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스라엘땅에 도착했다.
우리의 이스라엘 여정을 안내할 가이드 심 프란체스코는 느릿하고 조용한 음성을 가진 경상도 청년이었다. 예정한 시간보다 우리의 도착이 늦어지자 걱정을 하고 있다가 처음으로 통관을 한 내 뒤를 따라 자매들이 하나씩 이스라엘로 들어오자 마음을 놓았다.
마침내 예수님이 살아 숨쉬며 사랑을 가르치시던 땅으로 온 것이다. 모두들 이집트에서의 좋은 기억들에 더해질 이스라엘에서의 순례에 대한 기대로 눈을 반짝였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본 주변 풍경과 도로는 깨끗하고 시원했다.
이집트의 척박한 자연과 여러 가지로 비교되었다. 두 나라 모두 시나이 반도와 홍해로 이어지는 광야 지역이지만 이스라엘은 척박한 땅을 개간하여 농장을 만들고 체계적인 광산의 개발로 국토를 보전하고 성경의 역사를 보존하는 근면함이 보이는것 같다.
도로 주변의 돌산에서 광석을 채취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하자원을 채취해도 한 장소에서 전부 파내는 것이 아니라 일정량을 파내면 그곳을 잘 복원하고 다른 곳에 있는 자원을 채취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환경파괴를 최대한 줄이고 있는 것이다.
키부츠라 불리는 이스라엘 특유의 집단농장에 잘 자란 열대과일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사막지대인 이곳에 관개시설을 만들어 물을 끌어들여 인공으로 가꾼 옥토라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한참을 가다가 들른 휴게소에는 다양한 과일과 음료수, 신선한 식품이 가득했다.
사람들이 여유롭게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그곳에서 가이드는 우리에게 크고 맛있는 대추야자를 선물로 사주었다.
우리가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처음 도착한 도시 예리코는 사해북동 쪽의 유다광야에 자리 잡고 있는 크고 아름다운 오아시스의 도시이다.
원래 요르단 영토였던 이곳은 기후가 온화하고 물과 과일이 풍부한 휴양지역으로 팔레스타인의 정치중심지 였지만 1967년 ‘6일 전쟁’때 이스라엘의 영토가 되었다.
고고학적으로는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기원전 7,000년경의 신석기시대의 성과 성벽, 둥근 망대유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 당시에 이미 집안을 그림으로 장식하기도 했다고 한다. 예리코는 해수면보다 25m 낮은 곳에 위치하여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도시라고 한다.
그때문인지 양쪽이 높은 둔덕처럼 솟아 있는 사이로 푹 내려앉은것 같은 길도 있었다.
구약시대에는 예리코는 ‘종려나무의 성읍’이라고 불렸다(신명 34:3).
40여년의 광야 생활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첫 발을 디딜 때 여호수아의 인도로 정복한 첫 번째 도시이기도 하다.
신약성경에도 예리코가 자주 등장한다. 예수님은 이곳 에서 소경 바르티매오를 고쳐주셨고 (마르코 10,46-52) 세리 자캐오의 집에 머무시기도 했다. (루카 19,1-10).
또한 이 도시는 순례자들의 통로였는데 예리코와 예루살렘 사이에는 유다광야가 있어서 위험이 많은 곳이었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을 오가실 때 이길을 이용하셨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의 배경이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루카 10,29-30)』
성경세계의 예리코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도착한 오늘날의 예리코 지역에서 머물 장소는 세계적인 호텔체인으로 유명한 인터콘티넨탈 호텔이었다. 우리 같은 서민이 모처럼 별다섯의 호텔에 머물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티나 간의 팽팽한 정치적 긴장으로 부유한 휴양객들이 예리코를 찾지 않게 되어 어부지리로 얻은 행운이었다.
새벽 두시에 일어나 시나이 산을 오르내리고 계속해서 긴 시간 동안 광야 길을 지나와 피곤했던 우리는 좋은 시설에서 잘 쉬고 맛있는 식사로 체력과 탐구심을 되살렸다.
2월 8일
다음날 찾아간 첫 번째 장소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찾아간 광야였다. 예리코의 서편지역에 위치하는 유다광야에 있는 그 산은 ‘유혹의 산’이라고도 불린다. 예수님께서 사십일동안 머무시며 사탄의 유혹을 받으신 곳이라 해서 과란타나산(Mount of Qarantana)이라고도 한다.
유혹의 산 정상 못미쳐 건물이 서있는 자리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던 동굴터라고 전해진다. 그 자리에 6세기부터 있던 교회는 13세기쯤에 폐허가 되었고 지금 보이는 건물은 1874년에 지은 희랍정교회 수도원이다.
우리는 유혹의 산을 멀리서 바라보며 성경을 읽고 간단하게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은 예리코 시내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산이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고적하기 짝이 없는 허허벌판이었을 것이다. 밤이면 들짐승이 우짖어 두려움이 일기도 하는...
예수님께서 사십일을 밤낮으로 단식하며 기도하고 있을 때 사탄이 다가와 세상의 모든 영예와 물질을 보이며 유혹했지만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느님에 대한 신뢰로 물리쳤다. (마태오 복음 4, 1-4; 8-10)
말이 쉽지, 자신의 안전과 소유를 추구하라는 유혹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족쇄 같은 것이 아닐까. 조금 자유로워졌다 싶을때 슬며시 다가오는...
삶의 모든 것에서 다가오는 유혹을 이기는 방법은 예수님처럼 아버지와의 친밀함을 유지하는 길뿐이다.
예리코 뒤편에 있는 유혹의 산을 관망하고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예리코성 점령기념터였다. 이스라엘인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점령한 고대에 있었던 전쟁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은 언덕이 무너진 움푹한 흙더미로 보이지만 이스라엘인들이 침공할 당시에는 외벽과 내벽으로된 견고한 성이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인들이 성을 점령한 방법도 특이하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군사에게 엿새 동안 침묵하며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라고 하셨다. 칠 일째 되는 날에 제사장들이 부는 나팔소리에 맞춰 모두들 큰 소리로 외치자 성이 무너져 내렸다. (여호수아 6,20).
1900년대 독일과 영국에서 파견된 발굴팀이 예리고성을 탐사했다.
그들은 예리고성이 이중벽으로 되어있었으며 두 성벽 사이는 5m가 되었고, 외벽은 두께 2m의 기초 성벽위에 7미터의 높이의 진흙벽돌벽을 쌓았고, 내벽의 두께는 4m, 높이는 10-14m나 되는 견고한 성이었음을 알아냈다.
일반적으로 전쟁 시에 성을 공략할 때는 바깥에서 사다리를 올려놓고 밀고 들어오는 침입자들에 의해 안쪽으로 무너지면서 무너진 돌들을 밟고 성내로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예리코성은 특이하게도 외벽의 바탕이 되는 기초성벽 위의 진흙벽돌 들이 모두 성벽 바깥쪽으로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그 무너져 내린 진흙벽돌들이 만든 완만한 경사면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단처럼 밟고 올라가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성경학자들이 아닌 고고학자들은 성이 무너진 원인은 강력한 지진이었다고 말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성의 외벽에 붙어있던 집들중 북쪽에 있던 집만은 무너져 내리지 않았던 것을 발견 했다고 한다. 이것은 ‘라합의 집이 외 성벽에 붙어 지어져 있었다는(여호수아 2,15) 성경의 기록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직접 땅을 흔들어 벽을 무너뜨리신 것이 아닐까.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을 보살피시는 하느님의 힘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이스라엘 여정을 안내할 가이드 심 프란체스코는 느릿하고 조용한 음성을 가진 경상도 청년이었다. 예정한 시간보다 우리의 도착이 늦어지자 걱정을 하고 있다가 처음으로 통관을 한 내 뒤를 따라 자매들이 하나씩 이스라엘로 들어오자 마음을 놓았다.
마침내 예수님이 살아 숨쉬며 사랑을 가르치시던 땅으로 온 것이다. 모두들 이집트에서의 좋은 기억들에 더해질 이스라엘에서의 순례에 대한 기대로 눈을 반짝였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본 주변 풍경과 도로는 깨끗하고 시원했다.
이집트의 척박한 자연과 여러 가지로 비교되었다. 두 나라 모두 시나이 반도와 홍해로 이어지는 광야 지역이지만 이스라엘은 척박한 땅을 개간하여 농장을 만들고 체계적인 광산의 개발로 국토를 보전하고 성경의 역사를 보존하는 근면함이 보이는것 같다.
도로 주변의 돌산에서 광석을 채취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하자원을 채취해도 한 장소에서 전부 파내는 것이 아니라 일정량을 파내면 그곳을 잘 복원하고 다른 곳에 있는 자원을 채취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환경파괴를 최대한 줄이고 있는 것이다.
키부츠라 불리는 이스라엘 특유의 집단농장에 잘 자란 열대과일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사막지대인 이곳에 관개시설을 만들어 물을 끌어들여 인공으로 가꾼 옥토라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한참을 가다가 들른 휴게소에는 다양한 과일과 음료수, 신선한 식품이 가득했다.
사람들이 여유롭게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그곳에서 가이드는 우리에게 크고 맛있는 대추야자를 선물로 사주었다.
우리가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처음 도착한 도시 예리코는 사해북동 쪽의 유다광야에 자리 잡고 있는 크고 아름다운 오아시스의 도시이다.
원래 요르단 영토였던 이곳은 기후가 온화하고 물과 과일이 풍부한 휴양지역으로 팔레스타인의 정치중심지 였지만 1967년 ‘6일 전쟁’때 이스라엘의 영토가 되었다.
고고학적으로는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기원전 7,000년경의 신석기시대의 성과 성벽, 둥근 망대유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 당시에 이미 집안을 그림으로 장식하기도 했다고 한다. 예리코는 해수면보다 25m 낮은 곳에 위치하여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도시라고 한다.
그때문인지 양쪽이 높은 둔덕처럼 솟아 있는 사이로 푹 내려앉은것 같은 길도 있었다.
구약시대에는 예리코는 ‘종려나무의 성읍’이라고 불렸다(신명 34:3).
40여년의 광야 생활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첫 발을 디딜 때 여호수아의 인도로 정복한 첫 번째 도시이기도 하다.
신약성경에도 예리코가 자주 등장한다. 예수님은 이곳 에서 소경 바르티매오를 고쳐주셨고 (마르코 10,46-52) 세리 자캐오의 집에 머무시기도 했다. (루카 19,1-10).
또한 이 도시는 순례자들의 통로였는데 예리코와 예루살렘 사이에는 유다광야가 있어서 위험이 많은 곳이었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을 오가실 때 이길을 이용하셨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의 배경이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루카 10,29-30)』
성경세계의 예리코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도착한 오늘날의 예리코 지역에서 머물 장소는 세계적인 호텔체인으로 유명한 인터콘티넨탈 호텔이었다. 우리 같은 서민이 모처럼 별다섯의 호텔에 머물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티나 간의 팽팽한 정치적 긴장으로 부유한 휴양객들이 예리코를 찾지 않게 되어 어부지리로 얻은 행운이었다.
새벽 두시에 일어나 시나이 산을 오르내리고 계속해서 긴 시간 동안 광야 길을 지나와 피곤했던 우리는 좋은 시설에서 잘 쉬고 맛있는 식사로 체력과 탐구심을 되살렸다.
2월 8일
다음날 찾아간 첫 번째 장소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찾아간 광야였다. 예리코의 서편지역에 위치하는 유다광야에 있는 그 산은 ‘유혹의 산’이라고도 불린다. 예수님께서 사십일동안 머무시며 사탄의 유혹을 받으신 곳이라 해서 과란타나산(Mount of Qarantana)이라고도 한다.
유혹의 산 정상 못미쳐 건물이 서있는 자리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던 동굴터라고 전해진다. 그 자리에 6세기부터 있던 교회는 13세기쯤에 폐허가 되었고 지금 보이는 건물은 1874년에 지은 희랍정교회 수도원이다.
우리는 유혹의 산을 멀리서 바라보며 성경을 읽고 간단하게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은 예리코 시내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산이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고적하기 짝이 없는 허허벌판이었을 것이다. 밤이면 들짐승이 우짖어 두려움이 일기도 하는...
예수님께서 사십일을 밤낮으로 단식하며 기도하고 있을 때 사탄이 다가와 세상의 모든 영예와 물질을 보이며 유혹했지만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느님에 대한 신뢰로 물리쳤다. (마태오 복음 4, 1-4; 8-10)
말이 쉽지, 자신의 안전과 소유를 추구하라는 유혹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족쇄 같은 것이 아닐까. 조금 자유로워졌다 싶을때 슬며시 다가오는...
삶의 모든 것에서 다가오는 유혹을 이기는 방법은 예수님처럼 아버지와의 친밀함을 유지하는 길뿐이다.
예리코 뒤편에 있는 유혹의 산을 관망하고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예리코성 점령기념터였다. 이스라엘인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점령한 고대에 있었던 전쟁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은 언덕이 무너진 움푹한 흙더미로 보이지만 이스라엘인들이 침공할 당시에는 외벽과 내벽으로된 견고한 성이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인들이 성을 점령한 방법도 특이하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군사에게 엿새 동안 침묵하며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라고 하셨다. 칠 일째 되는 날에 제사장들이 부는 나팔소리에 맞춰 모두들 큰 소리로 외치자 성이 무너져 내렸다. (여호수아 6,20).
1900년대 독일과 영국에서 파견된 발굴팀이 예리고성을 탐사했다.
그들은 예리고성이 이중벽으로 되어있었으며 두 성벽 사이는 5m가 되었고, 외벽은 두께 2m의 기초 성벽위에 7미터의 높이의 진흙벽돌벽을 쌓았고, 내벽의 두께는 4m, 높이는 10-14m나 되는 견고한 성이었음을 알아냈다.
일반적으로 전쟁 시에 성을 공략할 때는 바깥에서 사다리를 올려놓고 밀고 들어오는 침입자들에 의해 안쪽으로 무너지면서 무너진 돌들을 밟고 성내로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예리코성은 특이하게도 외벽의 바탕이 되는 기초성벽 위의 진흙벽돌 들이 모두 성벽 바깥쪽으로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그 무너져 내린 진흙벽돌들이 만든 완만한 경사면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단처럼 밟고 올라가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성경학자들이 아닌 고고학자들은 성이 무너진 원인은 강력한 지진이었다고 말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성의 외벽에 붙어있던 집들중 북쪽에 있던 집만은 무너져 내리지 않았던 것을 발견 했다고 한다. 이것은 ‘라합의 집이 외 성벽에 붙어 지어져 있었다는(여호수아 2,15) 성경의 기록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직접 땅을 흔들어 벽을 무너뜨리신 것이 아닐까.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을 보살피시는 하느님의 힘이었던 것이다.
수천년이 지난 오늘, 나지막한 흙언덕은 고대 신앙의 선조들을 이끄신 하느님의 힘을 감춘 채 순례자들의 마음을 믿음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성바오로딸 수도회'에서 펌글입니다.
출처 : 베텔 하늘방
글쓴이 : 마르가릿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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