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북수북
소리없이 쌓이는
눈. 눈. 눈.
눈더미 속에
그대로 묻혀버린다 해도
그 안에서 누구도 하늘을 보며 걱정하거나
그밖의 어떤 탄식, 비명, 한숨 따위는
추호도 담 밖으로 새어나올리 없을 것 같은
수도원이
있.었.다.
눈~이
내리고
내리고,...
또 내리고....
그 깊은 침묵 속에
눈~ 을 닮은 이들이
소리 내지 않고 고요하게
살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로도
알 수 없는 뜨거움이
가슴 저 밑에서 솟구쳐오른다
그렇다.
그들은 천 년의 세월을 그렇게 있었다.
긴 시간을
홀로
같은 자세로 기도하는 수도승
카메라는 그의 귀를 크게 오버랩한다
오래 오래.
그는 ''듣고 있는 중''이다
소리 없는 소리를...
침묵의 소리를...
신의 소리를...
여럿이 살아가는 곳에서는
소통이 필요하다
아무리 침묵을 지켜야 하는 수도원일지라도...
그러나
그 소통이 꼭 ''말''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무엇을 해야할지
무엇을 안 해도 되는지는
''소리 있는 언어''가 아닌
''소리 없는 언어''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
문과 문을 연결하는 통로
그 긴 통로를 따라 수레가 지나다닌다.
하루의 양식을,
갈아 입어야 할 세탁물을
싣고서
住는 거기 그대로 있기에
衣와 食만 나누면 된다
일용할 물품을 공급해주고
일용한 물품을 수거해가고
감옥과 비슷하지만
여기는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해서다.
.
168분의 영화 안에서
회랑을 비추어 주는 장면은 꽤 여러번 나온다.
그런데
매번 다른 느낌이다.
.
.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통로 역시 존재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눈에 보이건 보이지 않건.
우리는 무엇을 싣고
다른 이에게로 연결된
그 긴 통로를 지나다니고 있을까?
.
.
.
그 통로는
우리의 각자 다른 성장 과정에 따라
세월에 따른 오랜 풍화 과정에 따라
때로는 매끄럽고,
때로는 울퉁불퉁하고,
그래서
어떤 통로는 쉽게
어떤 통로는 힘들게
무엇인가를 싣고 다니게 된다
혹은 아무 것도 싣지 않고 다닌다
고양이 밥을 주기 위해서
길고 어둡고 추운 회랑을 지나가는
등 굽은 고승.
고양이를 부르는 소리
양은 밥그릇을 두드리는 소리
수도원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
그렇다
사람이 살아 활동하는 소리들은 어쩌면
자연의 소리에 반하는 불협화음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무라카미 하루끼의 ''1Q84''에 나오는
고양이 마을을 문득 생각나게 하는 고양이들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올 수는 없는 기묘한 마을
그러나 이곳은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있다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
하지만 나오는 이는 거의 없는 문
여기도 세속적 관점에서 보면,
기묘한 마을이다
그런 마을에 제 발로 찾아온 새 수도승
제 발로 찾아왔다고 모두 다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는 몇 단계의 시험을 거쳐 합격해야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다른 수도회들과 마찬가지로
카르투시오 수도회의 카리스마에 부합되는 사람인지...
이런 기묘한(?) 공동체 생활에 적합한 사람인지....
시험 당한 후 통과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힘들고, 싫어서
세계의 깊은 주름살 속으로 숨어 들어온
도피형 사람들이 끼어들 염려가 크므로....
그래서 이들이 시험 당하게 될 가장 큰 역량은
삶에 대한 강렬한 열정,
극한 상황에 대한 적극적 의지,
또
침묵 속에서도 깨어 있는 역량,
철저히 홀로이면서도 고독에 병들지 않을 수 있는 역량,
자신에 충일하면서도 겸손할 수 있는 역량 등.....
이 있는가일 것 같다.
그렇게 해서 거기 살게 된 그들은
신의 소리를 듣기 전에
자연의 소리를,
인간의 소리를,
소리 없는 소리를,
예를 들어,
눈, 구름, 별, 달, 햇빛의,
그리고 계절에 따라 변하는 색깔들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역량이 길러질 것이다
그러나 끝없는 침묵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끝없는 침묵,
그것은 위대한 능력이다.
인간은 그처럼 위대한 능력이 없다.
아니,
위대한 침묵은
침묵을 사수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까르투시오 수도승들도 일주일에 네 시간
형제들과 ''소리 내어'' 이야기를 나눈다.
이 말은 보통 때는
''소리 내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뜻이다.
대성당 앞 메모판에는 언제나
무엇이 어떤 형제에게 필요한지,
어떤 기도를 어떤 형제들을 위해 해야 하는지
나는 무엇을 형제들에게 해야 하는지
모두 이야기 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소리 없이'' 모두 나눈다.
형제들을 위해 요리도 하고,
치수에 맞춰 옷도 만들고
장작도 패고
형제의 머리도 깎아주고,
늙고 병든 형제는 닦아주고, 약 발라주고, 맛사지 해준다
또 먼 길 떠나는 형제들을 위해
기도도 하고 걱정도 하고 형제애도 나눈다.
그 이야기에 충실히 책임진다.
떠들지 않고 말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누가 도움을 주었는지
굳이
알릴 필요도
알 필요도 없다
모두 하느님 안에서의 일이므로....
알프스의 산과 들이 초록색이 되었다.
봄이 돌아왔다는 뜻이다.
이처럼 색깔도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듣는다
칼 야스퍼스에 의하면
세상은 절대자의 암호로 둘러싸여있다
그 말은 맞다
암호문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누구에게 있는가가 결국 문제지만.
봄이 와서
눈 산에 덮여 영영 소리없이 묻혀버릴 것 같던 수도원도
새로 푸르게 태어났다.
수도승은 삽을 들고 자신의 밭을 손질한다.
야채나 화초를 기르기 위해
밭인지 화단인지의 경계를 지은
세 개의 네모가 왠지 눈물겹다
알프스 그 깊은 산,
그 드넓은 들 위에
조그맣게 카테고리 지어진
세 개의 직사각형 밭이 말이다
그 밭을 일구월심 가꾸고 살아갈
눈물겨운 존재,
사람들이 말이다.
그 수도승은 ''그''가 아니라
바로 ''너''고,
''나''라는 사실 때문에
눈물이 흘렀다
그 화단과 작은 밭은
바로 우리들의 ''무덤''같이 생겨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슬프지는 않다
허무하지도 않다
그런 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돌아오며
내내 잊혀지지 않는 말,
"Je suis celui qui est"
내가 그분이다.
귀에 몇번씩 낭랑하게 울리던 말
"주님이 저를 이곳으로 불렀으니,
제가 이곳에 있습니다."
왠지 고독한 내 작업실이 눈에 떠오른다.
왠지 눈에 푹 파묻혀도 상관 없을 것 같은,
보잘것 없는 내 인생이 주마등처럼 눈 앞을 지나간다.
"주님이 저를 이곳으로 불렀으니,
제가 이곳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
눈물이 자꾸 흘러 내린다.
캄캄해져 다행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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