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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정아의 러브레터**

flower1004 2008. 12. 17. 13:48

신정아 러브레터  

신정아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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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하고 싶었어요.

낮부터요.

정오에는 우리 미술관에서 일하게 될 큐레이터랑 면담을 좀 하느라 바빴고

참 제가 얘기 했던가요.

파리 국립 미술학교에서 복원미술을 전공한 젊은 친군데 실력이 만만찮아요

전공이 아니라 이쪽에서 일하는게 글쎄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경험삼아 큐레이터일을 좀

해보겠다 해서 임시로 채용하게 되었거든요.

 

무래도 곧 성곡을 떠날것 같기도 해서 제 뒤를 맡아 줄 사람도 필요한 시점이구요.

우리 미술관에서 소장중인 조선중기 작품 몇 점이 상태가 시원찮아 보관중인게 몇점있는데

그 친구에게 한번 맡겨 봐야겠어요.

미술품 복원 작업은 한두 사람손을 거치는게 아니라 그 친구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는 없지만

장비로 숨어있는 손상부위도 찾아내야 하고 복원부위를 정해 아주 디테일한 작업이 들어가야 하거든요.

작업이 끝나면 대중앞에 선보이기 전에 당신께 제일 먼저 보여드리고 싶어요.

 

당시의 풍속도이긴한데 선비차림의 양반신분으로 보기 드물게 젖가슴을 풀어 헤치고 있는 아낙의 젖가슴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그림이에요

자세히 보면 선비도 바지를 허리춤까지 내려있는 걸 볼 수 있어요.

풍속화라 하기에도 그렇고 그렇다고 춘화는 절대아니죠.

예나 지금이나 다들 체면차리고 살지만 가능하다면 아낙의 젖무덤아니라 어디라도 여자라면

그 여자가 그 사람의 연인이라면 더 깊은 곳에 얼굴을 파묻고 하루를 나고 싶지 않을까요.

 

당신은 전설속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여걸 유디트 손에 죽은 홀로페르네스처럼

나에게 성적으로 유혹당해 죽음에 가까운 정사를 한 번 했으면 하셨지만

저는 빈시내 남쪽에 있는 바로크 궁전 벨베데레에 소장된 클림트 그림 키스처럼 두남녀가 꼭 껴안고 성적 교감의 여명을 틀며 시작하는 정사를 당신과 꿈꾸고 있어요.

 

에로티시즘이 순간적인 육체의 환락이 아니라 영원으로 진입하는

일종의 관문처럼 순간적인 정사의 덧없음을 초월해 욕망의 숭고한 충족에 이르도록

노력한 클림트처럼 숭고한 에로티시즘의 미학을 당신과 나누고 싶어요.

곱슬머리의 남자가 꼭 껴안은 여자의 더없이 행복한 표정

오르가즘 직전의 환희가 표현된 얼굴의 그 그림을 보면 저도 언젠가 그런 정사를 하리라했죠.

그 남자가 내게 당신으로 다가왔다는 걸 저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죠.

 

지난 가을 저의 미술관에 들렀던 당신을 본 순간 저는 부끄럽지만 클림트의 그림을 떠올렸죠.

그림속의 곱슬머리는 부드럽게 컬이져서 넘어간 당신의 희끗한 머리로 대체되었고 나는 속옷을입지않고 화려한 노란무늬의 긴원피스만 겉옷으로 걸치고 있었죠.

당신은 당시 중국 현대작가초대전을 관심있게 둘러보셨죠.

내게 다가와 왕청의 작품에 대해 물어왔을 때 저는 알몸을 내보인 듯 얼굴을 붉힐수 밖에 없었어요.

 

이런 상상이 아니더라도 당신은 충분한 성적매력을 지닌 남성이었죠.

두번째 만남에서 당신이 남한강을 따라 드라이브만하고 저를 저의 집앞에 내려주셨을 때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르셨을거에요.

키스라도 없었더라면 저는체면이고 뭐고 가리지 않고 당신을 나의 아파트로 유인하여 죽음에 가까운 정사를 펼쳤을 지도 몰라요.

저는 너무 뜨거워져 있었거든요.

 

키스?

뭐랄까 당신의 키스에서 저는 오월에 청보리가 익어가는 맛을 느꼈어요.

청보리 말이죠.

풋풋한 풀내음과 알곡이 영글때 풋알들이 껍질에 밀착되어 밀도가 촘촘해지는 질감

그 모든것이 당신의 키스속에 있었죠.

고백하지만 제가 예일에 다닐때 조금 사귀었던 의대생인 스티븐과도 나누지 못한 영적인 키스였어요.

당신도 그러셨잖아요.

정아는자그마한 체구로 그 곳 친구들에게 인기가 짱이었을 거라구요.

스티븐은 아버지가 상원의원이었는데 저를 무척 좋아했죠.

결혼도 생각했었지만 후후.

그랬더라면 당신과 나누고 싶은 숭고한 에로티시즘의 미학을 이룰 수 없겠죠.

당신과 나는 앞으로 긴 길을 걸어 갈 거에요.

당신이 그 옷을 입으려 하실지 모르지만 첫 정사를 저는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어요.

 

클림트에 나오는 남자가 입었던 황금색 가운 그리고 저는 비슷한 패턴의 쉬폰 실크 원피스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 키스씬으로 시작해서 클림트의 유디트1으로 끝나는 섹스 말이죠.

 

have a nice day

 

당신의 신다르크로부터. (저를 신데렐라라고 부르지마세요 꼭요).

 

 

키스와 유디트1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둘다 구약성서의 외경 유딧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유디트는 이스라엘의 베툴리아에 살았던 정숙한 과부였다.
 아시리아 군의 총사령관인 홀로페르네스는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어
 서방 세계를 모두 정복했다.
 오직 이스라엘만이 신앙의 힘으로 저항하고 있었는데
 홀로페르네스는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요충지 베툴리아를 포위했다.
 조용하고 신심 깊은 과부가 민족의 구원을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과부 차림을 벗은 유디트는 온몸을 물로 씻고 좋은 향유를 바른 다음
 머리를 빗어 남자들의 눈을 홀릴 만큼 요란하게 꾸민 후
 하녀와 함께 아시리아 군에 거짓으로 투항했다.
 유디트의 미모와 감언이설에 현혹된 홀로페르네스는
 " 이 여자처럼 용모가 아름답고 말재주가 훌륭한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이라며 연회에 초대했다.

 만취한 홀로페르네스와 단둘이 남게된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의 칼을 집어
  들고 침대로 다가가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는 힘을 다해 목을 두 번
  내리쳐 머리를 잘라버렸다.
 잠시 후 밖으로 나가 그 머리를 하녀에게 건네 주었고 하녀는 그것을 곡식
  자루 속에 집어 넣었다.

 용기를 얻은 이스라엘 민족이 대승을 거두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것은 큰 남자에 대한 작은 여인의 승리
 그리고 억압과 폭력, 자만에 대한 정의와 소박함의 승리였다.
 그런데 이렇게 나약한 여자의 몸으로 생명을 걸고 민족을 위기에서 구해낸
  영웅적인 여성 유디트에게 도대체 무슨일이 생겼단 말인가.
 무슨 일이 있었기에 유디트가 뺨을 빨갛게 물들이며 다른 세상을 헤매는
  모습인가.

 다른 유디트 그림들과 달리 클림트의 그림 속에는 유디트의 이야기임을
  지시해 줄 만한 장치들,
 즉 붉은 휘장도 곡식 자루도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의 목을 직접 자르는 엽기적인 행위를 나타내는 흔적도 없다.
 칼도 핏자국도 없다. 그저 반라의 여자가 남자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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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잊혀진 기억속에 있는 스캔들이였지요?

신정아 글도 정말 잘쓰는것 같아요 . 한편의 수필같이 아주 문맥이 잘이어져서

참잘쓰여진 글입니다.

아주 박식하고요.미인이고 달변가이고....

청송에서 고듬하교를 졸업했다는데...인물입니다.

남의 연애 편지 훔쳐보는것도 아주 재미있잖아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