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신문에서 인터뷰를 한다고 왔다. 여러 가지 다소 평이한 질문-영어를
어떻게 공부하는가, 유학생활은 어떤가, 요즈음 스승 제자 관계가 어떻게 변하
고 있는가-끝에 기자가 조금은 엉뚱한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언제가 제일 행
복하세요? 아니, 진정 행복하다고 생각하세요?"
금방 대답할 말이 궁했다. 새삼 생각해 보니 "내가 언제 제일 행복한가?" 또는
"나는 진정 행복한가?"하고 자문해 본 적도 없는 듯하다. 회의시간이 되어 "글
쎄…"라는 말로 얼버무리고 인터뷰를 끝내려 했더니 기자는 꼭 답이 알고 싶다
고,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했다.
( Vincent van Gogh / Couple)
내가 정말 행복할까…. 회의가 끝나고 호기심 삼아 조교에게 물었다. "얘, 너는
언제가 제일 행복하니?" "글쎄요, 아마 30억짜리 로또 복권에 당첨되면 행복하
겠지요." 조교는 웃으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답했다.
시내에서 다시 회의가 있어 학교를 나오는데 문득 돌아본 캠퍼스의 나무들의 연
둣빛이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번 봄에 꽃구경 한번 못 갔으니 금요일에는
한번 야외에 나가볼까. "행복"이란 말이 나온 김에 잠깐 일을 잊고 오월의 향기
로운 바람을 쐬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하루라도 여유 있는 시간을 만
들기 위해 집에 와서 열심히 중간고사 시험지를 채점했다. 논술식으로 쓴 답을
일일이 다 읽어야 하니 골이 지끈거리고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내일 어
디로 봄소풍을 갈까….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는데 따르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중앙일보였다. "선생님, 내일이 "삶과 문화" 칼럼 마감일인 것 아시죠? 잊지 않
으셨죠?"
(Jean-François Millet / spinnercatmed.)
사실 까맣게 잊고 있던 터였다. 한 달에 한 번이라지만, 가난한 집 제사 돌아오
듯 걸핏하면 마감일이 돌아온다. 없는 재주에 지금 시작해도 시간이 빠듯한데,
행복한 봄소풍은 이제 물 건너간 셈이다. 채점하던 것을 옆으로 치우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결정했다. 대학신문 기자에게서 전화가 오면 "나는 행복을 누리기
에 너무 여유가 없다, 이렇게 사는 것보다 훨씬 행복한 삶이 어딘가에 나를 기
다리고 있을 것 같다"고 대답하리라. 그런데 문득 조카의 동화책에서 읽은 우
화 하나가 생각났다.
늘 자기는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
들이 시끄럽게 싸우고 직장에 나가면 상사에게 야단맞고 부인은 늘 잔소리뿐이
고, 사는 게 너무 재미없었다. 드디어 그는 길을 떠나 행복의 나라로 가기로 했
다. 사흘을 걷고 걸어 드디어 행복의 나라까지 가는 중간지점까지 갔고, 이제
사흘만 더 가면 행복의 나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숲 속에서 잠든
새, 장난꾸러기 요정이 그의 구두코를 반대방향으로 돌려놓았다. 아침에 일어
나 구두코가 향한 대로 다시 사흘을 걸어간 그는 드디어 행복의 나라에 도착했
다. 아니 사실은 자신이 떠난 곳으로 다시 온 셈이다. 그러나 행복의 나라에서
그는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이 있고, 아침에 나갈 직장이 있고, 늘 옆에서 지
켜주는 아내가 있어 행복하고 기쁘게 살았다.
(Winslow Homer / Four Leaf Clover )
즉,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이야기다. 행복의 조건은 세 가
지-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희망이 있고,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
라고 했다. 봄소풍 대신 네 살짜리 조카 민수를 데리고 학교 잔디밭에 가서 앉
았다. 풀밭에 앉은 김에 네 잎 클로버를 찾으니 아무리 찾아도 눈에 띄지 않고
대신 세 잎 클로버 천지였다.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상징하고,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을 상징한다고 했던가. 로또 복권 당첨되는 행운은 꿈도 못 꿔도, 찾으려
고만 들면 천지에 널려 있는 게 행복인지도 모른다.
(장영희 서강대 교수.영문학 )
Haydn string Quartet in F Major,
Op.3-5 「Serenade」'
/2 악장, Andante Cantabile
(출처 : 운영자 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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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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