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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에나 아씨시

flower1004 2009. 7. 27. 12:01

8_ 피사 ... 시에나 ... 아씨시

 

괜찮은가? 염려하며 잠에서 깬다. 천장 높은 하얀 방. 반짝이는 시내를 벗어나 들어온 외곽에 있는 오래된 성 같은 곳에서 하루를 잘 자고 일어난다. 문득 안개가 두렵다. 적응하기에는 시간이 짧을 것이고, 난 이미 떠날 것이다. 자꾸 한기가 몸에 스미다보니 아그리젠토 콩코드 신전 열린 지붕 위로 열리던 늠연한 하늘이 그리워지는 아침이다. 몬테카시니를 떠나 피사로 간다. 자전거가 늘고 자전거 도로가 생긴 마을의 아름다운 빌라들을 지난다. 눈 덮인 뾰족한 산과 공장 지대를 지나자 오늘은 아주 밝은 햇빛이 쨍쨍 빛난다.

멀리 산맥이 보이고 피사에 가까워진다. 로마시대에 닦은 길, 기원전 4세기경의 아피아 가도를 달린다. 지금은 아스팔트가 깔렸지만 원래는 돌길이었다. 양옆에 하수처리까지 제대로 된 돌길.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어 들어간 곳에 기적의 광장이 있었다. 환한 햇살 속에 세례당과 대성당과 사탑이 빚어내는 하얀 조화 속에 발을 들여놓자 종이 울린다. 맨 먼저 만나는 세례당은 갈릴레이를 비롯한 피사의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은 곳이다. 피사의 사탑과 대성당과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늑대의 젖을 빨고 있는 푸른 잔디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우리는 피사를 떠난다. 향나무가 많이 둘러싼 피사의 공동묘지를 지난다. 사탑은 푸른 하늘 아래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햇빛 밝은 날 피사로

피사 기적의 광장에 있는 대성당과 사탑

 

시에나까지 두 시간을 달린다. 서울대교구 사제가 선교사제로 와 있다는 엠폴리와 다빈치의 고향인 빈치 부근을 지난다. 잠시 차가 멎으니 바람이 느껴진다. 뜨거운 햇빛 소나무 사이로 내비치는 아주 낡은 집마저 운치가 있어 보인다. 한 여인이 빨래를 널고 있다. 토스카나 지방 시골 마을을 지나는 중이다. 신부님의 표현대로 ‘삶이 정겹게 느껴지는 곳’ 같다. 

한나절을 일광욕을 하며 간다. 도시 전체가 탑으로 이루어졌다는 중세도시 산지미니아노를 멀리서 바라본다. 나뭇가지처럼 탑이 보인다. 집집마다 굴뚝처럼 탑을 가진 마을. 아그리젠토의 햇빛이 그립다고 했더니 오늘은 얼굴이 따갑도록 토스카나의 햇빛 세례를!

시에나에 내려 카타리나 성녀의 생가를 더 올라간 곳에 있는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는다. 참 높은 곳에, 참 좁은 골목들이 아기자기하게도 삶의 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 높고 좁은 골목들이 닿는 곳은 바로 캄포광장이다. 완만하게 경사가 져 있는 캄포광장에는 빛과 그림자가 겹치고 있다.

 

 

빛과 어둠, 빛과 그림자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바람도 불어온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돌연 강한 바람이 이방인을 사로잡는다. 성모승천성당은 서늘한 바람 때문에 잔뜩 몸을 웅크리다 만난 한 송이 꽃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대단한 위용을 가진 대성당들을 보다 보니 이제 규모에 대해서는 제법 충격이 완화되고 있는 듯하다. 다만 좀더 섬세한 것들이 눈에 뜨이기 시작한다. 하얀색과 인디언핑크와 엷은 소라색의 대리석들이 꽃처럼 피어 있는 성당 광장 주변으로는 피렌체가 시에나를 정복한 후 메디치 가 사람들이 살았던 겨자색 건물과 10세기 이후 산티아고콤포스텔라로 향하던 ‘순례의 길’에 순례자들이 병원으로 사용하던 건물이 남아 있어서 그곳의 작은 성당에  들어가 본다.

 

 

 

시에나

성모승천성당의 아름다운 외관과 순례자들이 병원으로 사용하던 건물의 작은 성당 성모님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집, 성녀 카타리나의 집에 간다. 교황들의 흉상이 늘어선 앞마당을 지나 내려가니 하얀 성녀가 두 팔 가득 믿음을 증거하며 우리를 반긴다.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은 주님의 이름을 모욕한 필리스티아 사람과 친히 싸워 주신다. 하느님은 당신이 성채가 되시고 피신처인 반석이 되심을 성녀의 삶을 통해 보여주셨다.

 

 

 

△ 시에나

카타리나 성녀 생가로 가다가 내려다본 성도미니코 대성당. 성녀의 생가 성당에서 미사하다.

 

미사가 끝나고 성녀의 두개골이 안치되어 있는 성도미니코 성당의 낡은 제대 앞 멀찍이 무릎을 꿇는다. 카타리나, 카타리나, 작은 꽃이여, 저는 이제 머리를 자르지도 못합니다. 참으로 특별한 사람. 특별한 사랑 속에 특별한 삶을 살다 간 성녀께 내 삶을 위해서 전구를 청한다. 시에나의 골목들, 낡은 벽의 성화들, 모퉁이 혹은 입구들에 걸린 성화와 성상들! 온통 낡은 이미지의 향연이다.

잠시 햇빛 잘 드는 도미니코 성당 앞에 섰다가 돌아서는 시에나 거리에서 카타리나 성녀가 우리를 배웅한다.

 

 

아씨시로 가며 프란치스코, 그 사랑에 미친 사람의 생애를 듣는다. 엷은 와인색 나뭇가지에 한겨울 남은 빛이 그득 빛난다. 움브리아, 움브리아, 아씨시로 간다. 연두에서 녹색으로, 그 사이사이로 누런, 허연 비둘기색부터 갈색과 자주와 검은빛으로 이 들판은 갖가지 빛깔로 말하고 있다. 고요한 열정이 들끓고 있다. 이미 해는 지고 있고, 카메라는 이 색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 프란치스코의 삶은, 한편으로는 지극히 순결한 동화 같다. 나는 주님 앞에서의 내 서원, 약속들을 끄집어낸다. 저문 트라시메네 호수를 지나며 프란치스코의 그 ‘완전한 기쁨’을 듣는다. 호수 물빛 위로 석양이 드리운다. 페루지아를 지난다. 어둠 속의 큰 도시. 고층건물이 없어서 땅이, 마을이 아주 낮고 넓다. 아씨시 지진 당시의 상황을 듣는다. 온 동네 사람들이 묵주기도를 바치던 얘기며, 정부 차원에서의 구호물자 수급 등에 대해.

수바시오 산의 불빛이 보이는 아씨시. 보름달이 환히 팔을 벌리고 섰다. 심한 정체 끝에 아씨시 순례자 숙소에 여장을 풀고 잠시 숙소 위층에 있는 성당에 올라간다. 그득한 고요 가운데 어두운 십자가. 

출처 : 울 엄마
글쓴이 : 천사의 나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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