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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화면을 띄워놓고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에 비해, 주어진 글을 열심히 읽는 것은 그나마 쉬운 일이다. 나는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이다. 책을 읽고, 그것을 갈무리하고 음미하는 것이 일인 사람이다. 또 공부는 그나마 내가 할 줄 아는 것 중에 가장 자신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앞으로 이변이 없는 한, 이 일을 평생 하고 싶다.
며칠 전부터 '내 일'이 잘 되지 않았다. 가장 자신있고 또 좋아하는 내 일이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더 어려운 일인 '글쓰기'를 택했다. 뭔가 정리를 해둬야 다시 책을 손에 붙들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5월 23일, 일국의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물론 내게도 충격적이었지만, 평소 정치에 그리 열렬하게 관심을 두진 않았던 터였고, 할 공부가 많았던데다 공부의 양에 비해 시간은 촉박해서, 제법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휴대전화를 없앤지 오래, 사람을 만난지는 그보다 더 오래 되었다. 그런데 식당에서 기자회견 방송을 보자마자 나는 밥 숟가락을 놓고 멍하게 화면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분명 재빨리 밥을 우겨넣고 다시 공부를 하러 가야 했지만 쉬이 그럴 수 없었다.
문재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때문이었다.
기자회견을 하는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대단히 충격적이고 슬픈 소식입니다..."로 말을 꺼내는 그의 표정은 '슬프다'는 그의 말과는 달리 슬픔도 그 무엇도 묻어나지 않는 예의 그대로였다. 그는 30여년 알아왔던 지기를 떠나보내는 공식 발표를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는 초연했다, 비정상적으로. 당장 튀어나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을 것 같은 노통의 영정보다 그의 표정이 더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경남고, 경희대 법대 출신. 민변의 멤버. 사법고시 합격 후 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으나 과거 시위 전력 때문에 임용을 포기, 변호사를 택함. 부산으로 내려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며 인연 시작. 사람들이 문재인 전 실장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대략 이 정도일 것이다. 기타 그가 특수부대 출신이라든지, 유치장 안에서 고시 합격증을 받은 거라든지 하는 것들 정도가 대중에 노출된 전부일 것이다.
나도 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나는 덤덤한 그의 표정을 보고 가슴이 꽉 막히며 하루 종일 공부가 되지 않기 시작했다. 그에 관해 무엇이든 정리해두지 않으면 이 복잡한 마음을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주 간단하게나마, 설령 그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나는 정리해두고 싶었다.
1. 그에겐 에쿠스와 운전 기사가 없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는 손수 운전을 한다. 그것도 렉스턴 구형모델이다. 중고차 시장에 내다 팔아도 몇백 나오지도 않는, 그런 차다. 그는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이었고 민정수석이었다. 그리고 변호사다. 아무리 인권변호사였다지만, 부산에서 이름대면 모를 리 없는 유명 변호사가 끌고 다니는 게 고작 렉스턴이다.
봉하마을이 시골이라 SUV를 끌고 다니는 것도 같다만, 여태껏 그가 기자들의 플래쉬에 수없이 노출되면서,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노통의 차에 동승한다든지) 운전기사가 모는 차량에 몸을 맡기는 일을 나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아주 조금, 조금 과하게 단정짓자면 이 분은 십중팔구 이 렉스턴 이외의 다른 차량이 없을 것이다.
2. "노무현 대통령 혼자 외로울까봐...."
사법연수원 차석. 판사 임용도 가능했지만 시위 경력이 문제가 되었다. 전두환 정부는 그에게 검사직을 제의했으나 그는 거절한다. 수없이 많은 로펌의 손을 뿌리친다. 그는 "잡사건(=힘든 사건) 맡겠다"며 부산으로 내려왔다. 노무현을 만났고, 그가 수없이 낙선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으며 또 위로했다. 처음 참여정부가 들어섰을 때, 내각 인물들의 인터뷰가 한창이었다. "왜 청와대에 왔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것을 한 일간지의 기사에서 읽었다.
"노무현 대통령 혼자 외로울까봐...."
말끝을 흐렸던 것과는 달리 그는 노통 당선 직후 약간의 속옷과 서류봉투만 챙겨 바로 기차를 타고 상경했다고 한다. 그가 처음 맡은 일은 '민정수석'. 한마디로 깨끗한 인물을 골라서 추천하고, 노통 주변 인물 감시해서 부정한 것이 티끌이라도 있거든 탈탈 털어버리는 일이다. 깨끗한 공직, 깨끗한 청와대를 만드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그는 노통의 간곡한 부탁에도 정치쪽엔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80년대 말에는 부산시장 출마를 거절했고, 각종 지방선거, 보궐선거 출마도 거절했다. "자신은 정치할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뒷날엔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한 채) "민정수석은 정치할 만한 위치는 아닌 것 같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어쨌든, 그는 정말 '노통이 외로울까봐' 청와대로 왔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초심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데, 밖에서 ‘유지하라’고 말만 하는 것도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청와대로 온 그의 궁극적인 이유이며, 그가 내세울 법한 이유이다.
3. 발음이 이상했던 이유
나는 정치를 잘 모른다. 노통의 지지자도 아니었고 안티도 아니었으며, 그를 볼 때 '우리나라 대통령이시지' 했을 뿐이었다. 내가 처음 문재인을 주목한 건 어느 기자회견에서 등장한 그의 모습, 정확히는 그의 '발음' 때문이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사람이 말을 저렇게 어눌하게 하나, 변호사까지 했다는 사람이 왜 저러나, 싶어서였다. 목소리가 약간 탁성인 것도 그러려니 했고, 말이 입 안에서 맴도는 것 또한 그러려니 했다. 근데 그것 치곤 묘하게 더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의 턱이 조금 부자연스러운 것을 보니, 대략 짐작이 되었다. 나는 슬쩍 웃었다. '이 심었구나.'
그는 청와대 일을 1년 정도만 하고 나가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해왔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노통의 주변은 모든 이들이 알고 있듯 언제나 바람 잘 날 없었고, 때문일까, 실제로 그의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 명 두던 여직원을 슬그머니 두 명으로 늘렸고 그 사이에 이가 하나하나 빠졌다. 그렇게 심어넣은 인공치아가 10여개. 남들 다 긴장하는 치과치료를 받으며 졸았을 정도로 일을 했으니 10개가 아니라 모조리 다 뽑아내고 임플란트로 채워넣었다고 해도 나는 쉽게 그러려니 할 것 같다. 취미가 등산에 스쿠버다이빙이라는데 얼마나 일을 했으면 기껏 생긴 게 고혈압이며, 얼마나 잠을 못 잤으면 녹내장까지 왔을까. 묘한 경상도 사투리가 덧붙여진 웅얼거림, 어째 느리면서 할 말은 다 하는 그의 몇몇 인터뷰를 보면서 실없이 '임플란트는 잘하는 곳 가서 해야 하는데, 저 아저씨 바쁘다고 어디 구닥다리 동네 치과의사한테 맡긴 거 아냐?' 하고 중얼거리던 적도 있었다.
4. "능력도 인품도 출중하지만 안된다"
노통 재임 당시의 일이다. 노통은 그를 법무부 장관에 앉히려고 했다. 청와대 관련 인사는, 임명하려는 사람에게 특별히 법적/도덕적 하자가 있지 않는 한 대개 무난하게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친노 인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노통은 이미 여러 명의 인재를 놓치고 말았다. 물론 그 인재들은 문재인의 한 인터뷰를 인용하자면 "10배수가 넘게" 추리고, 그 안에서 각종 병역, 부동산 투기 경력 등을 검토 또 검토한 인사들이었다. (인사에 문제가 생기면 노통이 얼마나 욕을 먹겠는가. 나는 문제가 생기는 상황을 잠시 상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일 잘하는 변호사 출신'인 그를 법무부 장관에 앉히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장관 임명은 오로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었다. 문재인은, 적어도 일 맡는 것만큼은 완벽했다. 그런 그에게 열우당과 한나라당은 이런 주장을 하며 반대 의견을 세운다.
"능력도 인품도 출중하지만 안된다"
(술은 마셨으되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으며, 전설은 아닌데 레전드급이라는 말과 무엇이 다르랴.)
5. 웃는 그의 모습
그의 표정은 항상 변함이 없었다. 탄핵 정국 때도, 노통의 형 노건평이나 기타 가족의 여러 법적인 문제 앞에서도 그는 언제나 기자들에게 '친절맨'이었으며 - 기자들 사이에서 실제로 친절맨으로 통했다 - 그 와중에도 할 말은 다 하고 아낄 말은 아껴가며 노통을 지켰다. 노통의 행보엔 항상 수많은 기자들이 따라다녔다. 그리고 카메라에 잡힌 노통의 뒤엔 항상 엷게 웃거나 무표정인 문재인이 있었다. 포커스를 노통에게 맞추는 일은 지극히 일반적이고 또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뒤, 항상 묵묵히 서 있는 문재인에게 더 눈길이 갔다. 실제로 나 또한 참모형의 사람이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 물론 나를 문재인과 동격에 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 묵묵한 그가, 묵묵해서 더 튀어보였을 수도 있다.
그는 수줍게 웃는다. 더러 크게 웃기도 하지만, 대개 수줍게 웃는다. 아래 동영상에서도 그는 미리 노통의 의중을 파악하고, 대답 못하는 청장을 향해 '그게 아냐, 아니라니까'하고 말하는 듯 웃는다.
(동영상 올리면 자꾸 에러나서 주소로 링크합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o9s59-VSjhA&feature=player_embedded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참 보기 좋게 웃는다. 보는 사람까지 기분 좋아지게 웃는다. 나이 40 넘으면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대략 알 수 있을 것 같이, 그렇게 웃는다.
(노통 생전의 자료들이라 마음이 참 아프긴 하다. 바로 윗사진 출처는 연합뉴스.)
6.'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닌,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도 아닌, '그냥 문재인'
문재인은 한결같이 비서실장이었으며, 꼿꼿한 민정수석이었다.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바로 윗사진을 보면, 왜 유가족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지, 왜 그를 전적으로 의지하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처음에 저 사람이 대체 누구인가 싶었다. 머리가 하얗게 샌 것만 보고, 이명박 대통령보다 더 나이 많은 누군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결식을 제대로 보지 못한 탓에 무슨 일이 일어난지 파악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자세히 보니, 다름 아닌 문재인이다. 그리고 고개 숙인 이유 또한 그답다.
한겨레 인터뷰 동영상
http://www.tagstory.com/video/video_post.aspx?media_id=V000324545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가장 제대로 된 인터뷰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마저 문재인은 흔들리지 않는다. 무조건적으로 현 정권을 비판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 이 분 정도 되는 입장이면 분통을 터트려도 누가 뭐라 안한다. 도대체 이 분 머릿속엔 뭐가 들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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