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요르단] 이집트에서 요르단으로... 아름다운 페트라
아카바 만(灣)을 넘어- 이집트 다합(Dahab)에서 요르단으로-
@ 시나이 반도 다합(Dahab).
돈도 없고 아쿠아포비아 덕에 홍해 다이빙도 안 하고 망중한을 즐기던 중... 다시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그래, 이집트 끄트머리와 작별하고, 이제 제대로 된 아랍월드 투어를 나서야겠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놓고, 다합(Dahab)에서의 마지막 밤, 드물게 호사를 누려보기로 한다.
해변가에 줄지어 늘어서있는 씨푸드 레스토랑에 들어가 해산물 바베큐를 주문하고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Mr.Passion(열정 맨)과 함께-.
열정 맨: 대만 출신으로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뛰어 무지막지하게 돈을 모아 그 돈으로 세계여행하고 있다.
개인적으론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워홀 비자를 통해 영어와 세계에 대한 시야, 돈도 모을 수 있었다고 신이 났다.
이런 망할... 호주는 신청만 하면 누구한테나 비자를 남발하는 게 문제라니깐 -_- 그러니 다들 만만하게 보지 ㅡ_ㅡ;;
홍해의 찰랑거리는 바닷물결을 안주삼아, 소파에 널부러져 시샤(중동시 물담배)도 피우고 맥주도 마신다. 이것이 상팔자...
다합이여, 이집트여, 안녕...
묘지 @ 와디무사 @ 요르단.
페트라 유적 관광 기점이 되는 동네 (관광객들 바가지 씌우기로 악명이 높다 ㅡ_ㅡ)
*
다음 날, 날이 밝는대로 나와 열정맨은 아카바 만(bay)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열정맨은 계획대로 이스라엘로, 나는 요르단을 필두로 시리아, 레바논, 터키 등을 밟기 위해-. :)
간만에 다시 혼자가 되었다. 늘 그렇듯 후련하면서도 조금은 쓸쓸하다. ㅠㅠ
솔직히 이때쯤에는 지속적으로 몇 주 이상 같이 여행할 수 있는 동행이 다시금 간절해졌다.
요르단으로 가는 페리를 타기 위해 티켓을 구입하고, 지루하게 탑승시간을 기다리다 페리에 올라탄다.
*
페리 탑승이 지연된 데다 페리 내에서 내 여권 수속절차에도 문제가 생겨,
우여곡절 끝에 요르단의 아카바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깜깜한 밤이다.
게다가 으아, 젠장... 아까부터 눈여겨 보던 외국인 단체 관광객은 이미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늦게 하선한 탓에 현지인이고 뭐고 페리에 가득했던 인파들은 그새 죄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페리터미널은 덩그마니 불 끌 준비를 하고 있지, 관리인들은 영어도 안 통해, 주위엔 이렇다 할 상점이나 건물도 없고,
어리버리하고 눈에 띄는 나같은 외국인에게 수상한 사람들이 눈길을 주고 있지... ㅡ_ㅡ;
또 어째 지긋지긋하고 익숙한 상황의 재현이냐... ㅠ_ㅠ
*
요르단에서의 계획은 간단했다.
[인디아나 존스 3]로 단번에 이름을 알린 '페트라'를 보고는 부리나케 시리아나 이스라엘 등으로 빠지는 것.
페리가 지연되지 않았다면 여유있게 도착해, 관광객들에 합류해 아카바에서 페트라로 가는 합승택시를 탔을 텐데,
시간도 시간이고 같이 페트라로 갈 사람도 안 보이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택시를 섭외한다 해도 2, 3시간 거리의 페트라까지, 혼자서 이 밤에 택시를 타고 싶진 않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오늘밤은 아카바 시에 묵고, 내일 아침 일찍 페트라로 가면 되겠지.
근데 ㅠㅠ 아카바 市내 점찍어 두었던 저렴한 호텔들에 전화를 해 보니, 웬걸, 죄다 Full이란 대답만 돌아온다. ㅠ_ㅠ
결국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마침 주위에 삐끼 기사와 흥정을 해 늦었지만 곧장 페트라까지 가기로 했다.
정식 택시라기보다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처럼 개인 승용차를 택시처럼 운용하는 형태다.
짐을 트렁크에 실으면서도 확신이 들지 않고 마음 한 구석이 못내 불안하다.
가장 경계하고 피하고 싶은 상황들 best 중 하나에 제대로 걸린 것- ㅠㅠ
달랑 혼자서, 깜깜한 밤에, 버스도 아닌 검증되지 않은 교통편에 올라타는 것. 사자의 입으로 들어가는 건 아닐까 ㅠㅠ
깎아지른 듯한 협곡 사이로 마차가 온 기세를 몰아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영화 속으로 컴백한 거 같도다 ㅎㅎㅎ
이 협곡의 이름은 '시크(Siq)'
요새 내 상태가 저 길고 긴 암울한 시크를 통과하는 기분이다. 그것도 절대적으로 혼자서-
택시 뒷좌석에 앉아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심장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정말 괜찮을까. 이 기사가 믿을만한 사람일까.
그냥 취소하고 아카바 시내로 가야 하는 건 아닐까. 호텔은 자리가 없지만 부탁해서 로비 소파에서라도 잘 수 있을 거다.
하필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운전사는 다른 덩치 큰 사내를 조수석에 또 하나 태운다.
내가 항의하듯 입을 열려 하자, 자기 형님-_-이라며 같은 방향으로 가기에 동승하는 것 뿐이라고 제스쳐로 설명한다.
이거 더 불안하게시리... ㄷㄷㄷ 만약의 경우 상대가 둘이면 더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거잖아... @_@;;
여전히 갈팡질팡하며 결정을 못 내리고 있으려니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는 것 같다.
은근 낙천적으로 행동해 온 나인데, 오늘은 온 신경이 곤두서 있는지 별별 의심스런 시나리오가 떠나질 않는다.
다른 한국인 여행자에게 직접 들은 위험천만한 얘기가 있어 더욱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콜라?"
너무 긴장해 보였나, 운전석의 아저씨가 한 모금 마시던 콜라캔을 건넨다.
-헉, 분명 뭔가 넣었을 거야... ㄷㄷㄷ-
고집스레 입을 다물고 고개만 저었다.
택시는 오르막길을 달리고, 나의 왼쪽 차창으로는 점점이 불을 밝힌 아카바 만과 아름다운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제 아카바 시를 벗어나면 페트라까지 가는 길은 인적은 물론이고 교통량도 적은 도로의 연속...
예감이 안 좋다면 지금이 택시에서 내릴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일 거야... ㄷㄷㄷ
하지만 너무 피로해서일까, 긴장감에 행동력이 마비된 걸까,
난 그저 여권과 카드, 현금등이 든 작은 가방만 더욱더 품에 꼭 안을 뿐.
우리가 탄 택시는 그렇게 아카바 시를 벗어나 깜깜한 어둠 속으로, 암흑 속으로 접어들었다.
길고 긴 어둠의 협곡을 통과해 드디어 마주치는... Treasury ('카즈네')
내 어둠의 터널 끝에도 이런 광명이 기다리고 있을런지? (그다지... ㅡㅅㅡ;;)
낙타는 자기의 운명은 아랑곳하지 않는지 늘 웃는 모양새다.
동정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인간은 낙타처럼 될 수는 없지. 인간은 너무도 복잡해.
아카바 시를 지나 완연한 어둠 속 도로를 달리면서, 내 머리속은 거의 마비상태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반응했는지 의아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터라 너무 불안했던 것 같다.
상대방이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내 흔적이고 뭐고 사라지는 건 식은 죽 먹기였으니 ㅠㅠ
여행자란 신분의, 그 깨질 듯한 연약함과 불안정성에 다시금 몸서리가 쳐졌다.
강도, 폭행, 살해, 실종신고- 온갖 단어들이 끊임없이 눈앞에 휙휙 지나간다. 지금이라도 어딘가에 갑자기 차를 세우는 거 아냐...
그 와중에도, 우려하던 만약의 순간이 온다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고-_- 나름 최후의 대책을 강구해 둔다.
내 쪽 좌석문은 열려있다 -> 중요물품이 든 가방만 안고 달리는 차에서라도 뛰어내린다 (-_- 바로 골로 가는 거 아닐까 -_-)
-> 설령 죽더라도 이게 나을 수도 있어 ㅠ_ㅠ -> 혹시 뛰어내려 안 다쳤는데 이 사람들이 쫓아온다면? -> ........-_-
-> 아니, 그보다도 운전석에서 내 쪽 문까지 잠궈버리면 어떡하지? ㅎㄷㄷ ->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큰 배낭에 넣는 게 아닌데.... ㅠ_ㅠ
이런저런 결연한 다짐에 이를 앙다물고, 극도로 긴장해 차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회색빛 아스팔트만 내려다본다.
(터미네이터 2 에필로그 화면에서처럼;;;)
아스팔트는 미래로 가는 여정길처럼 계속 지나간다.
지나간다.... 지나간다...
...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응...??!
오렌지색 불빛들이 차 안으로 흘러들고, 우리는 어느 교외마을에 도착해 있다.
헛, @ㅂ@;; 놀라서 허둥지둥 입가에 흥건한 침을 닦고-_- 기사 아저씨에게 재차 확인을 구한다.
"도착한 거에요, 네?? 페트라??!"
돌아오는 대답, Yes.
감동이다,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구나. 그 대머리 형님이란 아저씨는 중간에 내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정신력이 많이 무뎌졌나?
피로가 긴장감을 잠식해 버려 어느 순간 정신줄을 놓고 잠이 들어 버렸다. ㅡ_ㅡ;;
피로와 안이함이 현명한 판단을 가로막는 최대의 난적이란 건 익히 알지만, 그래도 결국 끝은 좋았으니까 ㅎㅎㅎ
나무도 아닌, 돌을 이렇게 유려하게 조각했다니...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가.
자연에 그대로 화해버린 입구.
마법의 주문을 외우면 입구의 문이 스르르 모습을 드러내며 입장을 허락해 줄 것 같다.
그리고 입장이 끝나면 다시 돌로 화해 흔적조차 없이 쉬~~익 사라지겠지.
(그... 피리부는 사나이-란 독일 동화도 비슷한 결말로 끝나지 않나. 아이들을 깊은 산 속 동굴이 삼켜버리는-)
페트라 유적을 보려면 근교의 와디무사 마을에 짐을 풀어야 한다.
유명 관광지를 지척에 둔 마을들이 익히 그렇듯, 와디무사는 페트라가 유명세를 타면서 급격한 상업화를 겪었다.
(페트라는 비단 와디무사 뿐 아니라, 요르단 국가 전체의 관광수입과 인지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와디무사에는 호텔, ATM 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고, 현지 거주인 & 외국 관광객 가격이 뚜렷이 존재한다.
물가 싼 이집트에서 탱자탱자하다 요르단으로 와서 그런지, 익히 요르단 물가가 쎄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였을 줄은 몰랐다.
심지어는 계란 하나에 한화 500원을 매기려는 막장 야채장수도 있다. (황금달걀도, 유기농 달걀도 아닌;;)
나중에 듣고 보니 와디무사는 별명이 '무서운 사기동네'.
바가지 안 씌우는 상점, 식당을 잘 찾아가야 한다. (나중에 보니 실제로는 이런 곳들이 더 많았다)
어쨌거나 극도의 상술에 질려버린 관광객들은, 하루이틀 빡세게 페트라만 얼렁 찍고 나서, 혀를 내두르며 암만 등으로 이동한다.
석양 @ 와디무사.
와디무사 자체는 서정적이고 시골냄새 물씬 나는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그 놈의 몇몇 악덕업소 바가지만 빼면...)
와디무사에선 익히 알려진 발렌타인 호텔에 묵었다.
성깔 쎈 여주인이 묘하게 줄리아 로버츠를 닮은 곳이다.
호텔 자체는 깔끔하지만 여주인은 듣던대로 부정직하고 한 성깔 한다. ㄷㄷㄷ
사기동네에서 돈 좀 아껴 생활해 보겠다고 감자랑 라면을 사서 좁디좁은 부엌에서 감자를 삶고 있자니,
자기 허락 안 받고 부엌 사용했다고 고래고래 큰 소리다. 부 매니져도 아니도 무조건 자기한테만 허락받아야 한단다. ㅡ_ㅡ;;
-아니, 당신 아까 찾아도 없더구만... 그럼 당신 나타날 때까지 나 배 곪으란 소리야?? >_< -
욕심많은 여주인은 돈 좀 내고 자기 호텔에서 식사를 시켜먹지 않는다고 골이 난 셈.
에휴... 이런 대접 당한 적이 한 두번이냐, 네팔 트레킹에서도 굉장했지... 씽~
맑고 파아란 하늘이 금방 부서질 듯 가뜩 건조된 페트라 유적과 명쾌한 대비를 이룬다.
이 곳 낙타들은 일봉 낙타??
낙타몰이꾼들은 어린아이들인 경우도 많다.
낙타위에 올라타 페트라를 구경하는 꼬마 관광객과, 땡볕아래 그 낙타를 끄는 어린 현지인 낙타몰이꾼.
그 대비를 보면 결국 상호이익이란 건 알면서도 현실의 대비에 씁쓸해진다.
발렌타인 호텔의 부엌 구석에서, 간간이 휴식을 취하며 호출(?)을 대기하고 있는 필리핀 소녀를 만났다.
멀리 요르단에서까지 와 부엌 보조일을 하고 있다는 데 놀랐다.
능숙한 영어나 사교적인 성격이 오래 전에 광저우에서 만난 키티를 연상시킨다.
한류스타에 대해서, 페트라 관광에 대해서, 자기의 일상에 대해 소녀는 활기차게 얘기했다.
- 여기서 일한지 얼마나 됐어?
- 6개월 정도?
- 힘들지 않아? 말도 안 통하고?
- 많이 힘들어. 하루에 6시간도 채 못 자고 쉬는 시간도 거의 없이 줄곧 일해. 주말도 물론 없고.
침침한 주방 구석에 철퍼덕 앉아 내 질문에 답하던 소녀는, 마침 주인이 부르는 소리에 잠시 투덜대다 금세 자리를 뜬다.
두바이도 아니고 요르단까지 필리핀에서 메이드 일을 하러 오는구나.
어쩌면 메이드 일은 비자 통과와 대기 업무가 아닐까. ㅡ_ㅡ
설마... 결국 결론은 또 ㅡ_ㅡ (중동에서 유럽 못지 않게 중국이나 동남아 윤락여성들이 많다는 건 익히 들었으나)
오... 나무도 아니고 저 돌의 살아있는 결을 보시라~
일본 가이드북에 나온 각도를 따라해 봤다. 마음에 들어... :)
페트라 유적 정상에 우뚝 선 모나스터리.
터미네이터 4에 등장하기도 했다.
스카이넷에 대항한 인간軍 지휘부의 비밀 회의장소였나.
페트라 유적 입장권은 가격이 상당하다.
1, 2, 3일권이 있는데 나는 1日권을 끊었고, 가격은 족히 20$는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2일권 구입하지 않길 다행이다. 페트라 유적이 워낙 광대해 하루 갖고 약간 빠듯한 감도 없지는 않지만, 아침 일찍 출발해 해질녘에 돌아오면 그런대로 웬만한 곳은 다 커버할 수 있다. 게다가... 이틀권 끊은 사람들 중 이틀 모두 페트라 관광에 나서는 사람들을 한 번도 못 봤다. ㅎㅎ 첫날 관광 갖고도 그대로 늘어져서리... ㅎㅎ
정상의 monastery로 향하는 고지대에는 이같은 조랑말(?)이 낙타를 대신한다.
아우... ㅠㅠ 왜 난 동물들만 보면 가슴이 아픈지 모르겄어... ㅡㅂㅡ
이 분들은 와디무사 마을 거주민은 아닌 것 같고, 요르단 인도 아닌 것 같고...
떠돌아다니는 소수 유목민족인가?
겉으로만 훑으며 다니니 알 턱이 없다. -_-
색감이 맘에 들어 부리나케 찍고 시치미떼며 카메라는 집어넣었다.
사진모델 돼 주고 '박시시(기부금, 자선)'를 요구하는 관행에 신물이 났다.
유쾌해 보여 슬픈 낙타...
페트라 입장료가 비싸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내가 둔황 사막에서 그랬던 것처럼 남몰래 입경을 시도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대개 게스트북의 업데이트된 정보를 입수, 경비가 허술한 새벽을 틈타 역시 뒤~~~~~~ 어딘가의 개구멍(?)을 통해 잠입을 시도한다고 한다. 역시 돈은 절약하는 덕분에 걷기도 많이 걸어야 하고 녹초가 된다는 후일담이...
윤리적인 문제는 그렇다 치고 스릴 때문에 시도하는 사람들도 은근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의 당시 체력은... 不可以... ㅠ_ㅠ
와디무사에서 맞는 두 번째 석양
이집트에서 보낸 시간이 오래돼서인지, 그리고 이집트에서 어울린 정든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요르단으로 넘어와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공허하고 외롭다.
달라진 화폐단위, 극격한 환율 변화, 조금은 낯선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
여행자의 입장에서 이렇게 조금은 튕겨나간 느낌이 드는 건,
그만큼 내가 정주(residence)의 싸이클에 익숙해져 버렸단 반증이겠지.
이젠 본연의 위치로 돌아와서 그 고리를 벗어버려야겠다. 다시 방랑자로 회귀한다.
(이집트에서 본의 아니게 오래 있긴 했다. 그걸 포스팅 하나로 대신했으니... 언제 다 쓰지... ㅠ_ㅠ)
좀 후덜덜한 일이 발렌타인 호텔에서 있었다. ㅠ_ㅠ
아직 Middle East 가이드북을 구하지 못한 터라 도미토리의 중년 이탈리아 아저씨에게 론리플래닛을 잠시 빌렸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물컵을 앞에 놓고 책을 보며 이런저런 사항을 체크하는데, 실수로 물을 책에 조금 쏟았다. ㅠ_ㅠ
혼비백산-_-(좀 까다로운 아저씨였기 땜시)해서 털고 말리고 자시고 하는데, 하필 그때 책주인이 나타날 줄이야... ㅡ_ㅡ;;
- 다 봤으면 확인할 게 있으니 책 좀 가져갈 수 있을까? :) -
예의바르던 아저씨의 표정, 내가 창백해진 얼굴로 사과의 말을 버버벅거리며 책을 건네자 금세 180도 변한다.
그래도 별말은 않고( 휴 ㅡ3ㅡ;;) 그냥 책을 집어들고 방으로 사라진다.
도미토리의 젊은 일본인 여행객들은 여전히 침대에서 뒹굴고 있다.
혼자 여행하는 여자애는 중동을 거쳐, 국제결혼해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는 언니를 방문할 예정이란다.
- 이탈리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거든. 미국에서도 일했던 언니는 그래서 영어, 이탈리아어, 일본어도 능숙해-
- 능력이 좋나 봐. 미국에선 무슨 일을 했는데?-
- 디즈니랜드 서비스 계열에서 일했어. 2년제 대학 졸업하곤 곧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는데. 엘리트 이런 건 절대 아냐 ㅋㅋ-
가끔은 내 사고폭이 너무 좁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사고의 탄력성이 없는 건 오히려 내가 아닐까.
일본애 치고 영어가 유창한 K는 JAL(일본 항공)에 합격해, 입사 전까지 마지막 긴 휴식을 취하러 중동으로 왔다.
- JAL? 무슨 업무야?-
한시도 손바닥만한 문고판 일본어책을 손에서 놓치 않고, 일본문학이 전공이라길래 당연히 경영사무지원 쪽을 예상했다.
- 파일럿. 비행기를 운전할 거야.-
- 파일럿?? 일문학과를 나와서도 파일럿으로 입사가 가능해?? @_@;;-
- 긴~ 트레이닝을 받기로 했어. 미심쩍어했지만 인터뷰 때 아주 당당하게 나갔거든.
'믿어만 주십시오. 뭐든 해내보이겠습니다!!' ㅎㅎ -
진짜라면 부러운 녀석이다. 일본회사가 오히려 유연성이 뛰어난 걸로 봐야 하는 걸까. 어째 불안하기도 하다만...
미시마 유키오나 나츠메 소세키 등을 공부하다, 비행기 조종을 배우는 파일럿으로 터닝 포인트를 찍다니...
돌이켜보면, 마냥 안이하게 내 진로와 미래를 생각하고, 일찌감치 규정지었던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물론 안이한 건 절대 아니었다. 당시에는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은 된다고 자기합리화에 급급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정말 특이하고 도전적이고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를 설정해 만전을 기할 것 같다.
인간의 후회란 대체로 그런 것이려나...
그래도 반짝이던 눈동자의 열정맨, K, 그리고 아마도 생동감 넘쳤을 과거의 '나'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밤이다...
혼란스럽다, 너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