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나아&그루지아)#

[스크랩] [코카서스] 그루지아 (3)_ 가장 만담회 @스바네티, 프랑소와의 복수 ㅠㅠ @바투미

flower1004 2010. 2. 19. 16:50

 

 

#

음, 들어가기 전에 딴소리 잠깐...

 

 그루지아 여성들은 꽤 아름다운 편이다. 특히 그 미모는, 과도한 노출이나 짙은 화장, 주렁주렁 값비싼 장신구로 이루어진 경우가 아니라 더욱 참신하게 다가온다. 물론 떠도는 소리대로, 우즈베키스탄이나 코카서스에 가면 한가인이 밭을 매고 김태희가 우유 배달을 하고- 이런 비유는 그냥 잊어버리는 게 낫다. -_- 말 그대로 우스개소리일 뿐, 아무런 의미도 일리도 없는 비유이다.

  어쨌거나, 트빌리시에서 멀지 않은 '츠케타'란 유적지에 갔을 때, 성당에서 머리수건을 쓰고 나오는 아리따운 소녀들의 싱그러운 미소에, 그녀들을 연신 흘끔거렸다. 천박함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자연스럽게 배어져 나오는 타고난 미모와 고상함옷 입은 품새는 단정하고 수수하지만 어쩜 그리 센스가 뛰어난지, 목에 두른 숄 하나, 구두 모양과 주름진 치마 하나하나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신앙심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였을까??)

 트빌리시로 돌아가는 마슈르트카를 와들와들 떨며 기다리던 중엔, 좀처럼 안 오는 마슈르트카를 저주하며 내 처지를 통탄하다, 순간 지나가는 겁나게 아름다운 여성과 눈이 마주치곤 욕을 내뱉던 자신이 정화되는(-_-) 경험까지 했다.  

 실제로 과거 오스만 제국 하렘(Harem)의 여성들 중엔 이웃 코카서스 산간지방의 가난한 농가에서 팔려온 소녀들이 상당수였다고 한다. 그 이국적인 미모가 터키남자들에게 인기가 자자했다나. 

 오잉??? 문득, 그루지아 여행 후 터키로 돌아갔을 때 한 터키인과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그루지아에서 터키로 돌아간 후 카파도키아에서 머무를 때-.

숙소 스탭과 함께 로즈밸리에 석양을 보러 갔다.

에페스 맥주를 벗삼아, 저무는 해에 각양각색의 빛깔로 일렁이는 로즈밸리의 단면을 바라보다가, 이런저런 얘기 도중 마침 코카서스 얘기가 나왔다. 내가 불쑥 말했다.

 

"어쩜, 그루지아건 아르메니아건 참 분위기 있고 예쁜 여자들이 많더라구요. 부러웠다죠. ㅎㅎㅎ (근데 남자들은 -ㅅ-;;;)"

"응...?? 그 쪽 여자들 상당수가 이스탄불 같은 대도시에서 일하고 있어."

"어, 그래요?  하긴 이웃이니까.   흠... 근데 무슨 일을 주로 하죠?"

"무슨 일이긴, 몸을 파는 거지."

 

-_-+ 짐작하고 물어보긴 했지만, 목소리에 묻어나는 경멸과 무시조가 신경에 거슬렸다.

그 외엔 친절한 스탭이긴 했지만, 다른 민족을 깔아뭉개면서까지 이렇게 빗나간 애국심을 드러내야만 할까.

이를테면 과거 7, 80년대 일본남자가 한국을 가리켜 기생관광으로 인기있다고 들먹였다면 엄청 모욕감 느꼈을 거 아니야.


 

(곁가지로 딴소리인데, 크림전쟁을 비롯해 숱하게 영토분쟁으로 충돌했던 오스만 투르크와 러시아 제국.

증오와 갈등으로 점철된 역사임에도, 접촉이 잦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터키-러시아 혼혈이 상당수 발생했다.

내가 만난 금발에 푸른 눈의 러시아 소년은, 놀랍게도 가무잡잡한 피부에 검은 눈의 아버지를 두고 있었다. 

할머니가 터키인이라 터키쉬-쿼터(quarter)인 이 러시아 소년은 그러나, 자신의 터키 계보를 전혀 달가워하지 않았다. ㅡ_ㅡ;;

하여간 넓고도 좁은 세상이다.)

 


 

스바네티 行 마슈르트카는 바람 잘 날 없다 ㅡ_ㅡ;;

 

 

스바네티 from google images

 

 

 카즈베기에서의 짧은 일정 후에 트빌리시로 돌아온 나는, 코카서스 산맥과 시골마을의 서정적인 풍경에 격앙돼 있었다.

잔뜩 고무된 나는, 그루지아를 떠나기 전 '아름답고 외진 산골마을'을 한 번 더 찾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리서치에 돌입했는데, 그 결과로 낙점된 곳은, 바로 메스티아(Mestia) 지역의 '스바네티(Svaneti)'.  사진에서 보듯 바람탑(?)들과 마을을 굽어보는 장엄한 설산으로 유명한 곳이다.

 문제는 교통편. 카즈베기의 경우처럼 트빌리시에서 직행 노선은 없다. 일단 트빌리시에서 기차로 중간 기착지인 '쥬그디디'까지 간 다음, 거기서 내가 알아서 마슈르트카를 섭외해서 스바네티 마을까지 가야 하는 것. 가고 싶으면 가야쥐~~~ ♬♪

 여차저차(모든 게 이 말로 설명되는구나 ㅎㅎㅎ) 쥬그디디 행 야간 침대열차를 예약하는 데 성공, 쥬그디디에선 지리한 기다림 끝에 메스티아 지역으로 가는 사람들을 모아 마슈르트카를 출발시킨다. :)

 


 

스바네티 行 마슈르트카는 바람 잘 날 없다 (반복)  ㅡ_ㅡ;;

 

 

핫챠뿌리.

그루지아 전통 서민음식. 치즈를 넣은 파이라 해 두자.

 

 

승객 중 나와 함께 유일한 여성이었던 바부슈카 (러시아어로, 나이드신 여성분)

 

 

 쥬그디디에서 승객 수 찰 때까지 기다린 것만 해도 족히 세 시간은 될 텐데, 애초 7~8시간이면 충분하다는 마슈르트카 운전사 말과는 달리, 스바네티까지 족히 열 서너 시간은 걸렸다. ㅠ_ㅠ

 그 이유는 바로, '바람 잘 날 없는 마슈르트카' 때문. ㅡ_ㅡ;;

험한 산줄기를 타고 굽이굽이 들어가는 만만치 않은 드라이브란 건 알고 있었지만, 시시때때로 휴게소에 들러서 요기를 하고, 화장실 브레이크 타임에다, 기사를 제외한 다른 승객들은 심지어 차 안에서까지 부어라, 마셔라, 독한 술을 들이키고... @_@;;;

이러니 제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건 일찌기 물 건너 간 셈이다. ㅠ_ㅠ

 

 

마슈르트카의 승객 일부.

왼쪽은... 조수석에 타고 있던 아저씨, 중간은 집으로 돌아가던 대학생(얘가 제일 얌전하고 나았다 -_-),

오른쪽은 그 터프한 우리의 드라이버-

근데 왜 폼하며 표정하며 이렇게 코믹 버전으로 보이지...?? ㅡ_ㅡ??

 

 

봉우리 이름을 까먹었다.

네팔의 포카라와 ABC 트레킹이 떠오른다. :)

 

 

마슈르트카의 승객은 나와 나이 지긋한 바부슈카를 제외하곤 모두 시커먼 남자들. -_-

모두 친절한 사람들이었지만 대개는 너무... 터프하다. ㅠ_ㅠ 외국인이다 보니 유쾌한 이 남정네들은 의식적으로 배려도 해 주고 관심도 보이고 아무튼 잘 챙겨준다. 핸드폰에 저장해 놓은 스바네티_메스티아 등 그루지아 북부 마을의 전통 민요도 들려주고 사진도 보여준다. 간식도 나눠주고 휴게소에선 그루지아 전통 파이인 핫챠뿌리도 사 준다. 나도 덩달아 웃고 떠들며 (나는 영어와 한국어로, 이 사람들은 러시아어와 그루지아어로 -_-) 하하호호 호호하하... 마슈르트카는 신화같은 그루지아의 산줄기를 타고 달린다..........

 

근데 기분이 상한 건, 내 옆의 사내가 보드카를 과하게 들이켰는지 자꾸 치근덕대기 시작한 것.

성격이 쾌활하고 말이 많은 건 진즉에 짐작했지만, 술이 들어가니 정도가 심해진다. -_- 물론 신체적인 접촉을 시도하거나 노골적인 추행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하필이면 바로 귓가에서 진한 술냄새 & 입냄새를 풍기면서 끊임없이 시덥잖은 (아마도) 말을 이어가고 노래를 부르는 게 점점 신경에 거슬렸다.

 

"저리 가요, 아우, 짜증난다구, 이 아저씨야~~ >_<"

(실제로 신분증까지 보여줬는데 나이에 비해 중년 아저씨 삘이 났다. 이게 바로 위대한 알코올의 해악 ㅠ_ㅠ)

 

 다른 승객들의 눈이 있으니 별로 걱정은 안 됐지만, 그래도 승객들이 이 아저씨 좀 말려줬으면 했다. 특히 카리스마 작렬인 기사 아저씨나, 유독 나를 잘 챙겨준 앞쪽 좌석에 앉은 매부리코 아저씨가.

(참고로 나와 바람잡이 아저씨는 맨 뒷좌석. 바부슈카는 우리 앞좌석)

근데- ㅠㅠ 매정하게도 아~무~도 관심을 안 보이고 오히려 거드는 승객들. 승객들은 얄미운 미소를 띠고, 제스쳐로 나와 바람잡이를 번갈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둘이, 오케이??' 연신 짝을 지으려는 듯 농담을 건넨다. 이거이거 이 사람들 촌구석 어딘가에 팔아버리려는 속셈??? @_@;;;;

 

 그래, 바부슈카(앞 좌석의 할머니)만은 내 편일 거야. 이 짖궃은 남정네들-  >_<

앞좌석에 손을 뻗어 바뷰슈카의 어깨를 툭툭 치고 부탁을 하려는데, 내 쪽을 돌아본 바부슈카.

용건도 묻기 전에 쓱~, 하고 먹고 있던 과자 봉지에서 큼지막한 과자를 꺼내 내 코앞에 들이민다.

-이거나 먹고 꿈깨셔-

그 태평하고 귀찮은 듯한 얼굴이란...  꼭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ㅠ_ㅠ

 

 

나보다 먼저 한 산골마을에 내린 매부리코 아저씨. 나름 나의 보디가드였다는- ㅎㅎㅎ

(그 바람잡이 그놈아가 아니다;;;)

 

 

 어쨌거나 그 바람잡이는 스스로 도를 넘었다.

결국 다른 승객들이 보기에도 분위기를 지나치게 흐린다고 생각했는지, 그놈아(-_-)는 목적지에 도달 못 해 중간에 버려졌다.

 

"응?? 정말 버려진 거야, 저 사람?!! @_@;;"

유일하게 영어를 한 두 마디마냥 하는 얌전한 학생을 붙잡고 바디랭귀지 & 기초 영어로 물어보니, 그렇다고 대답한다.

"TOO MUCH... 술 취했거든. ㅋㅋ"

청년은 머리 옆에다 대고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빙빙 돌린다.

 


 

가장 만담회 @ 스바네티

 

 

 

예상보다 족히 5시간 이상은 더 걸렸기에, 스바네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둑해 있었다.

다행히 미리 예약한 홈스테이 여주인이 마중을 나와있어 헤매지 않고 곧장 투숙할 수 있었다. (카즈베기처럼 스바네티 역시 현지인 홈스테이 외엔 옵션이 없다) 카즈베기에서의 쓰라린 교훈도 있고 해서-_-, 이번엔 몇 푼 더 주고라도 나 자신에게 제대로 된 식사 기회를 부여해 주기로 했다. 이 알흠답고 푸짐하고 맛 좋은 현지식 식사를 보시라~ ㅠ_ㅠ

 

 

현지 스타일 식사 @ 스바네티 홈스테이

 

 

 마침 식탁에는 나보다 하루 더 일찍 도착한 네덜란드, 프랑스 여행자가 앉아있다.

중년의 그들은 긴 휴가를 코카서스에서 트레킹도 하고 수도원과 와이너리 탐방도 하며 보낼 계획인데, 모두 스바네티에 와 첫대면을 했다고 한다. 둘 다 유머있고 서글서글한 성격인데다, 나 역시 허기를 채우고 나니 기분이 업돼서 자연스레 이야기꽃을 피우게 됐다. 여느 때처럼 일상적인 대화가 오고 가다, 국적 & 출신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프랑스 아저씨 프랑소와의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평소 때처럼 장난스럽게 질문으로 되받았다.

 

"글쎄요, 추측해 보세요. 어디서 왔을 거 같애요? :)"

 

둘은 익히 아는 아시아 국가들의 이름을 대다, 아시아계 미국인이라고도 했다가, 종내는 의아한 표정을 띄운다.

 

"모두 아니에요. 제 국적은... (음 -_-??? 맞다!!)  스웨덴이에요. 어렸을 때 입양됐거든요. ㅎㅎ"

 

고개를 끄덕이는 둘을 보며 내가 아는 정보를 취합해 스웨덴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다가, 쐐기를 박았다.

 

"하지만 저보고 스웨덴어를 해 보라던가, 이런 요구는 하지 마세요. ㅠ_ㅠ

 모국인 한국에 대해 뿌리찾기 & 정체성 탐구에 한창이거든요. 게다가 스웨덴은... 저에게 마음까지 추운 국가이기도 했어요."

.

.

ㅡ_ㅡ;;;;;

 

둘의 표정이 진지해지더니 침묵이 흐른다. 창백하고 선한 네덜란드 아저씨의 얼굴엔 일말의 연민마저 이는 것 같다.

담담하게 말하는 내게 프랑소와가 침묵을 깨고 덧붙인다.

 

"그렇지... 스웨덴이나 그... 북유럽쪽은... 그렇지, 추운 국가지, 음..."

.

.

.

이때다...!!!  지금 여기가 마지노선이다.

멈추지 않으면 농담은 진담이 되고, 나는 악취미의 농꾼에서 거짓말쟁이가 되는 기점이 바로 '지금'이다.

웃음을 터뜨리며 내가 여권을 들이밀며 쏜살같이 내쏘았다.

 

"정말로 믿으셨어요들???  후후후,,,  물론 가능성은 있는 얘기지만 제 경우는 아니에요. ㅡㅂㅡ;;

 스웨덴 여권 아닌 건 딱 봐도 아시겠죠?? 너무 진지하셔서 제가 오히려 민망해지네요, ㅋㅋㅋㅋㅋ"

 

둘의 벙찐 표정-.  그러나 아직도 반신반의.

여권을 직접 보기까지는, 이제 어떤 말을 믿어야 할지 불쌍한 아저씨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실실거리며 케이크 조각을 포크로 쑤시는 나에게 프랑소와가 조금 힐난하듯 덧붙였다.

 

"흥..... 거짓말은 좋지 않아. 흠흠... :( "

"질나쁜 농담이지 거짓말은 아니에요. 제가 계속 그 발언을 '고수' 했다면 거짓말이라 해도 할 말 없지만... : D"

"...흠... 왜 그런 농담을 하니?"

"...음... 지루하잖아요. 그리고 나도 가끔은 전혀 다른 나 자신이 된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구요. 이해하실런지 모르겠지만...

 기본신상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이런 농담은, 외국에서, 그리고 이방인들 틈에서 아니면 쉽사리 써먹기 힘들잖아요."

 

사실인지도-.

별다른 의도없이 간혹 써먹던 농담이지만 (간혹 당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감쪽같이 속이고 또 속아넘어가 주는 상대방에게 은근한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실제로 여행중이 아니라면 이런 택도 없는 농담 내지 거짓말이 통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나 '농담'으로 내 정체성을 속이고, 상대방 역시 '농담'으로 받아들여주는 건 특수한 상황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 통제력만 잃지 않고 정도만 지나치지 않는다면 조금은 해방구나 탈출구로 기능하기도 한다. 최소한 나에게는...    

 

 

소박한 스바네티 마을

 

 

'Where are you from?" 란 지루한 질문에 곧잘  "맞춰 봐" 또는 "글쎄, 어디에서 온 것처럼 보여?"

이렇게 대답하곤 했는데, 상대방은 대체로 피곤해하지 않고 즐겁게 퀴즈를 맞추듯 답을 내곤 했다.

물론 '일본', '중국' 외에는 '한국'을 곧바로 언급하는 사람들이 드문 편이고, 심지어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중앙아시아 민족들, 네팔 등 온갖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다. 아시아계 미국인이나 캐나다, 영국인 등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그래도 벨기에 출신의 무지 똑똑한 안경잽이 여자애처럼 성의없고//재미없고//인상적이었던 대답을 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너가 어디에서 온 지 맞춰보라구??  헐...(ㅡ_ㅡ 진짜 노골적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넌 세계 어느 곳에서든 왔을 수 있어(you could be from anywhere). 유럽 사람일 수도 있고, 북미 출신일 수도 있고, 그래, 너가 아마도 주장할 듯 아시아 출신일 수도 있지. 하지만 나한테 '국적'을 묻는다면 그만큼 의미없고 난이도 높은 퀴즈도 없을 거야. 그야말로, 넌 세상 수백 개 국가 중 그 어디 출신일 수도 있다구-"

 

야스민, 그 여자애한테는 쓸데없는 퀴즈 따위 집어치우고, 재깍, 내가 어디에서 왔다고 밝혔다. ㅡ_ㅡ;;;

 

 

프랑소와 @ 스바네티 홈스테이.

이 분과는 이후 터키 국경의 바투미(Batumi)와 터키의 트라브존(Trabzon)까지 동행하게 됐다.

유머있고 친절하고 독특한 성격이라 동행은 즐거웠지만,

좀... 파릇하고 귀여운 남정네가 걸리면 안 되겠니;;; ㅠㅠ

 

 

스바네티 역시 구름이 많이 끼고 추운 날씨였기에, 나는 그냥 동네 산책만 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울창한 침엽수림과 설산, 탑들이 어우러진 경치는 수려했지만, 개인적으론 카즈베기가 더 마음에 들었다. 네덜란드 아저씨와 프랑소와는 개별적으로 차를 렌트해 멀리 트레킹을 나섰고, 비용이 부담됐던 나는 그냥 동네를 돌고 있었다. 마침 와중에 단기로 그루지아 단체여행을 온 이스라엘 아주머니를 마주쳤는데, 그 아주머니 역시 나머지 일행들은 멀리 드라이브를 보내고 혼자서 멀미가 나 (-_-험한 산줄기) 동네를 소요하고 계셨다. 하릴없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아주머니가 조심스레 놀란 듯 묻는다.

 

"그래서... 혹시, 미국이나 뭐 그런 북미나 유럽 쪽에서 왔니??"

헉, 이거 여기 왜 이러냐. 이젠 아주머니께서 먼저.... ㅡㅂㅡ;;;

"한국이란 곳에서 왔어요. 정확히 말하면 남한이죠. ㅡ_ㅡ 제가 서구적인 외모와는 거리가 백만광년이잖아요,,,, ㅎㅎㅎㅎㅎ"

"근데 어떻게 이렇게 낯선 곳을 혼자 떠돌고 있니-??  @_@;;  이런... '세계의 끝 같은 곳' 을..."

 

그렇다.

기억나는데, 그녀는 'middle of nowhere'란 표현도 아닌, 'end of the world'란 표현을 썼다.

이런 후덜덜한... ㅡ_ㅡ 짐작해 보자면, 아주머니 시각에서는 그루지아의 스바네티 마을 정도는 배낭여행자는 거의 찾지 않는 외딴 곳이고, 그 곳을 동양출신의 왜소한 여인네가 찾을 거라곤 더더욱 상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 아시아계 인종이긴 해도, 북미나 유럽이나 그런 좀더 오픈된 곳에서 자랐다면 그래도 좀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아마도 이런 생각 아니었을까- 

나의 억측-_-으로는 그 정도 결론이다. 아무튼 심심하고 놀 것도 없는 스바네티 마을이었지만, 덕분에 기억에 남는다.

비록 고작 하루 지내려고 무려 20시간씩 교통편에 시달려 가며 촌구석까지 찾아갈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지만- ㅡㅡ;

 


 

 바투미(Batumi). 터키로 가는 국경이자 아름다운 해안 도시

 

 

네덜란드 아저씨와 헤어져, 나와 프랑소와는 터키로 가는 국경도시이자 그루지아의 해변 휴양지인 '바투미(Batumi)' 향했다.

일전에 터키의 호파(Hopa) 국경을 통해 바투미로 넘어왔던 나에게는 두 번째 방문이었지만, 아르메니아로 후딱 넘어가야 했던 예전을 떠올리면 이번이 제대로 된 첫 방문인 셈.  그루지아에선 마지막으로 바투미를 둘러본 후, 다음날 터키로 넘어가 곧장 카파도키아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리고는 이스탄불로-. 거기서 불가리아, 루마니아... 이런 식으로 더듬어 올라가야겠지.

(그렇다. 그 기름테러를 가한 호파의 터키 출국심사관에게 호언장담했던 말은 싸그리 잊어버린 것이다. ㅠㅠ

 '당신 때문에라도 이 국경으로 안 돌아오고 이스탄불로 곧장 날라갈 거라구!!!')

  

 

흑해.

역시 날씨가 맑아서 이 날은 흑해가 흑해처럼 안 보인다. -_-

(진정한 흑해를 느껴보기 위해선, 구름낀 흐린 날, 배고프고 헐벗은 채로 이 바다를 응시해 보라-)

 

 

낚시줄 고치는 노인.

바투미에서 찍은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

 

 

 프랑소와는 원래 그루지아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등 코카서스 지역에 자신의 3주 휴가를 써버릴 생각이었으나, (부러 ㅠㅠ) 그루지아를 그다지 즐기지 못하고 있었고, 트레킹이나 수도원도 별로 안 좋아하고, 또 스바네티에서 만난 네덜란드 아저씨에게 아제르바이잔에서 소매치기 당한 일화를 듣고 나서는 일찌감치 계획을 바꿔 터키에서 남은 휴가를 지내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요. 저도 같이 그루지아-터키 국경을 넘으면 동행도 생기고 오히려 좋죠, 뭐. :)"

 

동행이 생겨 반겼는데, 이후 후회했다.

여권사진에 사소한 착오가 있어 프랑소와가 그루지아 국경을 통과하는 데 시간을 무진장 잡아먹었고  -국제버스 승객과 운전기사들은 하마터면 기다리다 지쳐 그냥 출발할 뻔 했다-,  그 와중에 버스승객들이 프랑소와와 동행했던 나를 보며 일제히 권한 것.

  

"당신 husband 국경에 잡히게 생겼어요. 당신도 여기서 내렸다 일 해결되면 나중에 같이 올래요??"

 

아니, boyfriend도 아니고 husband가 뭐야...?? ㅠ_ㅠ

아무리 내가 나이많은 아저씨한테 환상을 품은 소시적이 있었다지만 이건 아니라구...!!!   >_<

어쨌거나 프랑소와는 겨우겨우겨우겨우 사정해서 가까스로 국경을 통과, 막 출발하려는 국제버스에 골인~했다. -_-

 

"이 사람들이 우리를 '부부'라고 하는 거 알아요? 부녀도 아니고... 나 지금 기분 별로 안 좋아요 ㅡ_ㅡ++" 

"햐, 그거... 터키인들과 그루지아인들의 상상력이란... ㅎㅎㅎ"

 

 프랑소와는 나에게 복수를 한 셈이다. ㅠㅠ

 

 

보르조미. 약(弱) 탄산수였나?

하여간 그루지아 산천에 흐르는 질 좋은 맑은 물로 제조한 無 알콜 음료.

 

 

 바투미는 멋졌다. 국경도시 특유의 긴장서린 활기와, 해안도시의 낭만과 운치가 한 데 섞여있었다. 소비에트 시절 멀리서까지 바투미로 휴양을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보니, 중앙아시아 키르기즈스탄의 이지쿨 호수같은 곳이었나 보다. 비록 지금은,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로 바투미에서 러시아 소치(Sochi)까지 운행하던 페리도 폐지됐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금발의 야윈 소녀가 데스크 업무를 보는 아늑한 아파트형 홈스테이에서 묵었고 (오, 1박에 2,500원. 게다가 독방~), 프랑소와는 저녁식사로 한 턱 내겠다며 가이드북에서 알아놓은 '바투미에서 가장 호화롭고 좋은' 레스토랑에 나를 데리고 갔다. 택시까지 대절해서, 도착해서는 립(rib)과 스테이크, 기타 샐러드와 수프와 음료가 나오는 코스요리를 시키고, 레스토랑엔 음악이 흐르고 조명도 분위기 있고... :)

 그러나, ...에러...였다. 프랑소와나 나나 둘다 레스토랑의 가격 대비 음식의 질과 분위기, 웨이터의 프로 정신 부족에 실망했다.

- 아니, 이거 정말 바투미에서 가장 럭셔리한 레스토랑 맞아요? 무슨 rib 요리가 이래??? @_@;;; -

프랑소와도 가이드북을 뒤적거리며 고개를 갸웃한다. - 아니, 큰맘먹고 돈 좀 써보려했더니 이거 뭔가 어설픈... ㅡ_ㅡ??? -

(참고로 프랑소와의 가이드북은 나의 론리플래닛이 아니었다. 러프가이드, 슈스트링도 아닌 프랑스 버젼이었음. -_-;;;)

 

 생각만큼 손님도 얼마 없다. 확실히 고급 레스토랑인 건 분명하지만, 최고급 럭셔리 레스토랑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뭔가 착오가 있었거나, 구식 가이드북을 가져왔나 보군요. 흥 :( "

 프랑소와에게 쏘아붙였다. 얻어먹는 주제에 -_-

인정하겠다. 프랑소와의 친절한 태도와 유머있고 느긋한 프랑스적 성격, 그리고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약간의 치근덕댐을 실컷 놀려주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조금은 너무 격의없이 대한 면도 있다. 아버지 뻘 어르신한테... ㅠ_ㅠ

 

 

바투미를 출발해 호파(터키 국경마을)을 거쳐 트라브존까지 가는 국제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혹시나 저번처럼 터키 국경에서 싸이코 같이 트집잡아 몇 시간이고 잡아두는 직원을 만날까 봐 두렵기도 했다.

스트레이트 국제버스에 탑승하면, 혹여나 문제가 생기면 기사 아저씨나 승객이 도와주겠지.

(그러나 착오였다. 프랑소와의 케이스를 보시라 ㅡ_ㅡ

문제가 생기면, 해당 승객 짐은 빼 버리고 환불조치조차 없이 그 사람은 국경에 내동댕이치고 쓩~ 가 버린다 ㅠㅠ

그야말로 불 난데 기름붓기, 엎친 데 덮친 격 -_-)

 

 

바투미엔 유난히 잭팟이나 슬롯머신들이 즐비한 미니 도박장들이 많았다. 왜지?? 휴양지라서??

 

 

 동행이 있다는 건, 설령 상대가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약간의 치근덕댐을 숨기고 있는 나이 차이나는 상대라 해도 도움될 때가 있다.

야경을 보러 밤에 돌아다니는 것. 그리고 나이트라이프를 즐기는 것. 

어쨌거나 프랑소와가 일류 레스토랑에서 돈을 쓰고 (사기당한-_-) 대접해 준 게 고마워, 나는 대신 맥주를 사기로 했다. 

흑해를 코앞에 둔 bar에서 맥주를 시키고 피스타치오를 주워먹으며 또 실없는 얘기를 한창 했다. -_-;;

 

"여행중에 만난 사람은- 그러니까, 이성적인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도, 결국 피상적인 관계로 끝날 공산이 크겠죠?

 여.행.중.이니까."

 

가끔은 알코올의 축복이 내려오기도 한다. 드물게 갑옷을 뚫고 솔직함이 얼굴을 드러내기도 한다.

 

"글쎄... 사람들은 보통 회의적이지만 난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여행하다 보면 물론 일상에서와는 다르게 좀 들뜨고 오픈마인드되는 경향도 있지만, 그게 오히려 그 사람의 본모습에 가깝다고 봐.

 그리고 같이 몇 주고, 몇 달이고 여행하다 보면, 여행중엔 하루 24시간을 같이 보내는 경우도 많으니까 오히려 서로에 대해 파악할

 시간은 충분한 거 같은데. 왜??????? ㅡ_ㅡ"

 

프랑소와는 프랑스에서는 흔한 이혼경력자. -_- 자기는 결혼에 회의적이라고 한다.

밤은 깊어간다. 아이구, 별 얘기 다 한다. -_- 결국 프랑소와 아저씨는 자기 부담으로 맥주를 한가득 더 시키고, 나도 얼씨구나~ 또 부어라, 마셔라 해 댔지만 물론 마지노선을 넘지는 않았다. 마지노선을 넘으면 이건 동행이 원수가 될 수도 있으니까- ㅎㅎㅎㅎㅎ

중국 양수오에서 같은 무질서한 추태는 보이지 않으리라. ㅡ_ㅡ 

 

 

실크로드 은행.

아련한 실크로드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 진정한 실크로드는 어쩌면 중국 편이 아니었던 거야.

진정한 건 중앙아시아와 이 곳 코카서스까지 이어지는 확장된 실크로드 루트이다. >_<

 

 

 그루지아-터키 국경.

 

 

트라브존으로 가는 국제버스에 올라, 창밖으로 멀어져 가는 그루지아 영토를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눈으로 쫓는다.

황금양털이란 보물을 위해 세상의 끝 -지금의 그루지아- 까지 향해 간 아르고 호의 항해.

나의 코카서스 여행은 아르고 호의 항해만큼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스릴넘치고 고난에 겨웠고 동시에 보람에 가득 찼다.

이젠 코카서스는 더 이상 막연하고 두리뭉실한 'somewhere'만은 아니다.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했을 그루지아, 여행 후에는 러시아의 그루지아 침공 기사를 접하며 가슴 졸이기도 했다.

터키의 아르메니아 민간인 대학살도 마찬가지.

이렇게 여행은 코카서스를 숨쉬고, 살아있는 곳으로 만들어 주었다.

다시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이제는 터키로... :)

출처 : 여자 혼자가는 여행
글쓴이 : halfmoonwish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