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들은 알바니아 태생으로 1,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한국전쟁을 취재한 미국의 저명한 사진가 디미트리 보리아
(1902~1990)가 駐日 美극동사령부 사진반에서 일할 때
한반도 각지를 돌며 촬영한 것이다.
▶전쟁은 체면이나 양심, 도덕률.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곳에 현실로 존재한다.유치원에 다녀야 할 나이의
어린이가 깡통을 들고 거리에나가 낯선 얼굴들에게
손바닥을 벌려야 했다.
▶ 나무뿌리라도 먹어야 산다.그리고 잡초보다
모질 게 살아남아야 했다.
아이를 업은 소녀의 손에 쥐어진 나무뿌리는 가족의 한 끼
식사일까, 아니면 땔감일까 ?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어린 형제가 골목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 전란통에 용케도 살아남은 이 소년 소녀들은시민혁명과
쿠데타,군사독재와 경제기적의 한복판을 질풍노도처럼 관
통하여"의지의 한국인"을 세계에 알리는 주역이 되었다.
▶ 부모님은 피난통에 돌아가시고, 살던 집은 폭격으로 다
부서져폐허가 된 터에 어린 소년이 버려진 채 눈물을 훔치
고 있다.고난의 1950 년대를 몸으로 때우며 살아온 이 민족
의 처절한 단면이다.
▶ 찬 이슬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헛간이라도 좋았다.
행색은 초라해도 카메라를 강하게 의식하는 이 초롱초롱한
눈매의 자매들은 지금쯤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
▶개털모자에 항공모함같은 헝겊 군화, 곳곳을 기운 이 복
장이 1950년대 유년시절을 보냈던 대부분 한국인의 자화상이었다
▶ 추위만 이길 수 있다면 누더기가 다 된 솜바지라도 좋다
▶ 판자로 얼기설기 엮어 지은 2층 건물 곳곳에 피난민이
바글대고 있다. 고함 한번 치면 풀썩 주저앉을 듯 위태로운
건물 모습이 위기에 처한 조국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하다.
▶ 엄동설한 추위를 피하기 위한 땔감도 넉넉지 못했던
시대에 두 소년이 끌고 가는 수레에는 한 식구의 온기를 담
보하는 행복이 실려있는 듯하다.
<포로수용소-거제도>
▶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똥통을 운반하고 있는
공산군 포로들.
▶ 인민군 포로들의 숙소. 난민 캠프를 연상케 한다.
▶ 수용소에서 공산군 포로들이
한가롭게 목욕을 하고 있다.
피가 튀고 뼈가 조각 나는 포연 자욱한 전장은
이들에겐 일장춘몽이었을까 ?
▶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취사장.
흡사 무슨 공장을 연상케 한다.
수만 명의 포로를 먹이는 것도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 무장 경비병에 둘러싸인 채 뭔가 지시사항을 듣고 있는
인민군 포로들.
▶ 수용소 연병장에 모여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포로들.
▶ 거제도 포로수용소 경비병이 인민군 포로들로부터
입수한 철조망을 뜯어 만든 사제 무기와 도끼,칼
등을 들고 있다.
▶ 태극기를 들고 공산당 격퇴를 환영하는 마을 주민들.
삶과 죽음이
무시로 교차하는 전쟁에서
운이 좋은 사람들은 살아나고,
운이 다한 사람들은 한 점 흙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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