판단했거든. 새로운 곳에서, 자유를 느끼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나를 계발하며 열심히 살고 싶어."

 

 

테헤란에 도착한 첫날밤 신세를 진 바하이계(이란에서는 이단으로 규정됐다는) 여학생들 기숙사에서.

엄격한 주류 무슬림 이란 사회에서 바하이라는 이유만으로 정규교육 기회를 거부당해, 온라인으로 대학수업을 듣고 있었다. 하물며 교육기회도 빼앗겼는데 취업이나 그 외 숱한 제약들은 언급해 무엇하겠느냐만 -_-

 

풋풋한 학생들답게 시종일관 밝고 명랑하게 웃으며 대해주는 이들에게 감동받았다.

드디어 실내 여자들만의 공간에서, 헤잡과 긴 소매옷을 벗어던지고 여느 소녀들답게 최소한의 자유를 허락받은 순간.

워낙 늦은 시각에 테헤란에 도착해 상점들이 문을 닫은지라, 냉장고를 털어 손수 늦은 저녁을 장만해 준 아이들.

 

 

 

꿀과 황설탕을 뒤범벅해 빚은 과자처럼, 온통 모래빛의 도시, 야즈드.

 

 

# 내가 만나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여성들은 모두 헤잡 -그가 지니는 상징과 왜곡- 과 여성에 대한 억압에 분노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비교적 교육받고/젊고/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계층이었지만.

이란여행 이후, 그루지아를 여행하다 만난 프랑스인 프랑소와에게 단정적으로 말했다가, 반론에 맞부닥쳤다.

 

"당신도 알다시피(아예 언질을 주었다), 이란 여성들 자체도 헤잡을 비롯한 과격한 이슬람 율법 적용에 반감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네가 대화를 나눠본 사람들만으로 단언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분명히 헤잡을 자유와 겸허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여성들도 있다구"

"(잠시 말문이 막혔다) 아마 그런 사람들은 수동적인 성향의 젊은이들, 아니면 거칠게 말해 세뇌당한 기성세대 여성들일 가능성이 크겠지요. 이건 문화상대주의와 타문화 존중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문화상대주의는 자문화 중심주의만큼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 이란 남자들 중엔 변태가 많다(고 한다. 나는 직접 신체적 추행은 당해보진 않았다. 최소한 이란에선 -_-).

왜곡된 사회에선 여자들도 여자들이지만 남자들도 불쌍한 건 매한가지다. 평소 억압된 욕구 탓인지, 특히 외국 여성을 보면 어디에서건 성추행을 시도하는 남자변태들도 많은데, 개중 서둘러 지하철 타려다 잘못해서 남자칸으로 들어가 버린 일본인 여성 여행자의 얘기는 동정심마저 유발했다.

 

"다음 역에서 자동문이 열려 겨우 탈출할 때까지, 한 정거장 동안 나 혼자 남성승객 전용칸에 갇혀서 죽는 줄 알았어!!

지하철 안 놓치려고 급하게 아무데나 밀고 들어간 내가 잘못이지... ㅠ_ㅠ

얼마나 요리조리 터치하려 하는지... ㅠ0ㅠ  결국 터져나온 소리가, "야메떼...!!!"  ㅡㅂㅡ"

(야메떼... 그 일본 AV 여배우들의 단골 멘트... -_-)

 

 하지만 아울러 예의바르고 비교적 건전한 호기심으로 무장한 남자들도 많다. 때로 그들은 길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거나, 택시비를 내주기도 한다. :-)  아울러 두드러지는 부류는 외국인 관광객과 살아있는 영어회화를 연습하려는 학생들인데, 이란 대학생들도 영어 구사력이 썩 시원치는 않은 것 같고 때로는 이용당한다는 느낌에 불쾌하지만 (영어권 원어민들의 까칠한 반응도 그러고 보면 이해는 간다-) 그도 나름의 교류라면, 뭐... ㅎㅎ

 

 

에스파한의 유명한 배낭여행자 숙소, 아미르-카빌 호텔의 정원. 

 

 

외국인과 영어회화 연습해보려 했다가,

나한테 반대로 걸려 내 전속 사진기사로 전락한 불쌍한 대학생 청년 ㅋㅋ   

 

 

# 벌써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는데, 다시 한 번,

짧게라도 직접 다녀온 곳은 늘 특별해진다.

이란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유혈사태 뉴스를 접하면서는 가슴이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내가 만난 테헤란 대학생들의 근황은 어떤지.

 

- 파티마의 독일 유학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되었을까?

- 라쉬트의 그 수줍게 포르노 얘기를 꺼낸 친절한 아저씨는, 타브리즈의 은행원 아저씨는-

- 그리고 샤프한 인상으로 가슴 들뜨게 만들었다가, 거만한 태도로 점수깎아 먹은 시리아 이란 대사관의 젊은 직원은-

- 극히 사소한 것으로 자존심 대결과 불편한 논쟁을 벌이게 된 테헤란 모은행의 깐죽거리던 직원은-

- 온라인으로 힘들게 그러나 열성적으로 공부하는 바하이 여학생들은-

- 택시비를 대신 내 주고 수다를 떨어준 라쉬트의 남학생은-

 

모두 궁금하고, 다들 별탈없이 잘들 지내길 바란다.

그리고 여행의 피상성을 경계하게 해 주고, 내게 사유하고, 회의를 품고 숱한 질문을 하게 해 준 이란에게 감사한다. 실제로 그 곳을 다시 갈 수 있을지는... 정말이지 모르겠지만... ㅠ_ㅠ

 

 

터키-이란 국경의 아라라트 산. 노아의 방주가 마지막에 도착한 곳으로 추정되는 산이다.

(원래 아르메니아 영토에 속해 있었으나 현재는 터키의 영토이다)

이란-터키 국경을 다시 넘는 날 새벽은 드물게 화창한 날씨였다.

청명한 아라랏트 산의 꼭대기를 보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출처 : 여자 혼자가는 여행
글쓴이 : halfmoonwis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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