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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 이기철

flower1004 2009. 7. 23. 10:20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 이기철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번의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하는 이별,
그런 이별은 숭고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할 때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 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아름다웠다
내가 만난 사람도 모두 아름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Clap your hands

 

 

 

여자라는 나무 / 이기철 

 

너를 이 세상의 것이게 한 사람이 여자다
너의 손가락이 다섯 개임을 처음으로 가르친 사람
너에게 숟가락질과 신발 신는 법을 가르친 사람이 여자다
생애 동안 일만 번은 흰 종이 위에 써야 할
이 세상 오직 하나뿐인 네 이름을 모음으로 가르친 사람
태어나 최초의 언어로, 어머니라고 네 불렀던 사람이 여자다
네 청년이 되어 처음으로 세상에 패배한 뒤
술 취해 쓰러지며 그의 이름 부르거나
기차를 타고 밤 속을 달리며 전화를 걸 사람도 여자다
그를 만나 비로소 너의 육체가 완성에 도달할 사람
그래서 종교와 윤리가
열 번 가르치고 열 번 반성케 한
성욕과 쾌락을 선물로 준 사람도 여자다

그러나 어느 인생에도 황혼은 있어
네 걸어온 발자국 헤며 신발에 묻은 진흙을 털 때
이미 윤기 잃은 네 가슴에 더운 손 얹어 줄 사람도 여자다
너의 마지막 숨소리를 듣고
깨끗한 베옷을 마련할 사람
그 겸허하고 숭고한 이름인
여자 

 

 

 

 



The 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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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에서 이르기를 전생에 여덟가지 죄를 더 지어 여자의 몸 받고 태어난다 했다. 꼬질꼬질 눈물 얼룩진 어린 날에는 여자가 싫었다. 어미도 여자 였고, 할미도 여자 였고, 스님도 여자였다. 이제 그들 속에 열번은 들락거릴 나이되어보니 여자인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알겠다. 지아비 섬겨 보아야 여자일 터, 자식 낳아 길러

보아야 여자일 터, 호호백발 할미가 되어서도 아마 마냥 여자일 터...

 

 

 

 

enjoy  the wind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 이기철


내 몸은 낡은 의자처럼 주저앉아 기다렸다
별은 연인처럼 와서 적처럼 깃든다
그리움에 발 담그면 병이 된다는 것은
일찍 안 사람은 현명하다
나, 아직도 사람 그리운 병 낫지 않아
낯선 골목 헤멜 때
등신아 등신아 어깨 때리는 바람소리 귓가에 들린다
별 돋아도 가슴 뛰지 않을 때까지 살 수 있을까
꽃잎 지고 나서 옷깃에 매달아 둘 이름 하나 있다면
아픈 날들 지나 아프지 않은 날로 가자
없던 풀들이 새로 돋고
안보이던 꽃들이 세상을 채운다
아,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삶보다는 훨씬 푸르고 생생한 생
그러나 지상의 모든 것은 한번은 생을 떠난다
저 지붕들, 얼마나 하늘로 올라가고 싶었을까
이 흙먼지 밟고 짐승들, 병아리들 다 떠날 때까지
병을 사랑하자, 병이 생이다
그 병조차 떠나고 나면, 우리
무엇으로 밥 먹고 무엇으로 그리워 할 수 있느냐

 

 

 

 

 

 

 

Homeless Artist

 

 

 

밥상 / 이기철


산 자(者)들이여, 이 세상 소리 가운데
밥상 위에 놓이는 수저 소리보다 아름다운 것이 또 있겠는가

아침마다 사람들은 문 밖에서 깨어나
풀잎들에게 맡겨둔 햇볕을 되찾아 오지만
이미 초록이 마셔버린 오전의 햇살을 빼앗을 수 없어
아낙들은 끼니마다 도마 위에 풀뿌리를 자른다

청과(靑果) 시장에 쏟아진 여름이 다발로 묶여와
풋나물 무치는 주부들의 손에서 베어지는 여름
채근(採根)의 저 아름다운 殺生으로 사람들은 오늘도
저녁으로 걸어가고
푸른 시금치 몇 잎으로 싱싱해진 밤을
아이들 이름 불러 처마 아래 눕힌다

아무것도 탓하지 않고 全身을 내려놓은 빗방울처럼
주홍빛 가슴을 지닌 사람에게는 未完이 슬픔이 될 순 없다

산 者들이여, 이 세상 소리 가운데
밥 솥에 물 끓는 소리보다 아름다운 것 또 있겠는가

 

 

  

 

 

 

 

Waiting

 

 

 

느리게 인생이 지나갔다 / 이기철


 

열 줄만 쓰고 그만두려 했던 시를
평생 쓰는 이유를 묻지 말아라
내가 편지에, 잘못 살았다고 쓰는 시간에도
나무는 건강하고 소낙비는 곧고 냇물은 즐겁게 흘러간다.
꽃들의 냄새가 땅 가까운 곳으로 내려오고
별들이 빨리 뜨지 못해서 발을 구른다.
모든 산 것들은 살아 있으므로 생이 된다

우리가 죽을 때 세상의 빛깔은 무슨 색일까,
무성하던 식욕은 어디로 갈까,
성욕은 어디로 사라질까,
추억이 내려놓은 저 형형색색의 길을
누구가 제 신발을 신고 타박타박 걸어갈까,
비와 구름과 번개와 검은 밤이
윤회처럼 돌아나간 창을 달고 집들은 서 있다.
문은 오늘도 습관처럼 한 가족을 받아들인다.

이제 늙어서 햇빛만 쬐고 있는 건물들
길과 정원들은 언제나 예절 바르고
집들은 항상 단정하고 공손하다.
그 바깥에 주둔군처럼 머물고 있는 외설스러운 빌딩들과 간판들
인생이라는 수신자 없는 우편 행랑을 지고
내 저 길을 참 오래 걸어왔다.

내일은 또 누가 새로운 식욕을 되질하며 저 길을 걸어갈까,
앞 사람이 남긴 발자국을 지우면서 내 이 길을 걸어왔으니
함께 선 나무보다 혼자 선 나무가 아름다움을
이제는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내 풍경 속에 천 번은 서 있었으니
생은 왜 혼자 먹는 저녁밥 같은가를
이제는 대답할 수 있을 듯하다.


 

 

 

 

 

The ring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 / 이기철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
껴입을수록 추워지는 것은 시간과 세월뿐이다
돌의 냉혹, 바람의 칼날, 그것이 삶의 내용이거니
생의 질량 속에 발을 담그면
몸 전체가 잠기는 이 숨막힘
설탕 한 숟갈의 회유에도 글썽이는 날은
이미 내가 잔혹 앞에 무릎 꿇은 날이다
슬픔이 언제 신음 소릴 낸 적 있었던가
고통이 언제 뼈를 드러낸 적 있었던가
목조계단처럼 쿵쿵거리는, 이미 내 친구가 된 고통들
그러나 결코 위기가 우리를 패망시키지는 못한다
내려칠수록 날카로워지는 대장간의 쇠처럼
매질은 따가울수록 생을 단련시키는 채찍이 된다
이것은 결코 수식이 아니니
고통이 끼니라고 말하는 나를 욕하지 말라
누군들 근심의 힘으로 밥 먹고
수심의 디딤돌을 딛고 생을 건너간다
아무도 보료 위에 누워 위기를 말하지 말라
위기의 삶만이 꽃피는 삶이므로

 

 

 

 

 

 

 

my too few colours,..

 

 

 

누구를 위해서 시를 쓰나 / 이기철  



누구를 위해서 시를 쓰나
문득 바람 앞에서 물어 본다
새들은 산자락을 소리 없이 날고
꽃은 들판 끝에 향기롭게 피어 있다

누구를 위해서 시를 쓰나
나는 새들 대답하지 않고 피는 꽃 소리 없이 피는데
떨어지는 나뭇잎을 밟으며
나 혼자 아프게 묻고 있다

길은 동서남북 어디로든 뻗고
물은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데
내 말 알아듣지 못하는 나뭇가지에
내 몇 마디 말 걸어 주며 대답한다

나는 지는 해를 향해 노래하지 않고
뜨는 해를 향해 노래한다고
나는 죽은 이를 위해 시를 쓰지 않고
나와 같이 이 땅의 쑥갓잎을 먹고
이 땅의 저녁연기 함께 바라볼 사람을 위해 시를 쓴다고

어제의 추억, 어제의 그림자를 위해 시를 쓰지 않고
오늘과 내일, 우리 나는 새, 풀 뜯는 소,

아, 기쁜 일 기뻐하고 슬픈 일 같이 슬퍼하는,
어느 길 위에서라도 만나 내 그의 이름 부르면
그도 달려와 내 이름 불러줄 사람들을 위해
아픈 시대의 등을 매만지며
나는 오늘도 열 줄의 시를 쓴다 




  

  이기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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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를 위해 시를 쓰나. 밥도 되지 못하고
   사랑도 되지 못하고 명예롭지도 않은 시
   자칫 조롱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인 시의 길
   누구를 위해 난 이 길을 걸었는가
   내 이름을 불러줄 사람도 없지만 그들을 의식하지도 못했고
   솔직히 아픈 시대도 별 관심이 없었고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시인으로 성공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난 왜 내가 시를 쓰는지 모른다
   그저 그냥 그렇게 쓰고 가능하면 퇴고하지 않고
   이 시대를 살면서 내가 앓았던 정신적 고름을 쏟아냈을 뿐
   가능하면 사기치지 않고 가능하면 정직하게 가능하면 엄살 부리지 않고
   쓰려 애썼지만 그래도 사기가 되고 거짓말이 되고 엄살을 부린 것 같아
   죄스럽다. 그리고 독자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내 작업이 좀 미안하지만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고 그저 보아주길 바랄 뿐
   그래도 난 쓸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 김민홍 시인



출처 : 詩의 향기 / poem & photo
글쓴이 : 동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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