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
우리가 머문 호텔에서 이동할 때마다 나일강을 지나야 했다.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가 뱃놀이를 즐겼다는 나일 강은 한강보다 폭이 좁아 보인다.
하지만 강의 높이가 육지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물이 풍부했다.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중 하나인 나일강은 원천은 거대하리만큼 넓고 광대하게 시작하지만 점점 물이 흘러가면서 강폭은 길고 좁아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강들은 상류는 폭이 좁고 물길이 약하게 시작하여 점점 강폭이 넓고 물도 많아지는데 나일강은 그 반대의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의 범람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 중부 고원의 봄비는 약 6500KM의 여정을 거쳐 여정으로 몇 달 후 이집트를 범람하는 큰 홍수로 변한다.
수백 Km 를 흘러온 나일강은 카이로 북방에서 둘로 나누어져 나일 델타라는 대평원을 만들었다. 이렇게 형성된 땅은 무척이나 비옥한데, 그 이유는 홍수에 휩쓸려 오는 아프리카 내륙 지방의 부엽토가 서서히 침전 되면서 옥토로 변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쌓이는 부엽토로 검어진 땅을 고대 이집트인들은 케미(KEMI-검은 땅)라고도 불렀다.
이처럼 나일강의 범람은 이집트인들에게 자연의 풍부한 선물을 전해주는 젖줄이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매년 어김없이 범람하며 풍작을 안겨주는 나일강의 변화에 따라 절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홍수가 나서 델타 지역이 물에 잠겨 있는 7-10월은 농한기, 물이 빠져나간 11-2월은 농번기, 그리고 3-7월은 추수기라고 한다.
홍해
오늘은 홍해를 지나 시나이 반도를 끼고 광야 쪽으로 이동한다. 갈대바다 라고도 불리는 홍해는 아직도 오염이 안 된 바다로 유명하다.
고대로부터 홍해는 아시아와 극동 아프리카와 서방지역을 이어 주는 주요 길목이었다.
북으로 헤르몬산에서 남으로 아카바반도에 이르기까지 계속 뻗어 있는 균열 때문에 홍해 연안의 수심은 매우 깊다. 이 때문에 바다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푸르다. 산호초가 풍부한 이 깊은 물속은 1000여종이 넘는 이름 모를 열대 물고기들이 살고 있어 해양스포츠를 하는 이들의 천국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한다.
탈출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건너는 장면을 읽을 때면 기마와 병거로 무장한 이집트 군대가 노인과 아이, 여자들을 거느린 이스라엘인들의 행렬을 금방이라도 따라 잡을 것 같은 급박함으로 마음을 졸이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이 되곤 했다.
그 성경의 무대인 홍해를 실제로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그리던 나의 상상력은 길이 2,8킬로미터의 해저터널의 통과로 간단히 끝나고 말았다.
버스는 이집트와 시나이 반도를 이어주는 ‘아흐마디 함디‘라고 불리는 수에즈 해저 터널을 지난 것이다. 우리가 탄 차는 계속해서 홍해를 옆으로 두고 다른 한쪽으로는 끝없는 광야를 끼고 시나이 반도를 향해 달렸다.
이어서 끝없는 스루광야가 펼쳐졌다. 광야와 사막의 차이는 토양의 성질에 있다고 한다.
광야는 메말라 보이지만 식물이 살아 있다. 광야의 흙은 비가 오면 땅속으로 스며든 물이 남아 있어서 식물이 자랄 수 있는데, 사막은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빠져버려 식물이 자랄 수 없는 불모의 땅이라고 한다.
마라의 샘
계속해서 홍해를 옆으로 보면서 달리던 버스는 스루광야에 있는 오아시스에 멈췄다.
이집트를 탈출하여 사막을 지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마름을 견디지 못하여 모세에게 투덜거리자 모세가 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켜 백성들에게 먹였다는 (탈출기 15,16~22)장소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사흘 길을 걸어 도착한 곳을 우리는 차로 몇 시간 걸려 도착한 것이다.
사막의 모래는 곱다 못해 거의 흰색의 가루같았다. 어디든 모래가루가 뒤덮여 있었다.
이리도 메마른 땅을 모세의 뒤를따라 무작정 걸어가려니 투덜댐이 나왔음직도 하다.
키가 큰 종려나무와 낮고 뿌리가 굵은 나무들이 먼지 같은 모래흙을 덮어쓰고 서 있는 이곳에 마라의 샘이 있었다. 마라는 ‘쓰다’는 뜻이라고 한다.
모세의 샘'(아윤 무사 AYUN MUSA)이라고도 불리는 마라의 샘물은 나뭇가지와 쓰레기들이 떨어져 있어 혼탁했다.
멀리로 홍해가 보이는 곳에 오래된 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나무는 위로 자라지 못하고 옆으로 모래에 누워 자라고 있었다.
아마도 단단치 못한 모래땅에 뿌리를 제대로 내릴수 없어서 그런것 같은데 오랜 시간의 생성을 말해주는 비틀린 나무 둥치가 인상적이었다.
마침 오늘은 재의 수요일로 사순절이 시작 되는 날이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누더기를 걸친 눈이 맑은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리는 우리를 보고 몰려들었다.
미사를 드리기위해 적당한 그늘을 찾아 제대를 차리는 동안에도 유목민 아이들은 집요하게 따라붙어 '원달러'를 외치거나 뭔가 달라고 졸라댔다.
게다가 인상이 고약한 어느 할머니가 다가와 냅다 소리를 지르면서
우리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가이드는 몸집이 큰 아랍인을 고용하여 우리주변을 지켜주었다.
구약과 신약의 세계에서, 그리고 나의 신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광야에서 맞이한 올해의 사순절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막이야 말로 하느님을 체험하는 ‘영적 교육의 장’이라고 하신 신부님의 강론으로
시각적인 사막의 풍경은 정신적이고 신앙적인 내면의 사막으로 다가왔다.
모래사막 한가운데서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시오’ 라는 말씀과 함께 이마에 재를 받았다.
이같은 전례는 내 안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성찰의 끈을 늦추는 손간 모르는 사이에 솟아나
타성에 젖은 삶을 돌아보게 하여 하느님께로 다시 방향을 돌리도록 재촉하는 영적 사막의
메시지를 그 어느해 보다도 실감나게 해주었다.
사막지대인 이곳은 다른데 보다 더 밤낮의 기온차이가 심하다고 한다.
절기로 보아 겨울인 지금에도 한낮에는 태양빛이 따가운데, 여름날엔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는 제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이지방 사람들의 천성이 게으르고 느린게 아닐까 생각했다.
마라의 샘물 주변에는 나무 잎사귀로 지붕을 이은 엉성한 원두막 같은 베두인들의 집이 늘어서 있었다. 그곳은 베두인들의 집이면서 상점이기도 했다.
가루처럼 고운 모래먼지 속에서 유목민들은 하찮은 구슬을 꿰어 만든 조악한 액서세리를 몇 개 늘어놓고 한가하게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생활은 옛날 조상들의 삶에서 달라진 것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아이들도 그냥 헐벗은 채로 모래 속에서 뒹굴며 놀며 자란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지금도 여자 아이들은 열서너 살이 되면 아버지의 결정에 따라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는 것이다.
그러한 삶의 방식이 옳고 그름을 떠나 옛날의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여행자들과의 접촉으로 화폐의 가치를 알게되면서 유목민들의 관점과 생활습관이 달라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외부인들과의 접촉으로 그들의 전통적이고 자연적인 느린 삶이 빠르게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져 갈 것을 생각하니 나 또한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머문 호텔에서 이동할 때마다 나일강을 지나야 했다.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가 뱃놀이를 즐겼다는 나일 강은 한강보다 폭이 좁아 보인다.
하지만 강의 높이가 육지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물이 풍부했다.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중 하나인 나일강은 원천은 거대하리만큼 넓고 광대하게 시작하지만 점점 물이 흘러가면서 강폭은 길고 좁아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강들은 상류는 폭이 좁고 물길이 약하게 시작하여 점점 강폭이 넓고 물도 많아지는데 나일강은 그 반대의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의 범람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 중부 고원의 봄비는 약 6500KM의 여정을 거쳐 여정으로 몇 달 후 이집트를 범람하는 큰 홍수로 변한다.
수백 Km 를 흘러온 나일강은 카이로 북방에서 둘로 나누어져 나일 델타라는 대평원을 만들었다. 이렇게 형성된 땅은 무척이나 비옥한데, 그 이유는 홍수에 휩쓸려 오는 아프리카 내륙 지방의 부엽토가 서서히 침전 되면서 옥토로 변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쌓이는 부엽토로 검어진 땅을 고대 이집트인들은 케미(KEMI-검은 땅)라고도 불렀다.
이처럼 나일강의 범람은 이집트인들에게 자연의 풍부한 선물을 전해주는 젖줄이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매년 어김없이 범람하며 풍작을 안겨주는 나일강의 변화에 따라 절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홍수가 나서 델타 지역이 물에 잠겨 있는 7-10월은 농한기, 물이 빠져나간 11-2월은 농번기, 그리고 3-7월은 추수기라고 한다.
홍해
오늘은 홍해를 지나 시나이 반도를 끼고 광야 쪽으로 이동한다. 갈대바다 라고도 불리는 홍해는 아직도 오염이 안 된 바다로 유명하다.
고대로부터 홍해는 아시아와 극동 아프리카와 서방지역을 이어 주는 주요 길목이었다.
북으로 헤르몬산에서 남으로 아카바반도에 이르기까지 계속 뻗어 있는 균열 때문에 홍해 연안의 수심은 매우 깊다. 이 때문에 바다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푸르다. 산호초가 풍부한 이 깊은 물속은 1000여종이 넘는 이름 모를 열대 물고기들이 살고 있어 해양스포츠를 하는 이들의 천국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한다.
탈출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건너는 장면을 읽을 때면 기마와 병거로 무장한 이집트 군대가 노인과 아이, 여자들을 거느린 이스라엘인들의 행렬을 금방이라도 따라 잡을 것 같은 급박함으로 마음을 졸이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이 되곤 했다.
그 성경의 무대인 홍해를 실제로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그리던 나의 상상력은 길이 2,8킬로미터의 해저터널의 통과로 간단히 끝나고 말았다.
버스는 이집트와 시나이 반도를 이어주는 ‘아흐마디 함디‘라고 불리는 수에즈 해저 터널을 지난 것이다. 우리가 탄 차는 계속해서 홍해를 옆으로 두고 다른 한쪽으로는 끝없는 광야를 끼고 시나이 반도를 향해 달렸다.
이어서 끝없는 스루광야가 펼쳐졌다. 광야와 사막의 차이는 토양의 성질에 있다고 한다.
광야는 메말라 보이지만 식물이 살아 있다. 광야의 흙은 비가 오면 땅속으로 스며든 물이 남아 있어서 식물이 자랄 수 있는데, 사막은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빠져버려 식물이 자랄 수 없는 불모의 땅이라고 한다.
마라의 샘
계속해서 홍해를 옆으로 보면서 달리던 버스는 스루광야에 있는 오아시스에 멈췄다.
이집트를 탈출하여 사막을 지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마름을 견디지 못하여 모세에게 투덜거리자 모세가 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켜 백성들에게 먹였다는 (탈출기 15,16~22)장소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사흘 길을 걸어 도착한 곳을 우리는 차로 몇 시간 걸려 도착한 것이다.
사막의 모래는 곱다 못해 거의 흰색의 가루같았다. 어디든 모래가루가 뒤덮여 있었다.
이리도 메마른 땅을 모세의 뒤를따라 무작정 걸어가려니 투덜댐이 나왔음직도 하다.
키가 큰 종려나무와 낮고 뿌리가 굵은 나무들이 먼지 같은 모래흙을 덮어쓰고 서 있는 이곳에 마라의 샘이 있었다. 마라는 ‘쓰다’는 뜻이라고 한다.
모세의 샘'(아윤 무사 AYUN MUSA)이라고도 불리는 마라의 샘물은 나뭇가지와 쓰레기들이 떨어져 있어 혼탁했다.
멀리로 홍해가 보이는 곳에 오래된 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나무는 위로 자라지 못하고 옆으로 모래에 누워 자라고 있었다.
아마도 단단치 못한 모래땅에 뿌리를 제대로 내릴수 없어서 그런것 같은데 오랜 시간의 생성을 말해주는 비틀린 나무 둥치가 인상적이었다.
마침 오늘은 재의 수요일로 사순절이 시작 되는 날이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누더기를 걸친 눈이 맑은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리는 우리를 보고 몰려들었다.
미사를 드리기위해 적당한 그늘을 찾아 제대를 차리는 동안에도 유목민 아이들은 집요하게 따라붙어 '원달러'를 외치거나 뭔가 달라고 졸라댔다.
게다가 인상이 고약한 어느 할머니가 다가와 냅다 소리를 지르면서
우리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가이드는 몸집이 큰 아랍인을 고용하여 우리주변을 지켜주었다.
구약과 신약의 세계에서, 그리고 나의 신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광야에서 맞이한 올해의 사순절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막이야 말로 하느님을 체험하는 ‘영적 교육의 장’이라고 하신 신부님의 강론으로
시각적인 사막의 풍경은 정신적이고 신앙적인 내면의 사막으로 다가왔다.
모래사막 한가운데서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시오’ 라는 말씀과 함께 이마에 재를 받았다.
이같은 전례는 내 안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성찰의 끈을 늦추는 손간 모르는 사이에 솟아나
타성에 젖은 삶을 돌아보게 하여 하느님께로 다시 방향을 돌리도록 재촉하는 영적 사막의
메시지를 그 어느해 보다도 실감나게 해주었다.
사막지대인 이곳은 다른데 보다 더 밤낮의 기온차이가 심하다고 한다.
절기로 보아 겨울인 지금에도 한낮에는 태양빛이 따가운데, 여름날엔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는 제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이지방 사람들의 천성이 게으르고 느린게 아닐까 생각했다.
마라의 샘물 주변에는 나무 잎사귀로 지붕을 이은 엉성한 원두막 같은 베두인들의 집이 늘어서 있었다. 그곳은 베두인들의 집이면서 상점이기도 했다.
가루처럼 고운 모래먼지 속에서 유목민들은 하찮은 구슬을 꿰어 만든 조악한 액서세리를 몇 개 늘어놓고 한가하게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생활은 옛날 조상들의 삶에서 달라진 것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아이들도 그냥 헐벗은 채로 모래 속에서 뒹굴며 놀며 자란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지금도 여자 아이들은 열서너 살이 되면 아버지의 결정에 따라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는 것이다.
그러한 삶의 방식이 옳고 그름을 떠나 옛날의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여행자들과의 접촉으로 화폐의 가치를 알게되면서 유목민들의 관점과 생활습관이 달라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외부인들과의 접촉으로 그들의 전통적이고 자연적인 느린 삶이 빠르게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져 갈 것을 생각하니 나 또한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출처 : 베텔 하늘방
글쓴이 : 마르가릿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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