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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도 남부] 고카나(2)_길 위의 사랑. 조금은 특별한 연애. 그리고 시선.

flower1004 2010. 2. 19. 17:20

 

@고카나(Gokarna)

 

 

 

 

그나저나, 연애 얘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속칭, *길 위의 사랑*  -ㅅ-;;

모르긴 몰라도(?) 혼자 장기여행에 나서면 *썸씽*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속설이 있다. 실제로 여행 중 수많은 커플 탄생을 목도했고, 개중엔 사뭇 진지하고 절절한 연애도 드물지 않았다. 쌍방의 합의하에 잠정적인 계약연애를 하는 이들도 흔하다. 이들은 길 위의 사랑은 대개 길 위에서 끝난다는 걸 인지하고 있어서인지 다소 계산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래서 설령 겁쟁이일지는 몰라도, 워낙 자기 영역이 뚜렷해서 종종 현명하단 느낌까지 받는다. ("순간의 감정 때문에 내 중요한 여행스케줄을 모조리 바꿀 수는 없어!!" -그들의 뇌는 끝없이 상기시킨다) 하지만 having fun하는 차원의 가벼움이 아닌, 일종의 탐탁잖은 합의하에 관계를 규정하기에 가끔은 더욱 불타오르는 것도 같다.

물론 다른 여행자와 썸씽뿐 아니라, 현지인들과 이성적인 감정이 싹트기도 한다. 이 경우 상대는 숙소나 배낭여행자 레스토랑, 투어 오피스 직원인 경우가 많은데, 빤한 경우가 많아 개인적으론 좀 비호감이다. 서로 눈이 맞아 애초 스케쥴을 바꿔 몇 달씩 여행을 같이 하고(아주 흔함), 상황이 되면 상대의 집(외국) 등에 들러 동거 아닌 동거를 하는 국제커플도 꽤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제일 신기해 하는, 서로 대화도 제대로 안 되면서 연인관계를 유지하는 국제커플들도 상당수다. 이럴 때 보통 주위에선 피상적 관계니 fuck body니 하는 뒷말이 공공연히 돈다. 아울러 사람들이 흔히 편견을 품는, 원나잇 외 각종 실험 -문어발, 매춘 등등- 을 마다하지 않는 여전사들도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여성에 대해서만 국한해 썼는데, 나름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주제라 잠시 망설였다. 내 경험으론 나름 오픈마인드라고 자신하는 적잖은 한국 남성여행자들조차, 여성여행자들에게 뻔하고 유치한 편견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는 사람 없다고 난잡하게 놀아나는 것들이 많을 거야 -_-ㅗ or 외국남자랑 어떻게 해 보려고~ >_<)  그리고 이 때문에 종종 한국 여성여행자들과 (주로 온라인) 다툼이 벌어지는데, 내가 볼 땐 여성여행자 스스로도 이같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장기여행자들의 루트는 대개 뻔하다. 그렇다 보니 겹치는 여정속에 돌고 도는 소문 속에 나름 유명인이 탄생한다.  서로 주고 받고 주워듣는 와중에 과장이 보태져, 소문들은 점차 몸을 불려간다. 여자들도 은밀한 호기심을 조심스레 내비친다. 

"어느 나라의 모 도시에서 장기체류하고 있는 A 알아?? 소문으로는 그 사람이 현지인과 외국인 애인이 몇이고~~"    

"어머, 나도 그 사람 잠시 만나 인사했는데. 그런 줄 몰랐는데 진짜야??? @_@"

대충 이런 식. 그렇다. 진부한 클리셰다.

 

 메인 비치로 가는 길목

곤봉돌리기에 여념이 없는 펀자비를 입은 여행객 (david's pic)

  

 

 어쨌거나, 고카나 마하락스미 레스토랑의 2M으로 돌아가면-.

2M은 장기 여성여행자들 치고서도 좀더 별종인 케이스였다. 나이가 들고 여행을 거듭하면서 ‘평범’ 내지 ‘정상’ 의 기준은 많이 모호해졌지만, 둘 다 결코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니었다. 미키는 이번이 나름 두 번째 모험이었다. 몇 달 전 첫 인도여행을 왔다 남자친구를 만난 후, 귀국해 여러가지 일을 정리한 후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시 인도로 ‘돌아온' 것.  관광 차원이었던 지난 번 여행과 달리, 그녀의 이번 계획은 인도에서 만난 남자친구와 고카나에서만 몇 개월을 지내는 것이었다. 

나와 메구미는 잠시 아연실색했다.

 

“아무리 고카나가 평화롭고 좋아도 이 촌구석에서만 몇 개월씩이나...?”

 

미키는 메인비치에서 조금 떨어진 소박한 방갈로에서 남자친구와 단둘이 지내고 있었고, 메구미와 나는 그녀의 조금 '특별한' 연인에 관심이 쏠렸다. 몇번 미카와 동행해 낯이 익은 그녀의 남자친구는, 이를테면 히피풍의 중노년 미국인이었다. 지적이고 매끈한 얼굴은 햇볕에 보기 좋게 그을러 있었고, 긴 은발은 단정히 뒤로 넘겨 포니테일로 묶었다. 인도 남부의 더위를 피한 현지인들마냥 룽기(일종의 치마)를 둘렀고 맨발차림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장발과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다행히 경멸조로 흔히 언급하는 '짜가 히피' 타입은 아니었다. 깊고 그윽한 푸른 눈은 시종일관 맑았고, 몇 마디 나누었을 뿐이지만 천박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메구미와 나는 어쩔 수 없는 놀라움에 조금은 뒷담화를 늘어놓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녀삘의 서양 남자와 동양 애인- 조합은 식상할 정도로 흔하지만, 하필 딱 부러진 모범생 타입의 미키가? -_-

 

 

 

“조신하고 얌전해 보였는데... 흠흠 -_- 서양 할아버지랑 단 둘이 해변 오두막에서 몇 달을 지낸다는 거지...”

 

미키가 떠난 후, 메구미가 생각에 잠겨 입을 열었다.

 

“그것도 평범한 사람은 아닌 듯한 *히피* 할배랑...!!! (그녀는 여기서 갑자기 절규했다)

 참... 남말하고 오지랖 떠는 거 질색이지만, 어... 그러니깐... 여동생-_- 같아서 말이지...”

 

국적이 같아서인지 메구미는 나보다 더 유난한 반응을 보였다. 

 

“정말 사랑하는가 보지...  이런 경우 흔하잖아 -_- 그래도 눈에 뻔히 보이는 늙수그레한 서양 루져는 아니네.

 이런 인간들 하도 많이 봐서 치가 떨리는데 그래도 미키 애인은 안 그래서 다행이야. -_-”

 

사실 메구미의 반응도 나는 약간 골때렸다. 참한 이미지로 뒷통수 치기로 말할 거면, 그러는 아가씨는요... -ㅅ-;;

물론 메구미의 경우는 약간 다른 차원이었고 이미 과거 -많은 회한을 남긴- 가 돼 버렸다는 게 다르지만, 그녀 역시 무척 드라마틱한 사랑에 빠졌었고 주위의 시선에 고통받았다. 외국인이어도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고 싶기에 자세한 얘기는 삼가고 2M의 이름 역시 가명을 썼지만, 2M에게 자극(-_-??)받아서인지, 잠시 나는 생각의 쓰나미에 파묻혀 버렸다.

 

 아니, 나는 뭐하고 있는 거임?? -_- 

 분발해야 하는 거 아냐? -ㅅ-b

 이래갖곤 완전 무료하고 재미없는 여행이 돼가고 있잖느냐,,, @0@

 여행후에 누구나 갖고 있는 드라마틱 에피소드 하나 안 생기는 거 아닐까?? ㅡㅅㅡ;;; 

 갑자기 쌍옆구리 시린 거 같어... ㅠ_ㅠ

 

등등의 온갖 허접생각들이 잔잔한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이씽, 전엔 드라마틱 커플 보면 입 삐죽이며 궁시렁대더니 ㅡㅂㅡ;;

 그러나 나의 주관과 취향과 그릇-_-?을 재점검해 본 후 금세 평화를 되찾았다. *드라마틱*이나 *비일상적*의 개념은 은근히 상대적이다. 여행중에 커플이 쉬이 탄생하고 남녀간의 그렇고 그런-_- 해프닝들도 잦긴 하지만, 2M의 경우처럼 *급진적인* 케이스는 감당도 안 되고 사절이다. 누구나 가끔씩은 일탈을 꿈꾼다지만, 굳이 자청해서 의식적으로 휘말리고 싶진 않다. 운명이 점지해 줬다면, 거부할 수 없는 삘이 꽂힌다면, 구태여 용쓰지 않아도 뭔가 꺼리가 생기겠지.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평화를 유지한다. so be it. 

 

 

메인 비치. (실제로 고카나에서 더 유명한 건 옴(M)비치와 쿠들리 비치이지만.

인도 현지인들의 옷은 눈부실 정도로 현란하다.

보기 드물게 수녀님들도 고카나에 찾아왔다.

 

 

여행은 물론 살아가면서 내가 경계하고자 노력해 온 것은, 지레 내 잣대로 남을 판단하는 것 (judgmental).

아이러니하게도 judgmental한 경향이 적잖은 나 자신을 의식해서인데 (자기중심이 약한 사람들이 흔히 이렇다는데 -_-??),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고 비웃고 하는 것이 얼마나 표피적이고 유아적인 행동인지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남을 상처입히고,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을 변호하니까.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기 위해서는 차라리 선제공격이 유효하다고 종종 생각하기도 하니까.

  물론 모든 판단기준과 준거잣대는 필연적으로 '나 자신'이니 당연한 이치이다. 하지만 이해는 못 해도, 최소한 내 기준에 빗대어 비난부터 하지는 말 것. 내가 섣부른 비난을 원치 않듯, 나도 진정이 담기지 않은 의구심과 회의의 눈초리를 보내지는 않으련다. 미키가 탐탁지 않은 연애를 하든, 메구미가 일찌감치 다사다난한 드라마와 풍파를 겪어버렸든, 내가 그 속성에 대해 무얼 알고 있을까. 까놓고 그녀들의 몇 마디 안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아픔, 성숙의 과정이 어려 있을지 거의 모르고 있잖아. 

 

 바이 더 웨이;  인생은 새옹지마라더니 메구미는 아픈 과거를 매개체로 직업을 구했으니 아예 실속이 없는 건 아니었다. -_- 

아울러 고카나에서의 그 대화 며칠 이후, 과거를 딛고 운명의 *훌리오*와  엮여 오래도록 장거리 연애를 이어가고 있다. 미키는 연락이 닿지 않아 알 수 없지만, 똑똑한 아가씨니만큼 잘 살아아겠지.

 사랑, (뒷)담화와 오지랖, 가드바드, 스밀라, 그리고 도마뱀(역시나!)와 함께 한 고카나의 추억은, 그렇게 깊어간다.  

 

 

3층 내 방의 동료들.

위장술이 돋보이는 풀잎파리 곤충과 미니 도마뱀 :)

 

(david's pic)

출처 : 여자 혼자가는 여행
글쓴이 : halfmoonwis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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