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은 후 장례식장서 제자들 고생 많을텐데…”
故 장영희 교수의 사랑
스승은 세상을 떠났지만 스승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13일 밤 고 장영희 서강대 영미어문 영어문화학부 교수의 제자들은 장 교수 장례식을 마친 후 서강대 장 교수의 연구실에 모였다. 이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한 번 눈시울을 붉혔다.
장 교수는 한 달여 전 죽음을 직감한 듯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꼭 해야 할 일을 정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은 가족들에게 부탁했다. 장 교수는 자신의 장례식 때문에 고생할 제자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까지 미리 준비했다.
그는 “내가 죽은 후 장례식장에 나와 일을 도울 대학원 제자들의 고생이 뻔히 보인다. 많이 미안하다. 제자들이 고생이 많을 테니 맛있는 것을 사주고 격려하라”며 150여만 원을 가족에게 맡겼다. 가족은 장례식을 마치고 이 돈을 제자들에게 전달했다.
또 장 교수는 e메일을 보내 제자들을 격려했다. 김정진 씨(39·박사과정)는 3주 전 장 교수의 e메일을 받았다. 장 교수가 사경을 헤맬 때였다. “정진아. 호호. 지금 네가 힘들고 어려워도 어떻게 해서든 학위를 빨리 따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장 교수는 김 씨가 박사과정을 수료할지, 학위를 따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것을 알고 있었다. 김 씨는 “그렇게 아프신 데도 평소처럼 제자들을 걱정하고 계셨다. 그 마음이 너무도 따듯하게 다가왔다”며 울먹였다. 제자 이경순 씨(38·박사과정)는 지난달 “혹시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조사(弔辭)를 맡아 다오. 결혼한 제자에게 선물을 꼭 줘야 하는데…”라는 내용의 e메일을 받았다.
장 교수는 4주 전 한 학생에게 7만 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교양영어 조교로 일하는 학생이 자신의 워드 작업을 도왔던 것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서였다. 제자들은 “선생님이 곧 세상을 떠날 것을 예측하고 제자들에게 꼭 해줘야 할 일을 하나씩 하나씩 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제자들은 장 교수가 남긴 150여만 원으로 장 교수가 쓴 글이 새겨진 컵을 제작해 사람들에게 나눠줄 계획이다. 장 교수는 2004년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이라는 책을 내면서 사람들에게 컵을 만들어 선물했기 때문이다. 장 교수가 만들었던 컵의 바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잔’.
유작 ‘살아온 기적…’ 초판매진
한편 장 교수의 유작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샘터출판사) 초판 3만 부가 11일 출간된 지 이틀 만에 매진됐다고 출판사 측이 14일 밝혔다. 이택수 샘터출판사 영업이사는 “15일 추가로 나올 3만 부도 예약이 끝났으며 장 교수의 다른 작품 ‘내 생애 단 한 번’ ‘문학의 숲을 거닐다’도 매일 3000부가량 판매돼 품절 상태”라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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