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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자살 그 유혹. `글루미 선데이`
flower1004
2009. 2. 25.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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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즈는 1935년 <수백명을 자살시킨 노래>라는 제목으로 <글루미 선데이>특집기사를 실었다.
부다페스트의 한 작곡가가 만든 이 노래는 헝가리의 라디오 전파를 탄 첫날 다섯 명의 청년을 자살하게 했다고 한다. 사이렌처럼 인간의 마음을 끌어들이며 절망을 확산시킨 이 노래는 8주 만에 헝가리에서만 187명의 자살자를 만들어냈다.
레조 세레스라는 무명작가는 이 노래 한곡으로 신화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런데 이 세레스 또한 1968년 추운 겨울 고층빌딩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만다.
도대체 이 노래 속의 무엇이 살고자 하는 의욕을 봉쇄하고 죽음을 기웃거리게 만드는가? 알 수 없다. 프로이트는 이 노래를 연구해, <글루미 선데이 이론>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노래가 인간의 자살충동에 미치는 영향? 이런 제목이었을까? 노래를 듣고 있노라니 그런 옛이야기들이 정령처럼 노래의 날개 위에서 음산한 속삭임을 보내는 것 같다. 선입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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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어쩌면 멀리 떨어진 곳의 얘기가 아니라 저 선율에서 유혹적으로 흘러나오듯 아주 가까운 곳에서 손짓하는 감미로운 선택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이 곡이 새롭게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99년 롤프 슈벨이란 감독이 이 노래를 동명의 영화로 만들고나서이다. 물론 레조 세레스의 얘기가 아니라, 슈벨이 상상력으로 재창조한 스토리이다. 네 명의 남녀가 펼치는 사랑의 뒤틀림이란 진부한 소재와 글루미 선데이의 마력을 결합해 얘깃거리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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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1935년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영화보다 더 영화처럼 살았던 매혹적인 여인과 그녀를 사랑한 세 남자의 비극의 파노라마를 드라마틱하게 펼치고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피아니스트 안드라스는 글루미 선데이를 작곡하는데 우연히 레스토랑을 방문한 빈의 음반관계자가 그에게 앨범제작을 제의한다. 이후 음반은 크게 히트를 하게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노래를 듣고 자살을 감행한다. 안드라스는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도 결국 자살을 택하게 된다. 감독은 세레스의 자살을 떠올렸을 것이다.
안드라스는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유태인 자보와 일로나 사이에 끼어 비련의 주인공이 된다. 일로나는 두 남자를 사랑하며 방황하게 된다. 이게 가능하냐고 내가 어떤 여자에게 물었더니 그녀는 웃으며 대답한다. 사랑이 하나의 대상에게 일편단심 종속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이 세상이 사랑의 위선을 퍼뜨린 게 아닐가요? 이 반문이 양다리 걸친 사랑에 면죄부는 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사랑은 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 만큼 사랑하느냐, 혹은 더 사랑하느냐 덜 사랑하느냐의 문제라는 누군가의 지적을 환기시키기는 한다.
일로나를 좋아하는 또다른 남자가 있다. 독일 사업가인 한스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일로나에게서 청혼을 거부당한다. 한스는 이에 글루미 선데이를 읊조리며 강물에 몸을 던진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자보가 그를 구한다. 한스가 "모멸당한 인간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고자 자살을 결심한다"는 말을 남기는 건 자보와의 대화 중이었을까? 그날밤 일로나는 안드라스와 밤을 보내는데, 이튿날 돌아온 그녀에게 자보는 말한다. "당신을 잃느니 반쪽이라도 갖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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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다시 튼다. 창밖으로 우중충한 하늘이 들어와 있다. 사랑과 자살을 버무린 이 강렬한 마약. 내 청춘 어느 날의 미친 노래가 문득 되살아나는 듯하다. 삶은 때로 영화보다 훨씬 영화적이다. 헤르만 헤세의 말이 떠오른다.
"개성과 강한 특징과 억센 운명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 즉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들 속에는, 자살은 하지만 그 총체적인 특징과 성격에 있어서는 결코 자살자의 유형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자살자들 속에 꼽혀야 할 사람이면서 실제로는 결코 자살을 단행하지 않는 이도 많다. 아마도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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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omy Sunday / Heather Nov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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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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