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밝힌 '슬픈 촛불'..."부엉 부엉 바보 노무현"
경찰, 새벽에 해산작전... 22시간 만에 다시 '닫힌 광장'
[특별 취재팀 : 덕수궁-서울광장 현장]
취재 : 황방열 손병관 전관석 김영균 이경태 김환 기자 / 총괄 구영식 기자
사진 : 권우성 남소연 기자
방송 : 김윤상 김호중 기자 / 총괄 이종호 기자
경찰, 예상대로 새벽에 해산작전... 22시간 만에 다시 봉쇄된 서울광장
"지금 이 늦은 시간, 아니 이른 시간에 왜 여기 오셨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요."
"모든 사람의 뜻이 같을 겁니다. 이제 이 모습을 소중한 한 표, 한 표로 보여줍시다.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그분의 뜻을 기리는 길일 것 같습니다."
30일 새벽 4시 25분 임일권(39)씨의 짧은 자유발언을 마지막으로 전날 저녁 7시께 시작됐던 추모 촛불문화제가 막을 내렸다. 임씨는 92번째 자유발언자였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함이 정토원에 임시 안치되는 모습을 보고 달려온 임씨와 함께 500여 명의 시민들이 끝까지 서울광장을 지켰다.
1년 전 '국민MT'와 닮은 시민들의 풍찬노숙
'풍찬노숙'이었다. 작년 촛불집회 '72시간 국민MT' 때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시민들은 밤이슬을 피하기 위해 우비를 입었고, 신문지며 깃발을 덮었다.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나누며 시국 토론을 했다. 몇몇 시민들은 바닥에 들러붙은 촛농을 긁어내고 쓰레기를 주워 모았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추구했던 참여민주주의는 이곳 광장에서 빛을 발했다.
이은화(56)씨는 "전경 버스가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니 민주주의가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있다 동생과 교대라도 해 광장을 지킬 생각이다"고 말했다. 이씨와 함께 있던 이철수(48)씨는 "작년 광우병 쇠고기 촛불 때도 새벽에 사람이 적을 때 경찰은 들어왔다,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제(28일)부터 밤을 새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드러누워서라도", "1970~80년대 반독재 운동처럼 물리력을 사용해서라도" 광장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 촛불문화제에 끝까지 참여한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는 "시청 광장을 지켜야 한다는 국민들의 열망이 높지만 좀 어려움이 많지 않겠냐"며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열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실 광장을 지키겠다는 시민들의 열망은 무거운 담론이 아니었다. 그저 쑥스럽게도 "별것은 아니지만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었다.
전날 오후 6시부터 프레스센터 앞에서 10시간이 넘게 경찰과 마주 보고 있던 이승호(26)씨는 "단순히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별것은 없다, 정부가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해산 과정에서 영정 쓰러지기도... 다시 차벽으로 둘러싸인 서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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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부는 끝내 이씨의 소망을 알아주지 않았다.
경찰은 새벽 5시 20분 몇 차례의 경고방송 후 인력을 투입, 해산작전에 돌입했다. 그 과정에서 서울광장에 있던 시민 중 1~2명이 밀려 쓰러져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모습도 목격됐다. 또한 경찰은 덕수궁 앞 시민분향소도 침탈했는데, 그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 영정과 추모 화환 등이 쓰러졌고 천막 등은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짓밟혔다. 이처럼 분향소가 파괴되자 시민들은 조그만 제사상을 급히 마련했다. 일부 시민들은 그 후 절을 했으며, 몇몇 시민은 눈물을 흘렸다.
해산 작전 돌입 후 10분도 지나지 않아 촛불이 가득했던 광장은 경찰들로 가득 찼다. 29일 세워졌던 용산참사 희생자와 택배노동자 박종태 열사의 분향소도 경찰들로 둘러싸였다. 서울광장이 개방된 지 22시간 만이었다. 차벽은 다시 서울광장을 봉쇄했다.
한편, 민주노총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오후 4시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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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신 : 30일 새벽 3시 10분]
"서울광장 지켜내자, 민주주의 지켜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난 서울의 첫날밤이 저물었다.
40~50만 명이 운집했던 서울광장에는 30일 새벽 3시 현재 4000명 남짓의 인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은 모처럼 되찾은 서울광장을 내줄 수 없다는 태세다. 그래서 철야 시위대의 입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구호는 이렇다.
"민주주의 지켜내자"
"서울광장 지켜내자"
새벽 1시 40분경 KBS가 "화장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봉하마을로 돌아갔다"는 뉴스를 전하며 특보 체제를 마무리했다. 국민장이 전날 자정에 공식 종료된 상황에서 경찰은 시위대가 틈을 보이면 언제라도 서울광장으로 치고 들어올 태세다.
촛불이 많이 줄어드는 새벽녘에 경찰이 서울광장의 '질서'를 되찾기 위해 해산 작전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15신 : 29일 밤 11시 10분]
끝날 줄 모르는 자유발언... "우리 마음 속 촛불 다시 켜졌다"
밤 11시 서울광장에선 5시간 넘게 시민들의 추모 자유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밤이 깊어지면서 일부 시민들이 집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광장을 채운 촛불의 수는 상당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피땀 흘리며 만든 민주주의가 MB 때문에 다 죽어난다"며 "이제는 참지 말아야 한다, MB는 청와대 자리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생 새내기라고 밝힌 여대생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것은 서민들이 밀어주지 못한 것도 있다, 그분이 돌아가시면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촛불이 다시 켜졌다"며 "여기 계신 여러분, 1년 전 우리가 밝혔던 촛불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28일 저녁 용산참사 추모집회에서 불법집회를 한 혐의로 제기동 자취방 앞에서 체포됐던 '고대녀' 김지윤(25)씨도 이날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씨는 "용산참사 추모집회 참가를 이유로, 경찰이 네 차례 소환장을 보냈지만 촛불과의 의리를 지키려 나가지 않아 체포됐다"며 "체포 이후 밤새 조사를 받고 나서도 촛불과의 의리를 지키러 이곳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철거민, 노동자들도 죽어가고 있다"며 "우리가, 촛불이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엿새 만에 열린 서울광장을 사수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내일(30일) 서울광장에서는 용산참사 범국민대회와 공공운수연맹 집회 등이 예정돼 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40대 여성은 "이명박은 서울광장과 청계광장을 막아놓으면 촛불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국민들은 잊지 않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광장을 사수하고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프레스센터 앞 차도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일부 시민들이 밤 10시 30분께 "독재 퇴진, 이명박 퇴진" 등을 외치며 청와대 쪽으로 행진을 시작하면서 잠시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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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신 : 29일 밤 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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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밤 9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골함이 봉하마을로 가는 동안 서울광장에 남은 시민들은 촛불과 함께 그를 배웅하고 있다. 밤이 깊어갈수록 서울광장을 채운 촛불 수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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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을 잃은 슬픔과 각자 삶의 고달픔을 넘어 옹골찬 각오를 밝히는 이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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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광장'은 곧바로 '분노의 광장'으로 변했다. 경찰이 서울광장 봉쇄작전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운구차량, 추모객들에 에워싸여 용산까지 | ||||||||
추모객들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차량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오후 3시 30분께 서울역을 출발한 운구차량은 시민들에 에워쌓여 도보 속도로 이동했다. 오후 5시 23분 현재 운구차량이 위치한 곳은 용산구청 문화센터 앞 고가도로. 이 도로 위에만 4000여 명이 운집해 있다.
화장 장소인 수원시 연화장에 도착 예정시각은 오후 3시. 하지만 시민들은 "밤새라도 갈 수 있다"면서 운구차량의 흐름을 막고 있다.
너무 시간이 지체되자 노건호씨가 고가도로 위에 나타났다. 일부 시민들은 박수를 치기도 했다. 잠시 뒤 시민들은 운구차량을 보내줬다. 하지만 시민들은 고가도로 위에 남아 있다. |
서울광장 앞 추모객- 경찰 충돌 시작... 길어지는 운구행렬, 서울역까지 1시간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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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구행렬을 따라가던 시민들은 "잘 가요" "행복하세요" 등을 외치며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통곡하고 오열하던 분위기는 시나브로 차분해지고 있다.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는 "수원 화장터까지 가야겠다" "봉화마을까지 가자" 등의 얘기가 터져 나왔다.
오후 2시 55분께 운구행렬이 YTN 앞을 지나자 YTN 직원들은 창문을 열고 노란색 종이비행기와 종이 꽃가루를 뿌렸다. 운구행렬을 따라가던 시민들은 "YTN 힘내라"를 외치며 지지 박수를 보냈다.
노 전 대통령을 싣은 운구차량은 서울역을 빠져 나가 수원 화장터로 이동할 예정이다.
시민들, 서울광장에 진입하려던 경찰버스 저지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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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구차량이 서울역을 빠져 나갈 즈음 서울광장 근처에서는 경찰과 시민들 간에 충돌이 벌어졌다.
오후 3시 25분께, 노제를 마치고 서울광장에 삼삼오오 흩어져 있던 수천여 명의 시민들은 서울광장으로 경찰버스가 진입하려고 하자 흥분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일부 시민들이 경찰버스를 향해 물병을 집어던지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수백 명의 시민들이 이에 가세했다. 이들은 경찰버스에 물병을 던지고 차량에 발길질을 했다. 물병 공격을 받은 경찰버스 유리창은 군데군데 금이 갔고, 결국 경찰버스는 5분 만에 광장을 빠져 나갔다.
하지만 충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추모객들은 서울광장 오른쪽에 주차해 있던 경찰버스 두 대에도 물병을 던지고 발길질을 해댔다. 결국 광장 주변에 배치돼 있던 경찰버스는 모두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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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경찰은 경찰버스를 보호하기 위해 오후 3시 35분께 전경들을 서울광장에 긴급 투입했다. 시민들은 물병을 던지며 강력히 저항했고, 전경들은 서서히 무교동쪽으로 후퇴했다. 시민들은 "독재타도" "명박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시작했다.
그러나 오후 3시 45분께부터 전경들이 시민들에게 방패를 휘두르기 시작해 격한 충돌까지 예상되고 있다.
한편 서울역을 지나친 운구차량은 도보 속도로 용산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버스 전용차로로 가고 있는 운구차량은 시민들에게 둘러쌓인 상태다. 50대 남성은 운구차 앞에서 큰 절을 두 번 하기도 했다. 일부 시민들은 "천천히 가라" "빨리 가는 게 중요하냐" "밤새라도 갈 수 있다"고 외치고 있다.
오후 4시께 운구차량의 신속한 이동을 위해 경찰차가 20여 대 투입됐지만 시민들이 되돌려 보냈다. 경찰에 대한 반감 때문에 오히려 운구차량 진행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명박은 물러나라" "노무현을 살려내라" "살인마를 처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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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신 : 29일 오후 3시 10분]
흐느끼며 고인의 이름을 부르는 시민들,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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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1시 57분 서울광장 노제가 끝났지만 시민들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쉽게 떠나보내지 못했다.
영구차가 떠날 채비를 갖추자, 시민들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차를 향해 밀물처럼 밀려갔다.
도종환 시인이 "운구차량이 나가지 못하고 있다, 고인을 보내기 힘든 마음은 이해하지만 보내주시라"고 호소했지만 사람들은 고인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사랑합니다"는 고백도 이어졌다. 손수건을 입에 틀어막고 흐느끼는 이부터, 어깨를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떨군 이도 있었다.
앞서 사전 행사 사회를 본 김제동씨도 사회 내내 울먹였다. 그는 "슬퍼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오늘은 좀 슬퍼해야겠다. 미안해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좀 미안해하겠다, 지키지 못했다"며 슬픔을 나타냈다. 또 "우리들 가슴 속에, 마음 속에 큰 비석을 세워 영원히 기리겠다"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뜻을 밝혔다.
슬픔에 젖은 시민들은 조금이라도 영구차에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김제동씨가 "바보 대통령 그러나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웠던 앞으로도 영원히 마음속에 자랑스러울 대한민국의 제 16대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님을 맞이하겠다"며 영구차 도착을 알리자 일제히 일어나 영구차를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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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노제는 김명곤 전 참여정부 문화부장관의 제식선언과 함께 시작됐다. 높게 올라간 크레인에 탄 이가 "해동조선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 훠이~ 훠이~"라며 망자의 혼을 불렀고, 이어 국립국무용단의 진혼굿이 펼쳐졌다.
안도현 시인은 노 전 대통령에게 추도시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를 바쳤다.
"고마워요, 노무현. 아무런 호칭 없이 기꺼이 바보로 부를 수 있게 해줘 고마워요. … 미안해요. 붉은 꽃잎을 두 팔뚝으로 받쳐주지 못해 미안해요."
김진경 전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의 추도시에 이어, 안숙선 명창의 조창으로 진혼굿이 마무리되자 장시아 시인이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낭독했다. 크레인 위엔 "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적힌 노란 현수막이 내걸렸고 하얀 꽃가루가 공중에서 뿌려졌다.
도종환 시인은 유서 낭독 이후 이렇게 말한 뒤 노 전 대통령이 생전 즐겨 불렀던 노래 '사랑으로' 제창을 제안했다.
"그분은 가고 우리는 남았다, 그러나 고인이 남아있는 우리 가슴에 계신 걸로 생각하겠다. 이것이 이별이 아니라 긴 인연이 시작된다 생각하겠다."
수십만 명의 합창이 이어지자 건호씨와 정연씨는 오열했다. 대형TV를 통해 이 모습을 지켜보던 시민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흐느낌과 곡소리가 곳곳에서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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