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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할 줄 모르는 한국 천주교회를 곡(哭)함**

flower1004 2009. 5. 28. 19:03

 
[길에서 길을 묻다] "작은 비석 하나로 남겨달라"

   
▲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서 있는 차벽에 붙어 있는 추모 게시물들을 바라보는 시민들.

노무현은 이상주의자였다

가족들이 있는 경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것은 저녁무렵이었다. 먹먹한 심경으로 내내 버스 안에서 갑갑한 속을 달래다가 사무실에 도착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먼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가슴에 돌 하나 무겁게 얹고 지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 속에서 더불어 슬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차벽에 가로막혀 좁아터진 길.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어쩌면 다행히 몸과 몸을 스치고 양보하며 조문행렬에 가담하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 있을 때나 봉하마을로 내려가서나 사람들 사이에서 방어벽 없이 지냈다. 공식 정부문서나 교회문헌에서 보는 '엄숙하고 정제된' 언어 대신에 생활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날것의 언어를 사용하며, 그 때문에 짐짓 고결한 척 하는 위선적인 언론의 포격을 받아야 했다. 

아내는 그렇게 말했다. 그 사람은 정치인 스타일이 아니라고. 그 말은 아내가 그에게 보내는 찬사다. '정치인'이라는 말이 우리 한국역사에서 얼마나 더럽게 기억되고 있는 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대통령 시절에 행한 정책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우익뿐 아니라 진보세력에게도 질타를 받아 왔다. 나 역시 그의 정책에 충분히 동의하지 못했다. 그러나 노무현은 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희망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 소통의 정치를 갈망했다. 열 걸음 앞서기를 권했던 진보세력에게 한 걸음씩 가자고 했으며, 죽일 듯이 상처를 내며 달겨들던 보수세력에겐 대화를 청했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은 이상주의자였다. 그리고 이 땅은 아직 이상주의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부족했다. 이렇게 그는 스스로 목숨을 버렸지만, 한편으로 완고한 한국사회에 의해 타살되었다.

아직도 날아오는 나의 꿈

   
▲ 아이까지 안고 찾아온 분향소. 그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의 유서는 반복적으로 '고통'에 대해 말한다. 그가 주목한 고통은 자신이 겪는 아픔이고, 주변 사람들이 겪을 수난이며, 사실상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가련한 인생들이 여전히 감당해야 할 절망적 상태였다. 그리고 이 고통은 쉽게 반전되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 슬퍼마라"고 한다. 자신의 죽음을 두고 미안해 할 필요도 없고, 남탓을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화장해서 집 근처에 작은 비석 하나로 남겨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우리시대의 고통을 안고 이승을 떠났으며, 우리는 앞으로 그 비석을 바라볼 때마다 그의 운명에 대해 묵상하게 될 것이다. 그의 소박한 꿈과 기꺼운 열정을 사람속 사이에서 호흡하게 될 것이다.

중학교 시절 읽었던 함형수란 시인은 비석 대신에 해바라기를 심어달라고 했다. 아마 그는 고흐의 그림을 좋아했나 보다.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시인부락 창간호, 1936.11)

나는 그의 시신이 국립서울현충원에 묻히지 않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모른다. 영문 모르고 전쟁에서 죽은 자들을 빌미로 국가주의를 배양하는 공간이며, 이승만과 박정희가 묻힌 곳에 나란히 누워있는 것은 아무래도 꺼림칙하고, 죽은 몸에도 소름이 돋을 일이다. 봉하마을에 비석은 새겨질 일이나, 그의 몸은 비석에 매이지 않을 것이다. 그 산천에 자유로 날아 고단한 삶을 잠시 접고 쉬고자 하는 자에게나 지금 길을 걷는 자에게나 다정한 말 한자락 건넬 것 같다.

인간에 대한 예의

그가 조중동을 사무치게 싫어한 것은 이유가 있다. 아마 이게 맞을 것이다. 그들의 언어가 혐오스럽고 치졸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온 백성이 죽는 것보다 백성을 위해 한 사람이 죽는 게 낫다"고 말한 대사제 카야파의 말은 오히려 점잖은 편이다.

<조선일보> 4월 27일자 김대중 칼럼은 "노무현 게이트에 얽힌 돈의 성격과 액수를 보면, 그야말로 잡범(雜犯)수준이다. 정치자금도 아니고 그저 노후자금인 것 같고 가족의 '생계형' 뇌물수수 수준이다. 그래서 더 창피하다. 2~3류 기업에서 얻어 쓰고 세금에서 훔쳐간 것이 더 부끄럽다. 지금은 사람들이 흥분하고 철저수사를 주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야말로 치사하고 한심한 생각만 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수천명의 시민을 학살하고, 수천억의 뇌물을 삼키지 못한 노무현 대통령의 소심함을 비웃는 것일까? 이 후안무치한 잡설(雜說)에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다. 

"저기 사람이 있네" 하던 그 마지막 말. "담배 있냐"던 그 떨린 목소리. "원망하지 마라"던 그 다독거리는 유언. 사람냄새 나는 그 도덕성을 조중동과 이명박 정권은 가장 두려워 한다. 그들이 조급히 원하는 세상에서 '사람냄새'는 가장 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노씨를 버리되 철저히 버리자"고 말한 것이다. 인간 진보의 씨를 말리자는 것이다. 나는 사제(司祭) 권력자였던 카야파가 왜 그렇게 예수를 죽이고 싶어했는지, 군사독재시절 라틴아메리카에서 군부세력이 왜 성경을 불온문서로 단정지었는지 노무현을 보고 다시 확인한다. 그는 인간이 존엄한 이유를 보여주었다. 목숨보다 귀한 게 있다는 것을 웅변했다. '사람'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허락된다면, 그의 죽음이야말로 '존엄사'다.

가톨릭교회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스스로 버리는 행위는 죄'라고 말한다. 이 교리에는 자살을 두려워하는 서구인들의 시각이 담겨 있다. 그러나 아시아인의 종교심성은 이와 다르다. 역사학자인 김기협 씨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을 통해 "16세기 말 중국에 온 가톨릭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일의 하나가 사람들이 쉽게 자살을 행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살을 명예롭게 여긴 문화권들도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세푸쿠(할복)', 인도의 '수티'(남편의 화장에 미망인이 함께 타죽는 풍습)은 잘 알려진 사례들이며, 불교의 윤회 사상은 죽음을 궁극적 종말로 보지 않기 때문에 자살을 비교적 관용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노무현 역시 유서에서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하고 말했다. 실상 예수조차도 "한 알의 밀알이 죽지않으면..."이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죽음의 길로 접어 들어갔다. 예수는 타살되었지만 어찌보면 자살이나 진배없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

 

애도할 줄 모르는 한국 천주교회를 곡(哭)함 ②
[길에서 길을 묻다] "슬픔의 능력을 상실한 교회"
2009년 05월 26일 (화) 14:07:09 한상봉 isihan@nahnews.net
그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다

   
▲ 조계사 분향소 위로 연등이 하늘까지 닿을 듯하다.

그날, 지난 일요일 저녁에 덕수궁을 거쳐 조계사로 갔다. 정부에서는 25일이 되어서야 정부 공식분향소를 서울역 등지에 설치했지만, 한국불교 조계종에서는 23일에 이미 전국 25개 사찰에 분향소를 설치한다고 밝힌 바 있다. 조계사 경내는 조용하고 엄숙했다. 끝 모르게 서있는 조문행렬은 분향소가 설치된 극락전 앞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줄지어 분향하고 내려와, 분향소 옆에 마련된 게시판에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빼곡히 적었다. 그리고 양초에 불을 붙이고, 따로 비치되어 있는 향로에 향불을 올렸다.

지난 23일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은 애도문을 통해 "노 前 대통령은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해왔고 또 대통령으로서 민주주의 발전과 국민들의 권익증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럼에도 갑작스럽게 국민들 곁을 떠나게 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가의 대내외적 위신을 전혀 고려함이 없이 노 前 대통령 본인과 가족들에 대한 가혹한 수사를 진행한 것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구성원 모두가 조화와 포용, 자비의 정신에 대해 심사숙고하여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것에 대해 조계종은 국민들과 애도의 마음을 함께 하고자 한다"며 전국의 사찰에서 노 전 대통령의 49재까지 축원 기도를 진행하고 조계사에서 49재를 봉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전국 25개 교구본사뿐 아니라 전국 100여 곳의 사찰에 분향소가 설치되어 불자와 시민들이 분향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총무원장인 지관스님이 직접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개신교회 역시 23일에 바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인 권오성 목사의 명의로 애도문을 발표하여 "사망 원인이 현재 검찰 수사 중인 사건과 관련한 자살이기에 국민들에게 주는 충격은 더욱 참담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80년대 어려운 시절 인권 변호사로서 앞장섰으며, 이후 민주화와 정치 개혁을 위한 행보에서 자기 헌신을 통해, 결국에 참여 정부를 세워 민주주의와 정치개혁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루어낸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향후 상황에 제대로 반영되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깊은 위로가 유가족들과 슬픔에 빠진 국민들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랍다"고 밝혔다.

당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정상복 목사)는 논평을 발표하여 "과연 누가 전직 대통령까지도 극단적 죽음을 선택하게 했는지에 대한 자성이 있어야 할 것"이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화운동 세력들과 함께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혼신의 노력했는데, 오늘의 정국은 그 가치들을 편협한 권력들이 곳곳에서 짓밟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정의와 인권, 자유와 평화 등의 소중한 가치들이 반영되는 민주 국가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회의 반응은 냉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스토'라는 세례명을 가진 천주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은 "노 전 대통령의 불의의 서거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으로 큰 슬픔과 충격에 빠져 있는 유족과 국민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짤막한 멘트를 언론에 남겼을 뿐이다.

 

   
▲ 25일 오전 10시 30분....명동성당은 고요하다..아니 인적이 끊어진 곳 같다. 세상이 호곡을 해도 슬퍼하지 않는다.  

노무현과 천주교회의 인연 또는악연

명동성당에는 26일 현재까지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현수막 하나 걸려 있지 않다. 물론 주교회의 차원이나 서울대교구 차원에서 공식적인 추도미사를 열겠다는 발표도 없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알 수 없다.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선 "생각이 많은 모양"이라고 올린 댓글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 성당에 와서 미사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을 두고 '냉담자'라고 부르더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냉담자라서 그러한가? 영세받지 않은 임사자에게 '대세'라도 줘서 미사를 치러주는 게 상례인데, 급작스러운 죽음에 '병자성사'를 받지 않아서 죄가 남아 있는 영혼이라서 그러한가? 권양숙 여사가 불교신자라서 그러한가?

권양숙 여사는 1990년대 초부터 서울 봉은사에 다니는 독실한 불자였지만, 노무현 대통령에게 불교를 권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로는 절에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퇴임 후 봉하마을에 내려가서는 다시 절에 가기 시작했다. 입관식에는 통도사 주지 정우 스님이 참석했다. 그리고 인권변호사 시절에 친분이 있던 부산교구 송기인 신부의 권유로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은 노무현 대통령 역시 종교에 매력을 느끼던 사람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자칭 타칭 소망교회 '장로대통령' 이미지와 뉴라이트 계열의 극렬한 개신교 신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공인으로서 종교적 중립을 지켰던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의 엄정함에 머리를 숙인다.

주변에선 '아마도 자살을 한 죄인이라서 교회가 침묵하고 있다"고 하는 말이 가장 흔히 들려온다. 교리가 천주교회 지도자들의 가슴을 내리누르고 있는 것도 문제려니와, 노무현 정부와 맺은 천주교회의 현실적 갈등 때문이라면 더 큰 문제다. 2006년 4월 21일 김수환 추기경과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해서 대구대교구장 이문희 대주교,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 주교회의 의장 정명조 주교(부산교구장) 등이 노무현 대통령과 만나 오찬을 함께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의례적 만남일뿐 사학법 개정을 둘러싼 교회와 정부와 갈등은 여전했다. 당시 교회는 사학법 개정이 교권침해라고 들고 일어났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권과 평화 등 사회적 사안에 대해 줄곧 침묵을 지키던 천주교회가 자신의 잇권이 걸린 문제에선 양보하지 않았다.

설령 노무현이 자살한 탓으로 교회가 문제 삼는다면, 이것도 묵은 단지에서 음식을 꺼내는 격이다. 1917년에 만들어진 천주교회 교회법에서는 장례미사를 금지하는 사람으로 이단자, 이교자, 배교자 그리고 자살한 사람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1983년에 개정된 법전에는 자살한 사람에 대한 조항이 삭제되었다. 다만 1041조에 자살을 시도한 자는 성품성사를 받을 수 없다고 된 항목만 있다. 또 하나, 교회법 1184조에 따르면, '공개적 추문' 이 있다고 교구 직권자가 판단하면 장례미사가 거부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인천교구의 박희중 신부는 "형법의 조항은 좁게 해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자살한 사람에 대하여도 연미사는 물론 장례미사도 드릴 수 있다"고 말한다. 하물며 애도 표시나 분향이야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언론에서 그의 죽음을 '서거'라고 표현한 것에 발끈하는 조갑제나 <조선일보>의 김대중은 노무현이 '공개적 추문'에 해당된다고 우길 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 조계사 앞마당엔 조문행렬이 줄을 잇고, 법당에선 많은 이들이 기도한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국민적 정서를 배반했다

이날 조계사로 분향하러 가던 중에 한 무리의 수녀들을 만났다. 조계사에서 예닐곱 명쯤 되는 수녀들은 조계사에서 분향하고 오는 중이라면서, "스님들이 분향소를 너무 잘 해 놓았다"고, "어서 가보라"고 했다. 가톨릭 수도자들을 조계사로 보내는 교회는 과연 무엇인가?

지난 2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을 때 16일부터 19일 까지는 38만 7420여명이 조문했다고 공식집계되었으나 대략 40만명이라고 해두자. 그중에는 천주교 신자들만 있었던 게 아니다. 불교신자도 있고, 평범한 시민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기억하는 것은 1970-80년대에 김수환 추기경이 보여주었던 모습이다. 명동성당측에서 극구 강조하듯이, 가난하고 무력한 이들에게 보여주었던 사랑과 관심 때문이었다. 그게 국민들의 정서적 공감을 자아냈다. 그후로 교회는 김수환 마케팅에 나섰다. 홍보물마다 추기경 얼굴을 박아 '바보... 사랑합니다'를 박아넣었다.

26일 현재 노무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봉하마을을 찾은 조문객은 벌써 40만 명을 넘어섰다. 전국 각지의 분향인파를 합친다면 수백만 명은 될 것이다. 이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심정은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던 심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중에 이른바 '노사모'만 있는 게 절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한국천주교회는 국민적 정서를 배반하는 것이다.

어떤 옹졸한 인간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노무현도 김수환 추기경 선종시 조문하지 않았다." 사실이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과 한국천주교회가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취한 태도는 당시 조중동과 다를 바 없었다. 집안 식구라 더 미워했던 것일까? 천주교 신자가, 사실 성당도 잘 나가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교회의 공식입장에 반하는 정책을 고집하는 데서 오는 분노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이른바 거룩하다는 교회 아닌가? 탁덕(卓德)이라는 주교 아닌가? 받은 대로 갚아주는 것은 소인배의 심경이다.

한국교회, 슬픔의 능력을 회복해야..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한국천주교회가 슬픔의 능력을 어느새 잃어버렸다는 데 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지 않는 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용산에서 화염에 휩싸여 죽어간 사람들의 시신이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병원 냉장실에 있는 데 어느 주교도 아직 그들을 찾아와 위로하지 않았다. 감옥에 갇힌 이들을 찾아가고, 목마른 이에게 물을 대접하고, 배고픈 이에게 밥을 건네며, 아픈 이에게 위로를 나누는 것이 스승 예수가 남기신 명령 아니었던가? 김수환 추기경을 인용하기 좋아하지만, 홍보자료용일뿐 아무도 그가 행했던 것을 따라 하지 않는다.

예수는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친구의 죽음을 슬퍼했다. 눈물을 떨구었다. 그가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슬픔은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한다. 슬퍼하지 않는 인간은 사람의 마음결에 스며들 수 없을뿐더러 제 심장에 깃든 그분도 만날 수 없다. 교회 역시 그러하다.

다만, 오늘 타전된 소식 하나가 희망의 한 가닥 들여오고 있어 반갑다. 비록 천주교회의 공식부문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지만, 교회의 인준조차 받지 않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제들이 5월 29일 목요일 오전 5시 30분, 봉하마을에서 위령미사를 지낸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저녁 7시에는 명동성당에서 김병상 신부 주례로 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천주교인권위원회 공동주관으로 위령미사가 봉헌된다고 한다. 이 모든 단체가 한국교회의 비공인단체라는 점에서 안타까우면서도 또한 눈물겹게 고맙다. 노무현, 그가 착한 마음으로 죽었으니, 그도 선종(善終)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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